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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지로 1권(4화)
一章. 네 이름은 목해운(木海雲)이다!(4)


아기가 무슨 힘이 있어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 점을 생각해 낸 금각사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설사 지금은 잘못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차후 이 아기가 커서 우리를 보고 또한 여러 정령왕들을 본다면, 이 세상에 그어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깨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현세에 사는 인간들은 우리의 존재를 아나, 그중 우리의 존재를 믿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실존한다는 걸 믿지 않는 자가 많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를 보지 못하기에 그어진 이승과 저승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인 것입니다. 만약 이 아이가 세상에 나가 자신이 본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얘기한다면, 사람들은 저승이 존재한다는 걸 믿게 될 것이며 결국엔 나아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
금각사의 정확한 지적에 처음 수적령의 말에 귀 기울였던 영물들 사이에서도 다시금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 점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수적령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해 두었던 문제의 해결법을 꺼내기 위해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인간의 아이를 처음 마주한 목령이 신기한 듯 목해운을 바라보다, 금각사의 이야기가 끝나자 폴짝 거석 위로 뛰어올라 수적령보다 먼저 입을 열어 보였다.
“난 찬성! 무조∼건 찬성, 찬성! 헤헤, 나보다 어린 동생이 생기니 난 무조건 찬성할 거야!”
“하이고, 목령님, 지금 제 이야기를 듣기는 들은 겁니까? 지금 이 문제는 단순한 우격다짐으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좀 더 신중히.”
“아아, 시끄러워, 황금 지렁이!”
“컥!”
뒷골이 쑤신다.
오백 년을 살며 정기를 받아 영물이 된 자신을 지렁이라 표하는 목령의 한마디에, 금각사는 뒷골이 쑤시는 것을 느꼈다. 그런 금각사를 향해 혀를 날름 내민 목령은 이어 당찬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흐이구, 다들 머리가 안 돌아가나 보네? 요는 이 아이가 저승이 존재한다는 걸 의식치 않고, 평범한 인간들처럼 지내면 되는 거 아냐?”
“그, 그건 그렇지만 몽유도 자체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점에 선 섬인데 어찌 그걸 숨길 수 있단 말입니까?”
“이그, 바보! 그거야 간단하잖아. 거기 너, 너, 너를 포함한 모두가 이 아기의 눈에 안 띄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럼 이 아기는 너희를 보지 못할 테고, 이 복잡∼한 문제도 간단히 해결되잖아!”
“……?!”
“……!”
분명 해결된다.
인간의 모습이 아닌 영물들이 목해운의 눈에 띄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발심이 인 금각사는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아무리 이 몽유도가 넓다 하나, 이곳에서 산다면 언젠가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될 텐데, 대체 어떻게 그 아기로부터 우리를 보이지 않게 한다는 겁니까?! 설마 우리보고 숨어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아, 진짜 뭔 불만이 그렇게 많아! 누가 숨어 살라 그랬어? 지금 너희가 살고 있는 곳이 어디야? 몽유도 동위에 위치한 천애곡(天涯谷)이잖아! 그럼 이 아기를 서위에 살게 하고, 혜각에게 동위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하면 되잖아! 어차피 너희는 천애곡에서 나오지 않으니 평상시 그대로 지내면 될 테고. 어때, 이래도 내 말에 불만 있어?!”
“끙…….”
모든 것이 지금의 생활 그대로라는데 불만이 있을 리 없다.
비록 말은 거침없으나 깔끔한 그녀의 문제 해결 방식에, 뒤에 서 있던 화령의 눈에 한줄기 감탄이 일었다.
‘허허, 철부지 꼬마인 줄만 알았더니, 선대 목령이 이 아이에게 대를 맡긴 이유를 알겠구나. 단순히 능력이 높아 자신의 뒤를 잇게 한 것이 아니었어.’
상황을 보는 눈과 그 상황의 해결 방법을 정확히 찾아낸 목령에게 화령은 은근한 미소를 흘렸다. 그 또한 아기를 죽이지 않는 쪽을 원하면 원했지, 생의 길이 있음에도 구태여 아기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단지 그가 혜각에게 그토록 화를 낸 이유는 이번 일의 문제 해결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로 이해를 맞추니 복잡하던 문제가 너무도 쉽사리 해결될 것 같아 화령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꿍한 것을 담아 두는 성품이 아닌 시원한 성격이었던 화령은 곧 목령의 의견에 찬성의 표를 던졌다.
“껄껄, 맹랑한 꼬마 계집이 옳은 말도 할 줄 아는구나! 만약 그렇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나 또한 아기가 이 몽유도에 사는 것에 찬성토록 하겠다!”
“화령님?!”
“화 어르신!”
“어랄라, 맹랑한 꼬마라니? 흥, 그럼 화 할아버지는 늙은 꼬마겠네?!”
“큭.”
기분 좋던 마음이 삭 가신다.
화령은 슬쩍 목령을 노려보았으나, 어느새 목령은 언니로 모시는 수적령 뒤로 숨은 채 고개만 빠끔히 내밀고 있었다. 한편 수적령과 혜각은 화령이 자신들의 의견에 찬성하고 나서자, 서로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목령에 이어 화령마저 자신들의 의견에 동참하니, 과연 그 효과가 큰지라 영물들 대부분 역시 찬성이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장내의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었음인지, 땅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와 모두의 안색을 어둡게 만들었다.
“반대한다. 인간의 아이를 언제까지고 이곳에 놓아둘 수는 없다.”
“토령(土靈)!”
스스스스스스…….
쇠를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음성이 끝남과 동시에, 대지 위에 깔려 있던 어둠이 하나로 합쳐지며 기괴한 형상을 만들어 냈다.
토령.
대지의 정령왕인 토령의 형체는 어둠이 뭉쳐 형성된 안개와도 같았으며, 그 안개 속에서 두 갈래 녹색 귀광(鬼光)이 뿜어져 나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두려움을 머금게 했다. 공터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토령의 형체에 혜각은 굳은 얼굴로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물론 저 또한 이 아이를 언제까지고 이곳 몽유도에 잡아 둘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은?”
“이 아이의 어미와 했던 약조대로, 한 사람으로서 몫을 할 만큼 자라난다면, 제 스스로 이 아이를 현세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그것이 이 아이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노려본다.
꿈틀꿈틀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 속에 자리한 두 줄기 녹광은 혜각의 얼굴을 똑바로 직시한 채 숨을 죽였다. 혜각과 토령의 팽팽한 신경전 속에 장내는 긴장감으로 물들었으며, 그 긴장감을 화령이 끊었다.
“토령, 그대 또한 이곳 몽유도의 관리자라면 이번 일에 대한 독단이란 있을 수 없음을 잘 알 것이다. 지금부터 이 아이에 대한 상황을 찬반으로 나누어 그 결과를 보고 정하도록 하겠다!”
“……마음대로.”
마치 비웃듯 짧게 말을 끊은 토령은 침묵을 지켰다.
화령은 그의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애써 무시하며 모두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모든 상황은 충분히 알았을 터! 지금부터 이 아이가 이곳 몽유도에 사는 것에 반대하는 자는 왼편으로, 찬성하는 자는 오른편으로 선다!”
작은 웅성거림이 인다.
가운데에 자리한 토령의 위압감에 영물들은 섣불리 결정하지 못한 채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 망설임을 결정으로 바꿔 놓았다.
“찬성하도록 하지.”
“……?!”
“……!”
모두가 돌아본다.
한순간 들려온 중후한 사내의 음성에 모두가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인간.
그곳엔 언제 들어섰는지 알 수 없는 짧은 백발에 백삼을 걸친 강건한 모습의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서 있다. 허리엔 멋들어진 백옥빛 검을 찬 사내의 모습에, 침묵을 지키던 토령이 기괴한 음성을 흘려보냈다.
“금강령(金剛靈), 너 역시 인간의 편인가?”
“인간의 편이라…….”
잠시 긴 여운을 남긴 사내.
그는 날카롭게 선 짧은 머리칼을 한차례 쓸어 보인 후, 차가운 눈으로 토령을 돌아봤다.
“인간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단지 너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뿐이니.”
“……크흐흐, 크하하하!”
무엇이 그리 우스웠음인가.
검은 안개 속에 본체를 가린 토령은 금(金)의 정령왕인 금강령을 향해 거침없는 대소를 터뜨렸다. 무슨 이유에선지 혜각이 들어오기 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던 금강령과 토령의 미묘한 대치에 혜각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 불안감을 증명하듯 한순간 금강령이 선 단단한 대지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물기둥처럼 들고 일어섰으며, 그 거대한 토사는 금방이라도 금강령을 짓누를 듯 거칠게 덮쳐들었다. 그러나 한순간 허리에 찬 백옥빛 검을 빼어 든 금강령은, 푸른빛이 감도는 검날을 거침없이 자신이 딛고 선 대지에 꽂아 넣었다.
순간, 팟 소리와 동시에 빠르게 꽂혀 들어간 검에서 기이한 광채가 일더니, 이내 그를 향해 덮쳐들던 토벽이 그 빛에 휩싸인 채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천공검(天空劍)……. 크크, 이제 보니 천운검장(天運劍匠)이 네놈에게 준 천공검을 믿고 있었구나! 크흐흐흐흐, 하찮은. 고작 하늘의 장인 따위가 만든 쇠붙이로, 내 힘을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
어둠 속에 묻힌 녹광이 더욱더 짙어진다.
천상 최고의 장인이라 평가되는 천운검장이 직접 만든 신검(神劍)인 천공검을, 한낱 쇠붙이라 비웃은 토령의 검은 기운이 거센 물결처럼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것은 살기.
그 살기를 읽은 혜각이 이대로 둔다면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 둘 사이로 뛰어내렸다.
“두 분 모두 멈추십시오! 이 자리는 해운이의 문제를 논하는 자리이지, 두 분의 원한을 해결키 위한 자리가 아닌 줄 압니다.”
“…….”
“…….”
어둠을 밝히듯 뿜어져 나온 혜각의 금색 서기에 토령은 침묵을 지켰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순 없었으나,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금강령에게 향했던 살기.
그 살기가 혜각에게도 미치고 있음을…….
한편 화령은 혜각이 토령과 금강령의 싸움을 중재하고 나서자, 그 역시 이번 일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고성을 내질렀다.
“젊은 놈들의 동작이 왜 그리 굼떠! 어서 빨리 이번 일의 결론을 내리지 못할까!”
재촉하듯 들려오는 화령의 말에, 주저하던 영물들 중 대부분이 금강령의 곁으로 다가가 섰다. 몽유도를 관리하는 다섯 정령왕 중 넷이나 인간의 편을 들은 효과가 큰지라, 그들 역시 목령의 품에 안긴 목해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토령의 검은 안개가 한차례 요동쳤으나, 기괴한 웃음을 마지막으로 몸을 뒤로 물릴 뿐이었다.
“끄끄, 수를 셀 필요도 없겠군. 모두가 저 인간의 아이를 편드니 오늘은 이대로 물러나겠다. 하나 차후 그 아이가 약조를 어기고 동위에 들어선다면, 그때는 각오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갈가리 찢겨 나간 인간의 육신을 보게 될 테니…….”
스스스스스스…….
사라진다.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반대로 모여들었던 안개가 천천히 흩어지듯 대지 위로 뿌려지며, 이내 어둠 속으로 완전히 그 모습을 감췄다. 토령이 떠났음을 안 금강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혜각의 곁으로 다가와, 지나치듯 무심한 말을 던졌다.
“혜각, 저 아이의 힘을 키워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토령이 가진 인간에 대한 환멸은 결코 이대로 끝나지 않을 테니.”
“……?!”
의미심장한 금강령의 말이다.
토령이 인간을 경멸하는 이유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금강령의 말에, 혜각의 눈에 고심의 빛이 어렸다. 그러나 화두를 던진 금강령은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없다는 듯, 토령과 마찬가지로 숲의 안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모든 일이 해결된 자리에는 고뇌에 빠진 혜각만이 남아, 배고픔에 지쳐 잠이 든 목해운을 바라보았다.
‘아차,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이질 못했구나.’
목령의 작은 품에 안긴 채 쌔근쌔근 잠이 든 목해운의 모습에, 혜각은 자신의 이마를 탁 쳐 보였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하나를 해결하니 또 다른 문제가 그를 반긴 것이다.
어디 아이를 키우는 일에 문제가 하나만 있으리오.
앞으로 태산같이 쌓인 여러 자질구레한 문제가 모두 혜각을 반기니, 혜각의 눈엔 자조 어린 웃음만이 깃들었다.
‘이 또한 내가 행한 인의 결과이니, 그 책임 역시 내가 져야 하는 것이 도리겠지.’
쓴웃음을 입가에 매단 채 걸어 목해운의 곁으로 다가간 혜각의 머리엔 유독 금강령의 마지막 말이 강한 인상을 남긴 채 떠돌았다.

목해운의 젖을 대신하는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적당히 부풀어 오른 수적령의 가슴에 매달려 목해운에게 젖을 물리려던 목령의 머리를 쥐어박은 화령이, 영물들 중 그 근본이 젖소인 초생(艸生)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말이 부탁이지 거의 반강제적으로 끌려간 초생은 젖소 부인이란 목령의 놀림 속에 이 년간 목해운에게 젖을 물렸다.
비록 모유는 아닐지라도 영양분이 풍부한 초생의 젖 덕택에 목해운은 배고픔을 잊은 채 무사히 자랐으며, 그 세월 동안 몽유도에는 작은 변화가 일었다.
서쪽 해안을 중심으로 네 채의 모옥이 생겨났으며, 그 모옥들이 이룬 마을을 천의촌(天意村)이라 명명하니, 그 각각의 모옥엔 완연한 인간의 형상으로 탈바꿈한 네 명의 정령왕과 혜각, 목해운이 기거했다.
뜻밖에도 아이에게 평범한 인간의 삶을 보여 주기 위해 마을을 꾸미자는 수적령의 의견에, 무뚝뚝한 금강령 역시 동참한 몽유도의 촌락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선 속에 한가로이 시간의 흐름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