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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4화)
제01화 검에 미친 아이(3)


식사가 거의 끝이 날 때쯤 밖에서 아이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루카스, 루카스 대장!”
“응? 벌써 왔네?”
방금 식사를 마치고 정리를 하려던 참이었다. 딱 맞은 시간에 아이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 모습에 세레나가 조용히 물었다.
“친구가 온 것이니?”
“네에, 엄마.”
“칫, 또 혼자만 나가려고.”
루시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후후. 넌 엄마 곁에 있어야 하잖니.”
“나도 나가서 놀고 싶단 말이야.”
“나중에, 이 오빠가 다녀와서 그때 같이 놀아 줄게.”
“칫!”
루카스가 애써 위로했지만 루시는 볼살을 부풀리며 뾰로통한 상태였다. 그런 루시를 세레나가 위로했다.
“루시는 엄마랑 있는 것이 싫은 거니? 엄마 서운해지려고 해.”
“아, 아니야. 루시는 엄마가 좋아. 단지…….”
루시가 말을 다하지 못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세레나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루시를 안았다.
“이리 와. 엄마가 재미난 동화책을 읽어 줄게.”
“엄마는 말 많이 하면 안 되잖아요.”
“괜찮단다. 동화책 정도는 읽어 줄 수 있어.”
“정말요?”
“그래.”
루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무룩해진 얼굴이 밝아졌다. 세레나는 그런 루시를 부드럽게 안았다.
루카스가 식사한 것을 주방에 가져다 놓고 엄마에게 갔다.
“저기 엄마…….”
세레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으니, 놀다 오렴.”
“네, 금방 올게요.”
루카스가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때 루시가 소리쳤다.
“일찍 와야 해.”
“알았어, 루시.”
“조심하여라.”
“네에, 엄마.”
루카스가 집을 나섰다. 그리고 새벽에 아빠가 만들어 준 목검을 손에 들고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일곱 명의 아이가 루카스를 반겼다.
“대장!”
“루카스!”
루카스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준비됐지?”
“으응!”
“당연하지.”
“녀석들은?”
루카스가 물었다. 그러자 그중 제법 키가 큰 한 명의 소년이 바로 말했다.
“이미 와서 대기 중이야.”
그 말을 들은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목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좋아, 가자!”

3

산골에 사는 아이들에게 놀 만한 것들은 많지 않았다. 놀 수 있는 거라고는 산을 뛰어다니거나, 산열매를 따먹고 개울가에서 물장구나 치며 노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곳의 아이들은 좀 더 특별한 방식으로 논다.
일명 병정놀이였다.
한센 영지에는 도시 말고도 흩어진 여러 개의 마을이 존재한다. 루카스가 있는 마을의 이름은 바네아, 윗마을은 센드, 아랫마을은 이드라고 한다.
루카스가 살고 있는 바라논 왕국의 특정상 전쟁이 잦아 그 영향으로 인해 아이들이 노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바로 아이들끼리 목검으로 진지를 지키며 노는 병정놀이였다.
루카스가 마을 아이들과 어울린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바로 작년부터였다. 루카스는 아빠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또래 아이들 중에 검을 제일 잘 다룬다. 게다가 아이들 중에서 열두 살에 맞지 않게 제법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각 마을과의 병정놀이에서 매번 패하던 바네아 마을은 루카스의 등장으로 연일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정식으로 바네아 마을의 골목대장이 된 루카스는 그 후로도 병정놀이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그런 루카스를 진심으로 따랐으며 루카스도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했다. 그런데 얼마 전 센드 마을의 골목대장인 쿠퍼가 도전장을 던졌다.
루카스는 그 도전장을 받아들였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루카스를 선두로 바네아 마을의 아이들이 뒤를 따르며 정해진 장소에 도착을 했다.
그곳에는 센드 마을의 아이들이 이미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대략 20여 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바네아 마을의 아이들을 기다렸다.
같은 영지에 속한 마을이라고 해도 생활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특히 센드 마을은 지리적으로 한센 영지의 도시와 가까이 있기에 번화한 편이었다. 그래서 제법 잘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 따라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도 제법 부티가 났다.
반면 루카스가 있는 바네아 마을은 조금 못사는 편에 속했다. 옷도 낡아 허름하고,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마른 체격이 많았다.
하물며 영지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이다 보니 제대로 씻지 않아 얼굴에 땟국물이 쫘르륵 흘렀다. 하지만 산골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깡 하나는 셌다.
센드 마을의 골목대장인 쿠퍼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왔냐?”
“그래. 왔다!”
루카스도 당당히 말했다.
“오늘이야말로 승부를 겨루자! 이번에는 저번과 같지 않을 거야.”
쿠퍼는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인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쩝. 아무튼 말은 잘해요. 계집애처럼 앵앵거리지 말고 바로 시작하지.”
루카스가 귀를 후비며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그의 행동에 눈을 부라린 쿠퍼가 소리쳤다.
“저, 저런 개새끼가!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못 들었어? 하긴 귀에 못을 박아 놨으니 잘 안 들리겠지. 그럼 큰소리로 말해 줄게. 이 계집애야!”
“와하하하!”
루카스의 비아냥거림에 뒤에 있던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저, 저 새끼를 그냥!”
얼굴이 붉게 상기된 쿠퍼가 악을 쓰며 앞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키 큰 소년이 말렸다.
“쿠퍼, 저런 도발에 넘어가냐? 쪽팔리게.”
그 순간 쿠퍼가 순한 양이 된 것처럼 화를 풀었다.
“내, 내가 언제……. 난 그냥 저 녀석이.”
“됐어. 신경 꺼!”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루카스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러고는 얌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녀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딱 봐도 잘사는 집안의 아이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멋들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15살이 되어 보였고, 허리에 차고 있는 목검도 제법 잘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잘 싸울 것 같은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루카스가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뺀질뺀질한 얼굴과 남을 무시하는 듯한 비웃음.
루카스는 왠지 신경이 쓰였다. 그사이 혼자 떠들던 쿠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그 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린 루카스가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듣고 있어. 누구처럼 귀가 막히지는 않았거든.”
그의 말에 또 한 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와하하하!”
“저, 저 새끼를 그냥.”
쿠퍼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흥분하지는 않았다.
“뭐, 어쨌든 좋다. 이번만은 네 녀석도 어쩌지 못할 테니까.”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말을 하는 쿠퍼.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키 큰 소년에게 향했다.
루카스는 그런 쿠퍼를 보며 소리쳤다.
“이번에 지면 다시는 우리 애들 괴롭히지 마!”
“걱정 마.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쿠퍼도 지지 않고 말했다. 그러고는 자랑스럽게 옆에 있는 녀석을 소개했다.
“왜냐하면 내 사촌이 오늘 나왔거든. 너 내 사촌이 누군지 모르지?”
쿠퍼의 물음에 루카스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흥, 멍청한 놈. 내가 네 사촌을 어찌 아냐.”
빠직!
루카스의 말에 쿠퍼의 이마에 핏줄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러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 내 말 듣고 놀라지 마라. 내 사촌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기사 수업을 받는 아이다. 소개하지, 내 사촌 존슨이다.”
쿠퍼의 소개에 그 사촌이라는 아이가 앞으로 한 발 내딛었다.
“뭐야? 이런 꼬맹이였어?”
루카스의 눈이 번쩍 떠졌다. 역시 조금 전 좋지 않던 느낌이 바로 이것이었다. 기사 수업을 받는 녀석이라면 분명 검술도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하물며 나이도 열다섯 살이나 되었다.
‘비겁한 녀석, 우리에게 계속 깨지니까. 이젠 저런 수까지 쓰는구나. 하긴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도 이기는 쪽은 우리다.’
루카스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쿠퍼를 째려보았다. 반면 쿠퍼는 실실 쪼개며 루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 당황한 얼굴을 금세 풀어 버린 루카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비아냥거렸다.
“그래? 기사 수업을 받는 녀석이라면 아직 정식 기사는 아니라는 것이잖아. 에이, 별것 아니겠네.”
루카스가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하자 듣던 사촌 존슨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쿠퍼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자 존슨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됐어. 난 누구처럼 그런 도발에 쉽게 넘어가지 않으니까. 어차피 나중에 땅을 기며 살려 달라고 벌벌 길 테니까.”
존슨의 말에 이내 표정이 밝아진 쿠퍼가 굽실거리며 말했다.
“그래, 존슨. 너만 믿고 있을게.”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던 루카스의 눈이 차가워졌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 더 큰 아이가 자신을 무시하고, 게다가 저런 말을 내뱉자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릿속이 냉정해졌다.
반면, 기사 수업을 받았다는 소리에 뒤에 있던 아이들이 잔뜩 겁을 먹었다.
“대, 대장. 괜찮을까?”
“그래, 어떻게 해?”
아이들의 말에 루카스가 그들을 진정시켰다.
“걱정 마. 너희들은 전과 같이 행동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나만 믿어!”
루카스의 자신 있는 말투에 아이들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뒤에서 쿠퍼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 방법은?”
루카스가 몸을 돌려 말했다.
“언제나 똑같다. 서로의 본진을 뺏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한다.”
“좋아, 위치는 알고 있겠지.”
“알고 있다.”
“후후후. 아무튼 뒤통수 조심해라. 하하핫!”
쿠퍼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며 자신들의 진지로 이동했다. 그런 쿠퍼의 뒷모습을 보며 루카스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몸을 돌린 루카스가 아이들을 보았다.
“자, 언제나처럼 우리들은 이길 수 있다. 작전은 저번과 같다. 카알!”
루카스가 옆에 있는 카알을 불렀다. 키가 큰 카알은 루카스가 나타나기 전에 바네아의 골목대장이었다.
“응, 루카스.”
“너는 애들 데리고 본진에 가 있어. 어떻게 하는지는 잘 알지?”
“알고 있어.”
“그래, 그럼 이동해.”
“알았어.”
카알이 힘차게 대답을 한 후 남은 아홉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했다. 떠나기 전 카알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루카스를 보며 말했다.
“조심해, 루카스.”
“조심해, 대장!”
아이들이 말했다.
“걱정 말고, 본진이나 잘 지켜.”
루카스가 손을 흔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카알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이들을 데리고 진지로 이동했다. 그들이 떠나고 홀로 남은 루카스도 목검을 손에 꽉 쥐고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루카스의 작전은 이랬다.
바네아 마을의 아이들 10명, 센드 마을의 아이는 모두 21명이었다. 수적으로 매우 열세이기 때문에 전면전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검을 잘 다루는 루카스가 게릴라 전법으로 적을 먼저 쓰러뜨린 후,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되면 한꺼번에 공격하는 그런 식이었다.
어찌 보면 무모한 작전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 모두 루카스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지난 일 년 동안 이 작전으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루카스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가장 편했다. 자신이 휘두르는 검에 혹여 마을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고, 약간 거추장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혼자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목검을 휘두르는 것이 좋았다.
“좋아, 어디 시작해 볼까?”
루카스가 재빨리 움직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루카스는 울창한 수풀에 몸을 숨긴 후 녀석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하면, 아무리 검술이 뛰어난 루카스라고 해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렇듯 몸을 숨긴 상태에서 무리에서 떨어진 녀석들을 한 명씩 각개격파 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는 아이들이기에 전문적으로 훈련한 기사들과 병사들과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꼭 무리를 이탈하는 녀석들이 나왔다.
그 순간만 잘 포착하면 되었다.
수풀에 몸을 숨긴 루카스가 눈을 반짝이며 기다렸다. 쿠퍼가 이끄는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루카스가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그들이 지나가고 후미에 있는 한 녀석을 처리하면 될 문제였다. 쿠퍼가 선두에 있고, 그 뒤를 따르는 아이들의 눈은 바삐 움직였다. 혹여 루카스가 튀어나오지 않을지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그들도 루카스에게 하도 당해서 기습을 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야, 주위를 잘 살펴. 언제 루카스 녀석이 덤빌지 모르니까.”
“알았어.”
그들의 속삭임을 들은 루카스가 피식 웃었다. 저 녀석들은 한두 번 당하고 난 후부터 계속 똑같은 말을 지껄였다. 그래도 당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