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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3화)
제01화 검에 미친 아이(2)


볼크스는 겉옷을 벗어서 걸어 놓고 방 안에 있는 아내에게 걸어갔다. 그때 그의 눈이 식탁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 허름하게 만들어진 목검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을 발견한 볼크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내 얼굴이 일그러지며 루카스를 불렀다.
“루카스 이놈! 당장 이리 나와!”
주방에 있던 루카스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순간 목검을 식탁에 놓았다는 것을 기억했다. 엄마에게 약을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목검을 식탁에서 치운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아빠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루시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오빠를 불렀다.
“오, 오빠…….”
“괜찮아. 루시는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루카스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루시에게 말을 했다. 긴 숨을 내쉰 후 주방을 나섰다.
“부르셨어요.”
그러자 볼크스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식탁 위에 있는 목검을 가리켰다.
“또 검을 휘둘렀느냐?”
“…….”
루카스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리에서 강한 충격이 전해지며 뭔가 번쩍했다.
쫘악!
우당탕탕!
루카스의 몸이 벽 쪽으로 날아갔다. 볼크스가 그대로 다가와 큼지막한 손으로 루카스의 머리를 날려 버린 것이다.
벽에 부딪친 루카스는 충격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입에서는 어느새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또 이놈의 검! 아빠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검을 휘두르지 말라고. 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볼크스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루시는 주방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루시의 얼굴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볼크스는 크게 소리를 지르고는 식탁 위에 있는 목검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루카스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루카스는 찔끔 눈을 감았다.
하지만 볼크스는 차마 내려칠 수가 없었다. 한참이나 목검을 들고 있다가 눈을 부라렸다.
그때 루시가 뛰어나오며 손을 벌려 루카스의 앞을 막았다.
“아빠, 오빠를 때리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루시의 말에 방에 있던 아내도 힘겹게 걸어 나와 벽을 붙잡고 말했다.
“여보, 진정하세요. 제발요.”
루시의 행동과 아내의 말에 볼크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미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의 눈빛은 슬프면서도 복잡한지 매우 흔들리고 있었다.
급기야 볼크스는 욕을 내뱉었다.
“젠장!”
그리고 목검을 바닥에 내려쳤다.
쾅!
빠각!
그 힘에 의해 목검이 반으로 쪼개졌다. 볼크스는 부러진 목검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다시는 검을 들지 마라!”
그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던 세레나는 안타까운 눈빛이 되었다.
원래 볼크스는 매우 온순한 남자였다. 루카스와 루시에게는 더없이 좋은 착한 아빠였으며 아내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남편이었다.
그런데 한 팔을 못 쓰게 되고, 기사에서 은퇴 후 성격이 조금 변했다. 특히 아들 루카스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몹시도 싫어했다.
그래서 루카스에게 검을 휘두르지 못하게 했다. 어찌 보면 자신의 아픔 때문에…… 아니, 자신의 처치를 비관해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때가 아니라면 볼크스는 정말 다정한 아빠, 남편의 모습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루카스이기에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다.
볼크스가 나가자, 루카스를 막고 있던 루시가 재빨리 몸을 돌려 오빠를 살폈다.
“오빠, 괜찮아?”
“괘, 괜찮아.”
루카스가 힘겹게 말했다. 하지만 입가에 흐르는 피를 보고는 화들짝 놀란 루시가 곧바로 주방으로 달려갔다.
“어머나, 어떡해!”
주방에 있던 약병을 들고 쪼르르 루카스에게 다시 달려갔다. 루카스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루시의 부축을 받은 루카스가 자리에 앉았다.
그때 세레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괜찮니?”
엄마의 목소리에 루카스가 대답했다.
“괜찮아요, 엄마. 죄송……해요.”
“괜찮다니 되었다. 루카스.”
세레나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하지만 루카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거라.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세레나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전 괜찮으니 엄마는 어서 침대로 돌아가세요. 루시.”
“응?”
“내가 할 테니, 엄마를…….”
“으응, 알았어.”
루시가 루카스에게 약병을 건네주고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루시는 엄마를 부축하여 다시 침대에 눕혔다.
루카스는 루시가 건네준 약병을 손에 쥐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반으로 쪼개진 자신의 허름한 목검을 보며 슬픈 눈빛을 지었다.
그때 엄마를 침대에 눕힌 루시가 다가왔다.
“왜 약을 바르지 않아. 이리 줘, 내가 발라 줄게.”
루시는 루카스 손에 들린 약병을 낚아채고는 뚜껑을 열어 천에 묻혔다. 그리고 벌겋게 된 오빠의 얼굴에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 행동이 매우 익숙해 보였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보였다.
“오빠, 아빠가 싫어하는데 꼭 검을 휘둘러야 해? 검을 그만 잡으면 안 돼?”
루시가 작은 손으로 루카스의 얼굴에 난 상처에 약을 바르며 물었다. 의자에 앉아 루시가 발라 주는 약에 인상을 찡그리는 루카스도 그런 동생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게…… 오빠도 모르겠어. 오빤 검을 잡으면 너무 좋아.”
“오빠…….”
약을 발라 주는 루시가 멈칫하며 나직이 불렀다. 그 모습을 침대 위에서 바라보는 세레나의 눈에 어느새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2

언제나 아침은 밝아 온다.
지난밤 때아닌 폭풍이 휘몰아쳤지만 그건 한때였다. 다음 날이 되면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보글보글.
이른 새벽, 주방에서는 볼크스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스튜와 갓 구운 빵이 구수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대충 아침 식사가 준비된 볼크스가 일을 나가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아침 일찍 마을로 내려가야지 좋은 일거리를 구할 수 있다. 그 돈으로 네 식구가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평민 기사 시절에는 다른 것은 몰랐지만 나름 풍족한 생활을 해 왔다.
하지만 팔 병신이 되고, 평민 기사에서 은퇴한 후부터는 생활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아내까지 폐렴으로 쓰러진 후 더욱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
볼크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먹고살기 위해 부지런히 일거리를 찾아다녔고,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해 왔다.
하지만 약값이며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내 약값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새벽에는 또 다른 일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아이들 밥을 챙겨 두고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루시가 식사 준비는 할 수 있지만 아버지로서 아침은 자기가 준비하고 싶었다.
볼크스도 알고 보며 매우 가정적인 사내였다. 물론 어제의 일은 조금 과했지만…….
어쨌든 볼크스는 모든 준비를 해 놓고는 일을 나갈 채비를 하였다. 그때 눈을 부비며 주방으로 나오는 루카스가 보였다. 루카스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움찔했다.
“일 나가시게요?”
“오, 오냐.”
어색한 대화가 오가며 루카스를 넌지시 보았다. 어제 맞은 얼굴 부위의 붓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볼크스는 루카스에게 다가갔다. 두툼한 손으로 루카스의 뺨과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교차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과 따스함을 알고 있는 루카스이기에 아빠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침은 준비해 놓았다. 엄마와 루시가 깨어나면 먹도록 하여라.”
“……네에, 아빠.”
그런 루카스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쓰다듬은 후 집을 나섰다. 막 문을 열며 나가려던 볼크스가 멈칫했다.
“참, 루카스야.”
“예?”
잠시 머뭇거리던 볼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 목검을 만들어 놓았다. 이번엔 부러지지 않게 조심히 간수하여라.”
“아, 아빠.”
루카스가 놀란 눈동자로 아빠를 쳐다봤다. 볼크스는 등을 보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들린 한마디.
“……미, 미안하구나.”
그 말을 끝으로 볼크스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루카스의 눈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빠…….”
나직이 한 번 부른 후 루카스가 재빨리 방문을 열고 나갔다. 문 옆을 보니 깔끔하게 다듬어진 목검 한 자루가 세워져 있었다.
그것을 집어 든 루카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눈에는 눈물이, 입가에는 미소가, 얼굴에 나타난 상반된 표정이었다. 루카스는 저 멀리 새벽어둠과 안개를 뚫고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평민인 아빠도 한때는 정말 잘나가던 기사였다. 귀족이었다면 가문의 도움을 받아 승승장구했겠지만 단지 평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사 이상은 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빠는 기사라는 명예와 자부심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떨쳐 냈다. 전장에 나가면 언제나 선두에 섰고, 모든 기사들이 인정하는 그런 아빠였다. 이곳 한센 영주도 아빠를 인정했다.
그런데 하늘의 시기였을까? 지난 몬스터 토벌 때 오크와 싸우다가 왼쪽 쇄골을 다쳐 그 후로 왼팔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
부상당한 당시 제대로 된 치료만 받았더라면 지금 같이 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볼크스는 그것을 숨긴 채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아예 망가져 버린 것이다.
그 후로 아빠는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다. 낙심과 좌절, 때론 자괴감에 빠져 술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안쓰러워하시며 지켜보았지만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게 아빠가 술로 지새고 있을 때 엄마는 마을로 내려가 고된 일을 하였다. 아빠가 기사였을 때는 그 월급으로 풍요롭게 지냈지만 더 이상 기사가 아니었기에 마땅히 버는 돈이 없었다.
식구가 먹고살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겨울 유난히도 추운 날씨에 일을 나간 엄마가 그만 폐렴을 앓고 말았다.
엄마가 쓰러지고 그 모습을 본 아빠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지만 술만 먹으며 난폭해졌다. 그것이 다 자괴감에 빠져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루카스는 아빠를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아빠를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아빠는 우상이며 언제까지고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 둔 그런 존재였다.
“아빠…….”
멀어지는 아빠의 등을 보며 루카스가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아침 해가 동쪽 산 능성에 걸렸다.
루카스는 아빠가 차려 놓은 스튜와 빵을 식탁에 놓기 시작했다. 그때를 같이해 눈을 부비며 루시가 걸어 나왔다.
“오……빠.”
“어? 루시 일어났니?”
식탁에 스튜를 놓으며 일어난 루시를 반겼다. 루카스의 표정은 매우 밝아 보였다. 루시가 식탁에 앉았다. 졸린 눈을 부비며 식탁에 놓인 스튜를 보았다.
“내가 준비하려고 했는데……. 벌써 오빠가 준비했네.”
“아니야, 아빠가 준비하신 거야.”
“아빠가?”
“그래. 식기 전에 어서 먹어.”
“응.”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튜를 보며 루시가 한 수저 떠서 호호 불어 한입 먹었다. 고소한 버섯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헤, 맛있다.”
“맛있어? 많이 먹어.”
“응.”
루시도 기분이 좋은지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루카스는 그런 루시를 한차례 보고는 따로 빵과 스튜를 챙겼다. 그 모습을 보던 루시가 말했다.
“엄마 드리게?”
“그래. 넌 여기서 먹어. 오빠는 엄마께 먼저 드리고 나중에 먹을게.”
“그럼 나도 엄마랑 먹을래.”
루시가 먹던 나무 숟가락을 내려놓고 앙증맞은 두 손으로 스튜 그릇을 들었다.
“그럴래?”
루카스가 쟁반을 들고 밝게 웃었다. 두 사람은 엄마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세레나는 이미 깨어나 있었다. 등을 침대 뒤에 받치고 반쯤 앉아 있었다.
루카스와 루시가 들어오자 환한 얼굴로 맞이했다.
“일어났니?”
“네.”
“응, 엄마.”
루시가 엄마 곁에 앉아 들고 온 스튜 그릇을 침대 옆 탁자에 놓았다. 루카스도 의자를 당겨 엄마 곁에 앉았다. 쟁반을 엄마 앞에 두었다.
“아침 식사하세요.”
“그래, 맛있겠구나.”
세레나도 밝은 얼굴로 자신 앞에 놓인 스튜와 식어 버린 빵을 보았다. 빵 한 조각을 찢어 스튜에 찍어서 입에 가져갔다. 루시는 연신 나무 숟가락을 움직여 스튜를 먹었다. 루카스도 엄마가 드시자 그제야 빵을 찢어 먹었다.
그렇게 단란한 세 사람의 아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