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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9화)
제03화 패마(覇魔), 그 첫 번째 각성(3)
잠시 후 홀슨을 선두로 이드 마을의 아이들이 움직였다. 숲 속에 들어서자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홀슨이 소리를 질렀다.
“이 근처에 분명 루카스가 있다. 주위를 잘 살펴!”
“옙!”
이드 마을의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루카스가 모습을 드러내며 뒤쪽의 아이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루카스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서너 명이 동시에 움직이며 루카스를 공격했다.
팍, 파파팍!
루카스의 목검이 움직이며 세 명의 공격을 가볍게 재꼈다. 하지만 그 뒤로 두 명이 더 덤볐고, 숫자는 더 늘어났다. 처음에는 쉽게 녀석들을 때려눕혔지만 점점 숫자가 늘어날수록 루카스도 얻어맞기 시작했다.
등이며 팔, 다리 여기저기 한두 방씩 목검으로 얻어맞았다. 그렇게 얻어맞자 예전에 맞았던 등 부위에서 피멍울이 올라왔고, 상처는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목검을 휘둘렀다. 이상하게도 루카스는 목검만 잡고 있으면 초인적인 인내심이 발휘되었다. 아픔도 이겨 낼 수 있고, 고통도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목검이 자신에게 있어서 치료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도 편해졌다. 기분마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검은 루카스에게 있어서 만병통치약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루카스의 활약 속에서 이드 마을의 아이들은 눈살을 찡그리며 한마디씩 했다.
“으윽, 징한 놈.”
“독종이야, 독종!”
“어디서 저런 놈이 나왔을까.”
그렇게 말을 하며 하나둘 이드 마을의 아이들이 루카스의 목검에 쓰러져 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20명이나 되는 아이들 모두 루카스의 목검에 의해 여기저기 깨어진 채 쓰러졌다.
그들은 땅바닥에 웅크린 채 신음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홀로 남은 홀슨은 아이들이 모두 쓰러지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욕을 내뱉었다.
“으으. 이 자식, 독종. 이 새끼, 빌어먹을 자식.”
루카스의 몸도 그리 성한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비틀거리는 몸이라고 해도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어이, 홀슨. 입으로 싸울 거야? 어서 덤벼.”
루카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홀슨은 고개를 숙인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때 언뜻 홀슨의 입술이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20명이나 되는 우리 마을의 애들을 처리하다니, 네 실력만은 인정해야 해. 하지만 그 상태로 더 싸울 수 있겠어?”
홀슨의 물음에 루카스가 말했다.
“상관없어. 난 몇 놈이라도 더 상대할 수 있으니까.”
루카스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홀슨의 뒤쪽에서 쿠퍼의 음성이 들려왔다.
“호오, 정말이야? 그럼 우리가 나서도 돼?”
홀슨의 등 뒤로 쿠퍼가 나타났다. 쿠퍼의 손에는 역시 목검이 들려져 있었다. 쿠퍼의 등장에 루카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들이 나타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네, 녀석이 왜?”
“아, 나? 나야 싸움 구경하러 왔지. 그런데 네가 더 싸울 수 있다는 소리에 혹시나 해서 나섰는데, 어때 우리 센드 마을까지 혼자 상대할 수 있겠어?”
쿠퍼의 등 뒤로 센드 마을의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루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호, 한 마을이 안 되니까 아예 동맹을 맺었군. 좋아, 다 덤벼. 상대해 줄 테니까.”
루카스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목검을 앞에 곧추세우며 소리쳤다. 그의 행동에 쿠퍼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소리쳤다.
“저 새끼, 완전히 똘아이네. 야, 루카스! 네 녀석이 얼마나 잘났어. 얼마나 잘났기에 지랄이야.”
“난 내 실력만 믿을 뿐이야. 그러니 나불대지 말고 어서 덤비기나 해!”
루카스가 강한 눈빛으로 쿠퍼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홀슨이 나섰다.
“후훗, 루카스. 어쨌든 네가 한 말이니 책임을 지는 게 좋을 거야.”
홀슨은 자신들의 비겁함을 숨기려는 듯 말을 했다. 그 말에 루카스는 어이가 없었지만 검을 들고 있는 상태이기에 더 이상 말로 싸우기는 싫었다.
“알았으니까, 덤비라고!”
“애들아, 조져!”
쿠퍼가 말했다. 그러자 쿠퍼 뒤에 있던 10명의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루카스에게 달려들었다. 곧이어 10대 1의 싸움이 또 시작되었다.
퍽, 퍼퍼퍽!
루카스는 온 힘을 다해 녀석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고 정신력으로 버티며 싸우고 있지만, 루카스도 인간이었다.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공격을 받는 횟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퍽!
“윽!”
등을 가격당한 루카스가 짧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자세를 갖추며 목검을 휘둘렀다.
루카스는 삼 일 전 심한 공격을 당했다. 그런 와중에 오늘 무려 30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또 혼자 싸우고 있다. 그것도 센드 마을과 이드 마을에서 꽤 실력 있는 아이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점점 몸의 기운이 빠져나갔다. 목검을 휘두르고 있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저기 잔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몸마저 비틀거리고 있었다.
체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그때였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쿠퍼가 자신의 목검을 한차례 흔들고는 비틀거리는 루카스의 뒤로 접근했다. 그때까지 루카스는 앞의 녀석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쿠퍼가 루카스의 뒤에 접근한 후 자신의 목검을 높이 들며 외쳤다.
“이제 끝이다, 루카스!”
퍽!
쿠퍼의 목검이 그대로 루카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뎅!
뭔가 끊어진 듯한 소리가 머리에 울렸다. 루카스는 뒷머리를 얻어맞고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떠졌다.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이, 이 자식…….”
뒤에 서 있는 쿠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쿵!
그리고 고목나무가 쓰러지듯 그대로 땅바닥에 넘어졌다.
“루카스가 쓰러졌다. 밟아!”
그때를 같이해 남은 아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넘어진 루카스에게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루카스는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녀석들의 공격을 몸으로 받았다.
퍽, 퍼퍼퍼퍽!
“여태까지의 복수다.”
“지금까지 잘난 척 많이 했지.”
“에이, 독종 같은 새끼.”
아이들은 쓰러진 루카스를 향해 욕을 내뱉으며 신나게 밟았다. 한참을 때리던 그때, 한 녀석이 소리쳤다.
“야! 가만있어 봐.”
“왜? 아직 멀었는데.”
“씨팔, 가만있어 보라고.”
그 소리에 루카스를 때리던 아이들이 멈추었다. 한 아이가 루카스를 유심히 살폈다. 신음 소리도 없다. 그렇다고 움직임도 없었다. 그때 그 아이의 눈이 루카스의 머리에 향했다.
머리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악!”
그 아이는 깜짝 놀라며 뒤로 넘어졌다. 그 모습에 아이들이 물었다.
“왜 그래?”
“뭐야, 이 자식. 주, 죽었나 봐.”
“뭐? 누가 죽어?”
“루, 루카스…….”
“엥?”
그러자 홀슨이 급히 루카스에게 달려갔다. 그를 흔들어 보고, 불러도 봤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머리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왔다.
“제기랄, 움직이지 않아.”
“어, 어떻게. 죽었나 봐.”
“닥쳐, 이 새끼야.”
쿠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홀슨을 향해 물었다.
“진짜 죽었어?”
“모, 모르겠어.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자꾸 머리에서 피가 나와.”
홀슨도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쿠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젠장, 튀어.”
“와아아아.”
아이들은 무서움에 고함을 지르며 도망쳤다. 쿠퍼도 넋을 뺀 채 루카스를 바라보고 있는 홀슨의 어깨를 붙잡으며 일으켰다.
“이 새끼야, 뭐해. 어서 튀어!”
“어? 어어.”
홀슨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헐레벌떡 쿠퍼와 함께 뛰어 내려갔다.
머리가 깨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루카스를 산속에 버려둔 채로 말이다.
4
진지를 지키고 있는 카알과 나머지 아이들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이드 마을의 아이들과 루카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의아해하고 있었다.
분명 이때쯤이면 둘 중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카알을 걱정스런 시선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그때 한 친구가 다가왔다.
“카알, 대장이 왜 이렇게 안 오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것은 아닐까?”
그 친구의 말에 카알의 눈이 번쩍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 봐야겠다. 너희들 따라와.”
카알은 진지를 버리고 산속을 뛰어갔다. 한참을 뛰어가다가 풀숲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카알이 즉시 뛰어갔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인물이 루카스임을 알고 급히 그를 불렀다.
“루카스! 루카스!”
“대, 대장!”
“일어나, 대장!”
카알이 루카스를 안았다. 그때 그의 손에 끈적끈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카알은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붉은 핏물이 카알의 손을 덮었다.
“이, 이건 피잖아.”
카알은 즉시 피가 나오는 곳을 찾았다. 루카스의 뒷머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자신의 옷을 찢어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카알, 대장이 죽은 것 아닐까?”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아직 숨은 쉬고 있어.”
카알은 이미 루카스의 코에다 손을 가져다 대었다. 미약하지만 바람이 느껴졌다. 아직 죽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피를 흘린다면 큰일이었다.
“제기랄, 누가 어서 루시를…… 루시를 불러, 어서!”
카알이 소리쳤다.
“으응. 내, 내가 갔다 올게.”
한 친구가 대답을 하며 급히 루카스의 집으로 뛰어갔다.
루시는 의외로 약초에 대해서 많이 알았다. 책을 좋아하는 루시는 집에 있는 약초책을 모두 읽었다. 그래서 어느 상처에 어떤 약초가 좋은지 대강은 알고 있었다.
때때로 마을 아이들은 병정놀이를 하다가 상처를 입으면 루시에게 상처 치료를 받아 왔다. 물론 따끔한 잔소리를 듣는 것은 필수였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루시밖에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저 멀리서 금발 소녀가 뛰어오고 있었다. 바로 루시였다. 오빠의 소식을 듣고 루시는 약초를 챙겨 정신없이 뛰어왔다.
뛰어오는 내내 루시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루카스가 쓰러져 있는 곳까지 오는 동안 루시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으아앙, 오빠. 루카스 오빠.”
“루, 루시…….”
도착한 루시를 보며 카알이 낮게 불렀다. 하지만 루시는 루카스를 흔들며 깨우려 했다.
“오빠,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나랑 약속했잖아. 절대 다치지 않겠다고, 손가락까지 걸고서 약속했잖아. 어서 일어나란 말이야. 으아아앙!”
루시의 울부짖음에도 루카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아이들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카알은 슬피 우는 루시를 안타깝게 불렀다.
“루시, 오빠는 죽지 않았어. 그보다 상처에 약을…….”
“약? 그래 약.”
루시는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는 가지고 온 약초를 뒤졌다. 허둥지둥 대며 약초를 찾고 있는 모습에 카알이 말했다.
“루시, 진정해.”
루시의 귀에 카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찾았다.”
루시가 약초를 꺼내서 그것을 으깨고, 으깬 약초를 피가 나는 루카스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으흐흑, 오빠 죽으면 안 돼. 절대로 죽으면 안 돼.”
약초를 바르면서도 계속해서 흐느꼈다.
루시의 우는 소리가 루카스의 귀를 파고들었다. 마치 그것이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루카스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되었다.
그때 루카스의 머릿속에서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서거라! 아직 이곳에서 무너져서는 안 되느니라. 일어서거라! 아직 강함의 끝을 밟지 못했거늘. 검을 들어라, 한 자루의 검으로 너의 강함을 깨우치도록 하여라. 일어서거라, 어서!”
마치 루카스를 격려하는 듯 일깨우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루카스가 기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으으, 쿨럭쿨럭!”
“오빠!”
루시의 얼굴이 밝아졌다.
“와아, 대장이 살아났다.”
“대장!”
“루카스 대장!”
카알을 비롯해 다른 아이들도 밝아진 얼굴로 소리쳤다.
“바보 오빠야. 으아앙.”
급기야 루시는 루카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통곡을 하였다. 바보라며, 멍청이 같은 오빠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깨어난 루카스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뭐랄까? 예전에도 칠흑 같은 어두운 눈빛이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어둡고 강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루카스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러자 옆에 앉아 있는 카알이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대장이 쓰러져 있었어.”
“내가 쓰러져 있었다고?”
루카스가 말을 하며 곰곰이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아주 이상한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