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선무지로 1권(5화)
二章.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으니(1)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은빛 물결을 일으킨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푸른 수면 위로 부딪친 햇살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 내니, 넘실대는 수면 위론 바다 위의 바다, 천해(天海) 속을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만이 자리해 한가로움을 뽐낸다.
여유.
모든 것이 여유롭다.
자연이 주는 시간의 의미는 여유였으며, 그 여유로움 속에 치기 어린 사내아이의 음성이 흘러 퍼진다.
“할부지, 할부지, 하늘은 왜 파라쪄?”
아직은 어눌한 아이의 말에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하늘이 파란 이유라…… 글쎄다. 이 할아비 또한 그 이유를 모르겠구나. 우리 해운이는 그 이유를 아느냐?”
“응, 알아, 알아!”
모든 것을 알고 있던 할아버지다.
그런 할아버지가 모르는 게 있다 생각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자신은 하늘이 파란 이유를 아니, 이제 세 살 정도 된 아이의 가슴은 자랑스러움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하늘은, 하늘이니까 파라쪄!”
“……!”
쿵,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인자한 얼굴의 노인은 놀람에 찬 눈을 해 보였다.
하늘은 하늘이니까 파랗다.
그걸 모르는 이, 누 있겠는가.
너무도 당연한 이치를 아이는 자랑스럽게 말하나, 아이가 아닌 자신은 어떠한가. 굳이 당연한 이치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고민하였으니, 이 어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닌가.
당연함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당연한 것을 굳이 복잡하게 만들 필요 뭐 있겠는가.
‘그렇담 내가 찾고자 한 인과율의 순서는 무어란 말인가? 인인 행동을 하였기에 과인 결과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 당연함 속에서 난 어찌 순서를 찾고자 했는가?’
미소가 걸린다.
부족하던 것이 채워진 만족의 미소다.
그 미소 속에 노인의 몸 위로 찬란한 오색 광채가 피어오른다.
유난히 맑은 빛을 띤 아이의 눈은 할아버지의 몸에 이는 오색 광채에 놀랍고 두렵기도 해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털부덕, 백사장 위로 주저앉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니, 마지막 깨달음을 향해 치닫던 혜각의 눈에 불현듯 한줄기 이채가 인다.
찰나의 순간 펼쳐진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세상.
그 속에서 깨어난 혜각은 울고 있는 아이, 목해운을 바라보며 한줄기 미소를 매달았다.
‘나에게 길을 알려 준 이 아이가 그 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나를 불렀음이니, 이 또한 이 아이와 나의 인연이란 말인가?’
인과율에선 우연에 의한 인연이란 말을 인정치 않는다.
결과를 낳게 하는 인이 존재하기에, 그 인으로 과가 생긴다고 본다. 원인과 결과, 그 속에 원인도 없이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는 것은 존재치 않는 것이다.
혜각 역시 처음 눈앞의 목해운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과라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럼없이 우연에 의해 생성된, 자신과 목해운 사이에 존재하는 인연의 고리가 끝나지 않았다 여겼다.
우연은 우연이요, 인연은 인연인 것이다.
그 당연한 말속에서 인과율의 법칙을 논할 필요는 없다.
어떤 행동을 하면 결과가 뒤따르는 당연함과 같은 것이다.
어찌 그 당연한 것 속에서 복잡한 실타래를 엮어 만들려 했단 말인가.
‘인과 과. 그것 역시 당연한 것이다. 하늘 위에 구름이 존재하는 당연함처럼, 바다 속에 물고기가 존재하는 당연함처럼.’
한 걸음만 내딛으면 된다.
혜각은 자신이 한 걸음만 내딛는다면 반선이 아닌 신선이 되어 선계에 들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굳이 눈앞의 목해운을 버린 채 선계에 들고픈 마음은 없었다. 언젠가 이 아이는 당연한 듯 이 몽유도를 떠날 것이며, 또한 자신은 당연한 듯 선계에 들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 당연한 일을 굳이 지금 해서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이 아이의 어미와 한 약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난 네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널 보살필 것이다.’
인자한 웃음을 입가에 매단 혜각은 아직 울음을 그치지 않는 목해운을 잡아 일으켜 흙 묻은 바지를 털어 주었다.
“사내아이의 울음이 그리 헤퍼 어따 쓰겠느냐? 모름지기 사내란 눈물을 아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펑 하고 파아∼ 했단 말이야!”
“펑? 파아?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냐?”
둥글둥글한 얼굴 가득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목해운의 말에 혜각은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러자 목해운은 앙증맞은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다시 활짝 펴, 혜각의 몸에서 뻗어 나왔다 사라진 오색 광채를 흉내 냈다.
“할부지 몸에서 빛이 파아 했쪄!”
“……?!”
‘허허, 이 아이가 아무래도 내 몸에서 흘러나왔던 선기를 보고 놀란 모양이로구나. 이를 어찌 설명한담.’
뒤늦게 목해운이 하고자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혜각은 난색을 표했다.
이 어린아이에게 도가 어떻고, 또한 깨달음을 얻어 몸의 잠재되어 있던 기운이 완연한 선기(仙氣)로 바뀐 것을 설명하기가 여간 어려웠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가자니 세상 만물 모든 것에 호기심이 왕성한 목해운의 성화를 이겨 내지 못할 듯하여, 혜각은 최대한 쉽게 설명해 줬다.
“그것은 기(氣)라는 것이다.”
“기?”
“그렇단다. 어디 보자, 그러니까…… 음…… 하아, 이게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어느새 울음을 그친 채 유난히 큰 눈망울을 빛내는 목해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설명을 안 할 수도 없다. 점차 부풀어 오르는 목해운의 양 볼이 혜각의 설명을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혜각은, 어차피 꺼낸 말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로 맘먹고 재차 입을 열어 보였다.
“기라는 것은 본시 세상 만물 그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혜운이 너의 몸에도 역시 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일컬어 사람들은 날 때부터 타고난 선천지기(先天之氣)라 한다. 또한 본래부터 몸에 있어, 육체를 강하고 약함을 표하는 근본이 된다 하여 본신지기(本身之氣)라고도 한다.”
“서처지기, 본시찌게?”
“허허, 그래. 선천지기, 본신지기가 바로 기라는 것이다. 하나 기는 사람의 몸 안에 있는 것만이 아니요, 이 세상 어디에나 있으니, 이를 내 몸 안의 단전이란 곳에 받아들여 저장한 것을 내기(內氣)라 한다.”
“기를 왜 모아?”
다시 말문이 막힌다.
기를 모으는 이유를 대체 어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결국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안 혜각은 산책하러 나왔던 백사장에 아예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자신의 무릎 위로 작은 목해운을 이끌어 앉힌 채 말을 이었다.
“기를 모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기라는 것은 그 능력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그 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은 여러 가지 숨겨진 힘을 발휘할 수 있단다. 예를 들어, 날 때부터 기가 강한 사람은 육신이 건강하며 병에 잘 걸리지 않아, 무병장수(無病長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기가 약한 사람은 잔병에 잘 걸리며.”
“알았쪄! 기가 많으면 몸이 강해지니까, 기를 모으는 거지?!”
“허허, 옳다 옳아. 우리 해운이가 이리 이해가 빠르니 말하기가 편하구나. 하나 너의 말 중 틀린 것이 있다. 기를 모으면 모을수록 강해지나, 그것은 단지 육신을 단련키 위한 것만은 아니다. 네가 앞으로 나가야 할 세상 속엔 무림이란 곳이 존재하며, 그곳에 사는 이들을 무인(武人)이라 한다. 이 할아비가 말한 단전이란 곳에 내기를 모으는 이들도 바로 이 무인들이란다. 평범한 사람들은 기를 모으는 방법을 몰라서 날 때부터 타고난 선천지기를 안고 살아가나, 무인들은 세상에 퍼진 기를 자신의 몸 안에 가두는 방법을 알아 그것을 안에 가두고 자신들의 강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강함은 단순히 몸을 강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요, 심(心)과 신(身), 즉 마음과 몸 둘 모두를 단련키 위함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을 무공(武功)이라 하며, 무공엔 기를 모으는 내공심법(內功心法)과 움직임 속에 형(形)을 유지해 육신을 단련하는 초식 두 가지가 있다. 이 둘이 조화해 하나의 경지를 이루면 몸 안에 깃든 내기를 형 속에 담아 산악도 무너뜨림이요, 자유자재로 하늘도 날 수 있음이로다. 또한 네가 본 빛 역시 내 몸 안에 깃든 기운이 깨달음을 얻어, 완연한 선기(仙氣)로 바뀌는 과정에서 절로 흘러나온 것이다. 본시 선기는 경기(憬氣)와 성기(成氣) 두 종류로 나뉜다. 경기라 함은 깨달음을 얻어 반선에 올라 단전이란 공간이 사라진 채 외부의 기운과 내기가 하나로 합쳐지나, 그 깨달음이 부족해 각각의 기운이 가진 성질을 조화시키지 못한…….”
“…….”
어느새 잠이 들었다.
지루한 혜각의 설명에 지친 목해운은 그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너무도 평화로워 보이는 목해운의 모습에 혜각은 감히 깨울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부드러이 목해운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다정한 일로일소의 모습에 하늘도 흐뭇했음인지, 시원스런 한줄기 바람을 인도해 그들의 몸을 포근히 감싸 안아 준다.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 주는 바람이 전신에 느껴지니, 웅얼거리던 목해운의 엷은 입술 위로 절로 행복에 겨운 미소가 매달린다.
그 미소를 바라보는 혜각의 입가에 역시 미소가 걸리니, 장내엔 부드러운 정적만이 감돌아 절로 평안함을 자아냈다.

어린 목해운이 잠에서 깨어난 것은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드리워질 때였다.
끼룩끼룩 울어 대는 갈매기 소리에 맞춰 커다란 하품을 토해 낸 목해운은, 아직도 잠이 들던 그 모습 그대로 백사장 위에 앉아 있는 혜각을 바라보고는 히죽 미소 지었다.
“할부지, 해운이가, 해운이가 하늘을 날았쪄!”
“허허, 하늘을 날다니? 우리 해운이가 이 하늘 위를 날았단 말이냐?”
“응, 응∼. 꿈속에서 부우웅∼ 부우웅∼ 하고 막 하늘 위를 날아다녔쪄!”
아무래도 자신의 이야기 중, 무공이 일정 경지에 오르면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꿈을 꾼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유운공(浮游雲功) 또는 부신약영(浮身躍影), 능공허도(凌空虛渡)와 같은 전설상의 경지를 일컫는 것이다.
과연 그 누가 있어 하늘을 평지처럼 걷고, 또한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말 그대로 전설상의 경지로 신(身)과 심(心)이 하나 되어 심신합일(心身合一)을 이루며, 몸 안의 내기가 외부의 외기와 경계가 사라진 하나 된 등봉조극(登峯造極)의 경지에 오른 것을 말한다.
등봉조극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신선의 경지라 알려져 있다. 또한 그것은 검으로 깨달음을 걷는 자들이 꿈에라도 바라는 심검(心劍)의 경지와도 같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난 어떤가? 지금 내 경지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과연 난 하늘을 날 수 있는가?’
한 번도 시험해 본 적이 없다.
반선이 된 후, 몸 안의 단전이 사라지는 무경(無憬)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알고 있다.
무경이라 함은 몸 안의 내기가 선기 중 그전에 해당하는 경기(憬氣)로 바뀐 것을 말한 것이다. 단전이 사라진 내기는 자유로움을 얻고 혜각의 몸 곳곳에 퍼져 외부의 기와 합일되나, 그 각각의 성질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서로 뜻이 어긋나, 조화된 힘이 아닌 하나하나의 힘만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
그 경지에서 벗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혜각은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가 마음을 먹자, 기를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몸 안의 기운이 외부의 기운과 합쳐져 그것을 전신으로 퍼뜨리니, 혜각의 주위로 오색 광채가 피어 오른다. 그 오색 기운은 신비로이 혜각의 육신을 떠받치며 그를 앉은 자세 그대로 하늘 위로 띄워 보였다.
이에 혜각은 자신이 신선의 경지라 일컫는 등봉조극에 올랐음을 알고는, 한바탕 큰 소리로 웃었다. 혜각의 무릎에 앉은 채 같이 하늘 위로 떠올랐던 목해운은 당황과 놀람으로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으나, 시원스레 울려 퍼지는 할아버지의 대소에 두 눈을 반짝이며 신기함에 가득 찬 말을 내뱉었다.
“할부지, 할부지도 무공을 익혔쪄?!”
“허허, 그래, 그렇구나. 나 역시 분명 무공을 익혔지.”
“정말? 정말?! 할부지 나도, 나도 무공 익힐래, 해운이도 하늘을 막 날고 싶어!”
“해운이 너도 무공을 익히겠단 말이냐?”
“응, 응!”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그 언젠가 금강령이 전한 말 때문이 아니라도, 위험한 세상에 나가야 할 목해운에게 나이가 찬다면 무공을 가르칠 생각을 하고 있던 혜각이었다. 그러나 그 나이는 다섯 살이 되고 어느 정도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다면 행할 생각이었지, 설마 하니 목해운 스스로 자신에게 부탁해 올 줄은 몰랐다.
과연 눈앞의 여린 아이가 힘든 무공을 익히려 할 것인가란 염려도 있었지만, 이리 스스로 무공을 익히겠다 하니 혜각은 기특한 마음에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다, 내 어차피 언젠가 너에게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었으니, 너의 뜻대로 무공을 가르쳐 주마!”
“정말, 정말, 그럼 해운이도 막 하늘을 날 수 있는 거야?”
“허허, 그거야 해운이가 열심히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린 것이지, 어찌 나에게 묻느냐? 네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배운다면, 나와 같은 경지에 들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
“응, 해운이 열심히 배울 거야, 그래서 붕∼ 하고 막 하늘을 날아다닐 거야!”
두 팔을 벌려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갈매기 흉내를 내는 목해운의 천진한 모습에 혜각은 절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리 높은 허공에 떠올랐는데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흡족케 한 것이다. 무릇 무공이 아닌 다른 한 가지를 배운다 해도 억지로 하는 것과 즐거움에 차 스스로 하는 것은 그 배움의 차이부터가 크다.
또한 그 차이가 후에 가서 경지의 높고 낮음을 좌우하니, 가르치는 입장이 된 혜각은 함박웃음을 머금은 목해운의 모습에 절로 마음이 기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것을 가르칠 때가 된 것이다. 이 아이를 소림의 문하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창안했던 그것을.’
토령을 조심하라는 금강령의 말.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몇 날,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결국 토령 때문만이 아닌 이 아이가 세상에 나아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이 무공이라 생각했던 혜각은 또 다른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배운 소림사의 무공을 이 아이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곧 이 아이 역시 소림의 제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혜각은 지난 삼 년간 소림의 무공이 아닌 전혀 다른 형태의 무공을 창안했다.
중원의 그 어떤 무공과도 그 과(科)를 달리하는 것으로, 그것은 불가의 것이 아닌 도가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도의 것과 같았다.

어스름한 어둠이 깔린 천의촌으로 하나 둘 불빛이 피어오른다.
높게 자란 송림(松林)을 등진 채 자리한 마을의 모옥 모두가 불을 밝히니, 마치 지상 위에 떠오른 별과 같다. 어둠 속에 찾아든 빛을 향해 수많은 나방이 모여들었으며, 그 자연의 조화 속에 양 갈래로 머리칼을 딴 귀여운 얼굴의 여아가 우쭐한 꼬마를 향해 콧방귀를 껴 보였다.
“흥, 고작 무공 따위 배운다고 누가 부러워할 줄 알고?”
“흥, 흥, 흥이다. 목령은 무공이 뭔지도 모르쨘아! 바∼보!”
빠직.
절로 이마에 푸른 힘줄이 돋아난다.
일곱 살 꼬마의 모습을 간직한 목령은, 늦은 밤 방문을 두드린 목해운의 양 볼을 꼬집어서 살짝 좌우로 잡아당겼다.
“흐흐, 지금 뭐라 그랬어? 이게 할아버지 믿고 까부는 모양인데, 다시 말해 봐. 이 말도 제대로 못하는 꼬마 놈아!”
“어부부!”
뭐라 그러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얼굴 가득 붉게 물들인 채 벌어진 입 사이로 침마저 흐르려는 목해운의 우스꽝스런 모습에, 목령은 참지 못하고 까르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부여잡고 한참을 웃어 대는 목령을 바라보는 목해운의 두 눈엔 분기로 인한 눈물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