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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주 1권(9화)
Chapter Four 주인(3)
미러 영지의 절대적인 수호자, 로칸!
그가 활약해 준 덕분에 꽤나 쉬이 고블린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고블린들을 막아 낸 영지민들이 환호성을 내뱉었다.
“와아아아! 이겼다! 이겼어!”
“하하하! 내가 나섰는데 이 정도쯤이야!”
“역시 로칸…… 아니, 촌장님이야. 하하. 너그들 방금 봤냐? 한 번에 그 고블린 새끼들 열 마리가 날아가더라.”
영지민들의 말에 로칸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 다들 이건 아무것도 아입니다. 근데…… 쪼까 이상한 것이…….”
로칸은 말을 하다 말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고블린들을 쳐다보았다.
“저긋들이 너무 빨리 도망가는 것이…….”
“하하! 이 사람도, 별 걱정은. 당연히 자네 실력이 뛰어나서 아닌가!”
영지민들의 일관된 칭찬에 로칸이 하하 웃었다.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런가유?”
“그라모!”
한 영지민이 외지에서 말을 배워 이상해진 로칸의 말투를 따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른 영지민들이 깔깔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지를 지켰다는 사실에 모두들 기뻐하며 부상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송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쿵! 쿵! 쿵!
돌연 굉음이 들려온다.
로칸이 인상을 찌푸리고, 굉음이 들려오는 곳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쿠워어어―!]
우렁찬 포효가 영지 전체가 떠나갈 듯 울려 퍼졌다.
“쿠워어어?”
어디선가 들어 본 느낌이다.
갑자기 들려온 포효 소리를 조금씩 따라 하던 로칸은 곧이어 인상을 일그러트려야 했다.
기억났다!
“오, 오우거…….”
오우거(Ogre)!
생김새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지나치게 다부진 몸, 그리고 무려 7미터에 달하는 신체를 가진 몬스터들의 제왕.
일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은 산을 부수고, 뛰어난 기사들의 검이라 할지라도 놈의 가죽조차 뚫지 못한다고 한다.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라고 보니…….”
로칸이 인상을 찌푸렸다.
달달달.
생각해 보니 자신을 제외한 모든 영지민들이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하니, 아마 방금 전 포효 소리 때문인 듯싶었다.
피어라고 하는 오우거의 기합성.
그 기합성에는 오우거가 품고 있는 마기가 스며들어 있어 일정 수준의 실력이 되지 않는 존재들은 그 피어 소리만 들어도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꼴깍.
절로 침이 넘어갔다.
창을 쥔 손도 바르르 떨렸다. 그것을 가까스로 참아 내며 창대를 강하게 잡았다.
이곳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이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운만 좋으면 몬스터들의 제왕이라 불리는 오우거도 상대할 수 있다. 예전 동료들과 함께 오우거를 한 번 잡아 본 경험이 있지 않던가?
쿵! 쿵! 쿵!
육중한 덩치의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
그것이 들려온 것과, 방금 전 오우거의 비명 소리로 짐작되는 소리가 난 곳이 일치했다.
로칸이 그곳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왔구나!”
모습을 드러낸 괴물을 보고 로칸이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자신의 창을 뒤로 스륵 물렸다.
창끝에 온 힘을 실었다.
[크워어!]
오우거도 로칸을 발견하곤 포효를 내뱉었다.
녀석은 자신을 향해 위험해 보이는 무기를 겨누고 있는 로칸을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쿠웅!
녀석이 지면을 밟자,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상당한 체중을 발에 실은 듯!
로칸이 자신의 온몸 곳곳에 퍼져 있는 차크라를 다리와 팔, 어깨, 등에만 몰아넣은 뒤, 남은 차크라는 모조리 자신의 창을 향해 흘려보냈다.
파아앗!
그의 창에서 노란색의 오러가 물결치듯 샘솟았다.
뇌전의 오러!
“주거라앗!”
로칸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오우거를 향해 몸을 튕겼다.
그의 창에서 흐르는 오러는 창끝으로 점점 모이더니, 이내 곧 오우거의 복부와 부딪치자 폭발했다.
콰르와앙!
촤자자자자작―
강렬한 뇌전의 기운.
로칸은 이 한 방에 자신이 있었다. 이것이라면 설사 오우거가 아니라 오우거 할아버지에게라도 충분이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손의 감각 또한 확실했다.
씨익.
성공했단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거의 모든 차크라를 일시에 뿜어내었기에 몸은 축 늘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괜찮다.
승리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커헉!”
퍼어억!
강렬한 충격.
로칸이 영문도 모른 채 저 멀리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니, 자신의 창에 복부가 꿰뚫린 오우거가 흉포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크르으―]
“배, 배때기에 창이 박히고도 멀쩡한 거냐…….”
어이가 없었다.
저게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이야?
아니, 지가 무슨 트롤이야? 왜 창에 꽂히고도 멀쩡한 건데?
게다가…….
‘오러도 터졌잖아!’
뇌전의 기운이 흐르는 오러다. 그 오러가 폭발까지 했다. 한마디로 사람 수십 명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위력인 것이다.
쿵! 쿵! 쿵!
오우거가 힘자랑을 하듯 강하게 바닥을 밟으며 로칸에게 다가갔다. 로칸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뒤로 한 발짝, 한 발짝 물러났다.
승산이 없다.
그때, 로칸의 뇌리에 열심히 도망을 가던 고블린들이 떠올랐다.
‘고블린들이 사람보다 후각이 좋다더니…….’
그렇게 된 거였군.
오우거의 냄새를 맡고 미리 도망친 것이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오우거가 산 아래까지 내려왔단 말인가! 오우거는 몬스터들의 제왕. 즉, 크루틴 산맥에서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놈이 왜 하산한 것이냔 말이다!
‘인간 고기에 맛이라도 들렸나?’
딱히 생각나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몇 가지 생각들이 더 떠올랐다. 다른 오우거에게 자신의 지역을 빼앗겼거나 하는 등의 가설 말이다.
하지만 이내 곧 휘휘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딴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방법,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저 괴물을 쓰러트릴 방법을.
로칸이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오우거를 상대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오우거가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쿵쾅쿵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크워어어―!]
피어까지 내지른다.
차크라를 꽤나 많이 소비해서 그럴까? 피어의 영향이 미쳤다.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사고도 이상하게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근원적 공포라고 해야 할까?
로칸이 덜덜 떨리는 눈으로 오우거를 쳐다보았다.
파악―!
그때, 오우거가 자신의 배때기에 박힌 로칸의 창을 뽑았다. 오우거가 로칸의 창을 들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그냥 이쑤시개 같아 보일 정도였다.
[크와아악!]
아파서인가?
오우거가 괴성을 질렀다. 놈의 자기 주먹만 한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는 것은 로칸에게 상당한 공포로 다가왔다.
[크워억!]
오우거가 자신의 손에 들린 창을 로칸을 향해 휘둘렀다.
꼼짝없이 죽겠구나…….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영지민들까지 모두 죽겠지?
힘들게나마 연명해 오던 미러 영지가…… 겨우 오우거 한 마리 때문에 멸망하는 것인가?
하긴, 오우거가 산 아래로 내려온 것은 처음이니까.
쉬이익!
오우거의 우악스런 힘이 실린 창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보자 기분이 묘했다.
자신이 애지중지 아끼며 쓰던 창에 자신이 죽게 생긴 것이다.
그리고 창이 자신의 머리에 찍히려고 하는 순간, 로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시체가 눈뜨고 있으면, 그다지 기분이 좋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
꽈앙!
‘……꽈앙?’
소리가 이상한데?
로칸이 슬며시 눈을 떴다.
눈이 떠진다. 죽지 않은 것이다. 눈을 떠 앞을 보자, 웬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가 타원형의 방패를 들고 오우거의 창을 막아 내고 있었다.
“빨리 도망쳐라!”
기사가 돌연 로칸을 향해 호통을 쳤다. 로칸이 얼떨떨해하면서도 기사의 명령에 따랐다.
로칸이 멀리 떨어진 것을 확인한 기사는 곧장 방패를 옆으로 기울이며 오우거의 창을 흘렸다.
퍼어억!
오우거의 창이 바닥에 깊숙이 꽂혔다. 무시무시한 힘이다.
기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오우거를 상대하는 것은 처음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타하앗!”
기사가 기합을 내지르며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는 순간, 자신의 검에 차크라를 주입했다.
파아앗!
기사의 검에서 옅은 하늘색의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검에서부터 흘러넘쳤다.
촤아악―
기사가 검을 휘두르자, 오우거의 팔이 베여 나갔다. 더군다나 상처가 나는 순간 얼어 오우거가 느끼는 고통이 배가 되었다.
[크우어어어어억―!]
오우거가 비명을 질렀다. 기사는 오우거가 비명을 지르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으며 오우거의 품으로 들어갔다.
기사도 꽤나 건장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우거와 비교하자니 어린아이만도 되지 못했다.
겨우 오우거의 허벅지까지밖에 되지 않는 키지만, 기사는 곧장 땅을 밟고 도약하여 오우거의 다리에 자신의 검을 꽂아 넣었다.
푸슈욱!
기사의 검이 오우거의 다리에 꽂히자마자 검은색의 피가 기사를 덮쳤다.
[크워어어어!]
오우거의 비명 소리가 다시 한 번 로칸의 고막을 찢어 버릴 듯 울려 퍼졌다.
로칸이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기사와 오우거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넨 누구지?”
젊은 청년의 목소리.
로칸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목소리로 쉽게 예상했듯이 젊은 청년이었다.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누구냐고?
그건 자신이 묻고 싶은 말이다.
로칸은 일단 순순히 답해 주었다.
“이 마을의 촌장 되는 사람이오만.”
로칸의 말에 청년이 로칸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촌장치곤 조금, 아니 많이 젊어 보여서일까?
청년이 약간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로칸을 쳐다보았다.
“흠…… 촌장? 그럼 이곳이 미러 영지가 맞는가?”
“그, 그렇긴 한데…….”
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의 말투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그 여유로움이 로칸을 당황케 했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여유를 부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눈앞에 오우거와 갑자기 나타난 기사가 투덕질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미러 영지에 이곳 말고도 마을이 있나?”
청년의 말에 로칸이 고개를 저었다.
미러 영지는 크기는 크지만, 마을은 이곳 한 곳뿐이다. 최소한 로칸이 아는 한 그랬다.
“그럼 이 마을 전체를 그냥 미러 영지로 보면 되겠군.”
청년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로칸이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거여? 아니, 당신은 대체 뉘시여?”
“나?”
로칸의 말에 청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온 영주다.”
“여, 영주?”
로칸이 물었다.
대체 이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하나, 자신도 미러 영지가 쓰레기 영지라 불려 마땅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한 영지에 어떤 미친놈이 영주가 되려 한단 말인가?
“이제라도 알았으면 예를 차리어라.”
루멘이 로칸을 향해 히죽 웃으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