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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13화)
제05화 지원병 모집(3)


루카스는 2년 가까이 검술을 수련했지만 아직도 생각만큼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마나듐을 익히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사가 되어 마나듐을 익힐 수만 있다면, 마나가 있다면 그 검술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그 환영처럼 펼쳐진 무수히 많은 검과 주위에 터지는 파괴력. 생각만 해도 온몸에서 전율이 느껴졌고, 짜릿함에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실전 경험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검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실전이 없다면 응용이나 능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에 참여한다면 실전은 무수히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겠지만.
하지만 루카스는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오직 검에 대한 욕구, 갈망,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매일 밤 머릿속에 울리는 그것.

“네 검으로 스스로의 강함을 증명하라!”

루카스는 그 말을 되새기며 천천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청명해 보였다.

3

그날 저녁.
오랜만에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엄마의 병도 많은 진전이 있었는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어 식탁에 앉았다. 얼굴에 감도는 핏기만 보아도 많이 나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빠도 일찍 집에 들어오셨다. 그래서 다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루시는 온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어서인지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 도중 신이 났는지 계속해서 조잘조잘 얘기를 하였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러지 못했다. 식사가 끝나고 아주 중요한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을 하였다.
식사가 끝이 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있던 루카스가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저기…… 아빠, 엄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이야기를 하고 있던 엄마와 루시는 루카스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에 루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오빠, 무슨 일이야? 얼굴이 왜 굳어 있어?”
“왜 그러니?”
세레나도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볼크스도 말없이 루카스를 쳐다보았다. 루카스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입을 열었다.
“마을에 공문이 붙었어요. 지원병을 모집한다고 해요. 그래서 저…… 신청하려고요.”
그 순간 볼크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세레나와 루시도 놀란 표정이 되었다.
“뭐?”
“엄마, 오빠가 방금 뭐라고 했어? 이상한 말을 해.”
세레나와 루시는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다고 판단을 했는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바, 방금 뭐라고 했니?”
“오빠, 무슨 말이야?”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요. 허락해 주세요.”
루카스가 강한 어투로 말을 하며 고개를 숙여 허락을 구했다. 이에 조금 전 들었던 말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세레나가 펄쩍 뛰며 반대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안 된다. 그건 절대 허락할 수 없어. 게다가 넌 아직 열네 살이지 않니.”
“오빠 안 돼! 그게 말이 돼? 전쟁터에 나가겠다니.”
루시는 금세 눈물이 고여 울먹이며 소리쳤다. 두 사람이 극구 반대를 하며 말을 할 때 볼크스는 굳어진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반대를 해야 함에도 마치 루카스의 심정을 이해라도 하는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이에 세레나는 볼크스를 다그치며 소리쳤다.
“좀 말려 보세요. 지금 루카스가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하잖아요. 당신 아들이에요.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어서 말려 보세요.”
세레나는 절규하듯 외쳤다. 루시도 아빠를 바라보며 울먹이며 말했다.
“흐흑. 아빠, 오빠가 이상해요. 어서 혼내 주세요.”
두 사람의 말에도 볼크스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저 넌지시 루카스만 바라보고 있었다. 루카스 또한 아빠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 눈빛…….’
볼크스가 최근 2년 동안 지겹도록 봐 온 아들의 눈빛이었다. 강해지려는 눈빛, 더 세지고 싶다고 갈망하는 눈빛, 그리고 기사가 되려는 눈빛.
자신이 안 된다고 말을 했지만 루카스는 지금까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 왔고, 몇 번이나 그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이 루카스의 꿈인데 과연 자신이 방해할 자격이 있을까? 자기 인생이 실패했다고 해서 아들까지 실패할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루카스를 바라보는 볼크스의 눈빛은 매우 흔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볼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가고 싶으냐?”
“네.”
“지금이라도 네가 원한다면 기사 테스트를 받을 수 있게 말해 주겠다.”
볼크스가 조용히 물었다. 그러자 루카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아빠. 저 스스로 뭔가 이루어 보고 싶어요.”
그 말에 볼크스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스스로 뭔가 이루고 싶다는 그 말. 예전에 자신도 기사가 되기 위해 꿈꿨던 그런 말이었다.
볼크스는 루카스를 보며 고민을 했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알겠다. 네 뜻대로 해라.”
아빠의 허락을 듣는 순간 루카스의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세레나와 루시가 난리를 쳤다.
“여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내겠다는 말씀이에요?”
“아빠, 안 돼! 오빠를 전쟁터에 보내겠다니. 말도 안 돼!”
루시가 울음을 터트리며 아빠에게 매달렸다. 세레나도 눈물을 흘리며 안 된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볼크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앞에 놓인 빵을 찢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씹고 있는데도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빵이 무척이나 쓰다는 것을 알았다.

4

다음 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친 루카스는 곧바로 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집을 나설 때 엄마와 루시는 말도 걸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약간 씁쓸함이 밀려왔지만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산을 내려가는 길목에는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봄이 어느덧 막바지에 들어섰다. 나뭇가지에는 새싹들이 하나둘 돋아나 푸른 경치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겨울 유난히 추운 날씨 속에서도 버텨 온 그들은 이제 새로운 날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였다.
루카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온 것이다. 새로운 발전을 위해, 더욱 높은 곳을 향해 움직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물론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과연 징집 대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루카스는 마을로 내려온 것이다. 촌장님을 만나 추천서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략 20분 정도 걷자 마을이 나타났다. 루카스가 소속되어 있는 바네아 마을이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여러 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루카스의 집처럼 통나무로 만든 집들이 아닌 흙으로 만든 집, 갈대를 말려 그것을 엮어 만든 집 등, 여러 가구들이 눈이 들어왔다.
바네아 마을은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 기거하는 곳이라 그렇게 뛰어난 집들은 많이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이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생활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길을 뛰어다니는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낙네들, 그들 모두 얼굴에는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루카스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언제나 그랬지만 마을에 내려오면 기분이 좋았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그렇게 마을 구경을 하며 촌장님 댁에 도착을 했다. 그나마 촌장님 댁은 높으신 어른이 기거하는 곳인 만큼 집이 제법 컸다. 루카스의 집과 마찬가지로 통나무로 지어진 집으로 되어 있었다.
입구에 선 루카스가 아무도 없는 마당을 보며 소리쳤다.
“계세요?”
잠시 후 문이 열리며 한 명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시오?”
루카스는 그 노인이 촌장님인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촌장님. 저 루카스예요.”
“누구?”
촌장님은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가져다 대었다. 이에 루카스는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 루카스라고요. 잠시 들어가도 돼요?”
“뭐? 루카스. 아아, 루카스구나. 어서 들어오너라.”
백발이 성성한 촌장은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루카스는 곧바로 나무로 엮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 입구에 촌장님이 서 있었다. 촌장은 들어온 루카스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너라.”
“네, 촌장님.”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촌장님은 루카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집 안으로 안내했다. 집 내부는 루카스의 집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식탁이 있고, 네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저리 앉거라.”
“고맙습니다.”
루카스가 자리에 앉자, 촌장님은 직접 주방으로 가서 따뜻한 우유를 가지고 왔다.
“추운데 따뜻한 우유라도 마시거라.”
“감사합니다. 촌장님.”
루카스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를 한 모금 마셔 몸을 따뜻하게 했다. 맞은편에 자리한 촌장은 물끄러미 루카스를 보며 물었다.
“그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잘 계시고?”
“네, 잘 계십니다.”
“어머니의 병은 어떠하시냐?”
“약 드시고 많이 나아지셨어요. 지금은 조금씩 움직이시기도 하시고요.”
“다행이구나. 아참, 루시는?”
“헤헤, 루시는 언제나 똑같죠.”
루카스가 웃으며 말했다. 촌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여운 루시가 보고 싶구나.”
“엄마가 다 나으시면 함께 내려올 거예요.”
“그렇구나.”
촌장은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루카스를 보았다.
“참, 근데 너는 아침 일찍 무슨 일이냐?”
촌장이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순간 루카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는 들고 있던 우유를 식탁에 내려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촌장님.”
“오냐.”
“저, 전쟁에 참여하고 싶어요.”
“뭐? 전쟁?”
촌장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그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 번 물었다.
“방금 전쟁에 나가겠다고 했느냐?”
“네, 촌장님.”
“가만, 올해 너의 나이가 열네 살이 아니더냐?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냐?”
“아뇨, 맞아요. 하지만 전쟁에 꼭 참가하고 싶어요.”
“허허, 이런.”
촌장은 황당한 웃음을 지었다.
“볼크스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터인데…….”
“아빠에게는 이미 허락을 얻었어요.”
“볼크스가 허락을 했다고?”
촌장은 더욱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네. 아빠가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고 했어요.”
자신 있는 말투로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허락을 했단 말인가?’
촌장은 볼크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도 한때는 기사였고, 부상을 당해 지금은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잡부에 불과했다.
게다가 기사를 은퇴하고 나서 받은 대우로 큰 상처를 입었던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허락을 했다는 것에 의문이 느껴졌던 것이다.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기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내다니. 자신도 상처를 입었으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 옛날 볼크스가 자신에게 찾아왔던 것과 지금 그의 아들인 루카스가 찾아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당시 볼크스는 기사가 되겠다는 열망 하나로 찾아왔다. 물론 그때의 볼크스는 열다섯 살이었다. 그리고 기사에 대한 동경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집이 워낙에 가난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그래서 볼크스가 가장이 되어 홀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마침 돈도 필요했다. 병사로 참가하면 그에 따른 돈이 지급되었다. 그 돈으로 홀어머니를 모실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루카스도 그런 처지인 것으로 생각했다. 소문에 듣자 하니, 볼크스가 일거리도 제대로 받지 못해 전전긍긍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엄마까지 병으로 누워 있어 약값이며 생활비며 돈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촌장 혼자만의 독단적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