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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17화)
제07화 창술을 가르쳐 주마!(2)
2
그 일이 있은 후 소년병들 사이에서 루카스의 말은 쏙 들어갔다. 게다가 몇몇 소년병들은 루카스를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루카스가 말했다시피 그들을 상대할 생각도 없을뿐더러 대장 노릇도 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무사히 라할트 지역으로 이동하면 되었다.
디온 남작이 이끄는 보급대는 무사히 라할트 지역에 들어설 수 있었다. 행군을 한 지 거의 60일이 지나서였다.
루카스가 속해 있는 100명의 소년병들은 라할트 지역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뿔뿔이 흩어져 각 부대로 흡수되었다. 루카스도 다른 소년병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배정받은 곳으로 이동했다.
라할트 지역에는 2개의 공작단이 이끄는 2개의 사단이 존재했다. 그 규모는 소대가 50명, 중대 250명, 대대 1,000명, 연대 5,000명. 이렇게 합해서 한 개 사단의 규모가 15,000명 정도 되었다.
때에 따라서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저 정도를 항상 유지했다.
그에 따라 루카스는 라미레스 공작사단 제3연대 2대대 1중대 2소대 소년병에 편성되게 되었다.
배정받은 곳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루카스와 같은 소년병들이 있었다.
그중 아힐이라는 소년병은 이곳 전쟁에 어울리지 않게 곱상한 외모에 언뜻 보면 꼭 여자로 착각하게 만드는 소년이었다.
대개 널널한 후방에 배치받는 소년들은 어른 병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 라할트 지역은 달랐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하루하루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이기에 그러한 것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아힐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몇몇 병사들은 아힐을 계집애 같다며 놀리기도 했다.
반면 루카스는 체격도 건장하고, 다부진 것이 잘못 건드렸다가는 다칠 것 같았다. 그런 루카스가 옆에 앉아 잔뜩 겁에 질린 아힐은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숙였다.
루카스가 배정받은 2소대에서는 지난번 전투에서 많은 부상자들이 나왔다. 2소대에서만 무려 10명이나 되었다. 그들의 수발은 모두 소년병들의 몫이었다.
붕대 교체며 식사 당번, 또는 무기 손질과 방어구 손질까지 모든 잡다한 일들은 소년병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병사 인원이 모자라면 소년병들도 전투에 참여시킨다.
루카스는 그러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와 달리 사단이 머무르고 있는 이곳 본진은 전선에서 고작 1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전쟁과는 동떨어진 신음과 죽은 시체들이 없는 그런 세상이었다.
다만 병상에 누워 있는 부상병들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현재 루카스가 느끼는 것은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아힐은 달랐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안도한 것이다.
그러나 루카스는 너무나도 답답했다. 이런 삶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터로 나가 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머릿속에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루카스에게 아힐이 말을 걸어왔다.
“아, 안녕. 나, 난, 아힐이야.”
아힐이 먼저 인사를 했다.
“반갑다, 난 루카스다.”
루카스도 아힐을 보며 말했다.
“루카스. 그래, 반가워.”
아힐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루카스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아힐을 보며 약간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유는 묻지 않았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거야?”
루카스가 물었다. 그러자 아힐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이곳에서 지내. 우리는 어른 병사들의 잔심부름만 하면 되니까. 무기 손질이나 방어구 손질, 그리고 몇몇은 부상자들을 돌봐. 나, 나는 지금 부상병들을 돌보고 있어.”
“그렇구나.”
루카스의 얼굴에 실망감이 나타났다. 고작 이런 일을 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전장에 나가고 싶었다.
“전쟁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뭐, 뭐? 전쟁터?”
루카스의 말에 아힐은 깜짝 놀라며 대꾸했다.
“우리 소년병들은 전쟁에 참여할 수 없어.”
“나는 참가해야 돼.”
“아, 안 돼!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아힐은 당황하며 말했다. 하지만 루카스는 전쟁에 꼭 참가하고 싶었다.
“방법이 없을까?”
“어, 없어!”
아힐이 단호히 말했다. 루카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야, 루카스…….”
아힐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루카스를 불렀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루카스를 말릴 수는 없었다. 그때 아힐이 뭔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참, 너 바론 관리병사님은 만나 봤어?”
“응? 바론 관리병사님이라니?”
아힐의 말에 루카스가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아, 바론 관리병사님은 우리 소년 보급대를 관리해 주는 병사야. 이곳에 오면 제일 먼저 그분을 만나야 해. 그래야 무엇을 해야 할지 역할을 알려 주시거든.”
“그래?”
“응!”
아힐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을 하던 루카스가 곧바로 물었다.
“어딜 가면 만날 수 있어?”
“지금 이 시간에는…… 주점에 계실 거야.”
“주점? 이런 전쟁터에도 주점이 있어?”
“응. 밖에 나가서 왼쪽으로 한참을 가다 보며 주점이 있어. 주점뿐만이 아니라, 여러 상단들이 물건을 파는 곳도 있어.”
아힐은 히죽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먼저 온 소년병이라고 알려 주는 것이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던 아힐이 물었다.
“가, 같이 갈까?”
“아니, 나 혼자 갔다 올게.”
그 말을 하며 곧바로 군막을 나섰다. 아힐이 알려 준 대로 왼쪽으로 한참을 걸어가자 마치 시장터를 방불케 하는 거리가 나타났다.
여러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간혹 여자의 모습들도 보였다. 루카스는 이런 전쟁터에도 여자가 있나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들이 이곳 전장에서 몸을 파는 창녀라는 것을 알았다.
전장에는 상단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상단들은 이곳 전장이 돈이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윗분들에게 뇌물을 주어서라도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애를 썼다.
왜냐하면 봉급을 받는 병사들이 돈을 어디에 쓰겠는가. 가족이 있다면 보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장에서 돈을 쌓아 놓겠는가?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쓸 만한 곳이 있어야 했다. 주점이며 홍등가, 여러 상점들. 상단들은 이런 황금 거위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루카스는 대형 천막들이 2열로 늘어선 상점가에 들어섰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이리저리 구경을 하며 한참을 걸어갔을 때,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응? 영혼의 쉼터?”
루카스는 시끄러운 소리에 이끌려 천막의 간판을 보았다. 그곳에 적힌 글씨는 바로 영혼의 쉼터였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술을 파는 곳이기도 했다.
영혼의 쉼터.
일명 죽은 병사들의 영혼의 넋을 위로해 주는 곳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전쟁에 나가면 어제의 동료가 다음 날 싸늘하게 죽기도 한다. 그러한 동료의 넋을 위로해 주기 위해 이곳을 찾게 된다고 한다. 물론 대개는 술이 고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루카스는 소리에 이끌려 그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천막 안은 엄청 시끄러웠다. 이곳도 마치 전장을 방불케 하는 소음이었다.
“으하하핫! 마셔!”
“죽을 때까지 마시자고!”
큰 나무 잔에는 허연 거품이 넘실거리는 맥주가 담겨 있었고, 그 잔을 서로 부딪치고 흥겹게 소리치며 마시고 있었다.
모두들 웃통을 벗은 채 우람한 근육을 뽐내며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으하핫! 기분 좋다!”
“술맛도 좋구나!”
루카스는 그들 사이를 헤집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바론 관리병사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루카스의 눈에 건장한 병사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 그들의 손에는 나무 잔이 들려져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에 흥분을 했는지 엄청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뭉개 버려!”
“박살 내 버려!”
“힘내라, 바론!”
그들의 함성 소리에 귀가 울렸지만, 다행히도 루카스가 찾으려던 사람의 이름 소리가 들렸다. 루카스는 그들을 헤집고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루카스의 눈에 건장한 두 명의 남자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붙잡으며 팔씨름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팔뚝에 굵은 핏줄을 울퉁불퉁 솟아오르고 인상을 찌푸리며 힘을 주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을 했다.
“바론, 쓰러뜨려 버려!”
“지미! 절대 지면 안 돼!”
“3소대 이겨라!”
“2소대 응원 소리가 작다!”
건장한 병사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얼굴이 웃음을 띠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두 사람의 팔이 마치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하던 중에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바로 루카스에게 등을 지고 있는 사내가 승기를 잡은 듯 보였다.
상대방은 넘어지기 않기 위해 눈에 실핏줄을 터뜨리면서까지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승기는 되돌릴 수가 없었다.
끝내 팔씨름의 승자가 정해졌다. 승자는 두 손을 번쩍 들며 고함을 질렀고, 패자는 고개를 숙이고는 절레절레 흔들기만 했다.
“와아아아! 역시 바론이야!”
“벌써 열 번째 승리야.”
“대단하다. 바론!”
“으하하핫! 그래 내가 팔씨름 왕이야!”
바론은 상대방의 팔을 넘어뜨린 후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주위에 있는 병사들도 바론을 향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 주었다.
반면 팔씨름에 진 지미는 잔뜩 인상을 구기며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는 바론을 째려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젠장! 바론, 다시 해!”
“뭐? 벌써 열 번째야.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무슨 소리! 이번에는 내가 이길 수 있어.”
“쯧쯧쯧, 그만하자. 괜히 못 볼꼴만 더 보이는 것이야.”
바론은 탁자 위에 놓인 자신의 술잔을 들이켰다. 하지만 지미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잔소리 그만 치우고 어서 앉아, 다시 붙어!”
지미는 다시 자리에 앉고는 팔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바론이 고개를 저었다.
“됐어. 이만하면 된 것 같아. 다음에 하자고.”
바론은 손을 들어 말을 한 후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지미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뒤에 있는 3소대의 병사들의 얼굴을 보았다. 잔뜩 실망한 표정이었다.
“제길! 어서 덤비라고 했잖아!”
하지만 바론은 지미의 말을 듣지 않고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자 지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허리에 있던 단검을 뽑아 들고는 바론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그 모습을 루카스가 보고 소리쳤다.
“앗! 뒤를 보세요.”
루카스의 목소리에 바론이 급히 몸을 돌렸다. 자신을 향해 단검을 찌르고 있는 지미를 보자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와 함께 날아드는 단검을 살짝 옆으로 몸을 틀어 피한 후 지미의 팔을 잡고 그대로 엎어 치기를 했다.
우당탕!
“큭!”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지미는 등에 느껴지는 충격에 신음을 내뱉었다. 바론은 잡고 있는 손에서 단검을 빼앗아 탁자에 꽂았다.
팟!
“비겁한 새끼, 고작 팔씨름에 졌다고 뒤에서 공격해.”
그때를 같이해 2소대의 병사 하나가 소리쳤다.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볼 텐가? 모두 뭉개 버려!”
그 소리가 기폭제가 되어 주점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우람한 덩치를 가진 수십 명의 병사들이 서로 엉키며 주먹을 날리고 싸움을 시작했다.
루카스는 뒤로 빠져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서로 주먹을 치고받는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 좋았다. 가슴이 뛰고, 자신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다.
그 속에서 바론을 보았다. 벌써 한 대 맞았는지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연했다.
한차례 큰 폭풍이 지나가고 바론은 주점 밖의 나무통에 담긴 물을 한 바가지 퍼서 머리에 부었다.
쏴아아아!
“카악, 퉤! 으허허, 시원하다.”
차가운 물을 붓자 뜨겁게 달구어진 몸에서는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뒤에 서 있는 루카스는 바론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한차례 물을 더 끼얹고는 몸을 돌린 바론이 루카스와 마주했다. 바론은 의아한 눈으로 루카스를 보았다.
“넌 누구냐?”
“루카스입니다.”
“루카스? 어디 소속이냐?”
“라미레스 공작사단 3연대 1중대 2소대 소년 보급대 소속입니다.”
“어라? 바로 내가 있는 곳인데.”
바론은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며 루카스에게 다가갔다.
“가만, 네 녀석은 아까 주점에서 나에게 위험을 알려 준 그 꼬마 맞지?”
“네, 맞아요. 하지만 꼬마는 아니에요.”
루카스의 말에 바론이 크게 웃음을 흘렸다.
“하하핫! 그것참, 맹랑한 녀석일세. 맞아, 이곳에 왔다면 더 이상 꼬마는 아니지. 어쨌든 고맙구나. 너 때문에 살았다. 그보다 2소대 소년병이라고 했나.”
“네.”
“그렇다면 내가 관리하는 아이일 테고, 그런데 넌 본 적이 없는데.”
“오늘부로 전입을 했습니다.”
“호오, 그래? 어쨌든 라할트 지역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나중에 네가 할 일을 알려 줄 테니 그때 보자.”
바론은 루카스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은 후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때 루카스가 바론을 불렀다.
“바론 관리병사님!”
바론이 고개를 돌렸다.
“왜?”
“저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봐.”
“저, 혹시 전쟁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루카스의 직접적인 말에 바론의 눈이 크게 떠졌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저런 식의 질문을 한 소년은 루카스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