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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20화)
제08화 기회가 찾아오다(2)
“야! 너희들 내가 어디 거짓 정보를 가지고 오는 것 봤어?”
그렇다. 여태까지 레이다는 절대 거짓 정보를 가지고 온 적이 없었다.
순간 모여 있는 소년병들의 얼굴이 납빛으로 변했다.
“그, 그럼 진짜네.”
“쓰벌, 왜 우리가 전장에 나가야 하는데.”
“으아앙, 이제 죽었구나.”
“나 전장에 나가기 싫어. 무섭단 말이야.”
“야, 인마. 그럼 탈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질질 짜는 소년병을 보며 한 소년병이 소리쳤다. 그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탈영?”
몇몇 소년병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들은 마치 탈영이라도 하겠다는 눈치였다. 전장에서 탈영은 그 즉시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때 한 소년병이 말했다.
“야! 쓸데없는 생각 마. 어차피 정해진 일이라면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잖아. 비겁하게 죽느니, 차라리 전장에서 창이라도 휘두르다가 죽겠다.”
한 소년병이 그 말을 내뱉고는 자신의 군막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탈영을 시도하려던 몇몇 소년병들이 절망 어린 눈이 되어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쳇!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에이, 재수 없는 내 팔자야.”
모였던 소년병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는 자리를 떴다.
하지만 아힐은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그곳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번뜩 생각이 났는지 어딘가로 부랴부랴 뛰어갔다.
루카스는 자신의 일을 마치면 항상 연습용 창을 들고 군막 뒤에 있는 공터로 가서 수련을 하였다. 그는 언제나 한 가지 일에 빠지면 성과를 보일 때까지 하고야 마는 그런 성격이었다.
어릴 적부터 검술에 빠져 하루라도 검을 들지 않으면 온몸이 쑤셔 살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 말을 다하지 않았나.
오늘도 루카스는 공터에서 지난번 배운 창술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다. 스텝과 기본자세를 배운 것이 다이지만 나름 제대로 자세를 잡을 수는 있었다.
그렇게 몇 번 동작을 취할 때, 아힐이 달려왔다.
“루카스, 큰일 났어.”
아힐이 소리치며 달려오는 것을 보고 루카스는 연습용 창을 한쪽에 세웠다.
“큰일? 무슨 큰일인데?”
“응, 이제 우리들도 전장에 나간데.”
“뭐? 그게 사실이야?”
“으응.”
아힐의 말에 루카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구나. 드디어 기회가 왔어!”
루카스의 행동에 아힐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너는 계속해서 전장에 나가고 싶었지. 하지만 나는…….”
아힐이 고개를 푹 숙이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리고 힘없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아힐, 어디가?”
“어디 가긴, 군막에 가서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해야지.”
아힐은 힘없이 말하며 걸어갔다. 그와 반대로 루카스는 연습용 창을 불끈 쥐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공을 세울 기회가 찾아왔어.”
그토록 바랐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기쁨에 빠져 있던 그때, 루카스의 등 뒤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꼬맹이!”
그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린 루카스가 바로 소리쳤다.
“바론 아저씨!”
바론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바론의 모습이 이상했다. 한쪽 눈에 붕대를 감고 있고, 나무로 만든 목발을 짚으며 절뚝절뚝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아저씨, 다쳤어요?”
루카스가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바론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랜만에 전쟁에 나갔더니 이런 꼴을 당했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가 봐. 날아오는 화살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말이야.”
바론은 적의 화살에 눈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살이 뇌까지 미치지 않아 살아났다는 것이다.
“아저씨…….”
바론의 상태를 본 루카스의 눈에 살짝 슬픔이 내비쳤다. 하지만 바론은 의외로 씩씩했다.
“이 녀석아, 날 왜 그렇게 쳐다봐. 나 죽지 않았어. 다리 부상만 완쾌되면 다시 전장에 나갈 수 있단 말이다. 그러니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라.”
“죄, 죄송해요. 그보다 부상을 입었으면 누워 계시지 이곳에는 왜 왔어요?”
루카스의 말에 바론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얘기 들었다. 곧 전장에 투입될 거라면서.”
“네에, 신나는 일이죠.”
“허허, 신나? 아무튼 너란 녀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다른 소년병들은 전장에 나가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데, 넌 오히려 반대니 말이다.”
“헤헤, 제가 원했던 일이니까요.”
루카스는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살짝 벙찐 표정을 짓던 바론이 조용히 말했다.
“어쨌든 오늘 너에게 창술에 대한 마지막 수업을 하려고 왔다. 전장에서 조금이라도 목숨이 붙어 있게 하려고 말이다.”
말을 하는 바론은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몸으로 괜찮겠어요?”
루카스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이 녀석아, 괜찮지 않으면 그냥 나가서 죽으래? 잔소리 말고 자세나 잡아. 그동안 얼마나 연습했는지 보게.”
“넵!”
루카스는 힘차게 대답을 한 후 창을 허리에서 들었다. 그동안 배운 것을 곧바로 실행했다. 스텝이며 기본자세까지 거의 완벽하게 구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론이 살짝 놀랄 정도였다.
‘으음, 어느새 이렇게 창과 한 몸이 될 정도로 연습을 했구나.’
“어때요?”
동작을 마친 루카스가 물었다. 그러자 번뜩 정신을 차린 바론이 말했다.
“뭐, 쉽게 죽지는 않겠네.”
말은 저런 식으로 했지만 루카스는 그 속에 담긴 따뜻한 마음을 이해했다.
“자! 오늘 너에게 알려 줄 것은 바로 공격과 방어 자세다. 앞서 배운 것과 같이 간단한 동작이니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론은 부상을 당해 자세 잡을 수는 없지만 루카스에게 자세를 잡게 한 후 말로 설명을 해 주었다.
루카스도 그동안 배운 것이 있기에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동작을 보고 따라 했다면 그만큼 이해도가 빨랐을 뿐이었다.
바론이 알려 준 공격과 방어는 합쳐서 총 네 가지 동작이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공격인 찌르기였다.
창술의 가장 기본이자 근본 공격법인 찌르기에도 총 세 가지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양손의 위치가 변하지 않는 일반적인 찌르기.
또 하나는 창의 리치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찌르기로 왼손은 느슨하게 잡고, 오른손을 잘 파지한 다음 왼팔을 쭉 펴고, 오른손을 힘껏 밀어 찌르는 것이었다.
마지막은 아예 왼손을 놔 버리고, 창끝을 잡은 오른손만으로 최대한 쭉 뻗는 찌르기가 있다.
이 동작은 스텝인 런지와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간격 밖이라고 안심한 적에게 가하는 기습적인 찌르기 공격이었다.
두 번째는 베기 공격이다.
창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공격법인데, 대체적으로 소켓 부근의 자루가 부러질 우려가 있고, 창날도 찌르기 위해 두껍고 폭이 좁아 칼날 각이 컸으므로 베기에는 그저 그런 편이었다.
다만 베기는 제대로 된 절단을 노리기보다는 견제를 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했다. 때때로 유효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베기를 위한 창이 있기도 했다.
세 번째는 때리기 공격이다.
이것은 공격법이면서 또는 방어를 하는 목적에 사용한다고 했다. 베기와 같이 보조적인 용도에 지나지 않지만, 때리기의 가치는 적의 창을 견제하거나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데에 있었다.
찔러 들어오는 창은 옆에서 가해지는 힘에 쉽게 궤도가 바뀐다. 단지 밀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적의 창과 접촉하는 시간이 길지 않으므로 빠른 반격이 가능한 장점도 있었다. 또한 창들끼리 닿을 정도가 되면 서로의 창을 툭툭 쳐 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적이 창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꽉 잡게 되는데, 이것은 빠른 대응을 느리게 할 수 있고 찔렀을 때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밀어내기였다.
이 동작은 주로 방어 동작인데 찔러 들어오는 창에 자신의 창을 대어 바깥쪽으로 밀면 적의 창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게 되는 원리였다. 그래서 창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방어법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론이 동작을 알려 주며 초보자가 겪는 실수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초보자들이 실수하는 것이 있는데, 상대방이 중단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자기 창을 갖다 대고 억지로 밀어서 치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는 ‘나를 공격하쇼.’라고 말하는 꼴이니, 반격하기에 딱 좋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유념해야 할 것이야. 그리고 밀려고 하다가 적이 창을 확 내리면 알아서 옆으로 창을 치워 주는 꼴이 되니, 그것도 항시 생각을 하고.”
“네, 아저씨!”
루카스는 지금까지 배운 것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자,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창술은 모두 가르쳤다. 시간이 없어 더 자세한 것은 알려 주지 못하지만 이만하면 네 한 몸 지킬 정도는 될 것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바론 아저씨!”
루카스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했다.
“뭘,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아저씨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해 너희들까지 전쟁터에 내보내야 하다니. 부끄럽구나.”
“아니에요. 아저씨들은 충분히 잘 싸우셨어요. 그러니 걱정 말고, 아저씨는 어서 병상으로 돌아가셔서 푹 쉬세요.”
루카스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모습에 바론은 그저 피식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 녀석이! 벌써부터 병자 취급이냐! 오냐,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니 너를 믿고 푹 쉬어도 되겠다.”
바론은 그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루카스는 연습용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모든 준비가 되었어.”
그리 말을 하고는 즉시 몸을 돌려 군막으로 뛰어갔다. 이제 연습용 창이 아닌 실제 자신의 창으로 전장에 나가기 위해서였다.
라할트 지역에 있는 소년병들은 2개 사단을 합쳐 총 5천 명 정도 되었다. 원래는 3천 명 정도였는데, 추가로 2천 명을 지원받았다.
대기하고 있을 그때 기사가 임시로 정한 소년병 대장들을 불렀다. 그 속에 루카스가 들어 있었다.
부름을 받은 루카스는 즉시 기사가 있는 곳에 달려갔다. 다른 소년병 대장들도 있었다. 루카스를 포함해 50명 정도 되었다.
기사는 모인 소년병 대장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너희들도 왕국의 병사로 싸워야 할 때가 왔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아이들을 잘 다독여서 제대로 싸울 수 있게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몇몇의 소년병 대장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반면 다른 몇 명은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는 죽는 건가요?”
그 소리에 기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 벌써부터 죽을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하지만 전쟁터잖아요.”
그 말에 기사가 그 소년병을 달래며 말했다.
“자, 너희들은 우리 말만 잘 들으면 안 죽을 것이야. 설마 너희들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겠냐. 그러니 걱정 마라.”
기사의 말에 소년병들은 안도하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기사 뒤에 있는 동료 기사는 약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헛! 저 자식, 거짓말이 아주 능숙한데. 애들을 한두 번 다룬 솜씨가 아냐.”
“하하하, 그런 것 같네. 저 애들을 모두 사지로 몰아넣을 생각이면서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하니, 정말 타고난 녀석이야.”
“쉿! 조용히 해. 애들 듣겠다.”
그 말에 기사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는 가장 위험한 곳에 소년병들을 몰아넣어 희생양으로 삼아 적들을 끌어들여 싸울 계획을 세웠던 것이었다.
우선 모인 5천 명의 소년병들을 1연대로 지칭하고, 병력을 새롭게 편성하기 시작했다.
소년병들을 1,000명씩 대대에 나누어 배치하고, 그곳의 대대장으로 기사 한 명을 편입시켰다. 그렇게 총 5대대로 나뉘어 다섯 명의 기사에게 대대장의 자리를 주었다. 중대장으로는 20명의 일반 병사를 두었다. 소대장으로는 현재 뽑힌 50명의 소년병 대장들을 임명하였다.
그렇게 분대 편성이 대충 정리가 되자 기사가 말했다.
“대대 편성은 이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오늘은 1대대만 나와 함께 움직이다. 이만 해산!”
웃는 얼굴로 말한 기사는 그 즉시 1대대로 편성된 인원을 이끌고 움직였다. 그 모습을 나머지 소년병들이 짠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기사와 함께 움직이는 1대대 속에 루카스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