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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11화)
제04화 전환점(2)


“아아, 미치겠네.”
루카스는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그때 루시가 우물가에서 오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이 담겨져 있었다.
“……오빠.”
낮게 루카스를 부른다. 그러다가 이내 무슨 결심을 했는지 다부진 얼굴로 오빠에게 걸어갔다. 루시의 등장에 루카스는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루, 루시!”
“오빠, 이럴 거면 차라리 병정놀이를 해.”
“무, 무슨 소리야.”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답답해서 그래. 그러니 참지 말고 그냥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아.”
10살짜리 꼬맹이 소녀가 애늙은이처럼 말을 했다. 하긴 며칠 동안 괴로워하고 있는 오빠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으니 오죽했겠는가.
루시에게는 오빠가 병정놀이를 나가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말에 루카스가 담담히 말했다.
“아니야. 애들 장난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어.”
“잉? 애들 장난? 그게 애들 장난이었어? 오빠는 대장이 되고 싶어서 싸운 것이 아니야?”
루시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피식!
루카스가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좋아했던 것은 대장 노릇이 아니야. 단지 검이 좋아서, 검을 휘두르고 싶어서 그랬던 것뿐이야.”
루카스의 말에 루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린 루시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가 더 이상 병정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루시는 기뻤다.
“하기야 오빠가 더 이상 병정놀이를 하지 않겠다고 하니 나야 좋지. 이제 다치지도 않을 것이고, 나랑 더 많이 놀아 줄 수 있으니까.”
루시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런 루시에게 루카스는 미소로 답해 주었다.
“그래, 이제부터 오빠가 많이 놀아 줄게.”
“이야, 신난다.”
루시는 우물가로 폴짝폴짝 뛰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루카스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루시가 집 안으로 사라지고, 웃음 짓고 있던 루카스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그는 천천히 목검을 들었다.
“그래, 계속해서 연습하는 거다. 될 때까지 하다 보면 무슨 수가 있겠지.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루카스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2

어느덧 봄이 가고,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루카스는 겨우 기억 중의 일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것 또한 꾸준한 연습에서 얻은 것이었다. 매일 낮에 공터에 나가 홀로 목검을 휘둘렀다.
안 되더라도 될 때까지 하고, 또 했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또 그것이 터지고, 여러 번 반복되었다. 급기야 어린 손에 굳은살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렇게 주구장창 그 검술에 목을 맸다. 그리고 작은 것이지만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성과는 루카스가 가지고 있던 기억이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몸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검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리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단순히 한 가지 기초적인 보법과 팔 움직임이 결합된 검술이 아니었다.
마나의 흐름까지 결합된 엄청 패도적인 힘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로소 루카스는 그 엄청난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나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마나듐은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지 않는 이상은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을 안 루카스는 깊은 실의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루카스는 일을 떠나는 아빠에게 조용히 물음을 던졌다.
“아빠, 저는 검술에 재능이 없나요?”
그 물음에 볼크스는 갑자기 걱정스런 표정이 되었다.
“왜 검술을 익히고 싶니? 기사가 되고 싶은 것이냐? 기사의 길은 매우 위험한 길이다.”
“저는 검이 좋아요.”
루카스의 솔직한 대답에 볼크스는 씁쓸하게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멀쩡하게 있었다면, 기사의 길을 그대로 갔다면 루카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대를 위해서라도 검술이며 마나를 다루는 법까지 말이다. 하지만 자격이 박탈당한 그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부상을 입은 후 느꼈던 기사 세계의 더러운 이면을 보았다.
자신이 제대로 검을 휘두를 때만 해도 가문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부상을 당한 후 병신 취급하며 기사로서 제대로 대우도 해 주지 않았다. 일도 주지 않았다.
한편에 처박혀 패잔병처럼 처량하게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그런 자신을 볼 때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그것을 알기에 볼크스는 자식에게만큼은 검술이나 기사로서의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볼크스는 모르고 있지만, 루카스도 기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만히 루카스를 쳐다보던 볼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말했다.
“루카스야, 원치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네가 기사가 되려 한다면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구나. 미안하구나.”
루카스는 슬픈 눈동자로 말하는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볼크스는 도와줄 수도 있었다. 루카스를 자신의 자식이라고 소개하고 검술 테스트를 받게 할 수는 있다.
그리된다면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기사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볼크스는 그것이 싫었다. 아들이 가문의 노예처럼 쓰였다가 쓸모없게 되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그런 삶, 자신과 똑같은 삶을 루카스에게만은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저 평범하게 살기 바랐다.
“알았어요, 아빠.”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투박한 손으로 머리를 한 번 어루만진 후 볼크스는 일을 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하지만 루카스의 삶은 이미 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되어 있었다.
루카스는 멀어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빠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은 가문의 기사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작정 찾아가도 되지만 그리되면 아빠가 너무나도 슬퍼할 것 같았다. 그래서 포기를 했다.
되지 않는 일을 억지로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그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쉽기도 했다. 마나듐만 알게 되면 더 강한 위력의 검술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머릿속에 있는 그 검술의 위력도 솔직히 알고 싶기도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루카스는 아쉬운 얼굴을 하며 우물가 근처의 공터로 향했다. 목검을 들고 공터 중앙에 섰다.
일단 마나 활용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그 강렬한 잔상들, 주위가 폭발하고 부서지는 그러한 모든 것들을 기억 속에서 지웠다.
그러자 조금씩 또 다른 뚜렷한 검의 잔영의 실체가 드러났다. 예전에는 특수 효과가 가미된 임팩트였다면 지금은 기초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다.
루카스는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발걸음을 따라서 발을 움직이고, 손을 움직이면서 검을 휘둘렀다. 계속해서 수차례 수련을 했다.
동작이 무척이나 어렵고 난해했다. 어떤 때는 빠르고, 느린 곳도 있었다. 그 동작만을 완벽하게 익히는 데 무려 3개월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 흐름을 잊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또다시 3개월이 지났다. 그것을 완벽하게 익히는 데 다시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열네 살이 되었다.
그해 루카스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제05화 지원병 모집(1)


1

2천 년 전에 벌어졌던 피의 전쟁.
미르 대륙에서 일어난 가장 치열했던,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던 전쟁을 물으면, 백이면 백 전부 다 ‘미르 대전’을 말한다.
전쟁의 시발점은 이러했다.
프로이센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리아 황제와 한때 거대한 왕국을 꿈꾸던 알비온 왕국의 프란츠 조드 국왕과의 암투에서 시작되었다.
알비온 왕국의 프란츠 조드 국왕은 양국 간의 평화조약을 위해 프로이센 제국에게 공문을 보내 초대를 하게 되었다. 프로이센 제국은 그 초대를 받아들여 황태자 브론처 알렉산드리아를 보내었다.
알비온 왕국의 수도에 무사히 도착을 한 황태자 브론처 알렉산드리아는 왕국에서 주최하는 연회에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날 일어났다.
연회까지 무사히 마치고 방으로 돌아간 브론처 황태자가 다음 날 아침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이 사건은 그야말로 엄청난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알비온 왕국의 땅에서, 그것도 국왕이 있는 궁 안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모든 책임은 알비온 왕국에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잃은 프로이센 제국의 알렉산드리아 황제는 이에 격분하여 그 즉시 알비온 왕국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암살 사건은 그저 명분에 불과하였다. 그 이전부터 프로이센 제국은 시시각각 전쟁할 이유를 찾지 못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황제의 가장 큰 목적은 미르 대륙의 통일이었다. 그의 큰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전쟁을 해야 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일이 터졌고, 명분을 얻은 알렉산드리아 황제는 그 즉시 전쟁에 돌입했다. 황태자를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보여 주겠다며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알비온 왕국에 쳐들어갔다.
황태자 암살 사건은 다른 왕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프로이센 제국의 선전포고로, 다른 왕국인 토르만 왕국이 시리아 왕국에게 또 다른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고, 전 미르 대륙이 3일 만에 전쟁의 도가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중에는 프로이센 제국과 알비온 왕국의 중앙에 위치한 다섯 공국으로 만들어진 공국연맹(현 바라논 왕국)이 있었다. 공국연맹은 원래는 하나의 왕국이었다.
브리트니아 왕국.
다섯 공왕과 그 위에 존재하는 브리트니아 왕가. 하나 원인 모를 병으로 인해 왕가의 후손들이 태어나지 않았다. 결국 왕가는 무너졌고, 브리트니아 왕가를 지탱해 오던 다섯 공왕은 서로 암투를 벌이며 각자의 땅을 차지한 채 대립하며 공국연맹으로 바뀌었다.
하나였을 때 강대한 힘을 자랑하던 왕국은 다섯 공국으로 나눠지면서 그 힘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대변하듯 프로이센 제국과 알비온 왕국은 자신들의 땅이 아닌, 이곳 공국연맹의 땅을 전쟁터로 삼았다.
한마디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듯 그렇게 공국연맹은 두 왕가에 의해 전쟁의 희생물이 되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 알비온 왕국은 바로 옆 왕국인 토르만 왕국과 동맹을 체결하고 프로이센 제국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 토르만 왕국은 시리아 왕국과 전쟁 중이었으나, 알비온 왕국이 중재를 하자 두 왕국은 일시적으로 휴전을 하기에 이른다.
그 일면에는 프로이센 제국의 위협을 알리는 프란츠 조드 국왕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바로 거대한 제국인 프로이센 의 공격이 자신의 왕국 다음에 어디로 향하겠냐며 두 왕국의 국왕을 설득한 것이다.
그 설득에 넘어간 두 국왕은 곧바로 삼국동맹 체제에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삼국동맹의 합동작전으로 인해 프로이센 제국과의 전쟁에서 비슷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
막강한 군사력과 엄청난 대군을 자랑하며 알비온 왕국에 쳐들어갔던 프로이센 제국은 삼국동맹체제로 인해 별 소득도 얻지 못하고, 무의미한 싸움만 이어 나갔다.
그렇게 다시 수십 년간 전쟁이 벌어지고 프로이센 제국과 알비온, 토르만, 시리아 왕국은 알렉산드리아 황제의 죽음으로 거대한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이번 전쟁의 희생물이었던 공국연맹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다섯 공국으로 이루어진 공국연맹의 영토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었고, 여기저기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게다가 죄 없는 사람들이 다른 왕가의 싸움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여자들은 성 노리개로 전락했고, 청년들은 강제 징집되어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다. 이처럼 힘없는 나라는 매일 짓밟힐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서로 대립을 하던 다섯 공왕들이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바라논 왕국의 건국이었다.
다섯 공왕들은 서로 투표를 통해 한 명의 국왕을 선출하기로 했다. 그중 한 명이 국왕으로 추대되었고, 국왕으로 추대된 파르핀체는 곧바로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
그것은 바로 바라논 왕국을 독립 왕국으로 선포하는 것과, 프로이센 제국과 알비온 왕국에게 전쟁의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에 웬일인지 프로이센 제국은 바라논 왕국의 건국을 인정해 주었고, 별다른 충돌 없이 선뜻 전쟁에 대한 보상금을 내어 주었다. 또한 동맹을 맺어 바라논 왕국이 부흥할 수 있게 아낌없는 지원까지 해 주겠다고 약속을 해 왔다.
하지만 알비온 왕국은 달랐다.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며 보상금을 내주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에 또다시 전쟁이 벌어졌다.
바라논 왕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그 민족성은 그야말로 우수했다. 원래 하나였지만 그간의 사정으로 다섯 공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하나가 되자 그 힘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얕잡아 보던 알비온 왕국은 오히려 그들에게 밀리게 되었다. 그러자 동맹국인 토르만 왕국이 가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되자 가만히 지켜보던 프로이센 제국도 나섰다.
시리아 왕국은 일찌감치 중립을 선언했기에 이번 전쟁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프로이센 제국을 등에 업은 바라논 왕국은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땅은 이미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황폐해지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전쟁고아가 생겨나고 먹을 것마저 부족해졌다.
더 이상 전쟁을 계속했다가는 두 왕국 다 엄청난 피해를 입고 오히려 다른 왕국의 표적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에 알비온 왕국이 먼저 휴전을 제의했고, 그동안 입은 피해 보상금을 주겠다는 것으로 전쟁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르 대륙은 프로이센 제국을 비롯해 바라논 왕국, 알비온 왕국, 토르만 왕국, 시리아 왕국. 즉, 하나의 제국과 네 개의 왕국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동맹 관계는 프로이센 제국과 바라논 왕국, 알비온 왕국과 토르만 왕국이 맺고, 시리아 왕국은 여전히 중립 지역을 고수했다.
이렇듯 미르 대륙은 피의 전쟁인 미르 대전이 끝나고 약 2백 년간 팽팽한 긴장감 속에 균형을 유지하며 지내 왔다. 간혹 알비온 왕국과 바라논 왕국의 전쟁이 터지고는 했지만, 그리 오랜 싸움은 아니었다.
게다가 바라논 왕국은 토르만 왕국과도 전쟁을 벌였다.
지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바라논 왕국은 악착같이 싸워서 자신들의 땅을 지켰다.
다시는 미르 대전 때와 같은 그런 힘없는 나라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