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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주 1권(8화)
Chapter Four 주인(2)


1

타밀론 후작령 내에 속한 미러 영지지만, 가는 거리는 꽤나 멀었다.
벌써 사흘이나 이동했으나, 미러 영지에 도착하려면 여드레는 더 가야 했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달리던 마차 두 대는 밤이 되자 멈추어 섰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해야겠습니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아론의 말에 루멘이 마차에서 일어났다. 루멘이 일어나자, 루시도 잇따라 일어났다.
마차에서 일어난 루멘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마차의 짐칸이었다. 마차의 짐칸을 들춰 본 루멘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론, 식재료가 부족한데?”
짐칸에 있는 식재료는 겨우 고기 반 덩이와 야채 몇 개뿐이었다.
소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두 명만 먹으면 끝나는 양이었다.
“원래 오늘 마을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마차 바퀴가 부서지는 바람에…….”
아론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점심 즈음 마차 바퀴가 부서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여분의 마차 바퀴 따위는 없었기에 그 자리에서 아론이 즉석으로 바퀴를 만들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제자리에 있거나 사람이 마차를 들고 움직여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아론이 나무를 깎아 바퀴를 만드는 데 대략 3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지금부터 3시간 정도 이동을 한다면 마을에 도착은 하겠지만, 벌써 날이 저물었다.
더 이상 이동할 수는 없었다.
아론은 확실하게 계획을 하여 식재료를 준비했으나, 마차 바퀴가 부서지는 예상치 못한 사정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지. 아이린?”
루멘이 일행들 중 가장 먼저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여인을 불렀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혼자서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이린이 루멘을 쳐다보았다.
“사냥 좀 해 올래?”
루멘의 말에 아이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스카가 루멘에게 다가왔다.
“저…… 공자님? 아무리 그래도 여자에게 사냥을 맡기는 건…….”
“기사잖아.”
루멘의 말에 스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은 질풍 기사단에 단 두 명밖에 없는 여기사 중 한 명이었다. 말도 적고, 표정 변화도 별로 없지만, 얼굴은 상당히 예뻐 얼음장미라는 낯간지러운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질풍 기사단에 들었다는 것 자체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오러 나이트의 기사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전에 아이린은 여인이었다.
레이디(Lady).
기사로서 응당 존중하고, 지켜 줘야 할 존재인 것이다.
“그렇지만 여자 혼자 사냥하는 것은 아무래도…….”
“몰랐어? 아이린 사냥꾼 출신이야.”
“사냥꾼 출신이요?”
“그래. 하루에 동물 수십 마리씩 잡아서 후작령의 동물들 씨를 말렸다더라.”
“네? 그게 말이 됩니까?”
“당연히 안 되지. 소문이니까.”
소문은 언제나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아이린이 하루에 동물 수십 마리를 잡았다는 것도, 후작령에 있는 동물의 씨가 말랐다는 것도 다 과장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과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가 사실이기 때문.
아니, 잠깐만.
그걸 떠나서 아이린은 기사잖아?
기사에게 사냥을 맡겨도 된단 말인가? 사냥은 응당 병사가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곳에 노련한 병사 따윈 없으니 당연히 순번이 기사에게 넘어가게 되지만, 그렇다면 자신을 시켜도 될 텐데.
스카가 이렇게 따지려는 순간, 루멘은 주저없이 자신의 창을 손질하고 있는 알렌을 불렀다.
“그럼 고기는 해결됐고. 알렌.”
“왜 그러십니까?”
“땔감 좀 모아 와.”
“땔감이요?”
알렌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땔감 많이 가져오지 않았나요?”
“다 떨어졌어.”
루멘의 말에 알렌이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자신의 창을 들어 보였다.
“공자님, 제가 사용하는 무기는 창입니다. 한데 공자님은 검을 사용하시지 않으십니까? 당연히 검을 사용하는 공자님이 땔감을 모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습니까?”
“…….”
알렌의 얼토당토않은 반박에 루멘이 지그시 그를 쳐다보았다.
알렌은 루멘이 계속 자신을 쳐다보자 약간 뻘쭘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자신이 아니었다.
알렌 또한 마찬가지로 루멘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루멘의 눈동자가 자신의 목을 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꿀꺽.
루멘의 목젖이 꿀렁였다.
“…….”
알렌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등 뒤에선 식은땀도 줄줄 흘렀다.
게다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꿀꺽. 꿀꺽. 꿀꺽.
연신 루멘의 목이 꿀렁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가, 갔다 오겠습니다.”
두려움을 참지 못한 알렌이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렌이 황급하게 일어나자, 스카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알렌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왜 저래?
하지만 딱히 알 방도가 없기에 묵묵히 그 광경을 쳐다보기만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알렌이 황급히 저 앞에서 걷고 있는 아이린을 불렀다.
“아이린, 같이 가자!”
알렌이 후다닥 아이린을 향해 뛰어갔다.
점점 멀어져 가는 알렌을 향해 루멘이 외쳤다,
“빨리 안 갔다 오면 네 창을 땔감으로 쓰마.”
루멘의 장난 반, 진심 반 섞인 말에 알렌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빨라졌다.

“저…… 공자님?”
스카가 모닥불을 쬐고 있는 루멘을 불렀다. 루멘이 고개는 돌리지도 않고 눈길만 힐끗 스카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서 말하라는 뜻.
“피…… 피…….”
스카가 ‘피’를 계속 중얼거렸다. 계속 ‘피’만 되풀이하는 스카를 딱하게 여긴 루멘이 짤막하게 말했다.
“피터.”
“아! 그래요. 피터 씨와는 어떻게 아는 겁니까?”
스카의 말에 루멘이 모닥불을 향해 손을 조금 더 가져다 댔다.
밤바람이 꽤나 쌀쌀했다.
“저번에도 물어보지 않았나?”
“저번에는 아론과 알렌 씨에 대해서 물었었습니다.”
일행들 중 아이린과 루시는 알고 있는 스카였으나, 나머지 세 사람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루멘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냥 간단하게 ‘친구’라고만 말했다.
제대로 이해는 되지 않았으나,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지만.
“행정관. 가문에서 꽤나 유능하다고 알려졌었는데, 몰랐나 봐?”
“아, 예……. 제가 워낙 검술 쪽을 제외하면 신경을 쓰지 않아서.”
“하긴.”
루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스카가 검술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다 하더라도 피터를 몰랐을 확률이 높았다.
타밀론가(家)가, 그리고 저택이 얼마나 큰데 있는 사람 모두를 안단 말인가?
루멘 또한 아직까지 타밀론 후작령에 있는 귀족이 누구누구인지 다 외우지 못한 실정이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다 익었다.”
루멘이 지글지글 다 익은 고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손에 화상을 입을 행동이었으나, 루멘은 엑스퍼트의 실력자다.
마법에 의해 생성되거나, 인위적으로 온도를 끌어 올린 불이 아니고선 위해를 가할 수 없었다.
불속에서 고기를 낚아챈 루멘은 고기 세 점을 떼어 하늘을 향해 던지고, 반 덩이를 자신의 옆에 던졌다.
하늘로 던진 고기는 붉은 깃털의 매가, 바닥에 던진 고기는 잡종인 듯 흰색과 검은색의 털이 조화를 이룬 고양이가 받아먹었다.
“저 새와 고양이는 또 뭡니까?”
출발할 때부터 따라오던 동물들이다. 처음에는 자신들을 따라오는 것이 이상하긴 했으나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루멘이 고기까지 던져 주자, 루멘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애완동물이야, 애완동물.”
“하지만 본 적이 없습니다만…….”
“당연하지. 야생에서 자라는 애완동물이니까.”
루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야생에서 자라는 건 애완동물이 아니라 야생동물이죠.’라고 말해 주고 싶은 스카였으나, 사사로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딱히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저 늑대들 말입니다.”
스카가 마차에 묶인 상태로 잠을 청하고 있는 수십 마리의 늑대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계속 데려가실 겁니까? 아무리 야성(野性)이 사라졌다지만, 늑대들이지 않습니까? 혹여나 늑대들이 마을이나 영지에서 난리라도 부린다면…….”
“난리를 부려서 기물을 파손하면 물어 주면 되고, 사람을 죽이려고 하면 그전에 패서 말리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미러 영지에 끼칠 피해가 있을지 모르겠다. 반대로 영지민이 안 잡아먹으면 다행이지.”
루멘의 말에 스카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부터 똥고집이 강하긴 했으나…… 성인이 되고 나서 유독 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대화 자체가 제대로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타밀론 후작령의 본성(本城)을 벗어나고 나서 사람이 상당히 뒤바뀐 듯했다.
‘집을 떠나서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멘은 잠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거의 반독립을 한 것이다.
뭐, 차차 괜찮아지겠지.
“알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스카가 고개를 끄덕인 뒤 모닥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고기가 다 익었다.

2

세상을 위시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인간.
인간은 마나라는 알 수 없는 기운들을 사용하여 다른 생물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생물들의 지배자가 된 인간들은 서로서로 규율을 정하고, 세계를 나누어 가졌으며, 패를 나눠 때로는 서로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왕국이 세워지고, 제국이 세워졌으며, 각기 서로를 경계 또는 협력을 하며 공생하고 있었다.
그런 왕국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영지.
대륙의 중부를 아우르는 대제국인 할버드 제국 <최고의 쓰레기 영지>로 낙인찍힌 미러 영지.
비록 세간의 평가는 저질스럽기 그지없을지라도, 그곳에 사는 영지민들은 딱히 이렇다 하게 슬프거나 불행하진 않았다.
행복은 상대적인 거니까.
그들도 웃고, 울며, 배고파하고, 밥을 찾으러 다녔으며, 유흥을 즐기기도 하였다.
그래.
지금과 같은 상황만 아니라면.
“막아, 이 씨발 새야!”
“씨발 놈아, 나는 두 마리다. 너나 막으러 가!”
미러 영지의 성인 남성, 흔히들 말하는 미러 영지의 시민들이 고블린들과 대치중이었다.
덩치는 1미터밖에 되지 않으며, 정수리에 검정색의 뿔이 난 녹색 피부의 괴물, 고블린.
덩치는 아이들보다 못하지만 고블린들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의 뿔에는 강한 독성이 있어 자칫하여 상처라도 나면 해독제를 구하지 못하는 이상 그날로 세상 하직하기 때문이다.
“이 개 같은 고블린 자식들!”
그중 미러 영지의 젊은 촌장, 로칸이 매섭게 창대를 휘두르며 고블린들을 죽여 나갔다.
로칸의 태생은 미러 영지지만, 미러 영지를 빠져나와 용병으로서 활동했다.
A급 용병이라는…… 언제든 기사가 될 수 있는 실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쓰레기 같은 고향이라도……. 고향만큼 편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A급 용병으로 활동했을 정도로 뛰어난 무술 실력을 지닌 로칸은 고블린들을 미친 듯이 잡아 팼다.
서걱! 푸슈욱!
창날에 고블린들의 목이 날아가고, 창끝에 고블린들의 심장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