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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지로 1권(16화)
六章. 돈을 벌자!(2)
지금 이렇게 와 직접 이곽을 마주하니 화가 나긴 많이 났나 보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유분수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제 발로 찾아온단 말이냐?!”
멀거니 서 있는 목해운을 본 이곽의 두 번째 말이다.
그 말속엔 자연 가슴속에 쌓아 둔 화가 담겨 있으니,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목해운이 허리를 굽혔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세상물정을 잘 알지 못해 큰 우를 범하였으니,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
너무 간단하게 사과를 한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으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목해운의 모습에, 보타신니의 고개는 절로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무인이라 하면 자신이 익힌 무공에 대해 그 자부심이 남달리 강하며, 또한 자부심만큼이나 강한 것이 자존심이다.
부평초(浮萍草)처럼 떠도는 낭인(狼人)조차 그러할진대, 남해검문의 소문주를 제압하고 십검룡의 하나와 비록 제대로 된 대결은 펼치지 않았다 하나, 기세만큼은 뒤지지 않았던 목해운이 스스로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것도 같은 무인도 아닌 일개 장사치한테.
‘아미타불, 비록 자신의 잘못을 알아도, 그것을 남한테 용서를 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건만. 호홋, 보긴 제대로 보았구나. 이 아이야말로 연이에게 억압된 족쇄(足鎖)를 풀어 줄 아이렷다.’
스리슬쩍 서연을 쳐다본다.
처음 서연과 목해운을 만나지도 못하게 했던 보타신니의 행동을 생각하자면, 지금 그녀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광영이 떠나고, 자신도 그냥 제자들을 데리고 떠나면 될 것이건만, 그녀는 일부러 핑곗거리를 만들어 목해운을 이끌었으며 그 이끌림 속에 자신의 제자인 서연 역시 포함시켰다.
일부러 벌인 그 일 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 목해운과 서연을 번갈아 바라보는 보타신니의 눈빛만은 따스했다.
“허, 이런 기가 막히다 코가 막혀 뒈질 놈을 봤나?! 야, 이놈아! 네놈이 잘못했다 그러면 내가 오냐, 그래, 용……?!”
헉, 저놈이 쳐다본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무슨 말을 하나 하고 지그시 쳐다보고 있다.
그 눈빛은 한없이 깊고 부드러워, 그 속으로 절로 몸이 빨려들 듯했으며, 유혹하듯 바라보는 목해운의 눈빛에 자연 이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으으, 안 돼, 보면 안 돼! 저놈의 눈빛이, 저놈의 눈빛이!’
미소를 띠게 만든다.
마음과는 달리 입가엔 미소가 그려지니, 자연 그 미소 속에 흘러나온 말은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
“하이고, 사과라니요? 농담도 잘하십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어찌 사과를 하십니까?”
“아빠?!”
웃음꽃이 피어난 이곽의 모습에 딸인 이은영이 당황했다.
도저히 방금 전까지, 멀쩡한 얼굴로 무전취식을 한 사내를 호통 치던 아빠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상했던 것이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이은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고 있는 이곽의 얼굴을 향해 손을 이리저리 흔드니, 그 작은 손바닥에 가려져 목해운의 시선이 사라지자 이곽은 급히 얼굴을 돌려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저, 저놈은 마귀(魔鬼)다. 인간이 아니야!”
“무슨 말씀이세요? 아빠,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엉뚱한 이곽의 말에, 이은영은 진심 어린 걱정이 일었다.
너무 무리하게 일을 해 정신마저 이상해진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그녀의 마음을 가득 메운 것이다. 딸아이마저 자신을 미친놈 취급하자 이에 억울해진 이곽은, 목해운이 두려워 몸을 돌린 채 자그마한 목소리로 딸아이를 불러 자신이 느낀 바를 설명해 주었다.
비록 작은 목소리라고는 하나, 십 장 밖의 낙엽 떨어지는 소리까지 감지할 수 있는 목해운과 보타신니에겐 천둥보다 크게 들려왔다. 보타신니는 자신들이 무공을 익혀 뜻하지 않아도 저절로 목해운의 눈빛에 대항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곧 웃으며 생각에 잠긴 목해운에게 전음을 전했다.
“이보게, 목 공자. 눈에 머문 내기를 감추는 게 어떻겠나? 아무래도 그 때문에 모두가 자네에게 거역치 못하는 듯하네.”
“……!”
마치 어린애를 타이르듯 들려오는 보타신니의 잔잔한 전음에, 목해운 또한 어째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토록 친절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두 눈에 머문 오행심공의 내기(內氣)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친절이 베풀어졌다 생각하니, 목해운은 마음이 그토록 씁쓸할 수 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은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 좋아했으니, 이런 창피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저들의 본성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친절을 베풀고 싶어도,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용기를 가진 자는 많지 않다.
근본이 악해서가 아닌 선의를 갖고 있으나,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써 그 선의를 드러내지 못하는 자들도 많은 것이다.
그 점을 떠올린 목해운은 애써 씁쓸해진 마음을 달래며, 몸 안에 자유로이 풀어놓은 기운 중 두 눈에 머문 기운만을 내부로 끌어당겨 감추었다. 여전히 목해운의 두 눈은 부드럽고 깊었으나, 그 속에 머물렀던 기이한 빛이 사라지자 이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뭐야? 아무렇지도 않잖아?’
이은영.
아비의 말에 바로 목해운을 직시했던 이은영은, 단지 그의 선한 눈빛에 호감이 일 뿐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알자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곽을 돌아봤다.
“아빠, 아무 이상 없는 거죠? 혹시, 일을 너무 고되게 해 머리가 아프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허, 허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젠 아예 병자 취급하는 딸아이의 행태에, 억울함이 복받쳐 당장에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던 이곽은, 목해운을 향해 목멘 소리로 매달리듯 말했다.
“이보오, 공자. 대체 당신은 나와 무슨 원한이 있어 날 이리도 곤란하게 만드오? 내 공자가 먹고 내뺀 소면 값은 받지 않을 터이니,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주시오!”
“……아무래도 오해를 하신 것 같군요. 저는 본시 무공을 익힌 무인으로 몸 안에 내기라는 것이 있는데, 그 기운이 두 눈에 머물러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듯합니다. 지금은 두 눈에 머물렀던 내기를 몸 안쪽으로 끌어 사라지게 하였으니, 아저씨께 미치던 영향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
비록 눈과 입은 이곽을 향했으나, 그것이 옆에 선 이은영 자신에게 한 말임을 알아챈 그녀는 방긋 웃어 보였다.
“아빠, 다행이네요. 난 또 아빠 정신이 이상해진 줄 알았지 뭐예요.”
“뭐야, 이놈아!”
“헤헤.”
뒷머리를 긁적이며 실없는 웃음을 흘리는 딸아이의 모습에 이곽은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의 마음은 안도해 그나마 목해운을 바라보는 눈빛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한데 무공을 익히신 무인께서 어찌 소인을 또다시 찾으신 것입니까?”
하늘도 날아다닌다는 풍문이 떠도는 무사가 상대임을 안 이곽의 말은 극도로 공손해, 목해운이 듣기 거북할 정도였다.
“부디 말씀 편히 놓으십시오. 이렇게 찾아뵌 것은 말씀드린 대로 제 잘못을 사죄하기 위함과 이것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물의를 일으킨 데에 대한 사죄의 의미와 소면 값을 합한 것이니 부디 거절치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
가벼운 미소와 함께 전해진 은자 한 닢을 본 이곽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찢어졌다.
“하이고, 겨우 소면 하나에 은자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요.”
비록 말은 거절하나 어느새 은자는 목해운의 손을 떠나 이곽의 품에 안겼음이니, 그것을 바라보는 이은영조차 기가 막힐 정도였다. 하나 장사란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하는 것이지, 손해를 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지라 이곽은 받아 든 은자를 추호도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목해운 역시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을 상했을 이곽의 마음에 비한다면 은자 한 닢도 싸다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육신에까지 영향을 미쳐, 마음이 편치 못하면 몸 또한 병이 드는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한다면, 한낱 사물에 지나지 않는 돈으로 죄스러움을 갚는 자신이 미안해질 따름이다.
하지만 생명조차 없는 한낱 사물에 지나지 않는 은자가 이곽에겐 그 어떤 보상보다 최상의 값어치가 있었음이니. 그의 입은 절로 헤벌쭉 벌어져 지금까지 목해운에게 가졌던 모든 악감정들이 사라져 버렸다.
“이 늦은 저녁 시간 힘든 발걸음을 하셨을 텐데, 어떻게 요기라도 하셨습니까?”
“아직 먹지 못했습니다.”
“아이고, 젊은 분이 배를 주려서야 아니 될 말이죠. 이 은자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기엔 약소하지만, 제가 저녁 한 끼 대접해 드릴 터이니 잡수시고 가는 게 어떻습니까?”
목해운은 이곽의 친절에 쉬이 결정하지 못한 채 고민했다.
혹시 이 말속에도 숨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는 목해운을 향해 이곽이 다시 한 번 웃어 보이니, 그제야 이 사람의 말이 진심임을 안 목해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신세를 좀 지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신세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참 그러고 보니 경단 장수 장씨한텐, 벌써 갖다 오시는 길인가 보죠?”
“……?!”
아차 싶다.
단지 따라오라는 말에 보타신니를 따라가니, 객잔 일밖에 모르는 보타신니는 이곽에 대한 얘기만을 꺼냈을 뿐이다. 그 말이 끝나기 전 이곽을 만났으니, 목해운의 머릿속엔 자연 그에 대한 생각만이 깃들어 처음 만났던 경단 장수 장씨의 일을 잊고 만 것이다.
이렇게 이곽의 입을 통해 장씨의 일이 기억나니,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또한 분명 자신에게 공짜로 경단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품 안에 있던 은자 한 닢을 이곽에게 건네주었으니, 따로 장씨에게 갚을 돈이 없다. 그렇다고 이곽에게 거스름돈을 내어 달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자연 목해운의 얼굴론 난색의 빛이 떠올랐다.
‘헉, 혹시?!’
오랜 세월 장사판에서 굴러먹다 보니 이젠 눈치가 구단이다.
상대 낯짝만 보아도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던 이곽은, 변화된 목해운의 낯빛에 재빨리 가슴을 움켜쥐었다.
‘명색이 무인이란 자가, 치사하게 준 것을 뺏는 건 아니겠지?’
불안감에 휩싸인 이곽을 향해 다행히도 목해운은 돈을 달란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는 이곽에게 돈을 달라 할 수도, 뒤에 웃음 짓고 선 보타신니에게 돈을 빌릴 수도 없는 일이기에, 유일한 해결책인 한 가지 방안을 늘어놓았다.
“혹여 이 근방에 제가 일할 만한 곳이 없겠습니까?”
“일이라니, 그 말씀은…….”
“사실 제가 가진 돈이 없습니다. 해서 그 장씨라는 분의 경단 값을 당장 갚을 수 없으니, 일을 해 돈을 벌어 갚으려 합니다.”
“음……. 사정은 딱한 듯하나, 지금은 겨울이라 소일거리도 찾기 힘든 형편입니다. 게다가 제일 바쁜 항구도 한산해 일거리가 그리 많지 않으니…….”
난색을 표한다.
이 추운 겨울철 일거리를 찾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에, 마을의 젊은이들조차 할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형편에, 그 누가 있어 알지도 못하는 타지 사람에게 순순히 일감을 맡기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일이 떠오르지 않는 이곽의 곤란한 얼굴에, 목해운 또한 다소 실망한 듯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곽의 옆에 서 있던 이은영의 눈빛이 영악하게 돌아가며, 그녀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터져 나왔다.
“있어요, 있어! 일거리가 있어요!”
“그게 정말이냐?”
“그곳이 어딥니까?”
생각지도 못한 이은영의 활기찬 말에 모두가 반기며 돌아보니, 그녀는 한마디 말로써 활력이 돋던 장내의 분위기를 싸늘히 얼려 버렸다.
“우리 집이요!”
우리 집.
우리 집이다.
그 말은 곧 내 집도 된다는 거다.
도대체 이 철없는 딸아이는 딸랑 방 세 개밖에 없는 우리 집에, 무슨 능력이 있어 하인을 두려 한단 말인가?
뭐라, 집이 아니라 가게라고라.
하,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생각해 보니 이 또한 아니다.
장사가 잘된다면 점소이 한둘이야 더 둘 수도 있겠지만, 장사가 안 되는 날이 더 많은 객잔에서 어찌 점소이를 둘씩이나 두리오.
허, 그것도 아니라 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니 궁금해 미칠 지경이 돼 소리친다.
대체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의 정의가 뭐냐!
“호객꾼요.”
“엥?”
“호객꾼 말예요,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
당연한 듯 흘러나오는 이은영의 말에, 이곽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객잔 안에는 불이 밝혀져 붉은 불꽃이 창을 넘어 객잔 밖 골목에 선 두 부녀의 얼굴까지 비추니, 이은영은 얼이 빠진 이곽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왜 이리도 우스운 것인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터져 나오려는 교소를 애써 흰 소매로 가려 막으며 부가 설명을 해 주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우리 객잔이 있는 위치가 어딘가요? 대로변에서 떨어진 후미진 곳이잖아요. 그러니 자연 아는 사람들이나 발길을 멈춰 쉬고, 또 거리의 큰 객잔들이 자리가 꽉 차 없을 때나 이리저리 헤매던 손님들이 찾는 곳이 되고 말았잖아요? 그러니 지금 객잔 안에서 음식을 드시고 계신 그 공자님을 거리에 내세워 손님들을 끌어들인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평소의 두 배는 음식을 팔아 치울 수 있을 거예요. 어디 그뿐이에요? 그 공자님의 얼굴은 다른 누가 봐도 호감이 이는 얼굴이잖아요. 게다가 말은 부드럽기 그지없어 듣는 이의 기분마저 좋게 하니, 어쩜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일는지도 몰라요.”
“음…….”
과연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자신이 직접 목해운과 말을 나눠 보았기에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기이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편안하게 해 주는 힘이 있었다. 비록 그 힘의 원천인 두 눈의 내기가 사라졌다 하나, 어디 타고난 기질이 그리 쉽게 사라지겠는가.
‘그 내긴가 뭔가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공자님과 이야기를 하면 내 마음도 편해지는 걸 보면 확실히 요 녀석의 말도 일리가 있긴 있는데…….’
다소 엉뚱해 하는 목해운과 보타신니 등을 객잔 안에 모셔 놓고 이리 딸과 따로 밖에 나와 이야기를 해 보니,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라 이곽은 곰곰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비록 그의 체질은 호객꾼으로서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하나, 호객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입담이다.
비록 얼굴이 개떡같이 생겼어도, 말 하나만 잘하면 능히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전문 호객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목해운에겐 능변가로서의 자질은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