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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7화)
제02화 강한 이유(3)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홀슨이 뒷머리를 짚고 있던 손을 풀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쿠퍼, 놈을 혼낼 방법이 있는데 말이야.”
“그래? 어떻게?”
쿠퍼의 눈이 번쩍 뜨이며 홀슨을 응시했다.
“조금 비겁한 방법인데…….”
홀슨이 말하는 것을 조금 꺼리는지 머뭇거렸다. 그러자 쿠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아, 지금 상황에서 비겁한 것 따질 때야. 뭐든지 해서 놈을 뭉개 버려야지.”
쿠퍼의 말을 들은 홀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가 지금 찬밥, 더운밥 따질 때가 아니지.”
“그래, 이번에 우리 그 자식을 호되게 혼내 주자.”
쿠퍼도 신이 나는지 조금 전과 달리 한결 밝아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아, 어떤 방법이라면…….”
홀슨이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쿠퍼는 홀슨이 말하는 내용을 차근차근 들으며 눈을 반짝였다.
“이야.”
얘기를 다 들은 쿠퍼가 홀슨이 말한 것이 제법 괜찮은지 매우 흥미로운 탄성을 질렀다.
“어때 할 수 있겠어?”
홀슨이 물었다.
“후훗.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지. 그보다 녀석이 넘어올까?”
쿠퍼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물었다.
“그거야 모를 일이지. 하지만 가능할 것 같은데.”
홀슨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쿠퍼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 보자.”
“그럼 구체적인 계획을 짜 볼까?”
“흐흐흐, 좋지.”
그렇게 쿠퍼와 홀슨은 서로 얼굴을 맞대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골목대장을 은퇴하기 전에 루카스에게 당한 복수를 해야겠다는 두 사람의 마음이 합쳐진 결과였다.
제03화 패마(覇魔), 그 첫 번째 각성(1)
1
볼크스의 하루 일과는 변함이 없었다.
매일 아침 일찍 마을에 나가 일거리를 찾아 헤맸다. 물론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볼크스의 팔이 불편하다고 해서 대부분 일거리를 주지 않는 것이다.
볼크스는 간혹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다.
“팔 병신이 무슨 일이람.”
“이 사람아 듣겠어, 그래도 한때는 기사였지 않는가.”
“쯧쯧쯧, 하긴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것도 한순간이라고 하더니…….”
“이보게들, 그만들 하게.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가. 자자, 우리 일이나 하세.”
“그러자고.”
볼크스는 이런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귀는 어찌나 밝은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럴 때마다 자기 때문에 병들어 누워 있는 아내 생각과 자식들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볼크스는 가장으로서 식구들이 먹고 살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했기에 온갖 모멸감과 멸시를 참았다.
볼크스는 잡일이든, 사람들이 꺼려 하는 일이든,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다. 예전에 자신이 기사였던 것은 지금 이 순간 잊어버렸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가기 위해서는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도 일거리를 찾기 위해 마을을 나섰다.
그가 향하는 곳은 바로 한센 영주가 있는 성이었다. 배운 것이 검밖에 없다 보니 혹여 몬스터 토벌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영지에 들어선 볼크스는 곧바로 한센 영주가 있는 성으로 향했다. 성 정문에는 기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볼크스는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감회가 새로운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한 명의 기사가 고개를 돌려 볼크스가 있는 방향으로 쳐다보았다.
볼크스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재빨리 몸을 돌려 성의 뒷문으로 향했다. 그곳은 성으로 출근하는 기사나 병사들이 이용하는 문이었다.
뒷문에서 멀찍이 떨어져서는 그곳을 주시했다. 잠시 후 뒷문이 열리며 기사 한 명이 나타났다. 그를 발견한 볼크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보게, 허드슨.”
볼크스가 손을 흔들며 나타난 기사를 불렀다. 그의 외침에 허드슨이 고개를 돌렸다. 한 귀퉁이에 후드를 쓴 채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누구시오?”
“날세, 볼크스.”
볼크스는 후드를 벗으며 말했다. 그를 발견한 허드슨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가 이내 풀며 다가왔다.
“자네 오랜만이군.”
“오랜만일세.”
볼크스도 반가워하며 말했다. 허드슨은 그런 볼크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팔은 어떤가?”
“괜찮네,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볼크스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왼팔을 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허드슨이 용건을 물었다.
“그래, 이곳에는 어인 일인가?”
“그게 말이야…….”
볼크스는 말끝을 흐리며 망설이다가 결심을 하고는 곧바로 말했다.
“혹시, 영주님께서 몬스터 토벌을 계획하고 있지는 않는가?”
“몬스터 토벌? 그건 왜?”
“나도 참여할까 해서 말이야.”
볼크스는 일거리를 얻기 위해 자존심이 상하는 걸 무릅쓰고 옛 기사 동료에게 부탁을 했다. 허드슨은 그런 볼크스를 보며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 건은 지난겨울에 이미 끝났는데.”
“그런가? 하지만 예전에 이맘때쯤 하지 않았나.”
“이보게,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런 일은 가끔 일어나는 일이네. 게다가 요즘 영지 사정이 어려워져서 올해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네.”
“그런가?”
몬스터 토벌 계획이 없다는 얘기에 볼크스는 매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보며 허드슨이 물었다.
“그보다, 자네 팔이 그런데 무슨 몬스터 토벌인가?”
“그래도 아직 한 팔이 남아 있지 않는가. 병사로 참가해 검 휘두르는 것쯤은 문제도 안 되네.”
볼크스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몬스터 토벌에 참여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물론 기사 때보다는 못하지만, 병사로 참여해도 식구가 반년 동안 먹을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었다. 볼크스는 용병들도 참여를 하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찾아온 것이다.
지금 상태의 볼크스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허드슨에게서 들려온 말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도움은 주고 싶지만, 어쨌든 계획은 없네.”
“그럼 만약에 계획이 생기거든 나에게 좀 알려 주게.”
“쩝, 알겠네.”
허드슨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부탁하네.”
볼크스가 재차 말했다. 그러자 허드슨이 약간 짜증 난 얼굴로 대답했다.
“알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의 언성에 약간 놀란 볼크스가 약간 기어 들어가는 말투로 대답했다.
“아, 알았네. 시간 뺏어서 미안하네. 수고하게.”
볼크스가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의 어깨가 축 처진 것이 못내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허드슨은 달랐다. 볼크스가 몸을 돌리자마자 인상을 찡그렸다. 게다가 멀리 귀퉁이를 돌아서자 나직이 중얼거렸다.
“젠장, 병신 주제에 무슨 몬스터 토벌이야. 옛정을 생각해서 상대해 줬더니……. 에이, 재수 없어.”
허드슨은 험한 말을 내뱉고는 몸을 홱 돌려 성안으로 들어갔다.
볼크스는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도로를 걷고 있었다. 잔뜩 풀이 죽은 모습에 애처로움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맞은편에서 한 사내가 볼크스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이게 누구십니까, 볼크스 님 아니십니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란 볼크스가 고개를 들었다. 달려오는 인물은 바로 한스였던 것이다. 볼크스는 그런 한스를 보며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반겼다.
“한스 아닌가.”
“볼크스 님,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한스의 물음에 볼크스는 약간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아, 근처에…… 볼일이 좀…….”
볼크스는 차마 일거리를 구하러 왔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아, 볼일 보러 오셨군요.”
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스는 아무리 은퇴한 퇴역 기사라고 해도 볼크스에게 깍듯이 대했다. 게다가 그는 카알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근데 한스 자네는 이곳에 어인 일인가?”
“아! 누가 일 좀 도와 달라고 해서요.”
“일?”
일이라는 말에 볼크스의 눈이 번쩍였다.
“저기 카발리안 상단 아시죠?”
“알지.”
“그 상단의 곡물 창고에 오늘 곡물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것을 옮겨 달라는 일거리를 받았습니다.”
“그런가?”
볼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스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던데……. 혹시 볼크스 님께서 바쁘시지 않다면…….”
그 말을 듣는 순간 볼크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바쁘지 않네. 마침 볼일도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네.”
볼크스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안 그래도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나. 그런데 마침 일거리가 생겼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저랑 가시겠습니까?”
한스가 볼크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히려 볼크스가 되물었다.
“그래도 되는가?”
“그럼요. 안 그래도 오는 길에 일할 사람이 더 있다면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좋네, 가겠네.”
“그럼 가시지요.”
한스도 밝아진 얼굴로 대답을 했다. 사실 한스는 볼크스가 일거리를 구하러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오늘 마침 일거리가 생겨서 볼크스를 찾고 있던 참이었다.
볼크스가 기사였을 때 이런저런 도움을 받은 한스였기에 그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한때는 기사였던 볼크스가 그런 험한 잡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흔쾌히 허락을 하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먼저 한스가 말을 꺼냈다.
“우리 카알 녀석이 매일 루카스를 칭찬하더라고요. 대단하다는 둥, 정말 멋있다는 둥 말이죠.”
볼크스가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그런가? 우리 애도 카알이 용감하고 멋진 녀석이라고 그러던데.”
“그렇습니까?”
볼크스의 말에 한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던 볼크스도 덩달아 밝아지며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들들의 얘기를 하며 카발리안 상단의 곡물 창고로 향했다.
곡물 자루를 창고로 운반하는 일이니 한 팔이 없어도 충분하였다. 어깨에 짊어지고 옮기면 되기 때문이었다.
걸어가는 볼크스는 그래도 오늘 일거리를 얻었다는 것에 매우 즐겁기만 했다. 왜냐하면 이번 일로 일주일 먹을 식량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2
아침이 밝아 왔다.
루카스는 자신의 여동생인 루시와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빠는 일이 많아 어제 들어오시지 않았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이렇듯 집에 안 들어오시고는 했다.
이럴 때는 루카스와 루시가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했다. 루시가 주방장, 루카스가 보조였다. 둘은 언제나 밝은 얼굴이었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오늘 아침 메뉴는 빵과 산나물 볶음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한 버섯스튜도 끓였다. 루카스가 나무 국자로 스튜를 떠서 간을 봤다.
루카스의 눈이 번쩍 떠지며 옆에 있는 루시를 바라보았다. 루시는 또랑또랑한 두 눈을 깜빡이며 오빠의 말을 기다렸다.
“우와, 간이 딱 맞고 맛있는데. 역시 루시는 요리를 잘해.”
루카스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칭찬을 했다.
“헤헤. 뭐, 이 정도야.”
루시도 어깨를 으슥하며 대답했다.
“자식, 그래. 네가 최고야.”
“당연한 말도 자주 들으면 싫증이 나네요.”
루시가 더욱 생색을 내며 말했다. 그런 루시가 너무나도 귀여운 루카스는 그저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하하하.”
루카스는 어린 나이지만 집안 살림을 거의 도맡아 하는 루시가 정말 기특했다.
“우리 루시, 이제 시집가도 되겠네.”
“칫,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벌써 시집이야. 난 시집 안 가. 오빠랑 엄마랑 아빠랑 계속해서 같이 살 거야.”
루시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루카스는 그런 모습마저 귀여웠다.
“그래, 알았어. 우리 식구끼리 평생 함께 살자.”
“응.”
루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말했다.
아침 식사가 거의 마무리된 것 같아 보였다. 루카스가 엄마에게 드릴 버섯스튜를 그릇에 담고는 말했다.
“요리가 다 된 것 같으니까, 밥 먹자.”
“으응.”
루카스의 말에 루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엄마께 드릴 스튜와 산나물 볶음을 쟁반에 챙기며 루카스가 말했다.
“이건 오빠가 들고 갈게.”
“알았어, 오빠.”
그렇게 두 사람은 아침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루카스가 쟁반을 들고 엄마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려고 할 때, 밖에서 카알의 음성이 들려왔다.
“대장, 루카스 대장.”
그의 목소리에 루카스가 멈칫했다.
“응? 카알의 목소리잖아.”
“칫, 아침 일찍부터 웬일이래.”
루시가 식탁에 앉아마자 투덜거렸다. 그러자 루카스가 루시를 달랬다.
“무슨 급한 일이 있겠지.”
“급한 일이 뭐겠어. 놀러 가자는 것이겠지.”
루시는 여전히 투덜대며 버섯스튜를 수저로 떠먹었다. 그런 루시의 모습에 루카스는 그저 미소만 짓고 말았다.
“루시, 엄마 식사는 네가 가져다줄래.”
루카스가 쟁반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루시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내려놓은 쟁반을 들고 엄마 방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루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문을 열며 소리쳤다.
“카알, 나 여기 있어.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