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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6화)
제02화 강한 이유(2)


존슨이 으르렁거리며 쿠퍼를 째려봤다. 그러자 귀찮은 표정을 짓던 쿠퍼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아아, 됐고.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봐.”
그러자 눈알을 굴리던 존슨이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야,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그 새끼가 치사하게 다리를 걸잖아. 나는 정정당당히 기사로서 맞섰는데 말이야.”
그 말을 듣던 쿠퍼가 어이가 없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말이 돼. 어떻게 다리를 걸어 넘어졌다고 항복을 해? 게다가 옆구리에 단 한 번밖에 맞지 않았다면서.”
쿠퍼의 외침에 존슨이 약간 당황했는지 더욱 어이없는 말을 내뱉었다.
“원래 기사는 그런 거야.”
“뭐라고? 원래 기사가 그래? 젠장, 기사가 원래 그런 것인지. 난 또 처음 알았네.”
“그러게.”
쿠퍼의 말에 주위에 있는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의아해했다. 궁지에 몰린 존슨이 당황하며 더욱 언성을 높였다.
“제기랄, 쿠퍼. 너 기사 수업 받아 봤어? 받아 봤냐고.”
“내가 어떻게 받아!”
“그럼 너희들은?”
이번에는 존슨이 주위에 있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아니.”
아이들은 나이가 어려 기사 수업을 받을 수가 없다. 그 말에 기고만장해진 존슨이 소리쳤다.
“기사 수업을 받지 않았다면 말도 하지 마. 내가 기사 수업을 받을 때에는 기사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않고 덤벼드는 놈에게는 차라리 항복하라고 했어. 알지도 못하면서 까불기는.”
존슨은 더욱 기고만장해진 모습으로 우기기를 시작했다. 존슨 빼고 다들 기사 수업을 받지 않았기에 우겨도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에잇, 기사가 이런 애들 장난에 끼는 것이 아니었어.”
존슨은 더 있다가는 자신의 입장이 이상해질 것 같아 괜히 성질을 내며 앞서서 걸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 지켜보는 쿠퍼가 입을 열었다.
“다시는 네 녀석과 노나 봐!”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성질을 내며 사촌 간의 우애가 깨어졌다. 마지막으로 쿠퍼가 한마디 더 붙였다.
“미친 새끼!”

2

루카스도 아이들과 헤어진 후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방 식탁에 루시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루시는 루카스를 발견하고 재빨리 뛰어갔다.
“오빠!”
“어? 루시, 안 자고 있었어?”
루카스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러자 루시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빠 기다렸지.”
“엄마는?”
“엄마는 지금 주무셔.”
루시가 대답을 하다가 찬찬히 루카스의 얼굴을 살폈다. 그 모습에 루카스가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오빠 얼굴이 왜 이래? 또 얼마나 맞았어.”
“뭐, 뭘.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루카스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피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어디 좀 봐봐.”
루시의 성화에 루카스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루시의 작은 눈망울에는 어느새 한 줄기 물방울이 아른거렸다. 그 모습에 짠해진 루카스가 루시의 머리를 만졌다.
“오빠 괜찮아. 끄떡없어.”
“치, 가만히 있어 봐. 약 가져올게.”
루시가 쪼르륵 주방으로 뛰어가고, 루카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밖의 우물가로 향했다. 얼굴에 묻은 피딱지와 먼지를 씻어 내기 위해서였다. 웃통을 벗기 위해 몸을 움직이자 맞았던 곳에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윽!”
짧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조금 전까지 아픈 줄 몰랐는데, 긴장이 풀리니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팠다. 잔뜩 인상을 구기며 웃통을 벗었다.
몸 여기저기 목검으로 맞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특히 존슨에게 맞은 등 부위는 더욱 심했다.
아픈 몸으로 바가지에 물을 퍼서 머리에 부었다.
쫘아악!
초봄이라서 그런지 우물가의 물은 몹시도 차가웠다. 하지만 머릿속은 무척이나 개운했다. 몇 차례 바가지로 물을 붓고 있을 때, 루시가 나타났다.
루시의 손에 빻아 놓은 약초가 들려 있었다.
“오빠, 이거 발라.”
“고마워, 루시.”
루카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루시가 준 약초를 상처에 발랐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은 루시가 해 주었다. 약을 바르던 루시가 조용히 물었다.
“오늘은 상처가 많네.”
“으응. 좀 센 녀석이랑 붙었거든.”
“정말? 이겼어?”
“후훗. 그럼 당연하지. 이 오빠가 누구냐.”
루카스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모습에 루시가 방긋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잠시 루시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오빠.”
“응?”
“이기는 것도 좋은데 이제 몸 좀 조심해. 오빠가 아프면 엄마가 많이 슬퍼할 거야.”
슬픈 눈망울로 말하는 루시를 보며 루카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알았어.”
다시 한 번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마 깨실지 모르니까, 나 먼저 들어갈게. 오빠는 조금 있다가 들어와야 돼.”
“알았어.”
루시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고, 홀로 우물가에 남은 루카스는 몇 번 더 물로 머리를 식혔다.
옷을 다 입고, 한편에 마련된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때 약효 때문인지 상처가 욱신거리며 고통이 심하게 느껴졌다. 루카스는 눈살을 찡그리며 고통을 참아 냈다.
의자에 앉은 루카스는 마음을 차분히 했다. 목검을 손에 쥐고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기사 수업을 받았던 쿠퍼의 사촌 존슨을 떠올렸다.
그와 싸웠던 기억, 그것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복기(復碁)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 상당히 강했어. 이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어. 좀 더 싸웠다면 졌을 거야.”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이를 몇 살쯤 되었을까? 열 넷? 열다섯? 하긴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녀석의 공격이 좋았어.”
루카스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존슨과 싸웠던 것을 차근차근 떠올렸다. 루카스에게 있어서 존슨과 싸웠던 기억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검에 대한 또 다른 것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녀석의 검술. 그것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어. 어떻게 했지?”
루카스는 집중을 하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존슨이 휘둘렀던 검술을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존슨의 검술 잔상이 훅 하고 지나갔다.
검을 때리고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내질렀던 그 살기. 눈을 감은 상태에서 피부로 확 느껴졌다.
루카스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그럼 어디 나도 따라 해 볼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루카스는 옆에 둔 목검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존슨이 사용했던 검술을 아주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루카스에게 있어서 가장 특이한 점은 한 번 본 것은 웬만하면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뛰어난 기억력이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아빠가 기사였을 때 딱 한 번 검술을 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다섯 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기억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아빠는 절대 루카스에게 검술을 가르친 적이 없다.
그때 한 번 휘두른 검술을 보고 루카스 혼자 연습을 하고, 지금의 검술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 아빠가 휘두른 검술은 기사들에게 있어서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지만.
어쨌든 루카스는 자신의 뛰어난 기억력을 토대로 존슨이 펼쳤던 마지막 검술을 떠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천천히 따라 해 보지만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발이 꼬이며 검술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었다.
“이게 아니야. 발을 어떻게 움직였더라?”
재차 발을 교정해 가며 존슨이 펼쳤던 그 검술을 계속해서 따라 해 보았다. 물론 매우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약 한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한 결과, 어느 정도 대충은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존슨이 펼쳤던 궤적보다 더 멋지게 휘둘러졌다.
이것이 바로 루카스의 또 하나의 특이점, 바로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아빠에게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터득하는 재능. 이것이야말로 루카스가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하아, 하아. 이거 괜찮은데.”
루카스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하지만 힘든 만큼 그의 얼굴은 매우 만족스러움이 내비쳤다.
하지만 루카스에게 있어서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나를 다루는 법, 즉 마나듐이었다.
마나듐은 기사들이 몸속에 가지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일반적인 기사들은 모두 마나듐을 익힌다. 그것으로 검을 좀 더 강하고, 빠르게 때로는 무겁게 휘두를 수 있는 특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루카스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물론 기사였던 아빠가 가르칠 수 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니,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 정확했다.
기사이지만 평민이었던 볼크스는 작위를 받기 전까지 마나듐을 함부로 가르쳐 줄 수 없게끔 되어 있었다. 게다가 검술도 가르쳐서는 안 되었다. 그것이 바로 볼크스가 가지고 있는 불문율. 즉, 왕국의 법이었다.
어찌 보면 루카스가 검을 휘두르는 것 자체가 아빠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었다. 만약에 오해를 받게 된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그에 대해 볼크스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참았다.
그러던 것이 술만 취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루카스를 괴롭히게 되는 것뿐이었다. 그러한 아빠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루카스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검을 한차례 휘두르고 땀을 식히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허벅지에 놓인 자신의 목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단 말이야. 나는 검이 왜 이렇게 익숙할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때 루시가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오빠, 엄마가 기침해.”
“그래, 알았어. 금방 들어갈게.”
루카스는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들린 목검을 한차례 보고는 집 뒤로 뛰어갔다. 장작더미가 쌓여 있고, 그 한편에 목검 한 자루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목검을 소중히 집어넣었다.
다시는 부러지지 않게 하겠다며…….

3

사흘의 시간이 흘러갔다.
센드의 골목대장인 쿠퍼에게 아랫마을 이드의 골목대장인 홀슨이 찾아왔다. 홀슨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쿠퍼 앞에 자리했다. 그의 얼굴에 웃음이 생겨나며 말했다.
“바네아 녀석들에게 또 깨져다며?”
“씨팔! 소식 한번 빠르네. 그래, 깨졌다.”
“킥킥킥. 어디 한두 번이냐. 뭘 그리 성질을 내고 그래.”
홀슨이 조소를 날리며 말하자 쿠퍼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젠장, 루카스 그 썩을 놈! 그 새끼가 나타난 이후로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했어. 그 새끼가 나타나기 전에 바네아 녀석들은 우리 밥이었는데. 제기랄.”
쿠퍼가 온갖 욕을 퍼부으며 울분과 짜증을 토로했다.
“그 새끼 딴 데로 안 가나? 제발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쓰벌!”
쿠퍼가 계속해서 루카스의 험담을 퍼붓고 있을 때 홀슨은 실실 웃으며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자 쿠퍼가 홀슨의 모습에 짜증이 났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왜 자꾸 실실 쪼개고 있어. 내가 우스워!”
“우습기는 그냥 네가 하는 말이 재미나서 그렇지.”
“재미나?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야?”
쿠퍼가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성질을 부렸다. 그러자 홀슨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워, 워. 진정해. 네가 아무리 그래도 녀석은 우리보다 두 살 어려. 아직 은퇴할 나이가 아니라고. 그보다 우리가 내년이면 은퇴할 때지.”
“젠장, 그러니 이렇게 답답한 것이 아니야. 은퇴하기 전에 녀석을 꼭 뭉개고 싶은데 말이지.”
아이들의 병정놀이는 일곱 살부터 열네 살까지 참여할 수 있고, 열다섯 살이 되면 은퇴를 하게 된다. 덩치도 커지고 무엇보다 그 나이가 되면 기사 수업을 받기 위해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둘 다 참 한심하다. 두 살 어린 녀석에게 매년 당하고 있으니 말이야.”
“…….”
홀슨이 두 손을 뒷머리에 가져가며 한탄 소리를 내뱉었다. 그 말에 쿠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잘근 씹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참, 쿠퍼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제기랄, 녀석을 혼내 줄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 은퇴하면 억울해서 나 못 참아.”
쿠퍼가 소리를 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의 생각은 대장으로서 마지막으로 루카스를 뭉개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즉, 뭔가 업적을 남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루카스를 이기지 못했다. 그것이 계속해서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홀슨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