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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지로 1권(3화)
一章. 네 이름은 목해운(木海雲)이다!(3)
방실방실 웃고 있는 목해운의 뺨을 어루만지며 던진 수적령의 의미심장한 말에, 혜각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지금 그 말은 수적령께서 이 아이를 도와주시겠단 말씀이오?”
“후훗, 많은 도움은 되지 못하겠지만, 집회에서 다른 분들을 한번 설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녀가 도와준다.
몽유도의 주민 모두가 좋아하는 수적령이 혜각 자신의 편을 든다는 것은, 천군만마보다 더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이에 기쁨이 충만해진 혜각은 자신도 모르게 아기를 보듬던 수적령의 손을 꽉 움켜잡은 채 소리쳤다.
“고맙소!”
몽유도는 중심부에 위치한 화산을 중점으로 크게 동위(東?)와 서위(西?)로 나뉜다.
화산의 후미 쪽인 동위엔 두 절벽 사이로 위치한 깊은 골이 있어, 그 골짜기 안으론 영수(靈獸)를 목표로 하는 갖가지 영물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영수라 함은, 인간으로 치면 신선과도 같다.
신선의 동반자로서 항상 같이 지내는 영물이 바로 영수인 것이다.
혜각과 마찬가지로 현세에서 수련을 쌓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영물들은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몽유도에 들며, 현세와는 비할 수 없는 경지를 쌓을 수 있는 몽유도에서 영수가 되기 위한 수련을 행한다.
하늘[天]과 땅[地]의 기운을 이끌고 스스로 영력을 높이는 것을 수련으로 삼는 영물들에게 있어, 몽유도는 그야말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본시 몽유도는 생과 사의 경계점에 있다 보니 그 시간의 흐름 또한 현세의 흐름과는 달랐다. 저승의 하루가 현세의 일 년과 같다면, 그 중간점인 몽유도 또한 영향을 받아 현세의 십 년이 몽유도에선 일 년과 같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세에서 십 년간 모을 천지간의 정기가 이곳 몽유도에선 일 년 만에 모일 수 있었으며, 그것은 정기를 받아들여 영수를 목표로 하는 영물들에겐 천국과도 같았다.
그들은 몽유도의 특성을 살리고자 각자의 수련 장소를 택해, 외부와의 연을 끊고 수련에만 전념했다. 그런 그들이 자리를 함께하는 것은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몽유도의 축제 때와 섬에 일이 터져 모이는 집회 때뿐이었다.
뜨거운 용암이 잠자는 화산(火山).
그 앞으론 사방 수십 장에 달하는 드넓은 공터가 자리했는데, 그 뒤로 위치한 수많은 나무 틈 사이에서 검은 그림자가 속속들이 공터로 들어서고 있었다.
곰방대를 입에 문 채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호랑이부터 시작해, 그 크기가 웬만한 거목에 견줄 정도로 커다란 메뚜기에 이르기까지, 기괴한 형상을 한 영물들은 각자 편한 자세로 공터에 앉아 맨 앞의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선 화령을 바라보았다.
“화 영감, 곤히 수련하는 우릴 부른 이유가 뭐유?!”
“화 어르신,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빨리빨리 끝냅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정기(正氣)가 소비되고 있으니, 아깝단 말이오!”
이건 꼭 무슨 뒷골목 불한당 같다.
명색이 수련을 쌓아 하나의 경지를 이루었다 하는 영물들의 언행이 자유분방함을 넘쳐, 얼핏 들으면 기분 상하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한두 번 당해 본 것이 아닌지, 화령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바위에서 폴짝 뛰어올라, 거대한 메뚜기의 이마를 솔방울만 한 주먹으로 힘껏 쥐어박았다.
딱!
“아이코, 왜 때리십니까!”
“뭐야, 이놈아? 왜 때리다니!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느냐? 네놈이 이곳 몽유도에 들어온 것이 언제냐? 그런데 네놈은 아직도 영수가 되지 못해 수련을 쌓고 있으니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더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시간이 아까워? 하이고, 이런 확 태워 죽일 놈을 봤나?! 한 번만 더 헛소리하면 내 네놈을 이곳에서 영구 추방해 버릴 테다!”
“끙…….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알겠소. 내 이제부터 입 꾹 다물고 조용할 테니 제발 내 머리 위에서 내려가 주십시오. 화령님께서 이리 머리를 밟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노기에 의한 불길이 치솟아 제 몸을 태워 버릴 것 같단 말입니다.”
“이놈 말하는 거 하고는. 흥, 알았다니 되었다.”
한 번 더, 콩 하고 머리를 쥐어박은 화령은 다시금 메뚜기의 머리에서 폴짝 뛰어 거석 위로 내려섰다. 그가 제자리로 돌아오자 과연 메뚜기를 잡아 위협을 한 효과를 보았음인지, 시끄럽던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에 히죽 미소 지은 화령은 무언가를 기다리듯 뒷짐을 쥔 채 침묵을 지켰다.
집회를 연 화령이 침묵을 지키자 영물들 사이에서 불만이 일었으나, 감히 그 불만을 토하진 못했다. 몽유도에서 가장 껄끄러운 상대 중 하나가 바로 불같은 성미를 지닌 화령이었던 것이다.
결국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사이 시간이 흘러갔다.
“…….”
촌각이 억겁과도 같은 지루한 시간이 흘러, 구름 사이의 달이 완연히 모습을 드러낸 시간. 그 시간 속으로 문득 어린 여아의 치기 어린 목소리가 장내로 흘러들었다.
“화 할아버지, 목령이 졸린데 목령이 왜 불렀어?”
쿠쿠쿠쿠쿠쿠…….
기이한 땅 끌림과 동시에 이어진 천진난만한 여아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장내에선 일대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유로이 공터에 앉아 있던 영물들은, 숲 뒤쪽에서 땅을 파헤치며 미끄러지듯 거석(巨石)을 향해 다가가는 거목(巨木)을 피해 분주히 몸을 날려야만 했던 것이다.
이윽고 처음부터 거석 옆에 자리했던 듯 위치를 잡은 거목 위에서 거침없는 몸놀림으로 한 계집아이가 뛰어내렸다.
탁!
“웃차!”
짤막한 기합성과 동시에 화령의 옆으로 뛰어내린 여아는 화령보다 머리 하나가 큰, 일곱 살 정도의 어린아이였다. 생명의 기운이 완연한 초록빛 단발머리를 양 갈래로 딴 채, 앙증맞은 보조개를 통통한 뺨 위로 만들어 낸 여아의 이름은 목령(木靈)이었다.
오행 중 목(木)을 관장하는 정령왕으로 다른 정령왕에 비해 가장 어렸으며, 지금의 지위에 오른 것도 불과 이백 년밖에 되지 않았다. 인간의 세월로 따지자면 긴 시간이었으나,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 잰 시간의 흐름일 뿐, 정령귀들에게 있어 이백 년의 시간이란 결코 긴 세월이 아니었다.
화령은 자신과 같은 지위에 오른 정령왕 중 막내라 할 수 있는 목령의 요란한 등장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요 맹랑한 것을 보았나? 무릇 나무란 대지에 뿌리를 박고 천 년의 세월을 지내는 부동의 의미이건만, 어찌 네 임의대로 나무를 움직여 이리 올 수 있단 말이냐?!”
“피, 목령이가 움직인 거 아냐! 향아가 내 다리가 아야 한 걸 알고, 여까지 태워 준다 했단 말이야!”
“허.”
지지 않고 대드는 아이의 모습에 기가 막힌 화령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찌 대지에 뿌리박은 나무가 자신의 의지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필시 목령의 힘이 향아라 불리는 나무를 움직였을 것이 뻔하건만,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으로 목에 핏대를 올리니 화령으로선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관두자, 관둬. 어린것을 상대해서 무엇 하겠는가? 쯧쯧, 어찌 선대 목령은 이 어린것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단 말인가?’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수많은 정령귀 중 지금의 목령은 선대의 이름을 물려받을 만큼 그 힘이 유독 뛰어났다. 나이는 어리나 선천적으로 다른 목의 정령귀보다 강한 힘을 타고난 그녀에게, 천상으로 불려간 선대 목령이 자신의 자리를 내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 성장이 미숙한 점을 생각한다면 섣부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차피 그건 목의 정령귀들 일이니 굳이 내가 상관할 필욘 없겠지.’
거칠기로 유명한 자신과 같은 불의 정령귀들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넌덜머리가 났던 화령은, 더 이상 목령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검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목령에겐 무시의 의미로 다가왔는지, 쀼루퉁해진 그녀는 흥흥 콧방귀를 끼며 팽 하니 고개를 돌려세웠다.
“…….”
“…….”
두 정령왕이 서로 상대를 보지 않고 침묵을 지키자 장내는 다시 고요함이 흘렀다. 그러나 곧 그 흐름은 참을성이 없는 목령에 의해 너무도 쉽게 깨져야만 했다.
“참, 화 할아버지, 근데 우린 왜 모이라 한 거야?”
“허허, 그걸 알고 싶더냐?”
“응, 응, 알고 싶어! 빨리 알고 싶어!”
“…….”
작은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지금 목령이 던진 질문은 공터에 모인 몽유도 주민 모두의 의문이었던 것이다. 화령은 모두의 의문 어린 눈빛에서 이제 자신이 이들을 모이게 한 의문을 풀어 줄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보이진 않지만 금(金)의 정령왕과 토(土)의 정령왕 역시 이 자리에 이미 와 있음을 느낀 화령은 천천히 닫혀 있던 말문을 열어 보였다.
점점이 흘러나오는 말.
그 말에 모두는 놀람과 어이없는 표정을 해 보였으며, 이윽고 혜각과 수적령이 마지막으로 공터에 들어섰을 땐 모두의 눈이 수적령의 품에 안긴 아기 목해운을 향해 있었다.
당나라 시대의 도인 현하(懸河)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법칙을 깨우치고 선도에 들었다.
그를 마중하기 위해 온 선학(仙鶴)이 현하를 보고 말하길,
‘이제 도인께선 깨달음을 얻어 신선이 되셨음이니, 제 등에 올라타 선계에 들어야 함이오.’
이에 현하가 웃음을 터뜨리며 답하기를.
‘내가 깨우친 것은 세상의 법규요, 그 보이지 않는 규칙을 도리라 한다. 도리라 함은 명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깨우쳐 아는 법이요. 하나 그 보이지 않는 도리에 묶여 마음의 자유를 잃었음이라. 내 이제 그 도리 속에 또 다른 도리를 알았음이니, 어찌 선도를 깨우쳤다 하여 선인이 되는 법규에 매이리오.’
웃음을 터뜨리며 나온 현하의 말에 선학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도인께선 신선이 되어 선계에 들기를 포기하겠단 말씀이십니까?’
어처구니없는 표정과 함께 던진 선학의 말에 현하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 도를 깨우친 신선의 길잡이인 그대 역시 법규에 매여 지금 나의 말을 이해치 못함이니, 어찌 한탄스런 일이 아닌가? 세상 법규보다 중한 것이 나의 마음이요, 세상 도리보다 중한 것이 내 마음일지니. 내 마음이 아직 세상에 남아 이 복잡한 물길 속을 떠다니길 원한다면, 내 어찌 신선 되길 포기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미련 없이 던진 현하의 말에 선학은 결국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현하의 말을 끝까지 이해치 못한 채, 다시금 하늘 높이 날아 선계로 들 수밖에 없었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하는 안타까운 얼굴로 긴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한탄스럽도다, 한탄스럽도다. 이미 정해진 규범에 얽맨 자들은 그 규범을 벗어난 자를 이해치 못함이니, 어찌 법에 매여 자유로운 자신의 마음을 잊는단 말인가? 이 세상 만물이 모두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 마음의 자유를 잃었음이니, 나의 깨달음은 단지 궤변에 지나지 않음이로다.’
한숨을 내뱉은 현하는 결국 신선이 되기를 포기한 채, 세상 그 어떤 구속에도 매이지 않은 자신의 의지로 떠돌다 생을 마감하였다.
그 언젠가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야기.
잔잔한 혜각의 이야기는 마치 손자들에게 던져 주는 옛이야기 같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몽유도의 주민 모두는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혜각을 바라보았다. 이에 혜각은 자신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의도를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현하 도인께선 그 어떤 법규보다 자신의 마음이 위에 있다 하셨습니다. 전 그런 현하 도인의 마음을 당시 스승님께 전해 들을 때는 이해치 못하였으나, 지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 아이의 어미를 구하는 것을 놓고 몽유도의 법칙에 매여 고민하였으며, 그 고민의 결론으로 제 마음이 원하는 것은 여인의 생이었습니다. 몽유도의 규칙보다 전 제 마음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 마음은 법보다 생명을 중시함이니, 이 아이를 바다에 버리자는 화 어르신의 말씀을 따를 수 없음이요, 여러분께서 부디 제 말의 뜻을 이해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당치 않소! 혜각 승, 지금 그대의 말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어찌 세상의 규칙을 지키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행할 수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질서가 없는 혼돈만이 가득 차게 될 것이오!”
“금각사(金角蛇)의 말이 옳다! 만약 당신 마음 가는 대로 살 것이라면, 무엇 하러 규칙 따위를 만든단 말인가?! 명색이 반선에 올랐다 하는 자가 규칙의 의미도 알지 못하다니, 차라리 그 아기와 함께 세상에 나가 참된 깨달음을 얻어 이곳에 다시 오는 게 어떻겠나?! 크하하하, 내 그렇담 그 아기와 자네 모두를 받아 주는 데 찬성하도록 하지!”
혜각의 말에 모두가 흥분해 외치기 시작했다.
어떤 자는 혜각에 대한 비웃음마저 날렸으며, 점차 소란해지는 장내 속에서 혜각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막상 그 예상이 현실로 닥치자 우울해진 것이다. 그런 그를 도와주려는 듯, 수적령은 자신이 안고 있던 목해운을 한쪽에 선 목령에게 맡긴 후 거석 위로 올라섰다.
차분한 몸놀림으로 거석 위에 올라선 수적령의 모습에, 시장바닥처럼 떠들썩하던 장내는 한순간 조용해졌다. 단순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요한 기도만으로 좌중을 잠재운 수적령은 이내 옆에 선 혜각을 바라보며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소녀 또한 법보다 생명을 중시하는 혜각 승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동의라니요? 수적령님께서 본 성정이 자애로움을 아나, 엄연히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깨지기 위해 있는 것이 규칙이라면, 무엇 하러 규칙을 만든단 말입니까? 또한 한 번 깨진 규칙을 어느 누가 있어 지키려 하겠습니까? 아무래도 이번 판단은 수적령님께서 잘못하신 듯합니다.”
처음 혜각의 말을 부정했던 금빛의 뱀 형상을 한 금각사가, 또다시 수적령의 의견에 반발했다. 수적령이 그런 금각사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니, 너무도 투명한 그녀의 눈빛에 금각사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곤 시선을 돌려야만 했다.
그 모습에 살포시 미소 지은 수적령은, 이내 공터 위에 모인 기괴한 형상의 영물들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던졌다.
“금각사, 당신의 말도 옳습니다. 하나, 규칙이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잘못된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이 아기가 여러분께 어떤 잘못을 했습니까? 제가 보기에 이 아기는 여러분께 아무런 위해도 끼치지 않은 줄로 압니다.”
“음…….”
분명 어떤 해코지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