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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8화)
제03화 패마(覇魔), 그 첫 번째 각성(2)
카알이 방에 들어서자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킁킁. 아침 식사 중이었어?”
“응. 근데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이냐?”
루카스의 물음에도 카알은 여기에 온 목적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
“헉. 버섯 스튜에 산나물 볶음까지. 엄청나구나, 정말 맛있겠다.”
꿀꺽!
카알은 침과 함께 입맛을 다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에 루카스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 아침밥은 먹고 왔냐?”
“아, 아니. 혹시 내 것도 있어?”
“있어. 자리에 앉아. 같이 먹자.”
“정말 그래도 돼?”
카알의 얼굴이 환해지며 물었다. 루카스가 주방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넉넉하게 준비했으니 같이 먹어도 돼.”
“안 돼! 오빠. 우리 먹을 것밖에 없단 말이야.”
루시가 엄마의 방에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괜찮아, 내 것을 나눠 먹으면 돼.”
“그래도 안 돼!”
루시가 강하게 말했지만, 루카스는 대답이 없었다. 한편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카알이 루시를 발견하고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손을 들며 인사했다.
“하하, 하하하. 루시 있었냐? 아, 안녕.”
카알이 손을 들고 루시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루시는 콧방귀를 끼며 도로 엄마에게로 갔다.
“흥!”
“헐. 거참, 찬바람 한번 거세네.”
카알은 약간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주방에서 음식을 가지고 나온 루카스가 카알 앞에 그릇을 내밀었다.
“자, 어서 먹어.”
“흐흐흐. 고마워, 대장.”
카알은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루카스가 빵을 찢어 스튜에 찍어 먹는 사이, 카알의 두 손은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루카스는 그저 웃음만 나왔다.
“천천히 먹어. 누가 안 빼앗아 먹으니까.”
“으으? 아그라 워래 머거.(응? 아니, 난 원래 이렇게 먹어).”
입 안 가득 음식을 씹으며 말을 하는 카알.
루카스는 손을 들어 말했다.
“됐다. 그냥 식사나 하셔.”
“흐흐흐.”
카알이 히죽 웃으며 열심히 먹었다.
그렇게 잠깐 동안 식탁에 있는 모든 음식을 초토화시킨 카알이 거창하게 트림을 하며 말했다.
“커억! 야, 진짜 맛있다. 이거 누가 만든 거야?”
“루시.”
“루시? 우와, 루시의 요리 실력이 장난이 아닌데. 시집가도 되겠어. 이봐, 대장. 내가 책임질 수도 있는데.”
카알이 눈을 가늘게 뜨며 루카스에게 말했다. 그때 쟁반을 들고 나타난 루시가 차가운 눈초리로 카알을 째려봤다.
“됐거든요. 난 절대 카알 오빠에게 시집갈 맘이 없네요. 완전 어이없어.”
매서운 겨울의 한파처럼 차가운 한기를 내뿜으며 주방으로 걸어가는 루시. 그 모습에 카알이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며 두 손을 감쌌다.
“으으으, 춥다. 무슨 꼬맹이가 저리도 차갑지?”
카알의 말에 루카스가 차를 가지고 오며 말했다.
“요즘 루시가 사춘기인지 조금 민감해. 그러니 네가 이해해.”
“오빠!”
루시가 주방을 나서며 날카로운 눈매로 루카스를 째려보며 소리쳤다. 루카스는 곧바로 방어 자세를 취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크!”
루시는 엄마에게 드릴 차를 쟁반에 얹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루카스의 뒤를 걸어갈 때 나직이 속삭였다.
“쓸데없는 소리 마. 알았지!”
루시의 차가운 한마디에 루카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알도 입을 다물 채 딴청을 부렸다. 루시가 차를 들고 엄마 방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은 긴 숨을 내쉬었다.
“후우.”
“후아. 루시 무섭다.”
카알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루카스도 동감을 하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나도 가끔 무서울 때가 있어. 그보다 너 아침 일찍 무슨 일이야?”
루카스의 물음에 카알이 박수를 쳤다.
“맞다. 내 정신 좀 봐. 이드 마을 녀석들이 쳐들어왔어.”
“뭐? 이드 마을 녀석들이?”
“으응. 그러니까 놈들이 도…….”
갑자기 루카스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고는 엄마 방을 힐끔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쉿! 나가서 이야기하자.”
“아, 알았어.”
루카스와 카알은 슬그머니 방을 나갔다. 우물가 옆에 마련된 의자로 간 루카스와 카알.
“그래, 이드 마을 녀석들이 무슨 일이래.”
“놈들이 도전장을 보냈어. 그것도 오늘 붙자고 하네. 녀석들이 아주 막무가내야.”
“뭐? 우리는 삼 일 전 센드 마을 녀석들과 붙었잖아. 게다가 오늘은 싸우는 날도 아니잖아.”
루카스가 놀란 음성을 말했다.
원래는 일주일씩 간격을 두고 병정놀이를 한다. 그게 규칙이었다. 그런데 이드 마을이 그 규칙을 깨고 있었다.
“맞아. 그런데 이드의 대장 홀슨 녀석이 그때는 일이 생겨 안 된다고 오늘 하자고 그러네. 안 그래도 삼 일 전 싸움으로 인해 우리 애들도 부상자가 많아. 어떻게 해?”
“안 된다고 해야지. 아직 부상도 치료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싸워.”
루카스는 단호히 거절을 했다. 루카스 본인도 그때 당한 부상이 낫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게다가 저런 억지를 부리는 이드 마을 녀석들의 말을 들어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 그런데 대장, 홀슨 녀석이 이런 말도 했어. 오늘 싸움에 안 나온다면 대장을 비겁한 놈이라고 했어. 그리고 온 동네에 소문을 퍼뜨리겠다고 했어. 싸움을 피하는 비겁한 놈이라고 말이야.”
“뭐? 비겁한 놈?”
“으으응.”
카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순간 루카스의 눈빛이 번뜩였다. 아무리 저쪽에서 저런 식으로 나온다고 해도 자신이 비겁하게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 잠겨 있던 루카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알았어.”
“응?”
카알이 의문을 가지며 고개를 갸웃했다. 루카스는 목검을 숨겨 둔 곳으로 가서 그것을 꺼내었다. 그러곤 한차례 휘두른 후 눈을 반짝였다.
“가자.”
“응, 대장.”
카알도 비장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루시가 두 팔을 벌리며 루카스의 앞을 막았다.
“가지 마, 오빠!”
“루, 루시…….”
루카스가 당황한 얼굴로 루시를 불렀다. 루시는 눈물이 고인 눈망울로 외쳤다.
“오빠 다쳤잖아.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어딜 간다는 거야. 그리고 오늘은 싸우는 날도 아니잖아.”
루시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루카스가 다가갔다.
“루시, 어쩔 수 없어. 오빠가 가지 않으면 애들이, 아니 친구들이 다쳐. 그렇게 된다면 오빠는 비겁한 놈이 되고 말 거야. 오빠가 친구를 모른 척하는 비겁한 놈이면 좋겠어?”
“그게 뭐가 중요해.”
루시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루카스가 무릎을 꿇으며 그런 루시의 두 눈을 닦아 주었다.
“루시, 잘 들어. 너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에게 있어서, 아니 우리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야.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 다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이렇게 약속할게.”
루카스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루시도 작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오빠의 새끼손가락에 걸었다.
“약속했어.”
“그래, 알았어. 금방 올게.”
“피!”
루시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 모습에 루카스는 루시의 머리를 매만졌다. 루카스의 손길을 느낀 루시도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리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조심해야 돼.”
“알았다니까. 넌 어서 엄마 곁에 있어.”
“응. 너무 늦게 오지 마.”
“알았어, 루시. 가자, 카알.”
“응, 대장.”
루카스가 목검을 들고 카알과 함께 뛰어갔다. 손까지 흔들며 루시를 안심시켰다. 루시는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바보 오빠.”
낮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루시는 집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3
루카스와 카알이 도착을 하자, 그곳에는 이드 마을 녀석들이 나와 있었다. 골목대장인 홀슨을 선두로 그 뒤에 약 20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반면 바네아 마을의 아이들은 고작 7명밖에 되지 않았다. 루카스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카알에게 물었다.
“왜 숫자가 이거뿐이야?”
“미안 잭이랑 탄, 릭은 그때 너무 맞아서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그래서 내가 오늘은 쉬라고 했어.”
카알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루카스는 그런 카알의 모습을 보았다. 카알 역시 얼굴과 몸 여기저기의 부상이 낫지 않아 멍투성이였다.
“넌 괜찮아?”
루카스가 물었다. 카알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나야 워낙에 강골이잖아. 그런 대장은 어때?”
“나? 나도 똑같아. 살 만해.”
하지만 이들 중에서 가장 큰 부상을 당한 것은 루카스였다. 루카스는 끄떡없다며 모두를 안심시켰다.
그런 루카스의 모습에 이드 마을의 홀슨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자식, 허세도 부릴 때 부려야지. 쿠퍼 녀석에게 다 들었다고, 네 녀석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말이야.’
홀슨이 속으로 말했다.
그런데 루카스가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니 멍청한 것인지 아니면 무식한 것인지 몰랐다. 어쨌든 싸워 보면 알 일. 홀슨이 팔짱을 끼며 소리쳤다.
“이봐, 언제까지 우리를 이렇게 세워 둘 참이야.”
홀슨의 말에 루카스가 몸을 돌렸다.
“어? 와 있었네. 미안해.”
루카스는 처음 본 것처럼 말을 했다.
루카스는 오자마자 자신들을 봤으면서도 저렇게 말을 한다. 분명 자신들을 도발하기 위해서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홀슨은 실실 웃기만 했다.
“어쨌든 미안하게 됐다. 내가 좀 바빠서 시일을 앞당겼어. 괜찮지?”
도발에 넘어가지 않은 홀슨이 말을 했다. 루카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도발에 쉽게 넘어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사과를 하고 있었다.
‘쳇, 역시 넘어오니 않네. 저 녀석은 언제나 저랬어.’
홀슨은 솔직히 그 속을 알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언제나 실실 웃으며 상대방을 대했다. 쿠퍼야 다혈질 같은 성격 때문에 약간의 도발에도 쉽게 넘어와 다루기가 편했다.
하나 홀슨은 달랐다.
“그래. 뭐, 도전은 언제든지 받아 준다고 했으니까, 상관없다.”
“호오, 마음이 꽤나 넓네. 좋아, 규칙은?”
“규칙은 전과 같다.”
“알았어. 참, 근데 그 수로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홀슨이 전보다 더 줄어든 수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루카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후훗, 언젠 안 그랬나?”
“으음, 하긴. 잘해 보자고.”
홀슨이 몸을 돌리며 두 손을 뒤통수에 갖다 댔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모습을 날카롭게 째려보는 루카스는 왠지 오늘은 쉽게 이길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은 쉽지 않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카알이 다가왔다.
“대장, 움직일까?”
“그러자. 전과 같이 카알이 애들 데리고 본진에 가 있어. 부상자들은 최대한 안쪽에 배치하고 알았지?”
“알았어. 조심해, 대장.”
“너희들도.”
카알이 애들을 데리고 본진으로 이동했다. 혼자 남은 루카스는 목검을 꽉 쥐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역시 루카스는 혼자 움직일 생각이다. 언제나 이랬다. 위험한 일은 루카스 혼자 도맡았다. 하지만 루카스에게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편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혼자 생각하면 될 문제였다. 이상하게도 루카스는 지휘를 못했다. ‘넌 이거 해, 넌 이렇게 하고.’ 이런 식의 전술 운용을 잘하지 못했다.
게다가 애들하고 같이 싸우면 이상하게 검이 엉키고, 자신의 검이 친구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본인 자신도 잘 몰랐다.
그래서 혼자 움직이는 것이 훨씬 편했다. 어떤 때는 이 점이 루카스에게 있어서 강점이 되기도 하지만 큰 약점이 되기도 했다.
홀슨을 중심으로 한 이드 마을의 아이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 중심의 홀슨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본진을 공격할 생각을 하지 마. 공격할 대상은 단 한 명! 오직 루카스만 조진다. 알겠어!”
“옙, 대장!”
“알겠어.”
이드 마을의 아이들이 힘차게 대답을 했다. 그런데 한 명의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그래도 돼?”
“걱정 마, 오늘 루카스를 밟아 버릴 테니까.”
아까와 달리 홀슨의 얼굴이 사뭇 달라 보였다. 항상 웃음을 띠고 있던 홀슨의 얼굴이 아닌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런 모습에 이드 마을의 아이들도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