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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지로 1권(20화)
七章.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2)
그 마음에 들지 않던 놈이, 마음속에 둔 이은영에게마저 호감을 불러일으키니 아칠로선 열이 받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어제 허리에 검을 찬 걸 보고도, 대놓고 한판 붙자 할 수 없었던 아칠은, 언제 한번 날 잡아 친구들을 불러 이놈을 혼내기로 마음먹고는 퉁명스레 툭 한마디 던졌다.
“아침엔 호객꾼 노릇 하기가 힘들 것이니, 저기 저 빗자루를 들고 객점 앞이나 쓸도록 하시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말은 차가웠으나, 자신에게 할 일을 가르쳐 주니 이리 고마울 수 없었다. 그 고마움에 목해운이 다시 미소 지어 인사하자, 오히려 아칠은 두 눈이 더욱더 찌푸려져 흥 하니 몸을 돌렸다.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목해운은 그저 그의 본성정이 그러려니 하고 새겨 보지 않은 채, 객점 밖에 나서 빗질을 시작했다.
쓰으윽, 쓰으윽……. 차가운 아침 공기를 타고 울려 퍼지는 빗질 소리가 귀를 간질이니, 그 듣기 좋은 소리에 절로 흥이 났다. 그러나 그 흥겨운 소리가 이곽에겐 마음에 안 들었는지, 어느새 객점 밖에 나와 목해운에게서 빼앗듯 빗자루를 낚아챘다.
“하이고, 목 공자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점소이 하시는 분께서 아침엔 손님이 없으니, 길 앞을 쓸라 하셔서 비질을 하고 있습니다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요?”
‘잘못됐지! 잘못됐어! 당신이 객잔 일을 하면 호객꾼이 아니니, 결국 당신에게 돈을 줘야 할 것 아닌가?!’
터져 나오려는 고성을 겨우 참아 낸 이곽은 목해운의 등을 떠밀듯 거리로 내보냈다.
“목 공자님께서 하실 일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것이지 객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어서 대로로 나가셔서, 아침을 먹지 못한 채 일을 가거나, 아님 차를 마실 만한 사람을 끌어 오십시오.”
“……알겠습니다.”
재밌는 장난감을 뺏긴 어린아이처럼 심술이 난 목해운은, 팽 하니 몸을 돌려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건장한 박건의 옷을 마른 체구인 목해운이 입어 헐렁하기 짝이 없었는데, 삐친 아이처럼 길가의 돌멩이를 툭툭 걷어차며 걸어가는 그 모습에 이곽은 그만 웃고 말았다.
목해운 본인은 의식치 못했으나, 그를 지켜보는 이곽은 지금 목해운이 가진 마음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꾀는 건가요?”
이른 아침까지 기다렸으나, 단 한 명의 손님도 잡지 못한 늙은 퇴기 홍앵(紅櫻)은 제법 반듯하게 생긴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걸자 내심 쾌재를 불렀다. 지분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니, 그 미소 속엔 음탕함이 번져 사내를 향했으나, 정작 사내는 홍앵의 말에 무언가 생각하는 듯 그녀의 미소를 보지 못했다.
‘꾄다는 것은 꾀어낸다는 건데…… 난 지금 이 여인을 꾀어 객잔에서 차를 마시게 해야 하니, 꾄다는 말이 가히 틀린 것은 아니로다.’
생각해 보니 여인의 말이 맞는지라, 대로변에 나왔던 사내 목해운은 미소를 그린 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습니다.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어머, 정말요? 후훗, 좋아요! 어디로 갈 건가요??”
삼십 초반에 들어선 여인 홍앵은 목해운의 말에 기뻐하며 그의 팔을 풍염히 솟아오른 자신의 두 가슴 사이로 이끌었다. 잡은 팔을 놔주지 않겠다는 듯 꼭 매달린 그녀의 행동에 무안해진 목해운이 손을 빼려 하였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홍앵은 더욱더 자신의 풍만함을 보여 주려는 듯 가슴에 그의 팔을 비벼 댈 뿐이었다.
‘이걸 어쩐다…….’
기녀의 기 자도 모르는 혜각에게서 지식을 얻은 목해운이었기에, 그 역시 홍앵의 직업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으며, 그는 단지 너무 친하게 달려드는 홍앵의 행동에 난감할 뿐이었다. 뿌리치자니 이곽이 해 준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아, 이리 즐거워하는 홍앵의 기분을 망칠 수도 없었던 목해운은, 결국 그 상태 그대로 객잔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
“이봐요, 왜 말이 없나요? 지금 어디를 가려는 건지 말 정돈 해 줄 수 있지 않나요?”
쑥스러워진 목해운이 말없이 걷자, 그의 팔에 매달려 따라가던 홍앵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어느 객방을 향할 것인지 물었다. 이에 목해운이 돌아보며 유선객잔이라 답하자, 홍앵은 그제야 안도하며 눈을 빛냈다.
‘호호, 배가 고프니 일단 객잔에서 아침을 먹고, 힘을 보충한 후 시작하잔 말이로군. 헤, 보기엔 순진해 보이는데, 의외로 능숙한 걸 보면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른다니까.’
오랜만의 손님이라 그런지 더욱 기분이 좋아진 홍앵은 목해운을 따라 유선객잔에 들었으며, 이곽은 첫 개시 손님을 벌써 데리고 온 목해운의 타고난 자질에 함박웃음을 지은 채 탁자로 그들을 안내했다.
이어 목해운이 부담스럽던 홍앵을 자리에 앉힌 채 여기 음식은 다 맛있으니 마음에 드는 걸 시키라 말하자, 홍앵은 어차피 그가 낼 돈이라 여겨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시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객잔 밖으로 나가니, 홍앵은 그가 뒷간을 가는 것이라 여기며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던 홍앵 앞에 음식이 차려지고, 또한 그 음식을 먹기 시작한 후에도 사내가 안 오자 불안해진 홍앵이 주인 이곽을 불러 물으니, 이곽은 손님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연방 웃으며 그자는 객잔의 호객꾼 일을 하러 다시 나갔다 답해 주었다.
그러나 그 답을 들은 홍앵의 얼굴은 파랗게 질리다 못해 식은땀이 흘렀으며, 그녀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 들어찼다.
‘당했다!’
멀쩡한 놈한테 사기당했다 생각하니, 어이없음이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그 분노를 알지 못한 채 계산이란 말을 이곽이 내뱉자, 분노한 홍앵의 화살이 이곽의 미소 띤 얼굴에 꽂혀 들었다.
“돈이라고라? 호, 호호호호호, 무슨 개소리야! 오호라, 이제 보니 아까 그놈과 짜고 날 등쳐 먹으려는 수작인가 본데, 사람 잘못 봤어! 너희 같은 객잔사기단(客棧詐欺團) 놈들한테 당할 만큼 만만한 홍앵이 아니다 이거야! 못 줘! 죽어도 못 주니깐, 날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네놈들 맘대로 해 봐라!”
“허, 허허허허허.”
이건 또 무슨 어이없는 상황인가?
아침부터 터져 나오는 욕설과 항의에 어이가 없다 못해 기절할 지경이었으나, 그렇다고 시킨 음식 그냥 날로 먹고 도망가게 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이곽이 아니었다. 그는 홍앵을 바라보며 최대한 친절한, 그러나 경직된 미소를 입가에 띠어 보였다.
“아무래도 아까 그자가 호객 일이 처음이다 보니 약간의 실수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그 점 이 객잔의 주인으로서 깊이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하지만 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유야 어찌 됐든 먹었으면 음식 값을 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너무 원망치 마시고, 내 특별히 깎아 드릴 테니 닷 푼만 주십시오.”
“호호호호, 닷 푼? 아주 지랄을 해라! 야, 이 미친놈아! 네놈이 내 입장이면 돈 주고 싶겠냐?! 가뜩이나 오늘 하루 공쳐 열 받아 죽겠는데, 거기다 사기까지 당해 돈을 내라고? 밭 갈다 소 뒤꿈치에 차여 쳐 죽는 헛소리 하지 말고 당장 비켜!”
“허.”
밭 갈다 소 뒤꿈치에 차여 죽는 소리는 또 무언가.
이젠 기가 막히다 못해, 속에서 울분이 차오를 지경이 된 이곽은 가만히 아칠을 돌아보았다. 같이 일한 지 이 년이다 보니, 어디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인가. 그 경우마다 대비책이 있음이니, 이곽의 눈빛에 아칠은 부리나케 주방으로 달려가 박건을 불러왔다.
저벅, 저벅.
“……?!”
객잔 바닥을 울리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더불어, 거대한 체격을 자랑하는 박건이 한 손엔 날이 퍼런 식칼을 든 채 다가들자, 홍앵의 낯빛은 순식간에 창백해져 두려움에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그런 그녀 앞에 우뚝 선 박건은, 언제나 그래 왔듯 오직 한마디 말만을 내뱉었다.
“돈.”
홍앵과의 한바탕 소동이 난 후, 아칠의 손에 불려온 목해운은 이곽에게서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꾸지람을 들은 후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안 목해운은 다시 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말을 걸 땐 꼭 유선객잔이란 이름을 첫마디에 덧붙였다.
특유의 부드러운 말과 미소에 눈빛마저 더해진 목해운의 호객 일은, 사람들이 분비기 시작하는 점심시간 때가 되어 그 빛을 발하였으며, 이은영이 짐작한 예상을 뛰어넘어 그는 말을 건 열 명 중 다섯 명을 객잔으로 이끌 만큼 눈부신 활약을 보여 이곽의 입에서 절로 함박웃음을 자아냈다.
목해운 또한 여러 종류의 사람과 말을 하니, 이 일이 가히 싫지 않은지라 입에선 미소가 떠날 줄 몰랐으며, 그 미소는 객잔에 엉뚱한 행운을 안겨 왔다.
본시 남해도는 사방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여름이 되면 물놀이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으며, 또한 태양 빛 아래 사람들의 피부는 자연 검게 변하니, 목해운이 가진 하얀 피부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뛰어난 미남은 아니라 하더라도 반듯한 오관에 이질적인 하얀 피부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더해지니, 목해운이 말을 건 젊은 여인 중 태반이 그에게 호감을 느껴 객잔을 찾았으며, 또한 꽃이 나비를 부르듯 객잔에선 삼삼오오 모인 젊은 여인네들의 웃음꽃이 피어나니, 그 앞을 지나던 젊은 남정네들이 목해운이 말을 걸지 않아도 제 발로 유선객잔으로 향한 것이다.
일이 이렇다 보니, 유선객잔에 대한 소문이 엉뚱하게 퍼져, 마치 그곳은 젊은 여인과 남자들이 서로 인연을 찾는 만남의 장소같이 변해 버렸다.
한편 이곽은 목해운이 일을 시작한 지 불과 열흘도 안 돼 객잔의 한 달 매상을 올려 버리자, 자신의 볼을 꼬집어 이것이 현실임을 확인 해 볼 만큼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감은 눈을 떠 보면 언제나 젊은 사람들로 분비는 객잔의 모습은 그에게 이것이 현실임을 증명함이니, 이곽은 목해운을 마치 보물단지 여기듯 대해 주었다.
날마다 치러 주는 품삯으로 호객 일을 한 지 열흘 만에 경단 장수 장씨에게 돈을 갚은 목해운은, 그가 떠날까 조마조마한 이곽의 예상과는 달리 이번 달수를 다 채우겠다 말해 이곽의 불안하던 마음을 풀어 주었다.
목해운으로선 필요한 돈도 벌 수 있고, 또한 여러 사람과 말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채울 수 있기에, 호객 일을 좀처럼 그만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목해운이 호객 일을 한 지 보름쯤 지났을 무렵, 더 이상 그가 나가 사람을 부르지 않아도 될 만큼 가게는 안정되어 매일같이 젊은 사람들로 붐볐으며, 그 모습에 목해운은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이곳을 벗어나 좀 더 넓은 곳으로 가야 할 때인가?’
어느새 일월을 삼 일 남겨 둔 시점에서, 목해운은 겨울의 을씨년스런 풍광을 보여 주듯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들었다.
어제 내린 눈을 치우기 위해 손수 삽을 든 채 가게 앞에 나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아련한 무언가를 쫓듯 그리움에 잠겼으며, 그런 그의 옆으로 다가와 선 소녀는 가만히 그의 옆얼굴을 바라다보았다.
이에 기척을 느낀 목해운이 미소를 지은 채 돌아보니, 피부에서 느껴지는 추위 때문인지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던 소녀 역시 한줄기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피, 아무 생각도 안 한 사람이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혀를 날름 내밀어 보이는 소녀 이은영의 행동에, 목해운은 그저 가만히 미소 지은 채 그녀를 응시했다. 그 시선이 약간은 부담스러웠는지, 헤헤 하고 웃어 보인 이은영은 자신이 그에게 온 목적인 손 안의 뜨거운 녹차를 내밀었다.
“자요, 이거 드시고 하세요.”
“이것은?”
“앗,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요! 다른 뜻은 없다고요. 그저 공짜로 가게 앞을 치워 주시는 게 고마워 드리는 것뿐이니까…….”
“…….”
언제나 활기가 넘치던 그녀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손 안의 녹차를 건네는 그녀의 말끝은 점점 힘이 빠져 흐릿해지더니, 기어이 그녀는 목해운을 바라보던 시선마저 떨어뜨리고 녹차를 건네주었다. 그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진 목해운이었으나 가벼이 웃어넘기며 녹차를 받아 뜨거운 김이 나는 찻물을 호호 불어 마시니, 어느새 고개를 든 이은영이 흐뭇한 눈길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말을 건넸다.
“저…… 목 공자님, 정말 이번 달까지만 가게 일을 하실 생각인가요?”
“그럴 생각입니다.”
“그럼, 가게 일이 끝나면 어디로 가실 건가요?”
“배를 타고 대륙으로 가 볼까 합니다.”
“……그렇군요. 하긴 이런 갑갑한 섬보다는 넓은 중원 땅이 더욱 볼 것도 많고, 사람들도 많을 테니…….”
축 하고 힘없이 어깨가 처진다.
이은영 자신도 왜 이 사내의 한마디 말에 이리도 기운이 빠지는지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사내 옆에 서면 즐겁던 기분이 한층 더 즐거워지고, 이 사내와 말을 하면 그 즐거움 속에 행복이 더해져 마냥 좋기만 했던 것이다. 그것이 열일곱 소녀에게 찾아온 첫사랑임을 알지 못한 이은영은, 사내가 떠난다는 말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심정이 되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차피 평범한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내다.
빼어난 미색을 갖춘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객잔 집 딸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 평범하게 죽어 갈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겉은 보통 사람과 같으나, 그 속은 보통 사람이라 할 수 없는 목해운과 맺어진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난 어차피 이분과 어울리지 않아…….’
한번 자괴감에 빠져 드니, 활달한 성정이 사라져 점점 주눅이 드는 자신을 느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목해운의 입이 열리니, 그 입에선 부드러운 말이 흘러나와 침울하던 소녀의 마음을 되살렸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이곳에 올 생각입니다. 제가 다시 이곳에 돌아온다면, 그때도 지금과 같이 차 한잔 내주시겠습니까?”
“……!”
그가 돌아온다.
좀 있음 이곳을 떠나갈 그가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는다.
그날이 언제가 되었든, 그가 돌아올 때는 지금보다 좀 더 성숙해져 그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 지금과 같이 차를 쥐어 줘, 그와 이렇게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대륙에서 그가 보고, 그가 듣고, 그가 경험한 이야기가 끝날 때쯤 성숙해진 자신은 그에게 말할 것이다.
좋아했다고.
아니 지금도 좋아한다고 그에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놀란 그의 팔을 꽉 움켜잡은 채, 다시는, 다시는.
“놓아주지 않겠어요!”
“네?”
“놓아주지 않겠다고요! 찻값을 내기 전에는 절대 놓아 주지 않을 테니, 돌아올 때는 돈을 두둑이 준비해 오셔야 할 거예요!”
밝은 웃음꽃이 피어난다.
열일곱 소녀의 입가로 생기발랄한 웃음꽃이 피어나 목해운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모습이 재밌게 느껴진 목해운의 입에선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오니, 아침 공기를 타고 떠다니는 그 웃음에 심술이 난 이은영이 베 하고 혀를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결국 사내의 웃음소리에 전염되듯 영롱한 웃음꽃을 피워 올리니,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두 남녀 사이엔 따스한 기운이 흘러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