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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2화)
프롤로그(2)


그들의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아무리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다고 해도 그는 검마였다. 검의 극의를 이룬 자였다. 호사가들은 그를 두고 천하제일인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검마 독고무혁은 담담했다. 짙은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무림종사들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마치 속세를 초월한 것처럼 허허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눈은 오직 책장에 집중된 채로 말이다.
검마가 보고 있는 책은 바로 경서였다. 200년 전 검황이라고 불린 사내가 적은 서책이었다. 그곳에는 검황이 이룬 모든 깨달음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책자의 이름은 검경.
오만하게도 검의 경서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그것은 200년 전 천하를 질타했던 검황 천외자가 남긴 저서였다.
검의 극의를 이루고 감히 천하의 적수가 없다고 자부하던 검마가 단 한 번의 중원행에서 우연찮게 이 서책을 얻게 되었다.
검황과 검마.
검마 독고무혁은 검황 천외자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같이 검의 극의를 이룬 인물이라 더욱 신경을 자극했다.
하물며 자신의 검과 검황이 이룬 검의 극의가 어떤지 확인도 하고 싶었다. 검마는 검경이라 이름 붙여진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새로운 검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로 검마는 곧바로 폐관수련에 들어갔다.
그것이 바로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검경은 겨우 100여 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곳에 적힌 글씨 하나하나에는 엄청난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검마는 같은 검의 극의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엄청난 판단 착오라는 것을 알았다.
이 검경을 본 순간 검마는 검황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놀라움과 탄식, 그리고 위대함. 검마는 검황 천외자의 깨달음에 점점 빠져들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오늘 검마는 마지막 장을 보기 위에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마지막 장까지 오기까지 무려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드디어 마지막 장이군’
감격스러웠고, 힘든 시간이었다. 이제야 자신도 검황과 같은 단계에 올라섰다는 것에 기뻤다. 이제 마지막 장에 적힌 글씨만 깨닫는다면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검의 극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검황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떨리는 손으로 아주 천천히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리고 확인한 마지막 장에 적힌 글귀. 그것을 읽은 검마는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미친!”
그는 거친 음성을 내뱉었다. 마지막 장에 적힌 글귀는 검마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연자여,
검경을 여기까지 읽고 깨달았다면 노부의 모든 것을 가져갔다고 할 수 있느니라. 하나, 여기서 한 가지 묻노라.
과연 그대가 강하다고 생각하는가?
검의 끝을 진정 보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노부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구나. 노부도 죽음에 이르러서야 검의 극의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거늘…….
그렇다고 그대가 결코 약하다고 말할 수 없는 법. 노부가 가진 모든 것을 여기에 적었고, 그것을 깨달았다면 결코 약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대가 검의 끝을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느니라. 노부도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죽음을 목전에 둔 허약한 노인이었을 뿐이거늘.
후회스럽구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깨우치게 되었다니…….
하지만 노부가 아니더라도 내 다음 후손이 분명 이루어 줄 것이라 믿노라.
마지막 검의 극의를 이제야 깨우치니, 후인에게 내 작은 깨달음을 남기노라. 이것으로 인해 진정 검의 끝을 볼 수 있다면 노부는 그것으로 만족하노라.

연자여, 세상의 모든 무인들을 꺾기 전에 감히 강하다고 하지 마라. 진실한 강함은 오직 검으로서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니라.
-한때 검을 들었던 사내 천외자-

한마디로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 오직 검을 통해서 이루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것을 이해한 검마는 검경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 순간 검경에 불이 붙었다. 검마는 삼매진화로 검경을 불태워 버린 것이다.
검마는 불에 타 검은 재로 변한 검경을 부여잡고 울분을 토해 내었다.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가 여태껏 이룬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의 눈빛이 번쩍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좋아, 보여 주겠다. 당신이 말한 진정한 강함을 똑똑히 보여 주겠다!”
검경의 마지막 재가 공중으로 비상하는 순간, 검마가 소리쳤다.
원래는 검마의 혼잣말이었지만, 무림맹의 사람들이 이미 동굴 안에 들어온 상태였다. 그래서 검마가 내뱉는 모든 말을 다 들을 수 있었다.
“저, 저놈이 중원을 피로 물들일 놈이다!”
어떤 이가 소리쳤다.
“안 되겠다. 이 이상 놈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
그와 함께 다른 이들도 소리 높여 외쳤다.
“이노옴!”
그와 동시에 선두에 있던 곤륜파 장문 하족도가 고함을 지르며 빠르게 앞으로 쇄도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그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그의 검 끝이 일직선이 되며 검마의 등 뒤를 찔렀다.
바로 심장이 위치한 그곳을 정확히 노렸다.
푹!
검마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모든 것을 통달한 그였지만, 천외자의 말과 검경에 모든 신경을 두고 있던 그였기에 지금의 공격을 미처 막을 수 없었다.
하물며 검마는 마지막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검마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의 눈에 분노에 찬 곤륜파 장문인 하족도가 들어왔다.
“검마 이놈! 죽어라!”
울컥!
검마의 입으로 붉은 피가 왈칵 솟아나왔다. 등 뒤에서 찌른 검이 심장을 관통하고 가슴을 뚫고 나왔다. 검마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그 검 끝으로 향했다.
허무했다.
검황 천외자의 말처럼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심장이 꿰뚫린 지금 그것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 주위로 무림맹의 사람들이 보였다.
저들이 언제 이곳에 들어왔는지 몰랐다. 하긴 검경에 심취해 있었기에 주위를 신경 쓰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허허, 허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그와 함께 가슴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뚜렷하게 보이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제는 흐릿하게 보였다. 그 순간 그의 머리로 무엇인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를 같이해 검마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쿵!
중원인들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검마가 쓰러졌다. 공포였던 그이지만 죽음은 너무나도 허망했다. 눈을 뜬 채로 죽은 검마의 몸은 비참해도 입가에는 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제01화 검에 미친 아이(1)


1

때는 초봄의 저녁.
통나무를 베어 만든 멋들어진 목조건물의 굴뚝 위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산등성 위에 지어진 통나무집 주위로는 다른 어떤 집들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직 지금의 통나무집 하나뿐이었다. 넓은 공터도 있고, 우물가도 있다. 통나무집 한편에는 불을 때기 위한 장작도 가득히 쌓여져 있었다.
통나무집 내부의 아궁이에서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버섯 스튜가 보글보글 공기 방울을 터뜨리며 끓고 있었다. 그 앞에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금발 소녀가 국자로 아궁이의 버섯 스튜를 저어 맛을 음미했다.
“음!”
잠시 입맛을 다시던 금발 소녀는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빙긋 웃었다.
“헤헤, 역시 내가 한 것이지만 맛있어.”
자신이 만든 요리가 제법 맛있는지 흡족한 미소를 띤 금발 소녀는 국자를 내려놓고 앞치마에 손을 훔쳤다. 그때 주방 뒤편에 있는 방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콜록, 콜록!”
기침 소리를 들은 금발 소녀는 화들짝 놀랐다.
“앗, 엄마!”
금발 소녀는 그 방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방 안의 침대 위에는 병색이 짙은 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고, 연신 기침을 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금발 소녀는 그 모습에 안절부절못하며 급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엄마, 엄마. 괜찮아?”
금발 소녀가 기침을 하는 엄마를 보며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제대로 답변을 해 주지 못했다. 더욱 기침 소리가 거세졌다.
그러자 금발 소녀는 몸을 돌려 뛰어갔다. 주방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며 소리쳤다.
“오빠! 루카스 오빠!”
우물가 근처 공터에서 허름한 옷을 걸치고 열심히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우람한 신체를 가진 그 소년은 금발 소녀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휘두르던 목검을 들고 뛰어갔다.
“루시, 왜 그래?”
루시라 불린 금발 소녀는 눈가에 눈물을 머금으며 훌쩍였다.
“훌쩍. 오빠, 엄마가…… 엄마가 또 기침해. 으앙!”
루카스는 울먹이는 루시를 다독이며 말했다.
“괜찮아, 울지 마. 오빠가 있잖아.”
“우웅.”
루카스의 위로에 루시는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을 보며 루카스가 조용히 말했다.
“잠깐만.”
루카스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엄마의 기침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주방에 들어선 루카스는 자신의 손에 들린 목검을 식탁 위에 놓고, 아궁이 한쪽에 마련된 철통으로 향했다. 나무 국자와 그릇을 집어 든 루카스는 철통에서 보글거리고 있는 갈색 액체를 그릇에 담았다.
그릇에 담은 갈색 액체를 서둘러 엄마에게 가져갔다. 엄마는 기침을 한 여파로 인해 매우 괴로워하고 있었다.
“엄마, 약 드세요.”
그릇에 담긴 갈색 액체는 바로 약이었다. 그 약을 엄마에게 먹였다. 엄마는 그 약을 받아먹자 조금 안정되는 것 같았다.
“이제 괜찮아요?”
루카스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단다. 걱정했지?”
“괜찮으면 됐어요.”
루카스는 약 그릇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엄마는 그런 루카스를 바라보다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구나. 나 때문에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지도 못하고…….”
“아니에요, 엄마.”
그러자 루시가 방 입구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밀었다.
“흥, 오빠는 어제도 병정놀이했데요.”
“루시!”
루카스가 고개를 돌리며 황급히 루시를 불렀다. 그러자 루시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주방으로 달려갔다.
루카스는 그런 루시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엄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또 목검을 휘둘렀니?”
루카스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대답을 했다.
“……예.”
“검이 그렇게 좋니?”
“네, 너무 좋아요. 전 꼭 훌륭한 검술사가 되고 싶어요.”
루카스는 다짐을 하듯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힘없이 말했다.
“……그래.”
하나 대답하는 엄마의 표정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미묘했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덩치가 큰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루시는 그 남자를 발견하고는 쪼르르 달려갔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오냐! 우리 귀여운 딸, 루시!”
달려오는 딸을 한 팔로 안았다. 얼굴에 붉은 술기운을 드러내며 뽀뽀를 시도했다.
“우리 귀여운 딸, 아빠랑 뽀뽀하자.”
하지만 입에서 술 냄새를 품기는 통에 루시는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손으로 코를 막았다.
“싫어. 아빠 술 냄새나!”
“에잉, 얼마 마시지도 않았어.”
“그래도 싫어, 싫단 말이야.”
루시는 발버둥을 치며 뽀뽀하려는 아빠의 입술을 손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그때 방 안에서 루카스가 약 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그도 아빠에게 인사를 했다.
“다녀오셨어요.”
“오냐. 엄마를 잘 돌보고 있었느냐?”
“네에.”
루카스는 가볍게 인사를 하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사이 우람한 아빠의 팔에서 벗어난 루시도 루카스의 뒤를 따라갔다. 사내는 방 안을 들여다보며 침대에 누운 아내에게 말했다.
“세레나, 다녀왔소.”
“네, 오셨어요.”
“몸은 좀 어떻소?”
“많이 좋아졌어요.”
“다행이구려.”
세레나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남편이 힘들게 일을 하고 왔는데 일어나 반겨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렸다.
볼크스.
방금 술에 취해 들어온 사내의 이름이다. 한때 잘나가던 기사였다. 하나 지난 몬스터 토벌 때 한 팔을 다친 후 다시는 그 팔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 후 기사를 은퇴하고, 지금은 마을에서 온갖 잡다한 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