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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22화)
제08화 기회가 찾아오다(4)
화르륵!
마차 하나에 불화살이 떨어지며 불이 번졌다.
“마차에 불이 붙었다. 주위에 있는 병사는 소각하라.”
적의 기사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 불이 붙은 마차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불을 끄기 위해 달라붙었다.
루카스는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적의 병사들이 나타났다. 루카스는 재빨리 창을 움켜쥐고는 빠르게 내질렀다.
슉! 푸욱!
루카스의 창 공격에 앞에 있던 적의 병사 가슴에 창끝이 들어갔다.
그 순간 루카스의 손에 감촉이 전해졌다. 갑자기 머리끝이 찌릿해지며 뭔가 폭발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곧이어 옆에서도, 그 옆에서도 적들이 밀고 들어왔다.
루카스는 재빨리 창을 빼내고는 빠르게 여러 번 찔러 들어갔다. 바론이 알려 준 창술을 최대한 이용하며 적들을 상대했다.
루카스는 지금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오직 앞에 보이는 적들을 죽여야만 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슉, 슈슈슈슉!
루카스의 창 공격에 세 명의 병사가 피를 뿜어 대며 죽어 갔다. 그의 뒤에서 창만 들고 벌벌 떨고 있는 아힐이 루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루카스 주위로 죽은 병사의 시체가 널브러졌다. 붉은 피가 바닥을 적셨고, 눈을 뜬 채 죽은 병사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하물며 정신없이 휘두르는 루카스의 창에 의해 붉은 피가 튀기 시작했다.
아힐의 몸에 피가 떨어지고 순간 비릿한 피 냄새가 콧속을 파고 들어왔다. 아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으으으, 으아아악!”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귀를 막았다.
“아힐, 지금 뭐하고 있어.”
루카스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상태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힐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아힐의 귀에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힐! 제길!”
루카스는 아힐의 뒷덜미의 옷깃을 잡고 그대로 마차 밑으로 집어 던졌다.
“으아아악!”
아힐이 고함을 질렀지만, 루카스는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다음 병사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루카스는 마차 아래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힐도 마차 아래로 들어간 후 몸을 웅크린 채 귀를 막고 부르르 떨었다.
처음에 수백 명의 소년병들 때문에 수적 열세로 이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보급대 끝의 삼천 명의 병사들과 적들의 기사들이 덮치자, 소년병들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사, 살려 줘.”
“무서워어어!”
“어떻게 해서든지 버텨!”
루카스가 주위에 있는 소년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건 그저 외침에 불과했다. 전장의 경험이 없는 소년병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반면 대대장을 비롯해 기사들은 언덕 위에 숨어서 불화살만 계속해서 쏘고 있었다. 소년병들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적의 보급 마차만 보일 뿐이었다.
“적의 마차를 노려라!”
기사들은 불화살을 쏘아 적의 보급 마차만 겨냥했다. 그리되자 적의 보급 마차는 순식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한편.
루카스는 창으로 벌써 열 명의 병사들을 죽이고 있었다. 적의 피가 얼굴에 튀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릿한 피 맛이 입안을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꿀꺽!
그 피 맛마저 지금은 달콤하게 느껴졌다. 왜 그럴까?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도 흥분이 되는 이유가 뭘까?
“으아아아!”
슉! 슈슈슈슈!
루카스는 전광석화 같은 빠르기로 창을 계속해서 내질렀다. 피 맛을 보고, 시체가 늘어갈수록 루카스는 더욱 광분하며 창을 내질렀다.
창으로 적의 병사를 죽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나름의 희열도 느껴졌다. 창끝이 적의 살을 파고들고, 뼈에 닿는 느낌,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질수록 루카스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죽음의 대한 공포, 전쟁터, 치열한 싸움, 생사를 오가는 곳에서 분위기에 취해 정신없이 창을 휘둘렀다. 그러는 사이 루카스 주위로 적의 병사들의 시체가 점점 늘어갔다.
그 모습을 적의 대장 기사가 보게 되었다. 소년병인 것 같은데, 날렵한 움직임으로 아군을 처리하는 모습에 그 기사가 놀라 소리쳤다.
“저놈을 막아라! 죽이란 말이다!”
그 소리가 루카스를 자극했다.
루카스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며 말을 타고 있는 기사를 보았다. 짙은 살기를 머금은 눈빛을 본 기사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
‘뭐, 뭐지?’
적의 기사는 나름 이름 있는 가문의 기사였다. 그런데 소년병의 눈빛을 보고 자신의 몸이 떨려 왔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으아아악!”
루카스가 괴성을 지르며 그 기사를 향해 달려갔다. 기사는 달려오는 루카스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기사인 자신에게 덤빌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저, 저런 미친…….”
하지만 그때 달려들던 루카스의 손이 뒤로 젖혀졌다. 그와 동시에 들고 있던 창을 적의 기사를 향해 냅다 던져 버렸다.
“이야합!”
쐐애애액!
창은 공기를 가르며 적의 기사를 향해 그대로 쭉 날아갔다. 루카스의 창이 가볍게 빗나갔으면 좋았겠지만, 강한 회전이 걸리며 매섭게 날아가 기사의 목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기사는 미처 방비할 틈도 없이 소년병이 던진 창에 목이 뚫리며 말에서 떨어졌다.
정말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그 순간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동요하며 기사에게 달려갔다.
“대장!”
“대장님!”
루카스가 창으로 죽인 기사가 바로 이번 보급대의 총대장이었던 것이다.
보급대의 대장을 잃은 적의 병사들은 일순간 혼란에 휩싸였다. 소년병이 던진 창에 목숨을 잃은 것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 순간 지도자를 잃은 적의 보급대는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루카스는 창을 던진 그 자세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바론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만약에 도망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곳의 대가리. 즉, 높은 놈에게 창을 던져! 그러면 녀석들이 그놈을 보살피기 위해 모여들 것이다. 그때를 놓치지 말고 도망을 치도록 하여라. 간단히 부상만 입혀도 크게 동요할 것이다.”
바론이 마지막으로 루카스에게 건넨 조언이었다. 그 생각이 문득 떠올라 창을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루카스의 창에 목이 꿰뚫린 기사가 보급대의 대장이었고, 상처만 낼 생각으로 던진 것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루카스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루카스 뒤로 대대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놈! 뭐하고 있어. 가자!”
하지만 루카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대대장은 말을 몰고 루카스에게 달려갔다. 달려가는 그대로 루카스를 낚아채 말 뒤에 태웠다.
대대장은 그 길로 즉시 말을 몰며 소리쳤다.
“퇴각하라! 모두 퇴각해!”
소년병들은 그 소리와 함께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차 아래에 숨어 있던 아힐도 불타오르는 마차에서 벗어나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도망치기 시작했다.
보급대장을 잃자, 적의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며 도망치는 소년병들을 쫓을 생각도 못했다.
비록 보급대를 탈취하는 것에는 실패를 했다. 게다가 불에 태우려고 시도를 했지만 그것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다만 한 가지, 적의 보급대장을 죽였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대대장은 루카스를 태운 채 힘껏 말을 몰았다. 그 뒤로 기사들과 일반 병사들, 소년병들이 뒤따랐다. 하지만 1,000명이나 되던 소년병들은 대부분 죽고 눈에 보일 정도의 숫자만이 도망을 치고 있었다.
루카스는 대대장 말 뒤에 매달려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크하하핫!”
지금 루카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뜨겁게 요동치는 가슴과 손끝에 전해지는 짜릿함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제09화 죽지 않는 소년병(1)
1
적의 보급대를 탈취하기 위해 움직였던 1대대가 본진에 들어섰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몸은 온통 검게 변한 피딱지와 흙으로 도배를 하였다.
첫 임무인 보급대 탈취는 실패로 돌아갔고, 사상자 또한 엄청났다.
소년병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살아 돌아온 소년병은 고작 13명에 불과했다. 무려 1,000명이나 되던 소년병 중에서 말이다.
13명의 소년병들도 다들 하나하나 부상을 입고 있었다. 아힐도 살아남았지만 불타오르는 마차 밑에 있었기에 옷이 타 버려 화상을 입었다.
그들 중에서 멀쩡하게 살아온 소년병은 루카스 한 사람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루카스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저 운이 좋은 소년병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전투에서도 소수의 생존자에 포함이 되었다. 처음과 같이 별다른 부상도 없이 말이다.
이후로 3번째, 4번째에도 소년병의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루카스는 계속해서 살아남았다. 절대 부상을 당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게다가 점점 전쟁에 참여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때마다 루카스는 꼭 살아 돌아왔다. 그것도 거의 부상을 입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리되자 일반 병사들을 포함해 루카스와 함께 하지 않았던 기사들이 점점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 전투가 시작되면 어디 숨어 있다가 도망치는 것이 아니야?”
“맞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매번 부상 없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단 말이야.”
하지만 루카스를 지켜봤던 대대장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당당히 말했다.
“루카스는 절대 숨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언제나 선두에 서서 적들을 무찔렀다. 게다가 첫 임무 때 적의 보급대장을 창으로 죽이기까지 했다. 아니, 매번 적의 대장들과 전투를 벌였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찌 그런 헛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것인가.”
대대장의 한마디에 의심을 가지던 기사들은 저마다 눈을 크게 뜨며 놀라고 있었다.
하물며 같이 참여했던 기사들이 공공연하게 밝히지 않은 공적들만 해도 충분히, 아니 일반 성인 병사들보다도 대단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혹시 모를 질투나 믿지 못하는 공명심 때문에 루카스의 공적이 많이 깎여서 보고가 되었지만, 상당한 활약을 펼쳤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사이 5,000명이나 되던 소년병이 50명이 되기까지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긴급회의를 한 두 공작은 병력을 보충하기로 서로 합의를 하였다. 그 수는 5,000명이었다.
그 수 안에 라미레즈 공작의 둘째 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 달간 치열한 전투에 살아남은 소년병은 대부분 소대장들이 많았다. 그리고 50명의 소년병은 더 이상 소년병이 아니었다. 당당히 병사로 대우를 받고, 하물며 50명의 소년병은 한 개의 소대가 되어 있었다.
그 소대의 대장은 당연히 루카스가 되었다. 50명의 소년병 전부 만장일치로 루카스를 소대장으로 인정을 한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전투를 벌이면서 루카스의 활약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전장 한가운데 들어가 적의 병사들을 쓰러뜨리는 모습과, 마치 마계에서 올라온 지옥의 사자처럼 전투에만 들어가면 전혀 딴사람이 모습 등.
그래서 루카스가 얼마나 독한 녀석인지, 얼마나 무서운 녀석인지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살아남은 소년병 전부 루카스 때문에 목숨을 건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안에 루카스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제임스를 비롯해 처음 이곳에 오면서 숲 속에서 싸웠던 녀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도 완전히 루카스를 믿고 따르는 분위기였다.
루카스의 소대는 한 군막을 이용하고 있었다. 어제 전투에 참여한 후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모두들 장비를 점검하거나 아니면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모두 제각각이지만 그 누구도 터치하지 않았다.
그 중심에 루카스가 있었다. 그 양옆으로 제임스, 에그, 아힐이 있었다.
제임스와 에그는 루카스의 오른팔과 왼팔 역할을 담당했다. 아힐은 전투에는 잘 참여하지는 않지만 정보와 작전을 맡고 있었다. 게다가 나름 손재주도 좋아 이것저것 장비나 무기 수리를 하곤 했다.
모두들 말없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을 때,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러진 창을 들었다.
“나 잠시 다녀올게.”
그 말에 제임스가 물었다.
“어딜 가려고, 대장?”
곧이어 에그도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에그는 지난번 이곳에 올 때 숲 속에서 루카스에게 덤볐던 소년이었다.
이름은 에그.
나이는 루카스보다 두 살 많았다.
“어디 가는데, 같이 갈까?”
그러자 루카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희들은 여기 있어. 나 혼자 다녀오면 돼.”
“그래? 알았어. 다녀와.”
에그의 말에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인 후 군막을 빠져나갔다.
루카스가 향한 곳은 가장 후미에 있는 상점가였다. 역시나 이곳은 언제나 많은 병사들로 붐비고 있었다.
영혼의 쉼터와 각종 무기류와 방어구를 파는 상점들, 붕대와 약초, 약들을 파는 상점들도 있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러한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가 향하는 곳은 상점가에서도 가장 끝에 있었다. 그곳에 도착을 하자,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맑고 청명하게 들려왔다.
탕! 탕!
푸쉬쉬쉬!
루카스는 그 소리를 듣고는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짙은 열기로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 중앙에 울퉁불퉁 상체를 드러낸 노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