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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이블 1권(24화)
제09화 죽지 않는 소년병(3)
바이칼이 라할트 지역으로 오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이름이 바로 루카스였다.
소년병이면서 일반 병사들보다 잘 싸우고, 매번 전투에 나가 살아 돌아온 끈질긴 생명력. 첫 전투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해 돌아온 저력.
처음에는 바이칼도 그저 루머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올라오는 보고서에는 루카스란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그 후 루카스에 관한 보고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읽게 되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실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인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게다가 그의 활약이 바이칼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아이로 하겠어.”
“예에?”
기사가 놀라며 말했다.
“하지만 공자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이미 정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공자님이 아니다. 이곳 전쟁터에 있는 이상 이제부터 나는 라미레즈 백작이다. 백작으로 대하도록 해라. 또한 그 아이를 나의 종자로 삼을 테니 의견을 달지 말도록. 지금 당장 그 아이를 찾아 내게로 데려오너라.”
“알겠습니다, 백작님.”
기사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그곳을 떠났다. 일반 병사들도 종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약간 실망한 얼굴로 각자 군막으로 돌아갔다.
바이칼은 흥미로운 얼굴이 된 채 주변을 살폈다. 그도 매일 전쟁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있지만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제10화 적의 보급대를 처치하라?(1)
1
루카스는 창술 수련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전장에 나가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수련을 하였다. 현재 창을 들고 있기에 창술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검을 들고 싶다는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합! 이야합!”
기합 소리를 내며 한창 창술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루카스의 창술이 조금 이상했다. 창술이 아니라 마치 검술을 연마하는 것처럼 휘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창. 하지만 펼치는 것은 검술의 형태였다.
전에는 이런 적이 있었다.
연습에 몰두하거나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 자신도 모르게 창을 검처럼 휘두르는 것이다.
그때 그 옆을 지나가는 기사 둘이 있었다. 그들은 루카스를 보고는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푸하하핫! 뭐야? 창을 왜 검처럼 휘둘러?”
“저 자식 미친 거 아냐?”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루카스가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낡은 창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기사들을 쳐다봤다. 기사는 그런 루카스에게 조롱 섞인 말을 했다.
“이봐, 지금 네 손을 들린 것을 봐. 창이야, 창이라고.”
“하하핫! 멍청한 놈. 창을 들고 있으면서 검처럼 휘두르는 바보는 또 뭐냐.”
“아! 전장에 나가서 왜 살아 돌아왔는지 이제야 알겠군.”
그러자 옆에 있는 동료가 물었다.
“왜?”
“저렇듯 창으로 검처럼 휘두르니. ‘아이고, 미친놈이구나!’ 하고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가서 그런 것이 아니겠어.”
“아하! 그렇구나.”
기사 둘은 노골적으로 루카스를 깔보며 말했다.
“그래, 열심히 연습이나 해라.”
“킥킥킥, 이번에도 살아남아야지.”
거의 노골적으로 조롱을 하였다. 이렇듯 기사들은 루카스를 한바탕 골려 먹은 후 유유히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 루카스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조롱을 듣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몇몇 기사들은 아예 대놓고 자신을 무시해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창을 검처럼 휘둘렀다는 것은 그만큼 검을 들고 싶어 하는 자신에 대한 무언의 압력이었다. 빨리 공을 세워 창이 아닌 진짜 검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고 싶다는 발악처럼 말이다.
루카스는 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래, 난 검을 들고 싶어. 창이 아닌 검이어야만 해!”
루카스의 눈빛이 빛났다.
분명 그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인지 몰랐다. 소년병으로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전장에서 날아다녀도 그 공은 모두 기사들에게 돌아갔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반발하면 오히려 전장에 나갈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된다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다. 그래서 루카스는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분명 온다. 나에게 기회가 올 것이다. 그 기회를 난 꼭 잡고 말 것이야.”
루카스가 힘차게 중얼거렸다. 가슴에서 투지가 끓어올랐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창을 세우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오늘 연습은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았다.
군막으로 돌아가는 루카스의 등 뒤로 들끓는 투지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군막에 들어선 루카스를 발견한 제임스가 곧바로 달려갔다.
“대장, 왜 이제 와.”
“왜? 무슨 일 있어?”
루카스가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그러자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대장을 찾아.”
“날? 누가?”
루카스가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그러자 제임스가 곧바로 답했다.
“어제 병력을 이끌고 왔던 사람 중에 라미레즈 공작님의 둘째 아들이 있었는가 봐. 그 둘째 아들이 널 만나고 싶어 하던데.”
제임스의 말을 들은 루카스가 눈빛을 가늘게 하고는 곧바로 레이다를 불렀다.
“레이다!”
레이다는 기다렸다는 듯이 루카스에게 달려가 정자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이름 바이칼, 라미레즈 공작님의 둘째 아들, 현재 나이 19살. 결혼은 아직 안 했으며 라미레즈 공작님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음. 검술은 소드 익스퍼트에 올라섰다고 함. 왕국에서는 검술의 재능이 뛰어나고 머리 또한 좋아 천재로 불림. 라미레즈 공작님을 도우기 위해 라할트 지역으로 왔음. 그리고 현재 종자를 구한다고 함. 그 종자에 대장님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레이다는 정보통답게 바이칼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 옆에서 레이다가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모습을 본 제임스가 입을 쩌억 벌린 채 놀란 얼굴이 되었다.
루카스는 레이다의 말을 듣고 눈빛을 반짝였다.
‘소드 익스퍼트에 올라섰다고? 그 나이에?’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 왔다. 검술로 강해지려는 그에게 있어 바이칼은 어찌 보면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 루카스의 입가로 한 줄기 미소가 지어졌다. 그토록 기다렸던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왔다. 드디어 기회가 왔단 말이야.’
루카스는 애써 감정을 감추며 레이다에게 말했다.
“알았어.”
루카스가 대답을 하자, 레이다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루카스는 수련했던 자신의 창을 거치대에 놓고 말했다.
“나, 다녀올게.”
“알았어, 대장.”
“다녀와.”
제임스와 에그가 대답을 했다.
루카스가 군막을 나가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설마 진짜로 대장이 백작님의 종자가 되는 건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럼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
에그의 말에 제임스는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침묵을 지키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뒤에 있던 아힐도 두 사람의 대화를 살짝 엿듣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군막 입구를 바라보며 쓸쓸한 눈빛이 되었다.
2
바이칼의 군막 입구에 선 루카스가 안을 향해 말했다.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들어와!”
목소리가 들리자 루카스는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정면의 책상에 황금빛이 일렁이는 금발의 바이칼이 앉아 있었다.
바이칼은 루카스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와.”
루카스는 바이칼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엷은 연두색 눈빛에 갸름한 얼굴, 하얀 피부는 이곳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만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날이 잘 선 검과 같이 예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루카스는 바이칼을 향해 인사를 했다.
“루카스입니다.”
“알고 있어, 우선 자리에 앉아.”
바이칼이 앞의 의자에 앉기를 권했지만 루카스는 거절을 했다.
“아닙니다. 전 서 있는 것이 편합니다.”
“그러든지.”
바이칼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루카스를 보며 곧바로 말했다.
“이곳에 왜 왔는지 알고 있지?”
“네, 백작님께서 절 종자로 삼고 싶어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맞아. 이곳으로 오면서 너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어. ‘죽지 않는 소년병’이라고 하던데.”
“그리 불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장에 나갈 때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로 임할 뿐입니다.”
루카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을 했다.
그 모습에 바이칼은 미소를 지었다.
“뭐, 어쨌든 좋아. 나와 함께하겠어?”
바이칼의 물음에 루카스가 대뜸 말했다.
“저에게 거부권이 있습니까?”
루카스의 말에 바이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약간 당황한 것이다.
“그, 그야 당연히 뭐…….”
바이칼이 말끝을 흐리며 얼버무렸다. 그러자 루카스가 담담히 말했다.
“거부권이 없다면, 어차피 백작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 제게 무슨 권한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명령이 내려지면 따를 뿐입니다.”
루카스의 말에 바이칼의 눈빛에 이채가 발했다.
‘어라? 요 녀석 재미있네.’
바이칼은 속으로 생각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아아, 난 억지로 시키지는 않아. 게다가 난 강한 네가 마음에 들어. 이건 나의 솔직한 마음이야. 너도 이런 나를 믿고 같이했으면 하는데.”
바이칼의 말을 듣고 루카스는 그를 응시했다. 실실 웃고는 있지만 눈 속에 느껴지는 진심과 소드 익스퍼트에 올라선 그라면 같이해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바이칼의 종자를 하다가 그의 눈에 들면 공작 가문의 검술도 익힐 수 있고, 마나듐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라미레즈 공작 가문이야말로, 바라논 왕국의 4대 공작 가문 중 하나이지 않는가.
그 생각에 미치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조금 전 거부권에 대한 말은 아무리 말단 소년병이라고는 해도 한 번 튕겨 주는 센스 정도는 있어 줘야 할 것 같아서 그리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괜히 좋아하며 냉큼 승낙을 해 버리는 것이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네, 같이하겠습니다.”
“하하하, 승낙할 줄 알았어. 어쨌든 잘 부탁해.”
자리에서 일어난 바이칼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손을 내민 모습을 보고 루카스는 갑자기 멍해졌다.
“뭐해, 손 민망하게 만들 거야?”
바이칼의 말에 루카스는 얼떨결에 손을 내밀었다. 바이칼이 냉큼 손을 잡으며 악수를 하였다.
“어쨌든 같이하게 되었으니 잘해 보자.”
“아, 네에…… 백작님.”
루카스가 머쓱하며 대답했다.
악수를 하던 바이칼이 뭔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아, 참! 나이는 내가 많은 것 같은데, 그저 편하게 날 형처럼 편히 대했으면 좋겠어.”
바이칼이 웃으며 말하고, 루카스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해도 됩니까?”
“하하하, 당연하지.”
바이칼의 확답에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백작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래, 넌 나의 종자로서 앞으로 내 옆에 꼭 붙어 있으면 돼.”
바이칼은 연신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루카스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백작님.”
“왜?”
“종자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입니까? 제가 처음이라…….”
루카스가 쭈뼛거리며 말을 하자, 바이칼이 웃으며 말했다.
“후후, 크게 걱정하지 마. 그냥 항상 내 옆에 붙어 있다가 내가 위험에 빠지면 도움을 주면 돼. 물론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단지 그거면 됩니까?”
루카스가 재차 물었다.
“그래, 그거면 돼. 아! 내가 부탁하는 일도 하면 되는 것이고.”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루카스의 눈이 빛났다.
왜냐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공을 많이 세울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