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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10화)
제03화 패마(覇魔), 그 첫 번째 각성(4)


낯선 기억, 이상한 옷차림을 한 어떤 남자가 검을 들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휘두르고 있었다. 그 남자의 검에 주위에 있던 남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단 한 번의 검 놀림에 수십 명이 피를 뿜어 대며 죽어 갔다.
너무나도 생생한 기억. 강인한 검의 놀림, 그것만이 온통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으윽!”
갑자기 떠오른 낯선 기억. 그 기억에 의해 루카스의 머리는 깨어질 듯 아파 왔다. 신음을 내뱉으며 머리를 감싸자 루시와 카알이 소리쳤다.
“아앗! 오빠.”
“대장!”
아이들도 걱정스런 시선으로 루카스를 쳐다봤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감싸고 있던 두 손을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루카스는 루시를 보며 말했다.
“일단 돌아가자.”
“괜찮겠어?”
루시가 걱정스럽게 물어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는 듯 몸을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러다가 옆에 떨어진 목검을 발견했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는 곧바로 자신의 목검을 챙겼다. 마치 소중한 보물처럼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쥐면서 말이다.
루시는 그런 오빠를 부축하며 말을 했다.
“오빠, 바보! 도대체 이게 뭐야. 다치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을 했으면서 이게 뭐냐고.”
루시는 부축하며 걸어가는 내내 루카스를 타박했다. 그 뒤로 카알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돌아가자.”
“하지만 대장이…….”
“루시가 있으니까, 괜찮아. 나중에 찾아가면 되겠지.”
“알았어.”
카알의 말에 아이들도 수긍을 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카알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다가 고개를 돌려 루카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예전의 루카스와 왠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겠지.”
카알은 애써 고개를 흔들며 아이들을 챙겨 숲을 내려갔다.
루카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가는 내내 루시의 타박은 계속 이어졌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돼. 엄마가 걱정하시잖아. 이대로 돌아가면 엄마가 뭐라고 하겠어.”
루시의 잔소리는 계속되었지만, 루카스에게선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미안해, 루시. 다음에는 절대 안 그렇게. 용서해 줘.’ 이런 식의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상함을 느낀 루시가 오빠를 불렀다.
“오빠?”
“…….”
대답이 없다. 루시는 오빠의 허리를 흔들며 다시 불렀다.
“오빠아!”
“응? 으응?”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루카스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불렀니?”
“어디 안 좋아?”
“아, 아니. 괜찮아. 어서 집에 가자.”
“으응…….”
루시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다는 오빠의 말을 믿고 집으로 걸어갔다.
루카스는 걸어가는 내내 머릿속을 잠식한 그 검술의 검로 때문에 아무것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루시의 잔소리도, 주위의 풍경도 루카스의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루카스는 몰랐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검술이 이 세계의 검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첫 번째 각성을 했다는 사실조차도…….



제04화 전환점(1)


1

그 일이 있고 난 후 벌써 열흘이 지났다.
루카스는 그 기간 동안 집 주위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병정놀이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매일 카알을 비롯해 아이들이 찾아갔지만 루카스를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다.
다만, 이제 병정놀이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대답만 들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계속해서 찾아갔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루카스는 대장이기에, 그가 있기에 아이들도 힘겹게 싸움을 통해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카알이 루카스를 만나러 갔다.
카알이 루카스를 제발 데려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항상 모이는 공터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공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한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카알이 온다.”
그 소리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카알의 모습이 보였다.
카알이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아이들이 기다리는 공터에 들어섰다.
공터에 도착을 하니 아홉 명의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카알의 등장에 눈을 번쩍이었다. 그중 잭이 일어서며 물었다.
“카알, 대장은?”
“…….”
잭의 물음에 카알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잭을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잠겼다.
“……오늘도 나오지 않는구나.”
탄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말했다. 그러자 릭이 고개를 들어 카알에게 물었다.
“혹시 지난번 상처가 아직 낫지 않은 거야?”
“맞아, 그때 크게 다쳤잖아.”
그 말에 카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상처는 깨끗이 나았어.”
“그래?”
“그럼 뭐가 문제지?”
“정말 병정놀이를 하지 않겠다는 거야?”
잭의 말에 모두들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때 한 아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말했다.
“설마 우리를 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그 녀석의 말에 카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대장이 그런 녀석이야? 넌 여태까지 보고도 그런 말이 튀어나와! 너, 한 번만 그딴 소리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카알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리겠다는 시늉을 취했다. 그러자 그 말을 한 녀석은 곧바로 사과를 했다.
“미, 미안해…….”
카알이 눈을 부라리며 그 녀석을 쳐다봤다. 그 친구는 고개를 쑥 넣으며 자신의 실언을 반성하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상처가 나았다니 다행이야. 하지만 병정놀이를 하지 않겠다니 걱정이 되긴 해.”
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알도 그 말을 듣고는 걱정스런 눈빛이 되었다.
“뭐, 말은 병정놀이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조만간 나오겠지. 그때까지 우리 스스로 이 마을을 지키자. 루카스가 돌아올 때까지.”
“그래! 지키자.”
“맞아, 대장이 돌아올 곳을 지켜야지.”
카알의 한마디에 풀이 죽어 있던 친구들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루카스는 대장이면서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런 그가 아이들이 모이는 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이 후 계속…….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가 루카스가 다시 나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때까지 이곳 바네아 마을을 지키겠다면서 말이다.
반면, 카알의 표정은 몹시도 어두웠다. 루카스를 보고 온 느낌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앉아서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말을 걸어 보아도 대꾸도 않는다. 마치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변했는지 몰랐다. 그때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그런 것인가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루시의 말을 들어 보면 아니었다. 평상시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다만 낮에 저렇게 앉아서 뭔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을 빼고는 말이다.
카알은 저 상태의 루카스를 보고는 그냥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끌고 오고도 싶지만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본인 스스로 찾기를 바랐다.
‘루카스, 빨리 돌아와라.’
저 멀리 루카스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속으로 나직이 말했다.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다.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푸른 하늘은 때 묻지 않게 청렴했다.
그 아래에 루카스가 팔베개를 한 채 풀밭에 누워 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그날 이후부터였다.
바로 머리를 다치고 깨어난 후 오랫동안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던 기억. 그 기억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을 아이들이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카알이 찾아왔지만 대답도 하지 않았다. 루카스의 머릿속에는 풀어지지 않는 수수께끼의 검술 때문에 낮이고 밤이고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 검술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검술처럼 느껴졌다. 하긴 이곳에 존재하지 옷을 입고 있는 것만 봐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왜 자신의 머릿속에 그 그림이 떠올랐을까? 그리고 그 검술은 무엇일까? 그 검술을 사용한 이는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울린 낯선 사람의 목소리는 또 무엇인가?
이 같은 생각으로 루카스의 머리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 보아도 쉽게 답을 얻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루카스를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 검술이었다.
마치 자신이 펼치는 것처럼 느낌이 뚜렷했으며 그 패도적인 기운이 고스란히 몸에 새겨지고 있었다.
‘뭘까? 그 검술은. 사람의 몸으로 펼칠 수 있단 말인가?’
풀밭에 누워 있는 루카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생각에 부딪쳤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그런 검술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건 불가능해. 어찌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지? 게다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주위가 폭발을 하고 수십 명의 사람이 한 번에 쓰러질 수 있냔 말이야.’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기억이었다. 몸도 그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몸도 느끼고 기억도 생생한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이런 수많은 의문점 때문에 루카스의 머리는 깨질 것 같았다.
“으아아악! 미치겠네.”
루카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눈살을 찡그리며 고민을 했지만 딱히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젠장, 나도 모르겠다.”
루카스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 검술만은 익히고 싶었다.
“어쨌든 그 검술은…… 시도해 볼 만하겠지.”
루카스가 굳은 다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문득 낮에 카알이 찾아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쩝, 애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꿈에 본 기억에 대한 의문점을 풀기 전까지는 너희들에게 돌아갈 수 없어.”
루카스가 혼자 독백을 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카알의 슬픈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카알에게는 미안하지만…….”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검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다른 마을 애들이 헛소문을 퍼뜨려도 루카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 떳떳하며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은 카알과 그 친구들이지만…….
집에 도착을 한 루카스는 곧바로 숨겨 두었던 목검을 꺼내었다. 우물가 옆 공터로 옮긴 루카스는 목검을 늘어뜨린 채 눈을 감았다.
꿈에 본 검술의 검로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더니, 어느 순간 눈을 뜨고는 목검을 들었다.
“좋아, 어디 한 번 해 보자.”
힘차게 대답을 한 후, 천천히 아주 느리게 목검을 움직여 보았다. 꿈에서처럼 날아다닐 수도 없고, 폭발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정확히 보았다.
그 검술을 흉내만 낼 수 있다면 어떤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목검이 천천히 움직였다. 곧게 직선으로 나아가다가 어느새 아래로 향하고, 곧이어 옆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루카스의 목검이 멈칫했다.
더 이상 목검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루카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머릿속에 있는 검술을 따라 하고 있지만 끝까지 하지 못했다. 부드럽게 이어져야 하는데, 중간에서 끓어져 버린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왜 이어지지 않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지금 루카스가 펼치는 검술은 그냥 단순히 검이 움직인 경로에 불과한데 말이다.
“이해할 수가 없어. 도대체 왜 이어지지가 않지?”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조차 따라 할 수가 없다. 머릿속에는 분명 움직이는데, 몸으로는 펼쳐지지 않는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왜 안 되지? 뭐가 잘못된 거야?”
루카스는 오른손에 쥐어진 목검을 응시했다. 얼마 전 존슨이 휘둘렀던 검술도 몇 번의 휘둘림 끝에 이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할 수 없는 그런 검술이기 때문이다.
따라 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마저 났다. 오기도 생겨났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 시작이고, 무엇이 끝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그 검술이 루카스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