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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14화)
제05화 지원병 모집(4)


‘음, 그 애비에 아들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촌장이 루카스를 보며 말했다.
“지원하면 돈이 나온다는 것을 아느냐?”
“네.”
“그럼 네가 전쟁터에 있는 동안 죽지 않고 활약하면 계속해서 돈이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어요.”
루카스는 촌장님의 물음에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그럼, 네가 전쟁에 지원하는 이유가 바로 돈 때문이냐?”
촌장님의 뜬금없는 질문에 살짝 당황한 루카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뇨. 절대 그렇지 않아요. 다만 전 강해지고 싶어요. 강해져서 기사가 되고 싶어요. 단지 그것뿐이에요.”
루카스의 대담한 말에 촌장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허허.”
생각을 해 보니 한때는 촌장도 저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촌장이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볼크스도 허락을 했고,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추천서를 써 주마.”
“정말이에요?”
“오냐.”
“고맙습니다, 촌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루카스는 환해진 얼굴로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런 루카스의 모습을 보는 촌장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잠시 후 추천서를 든 촌장이 루카스에게 내밀었다.
“자, 받거라.”
“고맙습니다.”
추천서를 받아 든 루카스는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촌장님의 당부가 있었다.
“명심하거라. 이제부터 넌 열다섯 살이니라. 잊지 말거라.”
“네, 촌장님.”
“그래, 가 보거라.”
“네! 안녕히 계세요, 촌장님.”
추천서를 잘 갈무리한 루카스는 아주 밝은 얼굴로 촌장님 댁을 나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촌장이 애써 고개를 저었다.
전쟁터에 가는 아이치고 저렇게 밝은 아이는 처음이었다.
마치 삶의 터전을 찾아가는 것처럼…….



제06화 제17 소년 보급대(1)


1

모든 것이 결정된 후 루카스는 열흘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십 일 후 영지에서 지원병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루카스는 엄마와 루시를 달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와중에 세레나와 루시는 오히려 루카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루카스의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떠나는 날 아침이 밝아 왔다.
루카스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리 많은 것을 챙기지는 않았다. 갈아입을 옷 하나와 간단히 요기할 빵 몇 조각을 천에 싸는 것이 전부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루시가 있었다. 루시의 눈은 벌겋게 퉁퉁 부어 있었다. 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하고 울었던 모양이었다.
“오빠, 정말 가야 해?”
짐을 싸고 있는 루카스 뒤로 루시의 애절한 음성이 들려왔다. 짐을 싸던 루카스가 동작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울먹이고 있는 루시의 모습이 보였다.
“루시, 이리 와.”
루카스가 손짓을 하며 루시를 불렀다. 그러자 루시가 갑자기 뛰어와 루카스의 품에 안기며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오빠앙! 으아아앙!”
루카스는 그런 루시를 부드럽게 안아 주며 등을 토닥였다.
“울지 마, 뚝! 오빠 잘하고 올게. 꼭 기사가 되어서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
“하지만, 전쟁터에 가는 거잖아. 거기 가면 대부분 죽는데.”
“아냐, 오빠는 절대 죽지 않아.”
“그게 오빠 마음대로 돼? 거짓말하지 마.”
루시는 떼를 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루카스가 그런 루시를 조심스럽게 품에서 떼어 내며 무릎을 꿇고 눈을 맞췄다.
“오빠 봐! 오빠가 언제 약속해서 어긴 적 있어?”
“응, 있어!”
루시의 당당한 말에 순간 루카스는 당황했다.
“으응? 어, 언제?”
“저번에 다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선 심하게 다쳤잖아.”
“아, 그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때 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했지만 심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절대로 살아남을 것을 다짐했다.
“그때는 오빠가 실수해서 그래.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절대로 다치지도 않고…… 으음, 전쟁터니까 다치지 않는다는 약속은 하지 못해. 그러나 절대 죽지 않을게. 이건 확실히 약속할 수 있어. 하늘에 맹세코 당당히 기사가 되어서 꼭 돌아올 테니, 이번만 오빠를 믿어 주면 안 될까?”
루카스가 부드럽게 말을 하며 루시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루시는 눈을 껌뻑이며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 눈을 쳐다보던 루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알겠어. 이번 한 번만 믿어 줄게.”
“고마워, 루시.”
루카스는 바로 루시를 안았다. 그러자 루시가 루카스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자, 약속해.”
“그래, 알았어.”
루카스도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루시의 새끼손가락에 걸었다.
루시는 다소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도 약속 어기면 다시는 오빠 얼굴 안 볼 거야.”
“알았어.”
“정말이야!”
“알았다니까. 자, 이제 나가자. 아빠, 엄마 기다리시겠다.”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해 놓은, 말아 놓은 천을 들어 어깨에 걸쳤다. 루시와 함께 방을 나서자 볼크스와 세레나가 서 있었다.
볼크스는 담담한 얼굴인 반면 세레나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방을 나오는 루카스를 보자마자 감정이 솟구쳤는지 곧바로 볼크스에게 안기었다.
“여보, 진정해.”
볼크스가 세레나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켰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루카스의 마음도 무거웠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아빠에게 다가갔다.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잘 다녀오너라.”
볼크스는 몸조심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멀리 여행 다녀온다는 느낌으로 말했다.
루카스는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알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시선을 엄마에게 두었다.
“어, 엄마.”
“흐흑, 루카스!”
루카스가 낮게 엄마를 불렀다. 그 소리에 세레나는 볼크스의 품을 떠나 바로 루카스를 꽈악 안았다.
“흐흐흑, 우리 아들. 어쩌면 좋니, 왜 하필 전쟁터에 가겠다고 하는 것이니. 엄마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구나.”
“엄마…….”
“여보, 이왕 보내 주기로 한 것…… 마음 편하게 보내 줍시다.”
볼크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참 동안 루카스를 안고 있던 세레나는 천천히 품에서 그를 떼어 냈다.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고. 항상 조심, 또 조심하도록 해.”
“네, 엄마. 걱정 마세요. 기사가 되어서 꼭 돌아오겠습니다.”
루카스는 밝은 표정으로 힘차게 말했다. 세레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일어났다.
루카스는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며 집을 나섰다. 그런데 마당에 카알을 비롯해 병정놀이를 함께했던 친구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루카스.”
“대장.”
“대장, 잘 다녀와야 해.”
“항상 기도할게, 대장!”
“멋지다, 대장. 아자, 아자, 파이팅!”
친구들의 모습을 본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숙여 눈물을 감춘 후 그들에게 다가갔다.
“고맙다, 얘들아.”
루카스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했다.
카알이 루카스 곁으로 다가왔다.
“잘 다녀와.”
“그래, 이건 좀 그런데…… 루시를 살펴봐 줘.”
“훗, 걱정 마. 나만 믿어.”
카알이 루카스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루카스가 피식 웃었다.
“너만 믿는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루카스는 부모님과 루시, 그리고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산을 내려갔다.
뒤에서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응원을 계속했고, 엄마와 루시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반면 아빠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아침 일찍 산을 내려왔지만 정오가 되어서야 한센 영지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영지로 들어가는 성문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루카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성문 입구에서 기사가 영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다.
루카스는 곧바로 그 기사에게로 다가갔다.
“저기…….”
그러자 기사가 루카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뭐야?”
“지원병을 모집한다고 해서요.”
“너 소년 지원병이냐?”
“네.”
기사는 이상한 눈길로 루카스를 보더니 대뜸 한쪽을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원자는 저쪽으로 가라.”
“아, 알겠습니다.”
기사가 가르쳐 준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갔다.
높은 성벽이 루카스 옆에 있었다. 루카스는 그 성벽을 올려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조금만 걷다 보니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린 루카스가 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는 자신과 같은 소년 지원병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여기구나.”
루카스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그때 지원병 원서를 받고 있는 기사가 보였다.
그 기사 뒤로 긴 줄이 서 있었다. 모두들 이번 전쟁에 지원한 소년병들이었다.
루카스도 줄의 맨 끝에 가서 섰다. 그러고는 주위를 확인하며 혹시나 자신을 알아보는 녀석들이 있지는 않는지 찾아보았다.
바네아 마을에서는 자신 혼자 지원을 했기에 상관이 없지만 다른 마을은 달랐다. 일단 주위를 훑어본 결과 자신이 아는 녀석들은 없었다.
“일단 다행이네.”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때 한참 떨어진 곳에 모여 있는 몇몇 아이들 중에서 한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응? 저 녀석은?”
“왜 그래?”
그 친구의 말에 다른 친구들도 그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그러자 맨 처음 말한 녀석이 이야기했다.
“저기 저 녀석은 바네아 마을의 루카스 아냐?”
“엥? 어디, 어디?”
“저기 줄 서 있는 녀석 말이야.”
그 친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어라? 맞는 것 같은데?”
“맞아, 루카스인 것 같아.”
“근데 저 녀석도 지원을 해?”
“잠깐만 제가 벌써 열다섯이던가?”
한 친구가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친구가 말했다.
“하긴 저 녀석이 세긴 셌지.”
“뭐, 나이가 맞으니 왔겠지. 신경 꺼!”
“하긴, 뭐.”
그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곧바로 신경을 끊었다. 다행히도 녀석들은 루카스의 나이를 정확히 몰랐다. 각 마을마다 루카스란 존재를 소문으로만 듣고, 얼굴만 알고 있는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센드 마을이나 이드 마을에서 나온 아이들이었다면 루카스의 나이를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도 저들은 그곳 마을에서 오지는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곧이어 루카스의 차례가 왔다. 루카스는 살짝 긴장된 얼굴로 앞에 앉아 있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가 고개를 들어 루카스를 보았다.
루카스는 조심스럽게 촌장님의 추천서를 그 기사에게 내밀었다. 기사는 추천서를 받고 내용을 읽었다.
“음, 바네아 마을의 루카스라고?”
“네.”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기사는 찬찬히 루카스를 훑어보았다. 체격은 제법 큰데 얼굴이 조금 어려 보였다.
“너, 확실히 열다섯 살이 맞아?”
“네에? 아, 네. 맞습니다. 거기 촌장님께서도 확인해 주셨지 않습니까.”
기사는 다시 촌장의 추천서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정확히 열다섯 살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체격에 비해 얼굴이 어려 보였다. 대략 열셋? 열넷? 그도 오랫동안 이 일을 해 왔기에 대충 아이들이 몇 살쯤 되었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으음…….”
기사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잠시 고민을 하였다.
‘열다섯이 아니더라도 체격을 보니 될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나이는 되는데 체격이 안 되는 아이들보다는 낫지.’
결심을 굳힌 기사는 지원서를 접수시켰다.
“좋다, 일단 여기 있는 아이들과 함께 놀스 백작령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곳에서 부대 배치를 받은 후에 전선으로 갈 것이니, 자세한 내용은 저기 있는 병사가 알려 줄 것이다.”
기사가 가리킨 방향에는 한 명의 병사가 서 있었다. 그 병사 앞에는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