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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15화)
제06화 제17 소년 보급대(2)


“자, 이것을 받아라. 너의 신분증이다.”
기사가 내민 것은 하나의 목패였다. 목에 걸 수 있는 목패에는 마을 이름과 자신의 이름, 그리고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건네받은 루카스는 목에 걸고 확인을 했다.

바네아, 루카스, 117번

“감사합니다.”
목패를 확인한 후 밝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기사는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전쟁터로 나가는데 감사하다니, 평생 이 일을 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하물며 얼굴에 맴도는 웃음까지, 기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그래. 저리로 가거라.”
“네.”
루카스는 밝게 대답을 하며 아이들이 줄 서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기사는 그런 루카스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저런 녀석은 또 처음이네.”
루카스가 사라지고, 기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다음!”
루카스는 병사의 지시에 따라 줄을 섰다. 그리고 목에 걸린 목패를 다시 한 번 바라본 후 손에 꽉 쥐었다.
“이제 드디어 나도 기사가 될 수 있겠구나.”

2

“자, 모두 주목!”
우렁찬 병사의 목소리에 모든 아이들이 전방을 응시했다. 루카스도 눈을 반짝이며 보았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병사였다. 그 병사 뒤로 몇 개의 상자가 놓여 있었다.
병사는 그것을 하나 뜯은 후 뭔가를 꺼내었다. 그러곤 그것을 높이 들고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너희들에게 의복과 함께 무기를 지급할 것이다. 단 한 번만 지급할 것이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도록. 알겠나!”
“네에!”
병사의 물음에 아이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루카스는 의복과 무기를 지급한다는 말에 가슴이 떨려 왔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며 흥분이 되었다.
“자, 한 명씩 앞으로 나오도록.”
병사의 명이 떨어지자, 맨 앞줄부터 차례대로 의복과 무기를 받았다.
루카스는 맨 뒷줄에 있기에 한참이 지나서야 받게 될 것이다. 줄이 줄어들수록 루카스는 더욱 긴장이 되며 손에 땀까지 났다. 의복과 무기를 받고 오는 아이들을 슬쩍 보았다.
“응?”
루카스는 눈을 번쩍 떴다. 아이들이 받아 오는 무기는 검이 아닌 창이었던 것이다. 의복은 낡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왜 창이지?”
그것도 나무 막대에 뾰족한 쇠만 붙은, 정말 허접한 창이었다. 그것을 본 루카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창을 받아 오네. 검은 안 주나?”
루카스에게 있어서 의복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검을 잡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이 지급받는 무기가 창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하고 있을 때 루카스의 차례가 돌아왔다. 나이 든 병사는 루카스의 몸을 훑더니 상자에서 의복을 꺼내었다.
그리고 그 옆의 상자에서 아이들이 받은 것과 같은 창을 건넸다.
“이곳에서 바로 갈아입도록 해.”
의복과 창을 받아 든 루카스는 바라보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병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 왜 움직이지 않아.”
병사의 소리에 루카스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저기, 검은 주지 않나요?”
“뭐어? 검? 허허허.”
루카스의 물음에 나이 든 병사는 그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잔뜩 의아해하며 물어보는 루카스를 보며 병사가 나직이 말했다.
“이봐, 꼬마! 소년병은 원래 이 의복과 창이 전부야. 검은 말이야. 저기를 봐!”
병사가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멋진 갑옷을 걸친 기사가 허리에 검을 차고 서 있었다.
“검은 저기 있는 기사만이 찰 수 있는 거야. 알겠어?”
“저는 검이 좋은데…….”
루카스는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병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요런 맹랑한 꼬마 놈을 보게. 나도 아직 검을 잡아 보지 못했는데, 고작 소년병 주제에 벌써부터 검을 만지려고 들어! 어서 저리 꺼져, 이 녀석아!”
병사는 아예 상대하지도 않겠다는 듯 루카스를 밀쳤다. 루카스는 옆으로 밀려나며 의복과 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모습에 주위에 있는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멍청한 놈.”
“지가 뭔데 벌써부터 검이야. 자기가 기사라도 되는 모양이지.”
“내비 둬, 원래 촌놈이라 몰라서 그러겠지.”
“하하하, 하긴 꼴을 보니 촌놈 맞네.”
아이들의 비웃음에 루카스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하지만 루카스는 아이들의 비웃음에 상대하지 않았다. 그냥 천천히 떨어진 의복과 창을 집어 들고 한쪽 구석으로 갔다.
그때까지 아이들의 비꼬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하지만 루카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창, 창이라…….”
루카스는 무의식적으로 휘둘러 보았다. 그것도 창술이 아닌 검술로 말이다.
주위에 있는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 자식아,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이런 미친놈이, 어디서 창을 휘둘러.”
“야, 다치잖아.”
그 소란을 본 기사가 황급히 달려왔다. 그는 창을 휘두른 루카스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이 녀석아, 여기서 창을 휘두르면 어떻게 해. 그리고 창을 검처럼 휘두르는 녀석이 어디 있어. 어서 자리로 돌아가!”
기사의 꾸지람에 루카스는 창을 세웠다.
“창을 검처럼 휘두르면 안 되는구나. 그럼 검을 주면 될 텐데…….”
루카스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그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괜찮냐?”
그 목소리에 루카스가 고개를 들었다. 다가온 사람은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병사였다.
“괘, 괜찮아요.”
루카스는 그 말을 하며 다시 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모습에 병사가 피식 웃었다.
“왜? 창이라 실망했냐?”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루카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네에? 아, 아닙니다. 전 단지 검이 편해서…….”
그러자 그 병사가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후후후, 아까 너의 행동을 지켜봤다. 하긴 나도 한때는 검을 들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검은 기사들의 전유물이야. 우리같이 하급 병사들은, 아니야, 너처럼 소년병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아, 네가 공을 많이 세운다면 기사가 되어 검을 만질 수 있을지 말이야.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해 봐.”
그 병사는 실망한 루카스의 머리를 한 번 만져 주고는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루카스는 그 병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큰 공을 세우면 된다고? 공을 세우면 검을 쥘 수 있단 말이지.”
병사의 말에 루카스는 식었던 투지가 다시 끓어올랐다. 눈빛을 반짝인 루카스가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 전장에 나가서 많은 공을 세우는 거야.”

3

한센 영지에서 징집된 소년병의 숫자는 총 28명이었다. 그 소년병 속에 루카스가 들어 있었다.
의복과 무기를 지급받고 잠시 후 한 명의 기사가 다가왔다. 그 기사는 곧바로 28명의 소년병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나와 함께 놀스 백작령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동안 이탈자나 낙오자가 없길 바란다. 앞에 있는 동료의 뒷모습을 놓치지 말고 따라오란 말이다. 알겠나!”
기사의 우렁찬 목소리에 소년병들이 힘차게 소리쳤다.
“네! 알겠습니다.”
기사는 흡족한 미소를 띠우며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놀스 백작령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그 뒤로 28명의 아이들이 걸음을 옮겼다.
꼬박 하루를 이동한 끝에 놀스 백작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루카스는 놀스 백작령으로 이동하는 동안 처음으로 야영이라는 것도 경험했다. 신기하면서도 왠지 즐거웠다.
그렇게 놀스 백작령에 들어서자 엄청난 숫자의 소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주변 30여 개의 영지에서 모여든 소년병일 것이다. 그리고 그 수가 대략 천여 명 정도 되는 듯했다.
이 정도의 규모의 소년병이 전국 각지의 열 곳에서 징집되었다고 하니, 그 숫자가 무려 일만에 가까웠다. 루카스를 포함한 이들 소년병들은 일반병이라고는 하지만 주된 임무는 성인 병사를 보조하는 것이었다.
병사들에게 무기를 가져다주는 것과 음식을 챙겨 주는 것, 심부름, 시체를 후방으로 옮기는 일, 부상자를 치료하는 등, 이러한 잡다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모든 소년병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치열한 전쟁터에 투입된 소년병들은 간혹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병사들의 숫자가 매우 부족할 때 행해지는 일이었다.
한센 영지에서 데리고 온 기사가 루카스외 아이들을 한곳에 세워 두었다.
“이곳에 있으면 기사가 와서 뽑아 갈 것이다. 그곳이 바로 너희들이 앞으로 근무해야 할 곳이다.”
“네.”
기사는 말을 한 후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또 다른 기사가 다가오며 소리쳤다.
“나는 디온 남작이다. 이제부터 너희들이 갈 곳을 정하겠다. 먼저 라할트 지역이다.”
그 순간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씨, 라할트다.”
“제길, 눈 마주치지 마!”
“거기 가면 완전 개죽음이야.”
아이들은 조용히 소곤거리며 디온 남작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라할트 지역은 바라논 왕국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지금도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서 그곳에 왕국의 주력 부대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운이 나쁘면 전투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곳을 꺼려 했다.
솔직히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소년병에 지원을 했다. 루카스처럼 원대한 꿈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전투가 치열한 라할트 지역에 가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필사적으로 디온 남작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디온 남작은 눈살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쯧쯧쯧, 그럴 줄 알았지.”
그때였다.
유독 한 녀석이 자신의 눈과 마주친 것이다. 그 순간 디온 남작이 살짝 놀랐다.
‘어라? 저 녀석 혼자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네.’
그것도 잠시 눈이 마주친 소년이 손을 번쩍하고 들었다. 처음에는 착각했나 싶었는데 계속 보니 정확히 손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호오, 네 이름이 뭐냐?”
“루카스입니다.”
“정말 라할트 지역으로 가겠느냐?”
“네.”
루카스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래도 믿지 못하겠는지 디온 남작이 재차 물었다.
“너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곳에 가겠다는 것이냐?”
“네, 꼭 가고 싶습니다.”
루카스의 모습에 흐뭇한 얼굴이 된 디온 남작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핫, 네 녀석 마음에 드는군. 좋다, 네가 이제부터 뽑힐 라할트 지역으로 가는 소년병의 대장이다.”
디온 남작은 곧바로 루카스에게 대장의 자리를 주었다. 그러고는 루카스 줄 뒤와 그 옆줄에 있는 소년들을 가리켰다.
“너희 줄부터, 너희 줄! 라할트 지역이다!”
디온 남작은 정확히 백 명을 묶어 말했다.
순간 루카스 줄에 있는 소년병들은 절망스런 얼굴이 되었다.
“아이, 씨발!”
“젠장, 완전 똥 돼 버렸네.”
“아, 우린 죽었다.”
소년병들은 저마다 외마디 탄성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절망했다.
반면 루카스는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4

루카스를 포함해 백 명의 소년들은 그 길로 제17 소년 보급대로 편성이 되었다.
가장 먼저 손을 든 루카스가 제17 소년 보급대의 대장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매섭게 뜨며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간혹 어떤 아이는 루카스 곁으로 와서 온갖 욕과 함께 저주를 퍼부었다.
“씨팔, 아주 잘났어.”
“너 때문에 같이 간다. 앞으로 어디 두고 보자.”
“너 이 새끼, 잠잘 때 조심해.”
“빌어먹을 새끼! 뒈지려면 혼자 뒤질 것이지.”
이런 녀석들이 있는 반면 몇몇 소년들은 또 달랐다.
“흐흐흑, 이제 어떡해. 나는 죽을지도 몰라.”
“질질 짜지 마. 재수 없게 그딴 소리도 하지 마.”
하지만 루카스는 아무렇지 않게 그러한 것들을 무시했다.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더 아이들을 자극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사가 디온 남작에게 다가가 약간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을까요?”
“뭐가?”
디온 남작이 담담히 물었다.
“아이들을 너무 강압적으로 뽑은 것이 아닐까요?”
기사의 물음에 디온 남작은 코웃음을 지었다.
“흥, 요새 아이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모르나. 전부 쉬운 곳으로만 가려고 하지, 힘들고 어려운 곳에 가려고 하냐 말이다. 진짜 필요한 곳은 라할트 지역인데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니, 어쩌겠어. 게다가 소년 보급대를 보충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가장 필요한 곳에 보충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어쨌든 우리에게 할당된 백 명만큼 뽑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저 아이가 힘들지 않을까요?”
기사의 물음에 디온 남작이 루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 저 아이 말인가?”
디온 남작은 피식 웃었다. 조금 전 루카스의 살아 있는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다른 아이들이 힘들 것 같은데 말이야.”
“네에?”
디온 남작의 말에 기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디온 남작은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뭘 그리 멀뚱하게 서 있어. 어서 소년병들과 보충된 병사들을 데리고 이동하지 않고.”
“아, 알겠습니다. 남작님.”
기사는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움직였다.
잠시 후 루카스를 포함한 100명의 소년들과 5,000명의 일반 병사들로 구성된 인원이 충원되었고, 그들은 곧바로 라할트 지역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