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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주 1권(6화)
Chapter Three 떠나다(2)
4
파티는 별게 없었다. 그냥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성인식 파티는 끝나 있었다.
“보검 세아드라.”
루멘이 검은색의 빛깔을 뽐내는 검을 들었다.
성인이 된 선물로 그의 아버지가 준 것인데, 귀족이 사용하는 검보다는 용병이 사용하는 검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볼품없는 검이었다.
검 손잡이도 투박하고, 장식도 없었다.
하지만 검신은 달랐다.
햇빛을 반사하여 다른 곳을 비추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검신은 깨끗했다. 특히 검날은 나뭇잎을 살포시 올려 주면 알아서 반으로 두 동강이 났다.
할버드 제국 십이명검 중 하나이며, 타밀론 후작가의 사대보검 중 하나인 세아드라.
안타깝게도 사대보검 중 가장 낮게 평가되는 검이지만, 그래도 제국의 십이명검 중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검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자신에겐 과분한 검이었다.
“아버지 생각은 다르단 건가…….”
루멘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아버지는 어렴풋이 자신의 실력을 알아챘다. 정확하겐 모르지만, 아무튼 자신의 실력이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뛰어나단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이 카온을 위한다는 것쯤은 단번에 눈치를 챘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이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카온의 후계자 문제다.
예전의 아버지라면 할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카온을 후계자로 만들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제국에서 고마워해야 할 존재가 되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아마 지금이라면 오로지 순수한 실력만 가지고 판가름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대가 이 검에 실려 있는 것이겠지…….
“제길.”
루멘으로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엔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과 똑같아질 것이다.
“비싼 검 받아 놓고 왜 그러십니까?”
루멘이 인상을 찌푸리자, 옆에 있는 피터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응? 아, 그냥 그런 일이 있어.”
루멘이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서? 이 개새끼들은 뭐야?”
“말조심하세요. 늑대예요.”
루멘이 자신의 눈앞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십여 마리의 늑대들을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듣자 하니, 이 개새끼들을 사는 데 100골드나 들었다며?
‘네가 진짜 정신줄을 놓았구나.’
100골드라면 상당한 거액이다. 100골드면 좋은 집 한두 채는 그냥 짓고도 남는다. 그런 돈을 개를 사는 데 쓰다니…….
평소에 돈을 밝히는 피터와는 상당히 상반된 모습. 루멘으로선 당연히 피터가 ‘드디어’ 미쳤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개든 늑대든. 이렇게 고분고분하면 그냥 동네 똥강아지지, 뭐.”
“혈통 좋고, 몸 좋은 놈들로 고르고 고른 겁니다. 물론 귀족들의 감상용이라 허우대는 멀쩡해도 실속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야생의 본능을 깨우면 아주 미친 듯이 헤집고 다닐 겁니다.”
“늑대도 혈통 따지냐?”
개 같은 경우엔 혈통을 많이 따지는 것은 알지만, 늑대의 혈통을 따지는 것은 처음 들어 본 루멘이다.
“개보다 더 많이 따집니다.”
“그래? 그래서…… 이건 왜 산 건데? 그리고 야생의 본능은 무슨.”
“미러 영지가 어떤 곳인지 모르세요?”
피터의 말에 루멘이 곰곰이 생각했다.
하도 주변에서 안 좋다, 안 좋다 말이 많아 그냥 더럽게 안 좋고…… 쓰레기 수준이라고 알고 있었다. 뭐, 안 좋은 이유가 들끓는 몬스터 때문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그도 몰랐다.
“일단 환영의 숲에는 기본적으로 강한 놈은 없고, 크루틴 산맥 인근 지역에는 다행히 고블린, 오크 같은 중소형 몬스터만 출몰합니다. 물론 그곳 사람들로선 그걸로도 상당한 고역이지만, 그래도 싸움 잘하는 늑대라면 고블린, 오크 같은 것들 한두 마리는 그냥 잡죠.”
“병사 대용이라…… 그것도 후각이 좋으니 알아서 잡고 다니겠네.”
근데 루멘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놈이 착한 일을 할 리가 없는데, 분명 이것도 돈이 될 만한 일일 거야.
그런 생각이 들자, 루멘이 늑대들을 훑어보았다.
교배를 해서 순식간에 십만 마리의 늑대를 탄생시키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할 듯하고…….
뭘 하려는 거지?
“그렇죠. 그리고 이놈들이 오크하고 고블린을 잡으면 그것들이 전부 돈으로 바뀝니다.”
아…… 그런 방법이었냐?
몬스터 가죽이 흔하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본전 뽑으려면 최소한 십 년은 걸릴 텐데…….
‘네가 인내심이 그렇게 깊을 리가 없을 텐데?’
루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피터가 말을 이었다.
“크루틴 산맥에 있는 몬스터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 줄 압니까? 아마 얘들이 십 분에 한 마리꼴로 잡는다고 쳐도,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다 못 잡습니다. 얘들은 앞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줄 사냥개가 되는 겁니다.”
피터가 후후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몬스터 가죽의 질이 높을 리가 없으니, 양으로 승부하겠단 것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응? 잠깐만, 너 분명 사냥…… 개라고 했는데?’
루멘이 이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피터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귀찮게 병사들 돌리는 것보다 편하고, 싸지 않습니까? 음식도 알아서 다 먹을 거고, 무기도 안 들어가고, 다쳤다고 질질 짜지도 않고! 얼마나 좋습니까?”
피터가 ‘어때? 나 좀 천재지?’라는 눈빛으로 루멘을 쏘아보았다.
네네, 너 잘나셨습니다.
루멘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피터의 입에 자그마한 미소가 걸렸다.
“아무리 미러 영지가 쓰레기라는 소리를 들어도 살아날 구멍은 있습니다. 우선 타밀론가에서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면…… 그리고 나중에 흐흐. 예전부터 말했지만, 7대 3인 겁니다.”
무슨 상상을 그리하는지, 입이 귀에 걸려 죽으려 하는 피터를 보며 루멘이 고개를 저었다.
“예? 이제 와서 바꾸겠다는 겁니까? 좋습니다. 6대 4! 그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
피터가 루멘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거 말하려는 게 아니라…….
루멘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 안 됩니다. 절대 안 돼요! 어디서 감히 제 돈을 먹으시려고…….”
네 돈 먹었다간 배탈 날 거 같아서 안 먹어, 인마.
“그게 아니라고. 미러 영지는 망한다.”
루멘이 딱 잘라 말했다.
루멘의 말에 피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 소리야 그게?
“말 그대로 망한다. 그것도 아주 폴싹! 두 번 다시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트리고 싶지만, 이미 망한 영지니, 뭐…… 그냥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어야지.”
루멘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피터가 눈을 부릅뜨더니 식탁을 탕 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미러 영지를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하다니요?”
“그럼 미러 영지를 발전시킬까?”
피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루멘이 그럴 리가 없다. 저놈은 지금의 자신보다 잘난 모습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나는 딱 이 정도 수준. 그 이상은 절대 안 돼!’라고 입버릇처럼 외치는 루멘이 아니던가?
“게다가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봤자 적자만 나는 영지야.”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닙니다!”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착해졌냐?”
“이 개새끼들을 보시라고요!”
피터가 울분을 토하듯 소리쳤다. 그에 절로 루멘의 시선이 늑대들로 향했다.
아…… 100골드?
미래에 대한 투자였던 거냐?
“그리고…… 멀쩡한 영지를 망하게 한다고요?”
순간 피터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의 두 눈에 살기가 이글거렸다.
말 한 마디 잘못하면 당장이라도 자신의 심장에 단검을 쑤셔 박을 기세였다.
“……내가 실언했다.”
루멘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피터가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루멘의 사과를 듣자, 피터의 두 눈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기가 사라졌다.
평소의 온화한(?) 눈빛으로 돌아온 피터를 본 루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후. 그래, 적당하게만 키우자. 너무 잘나지도 않게, 너무 못나지도 않게. 돈은 네가 알아서 챙겨라.”
루멘이 체념했다는 듯이 말하자, 피터의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