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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23화)
제09화 죽지 않는 소년병(2)


노인의 이름은 발덴.
이곳 라할트 지역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대장장이였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70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젊은 사람 못지않은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발덴 씨, 저 왔어요.”
땅, 땅, 땅!
발덴은 망치질을 하느라 루카스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힘껏 불렀다.
“발덴 씨!”
그 소리에 망치질을 하던 발덴의 손이 멈추었다. 그러곤 루카스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어? 또 왔느냐.”
“네.”
“잠시만 기다려라.”
“네, 발덴 씨.”
발덴은 나이가 70인 노인인데도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무척이나 듣기 싫어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할아버지라고 했다고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렇다고 아저씨라고 말하기도 그랬다. 루카스와 나이 차가 많이 났으니 말이다. 그래서 발덴 씨라고 불렀다. 발덴도 오히려 그렇게 불리는 것이 좋은 듯 보였다.
푸쉬쉬쉬!
망치질을 하던 쇠를 물에 담가 식혔다. 그리고 한 곳에 내려놓고는 루카스에게 다가갔다. 그는 루카스의 손에 쥐어진 부러진 창을 확인했다.
“이런 또 망가졌구나.”
그러자 루카스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네에, 너무 쉽게 부러지더라고요.”
발덴은 그런 루카스를 보다가 이내 미소를 짓고는 뒤쪽의 창고로 걸어갔다. 창고에는 수많은 무기들이 있었다. 그중 창이 진열된 곳으로 걸어간 발덴이 쭈욱 훑어본 후 튼튼해 보이는 창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것을 바닥에 놓고 흙을 발라 새것이 아닌 마치 헛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것을 한 번 사용해 보아라.”
창을 가지고 나온 발덴을 보고는 루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창이네. 왠지 튼튼해 보이는데요.”
“그래, 나무도 일반 나무가 아니야. 나무 중에서도 가장 튼튼한 아밀레이 나무로 만든 것이다. 휘어지기는 하지만 잘 부러지지는 않지.”
발덴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것을 받아 든 루카스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우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거 얼마죠?”
기뻐하던 루카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발덴이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안 그래도 너에게 새것은 무리일 것 같아서 중고로 가져왔다. 딱 50실링만 주면 된다.”
“50실링이면 돼요.”
“그렇대도.”
“헤헤헤, 감사합니다.”
루카스가 실실 웃으며 품에서 돈을 꺼내 주었다.
“여기요. 그럼 수고하세요.”
“오냐, 이번에는 오래 사용하여라.”
“네, 발덴 씨.”
루카스가 밝게 인사를 한 후 대장간을 나가려 했다. 그러던 중 루카스가 발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발덴이 물었다.
“왜, 아직 볼일이 남았느냐?”
루카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발덴 씨.”
“왜?”
“혹시 무기 제작도 가능한가요?”
루카스의 조심스런 질문에 발덴이 크게 웃었다.
“하하핫! 당연하지 않느냐. 대장간이 괜히 대장간이겠느냐. 제작을 못한다면 망치를 놓아야지. 이래 봬도 내가 만든 무기가 꽤 고가에 팔리거든. 그런데 그것은 왜 물어보는 것이냐?”
발덴이 의문 어린 눈길로 물었다. 그러자 루카스가 냉큼 그에게 달려가 바닥에 무언가를 그렸다.
“혹시 이런 것도 제작할 수 있어요?”
루카스가 그린 그림을 유심히 살피던 발덴이 턱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아무리 봐도, 이건 검도 아니고, 그렇다고 창도 아닌 것이…….”
발덴은 루카스가 그린 요상한 그림을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루카스를 보았다.
“제작은 가능하다만, 누가 주문했느냐?”
“제, 제가요. 혹시 벨 수 있는 창을 만들면 어떨까, 고민을 하다가 생각한 거예요.”
루카스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그 순간 발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이건 제작할 수 없다!”
발덴의 단호한 말에 루카스는 당황했다.
“왜요? 아까는 제작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루카스의 말에 발덴이 호통을 쳤다.
“이놈아, 너 돈 많냐? 이것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철이 들어가는지 몰라? 그리고 이런 것을 만들려면 수십 일이 걸려! 지금도 바쁜데, 이것을 붙잡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 게다가 제작을 의뢰할 수 있는 사람은 귀족이나 기사들뿐이야. 너같이 소년병이 제작을 의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나니까, 너의 말을 들어줬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장이라도 기사들에게 붙잡혀 갔을 것이다.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어서 돌아가거라. 다시는 이런 것을 부탁하지 말고.”
발덴은 대답을 하면서 바닥의 그림을 발로 냉큼 지웠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는 루카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껏 생각한 것인데, 제작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매우 실망을 했다.
‘역시 제작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구나. 난 단지 검을 대신할 창을 만들고 싶었던 것뿐인데…….’
“죄송했어요. 수고하세요.”
루카스가 힘없이 대답을 하고는 대장간을 나갔다. 그런 루카스의 모습을 보며 발덴이 혀를 찼다.
“쯧쯧, 정말 큰일 날 녀석이야.”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아까 망치질을 하던 것을 다시 하기 위해 화롯가로 걸어갔다.
루카스가 대장간 밖으로 나오자 안에서는 다시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안 되는 것이 많지? 역시 공을 세워 기사가 되어야 하는 방법밖에 없나?”
루카스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막 상점가를 벗어나려고 할 때, 대규모의 병력 이동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병력이 충원된다고 하더니, 그 병력인가?”
그때 유독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병력의 맨 선두에서 말을 타고, 화려한 갑옷을 입은 그 청년은 루카스보다 두세 살 많아 보였다.
게다가 갑옷과 허리에 찬 멋들어지게 치장한 검을 보니, 기사인 것 같았다. 그것도 고위 귀족 가문의 기사로 보였다.
루카스는 유독 그 청년에게 시선이 갔다.
“누구지?”
루카스가 궁금증을 가지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가 라미레즈 공작의 둘째 아들인 바이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

“오. 어서 와라, 아들아.”
라미레즈 공작이 둘째 아들인 바이칼을 반갑게 맞이했다. 바이칼은 말에서 내려 곧바로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였다.
“아버님,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오냐, 오냐.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라미레즈 공작은 서둘러 바이칼을 데리고 자신의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바이칼과 함께 온 오천 명의 충원 병사는 곧바로 자대로 배치를 받기 위해 움직였다.
바이칼 라미레즈.
라미레즈 공작가의 둘째 아들로 18살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에 올라선 기재였다. 검술에 있어서 천재라고 말할 정도로 검에 대해 조예가 깊었다.
그런 아들이 이곳 라할트 지역에, 그것도 아버지를 돕기 위해 왔으니 어찌 대견하지 않겠는가. 그런 아들을 보는 라미레즈 공작은 매우 기뻐했다.
군막 안에 라미레즈 공작과 바이칼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라미레즈 공작은 정말 오랜만에 아들의 얼굴을 본 것인지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저야, 언제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형은?”
“형 또한 가문을 잘 이끌고 있고요.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아버님의 무사 귀환을 신들께 기도드리고 계십니다.”
“흠, 그러하더냐.”
“네에.”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라미레즈 공작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매우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수시로 전쟁이 터져 가문을 비우는 일이 많아 제대로 같이 있어 주지 못한 것이 정말 미안했다.
바이칼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님께서는 아버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오냐, 알겠다. 어쨌든 네가 와서 애비는 든든하구나.”
라미레즈 공작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바이칼도 웃음을 지으며 아버지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져 있었던 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가문의 일과 왕국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 주변국들의 대한 일까지 하나하나 얘기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대화하던 라미레즈 공작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 내가 앞에서 나서서 싸울 수 있겠구나.”
라미레즈 공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곧바로 바이칼의 표정이 냉정해졌다.
바이칼은 검술에 대한 조예도 깊지만 머리도 뛰어나 항상 라미레즈 공작과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그리고 라미레즈 공작은 그런 바이칼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었다.
바이칼은 심각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아버님께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바이칼의 대답에 라미레즈 공작의 얼굴이 굳어지며 물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아버님께서 움직이시면 맥스웰 공작이 분명히 장난을 칠 것입니다.”
바이칼의 말에 라미레즈 공작이 바로 말했다.
“적이 앞에 있거늘 어찌 그런 소리를 하느냐.”
라미레즈 공작은 살짝 노기 띤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자 바이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전쟁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라미레즈 공작군이 패한 전투마다 대부분 석연치 않은 이유가 많았습니다.”
바이칼의 말에 라미레즈 공작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설마 맥스웰 공작이 정녕 장난을 친 것이냐?”
“이곳으로 오면서 라미레즈 공작군의 전투에 관한 것을 조금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맥스웰 공작의 입장에서 보면 대승을 거두지 않는 이상 아버님이 함께 적당히 패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야 적당히 실패를 만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라미레즈 공작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분노했다. 그 모습을 보던 바이칼이 라미레즈 공작을 진정시켰다.
“진정하십시오, 아버님.”
“흠, 어쨌든 맥스웰 공작이 저런 식으로 나온다면 이 전장의 방향은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구나. 이제 어찌하면 좋겠느냐.”
라미레즈 공작이 바이칼에게 물었다.
“아버님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뭣이? 네가?”
“네, 제가 해 보이겠습니다.”
“네가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라미레즈 공작은 잔뜩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그러자 바이칼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그저 종자 하나만 저에게 붙여 주십시오. 제가 가문의 이름을 걸고 충분히 싸워 보이겠습니다.”
완고한 바이칼의 말에 라미레즈 공작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검에도 뛰어나고, 머리도 똑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전장인데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바이칼을 믿고 있기도 했다.
“알겠다. 그리하여라.”
“감사합니다, 아버님.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바이칼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며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라미레즈 공작은 승낙은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3

다음 날.
라미레즈 공작의 둘째 아들 바이칼의 종자를 구한다는 소문이 돌자, 수많은 병사들이 지원을 했다.
“자, 여기 모인 병사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도록 하여라.”
라미레즈 공작이 자신의 군막 앞에 모인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바이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님, 저는 나이 많은 성인 병사보다는 소년병을 원합니다.”
“소년병?”
라미레즈 공작은 약간 의외라는 듯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이 많은 병사보다는 너와 같은 또래의 종자가 편하겠지. 알겠다, 네가 알아서 정하여라.”
“네, 아버님.”
라미레즈 공작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뒷짐을 진 채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갔다.
라미레즈 공작이 가자, 바이칼은 모인 병사들을 향해 물었다.
“이곳에 소년병들이 있지.”
“네, 있습니다.”
“몇 명이 있어?”
“현재 50명 정도 남았습니다.”
바이칼의 물음에 병사는 곧바로 답을 해 주었다.
“그들 중 누가 제일 강하지?”
“그야 당연히 루카스죠.”
“네, 루카스가 강합니다.”
“소년병들 중에서는 루카스가 짱이죠!”
병사들 전부 루카스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기사가 다가와 바이칼의 귀에다 대며 소곤거렸다.
“아직 서열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루카스란 아이가 소대장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순간 바이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루카스라…… 루카스! 역시 그 아이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