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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주 1권(10화)
Chapter Five 미러 영지의 신임 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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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어린 소녀가 열심히 산길을 내달렸다.
그녀의 어깨에서는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옆구리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파…….’
너무나 아프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은 필히 죽을 테니까.
앞으로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온다.
마을로 가서 일단 산에 자이언트 오크(보통 오크보다 덩치가 두 배나 크고 힘이 강해 오러 나이트 정도의 실력자만이 상대가 가능한 오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마을 사람들도 살 테니까. 또…… 혹시나도 모르지만, 아버지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러기엔 소녀의 몸은 말이 아니었다.
자이언트 오크에 의해 뜯겨져 나간 왼팔에서 피가 하도 많이 흘러 그런지, 머리가 점점 멍해지고 있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조,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녀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걸으라고, 쉬지 말고 걸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무리한 그녀의 육신은 더 이상 그녀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풀썩.
그녀는 주저앉았다.
“이, 일어나야 해.”
이젠 목소리까지 부들부들 떨린다.
자신의 몰골이 어떤 상태인지는 자신 또한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도 죽어 가고 있을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흑. 흐윽. 왜, 왜…… 왜 아버지는 사냥꾼인 거야? 그냥 농사나 짓고 살지…… 왜…….”
또…… 나도 사냥꾼 따윈 하기 싫은데!
사냥꾼의 딸이기에, 자신 또한 사냥꾼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싫었다. 그런 일 따위…….
사냥꾼은 이렇게 목숨 바쳐 사냥해 봤자 그날 끼니조차 때우기도 힘든 직업.
태생이 저주스럽다.
모든 게 원망스럽다.
그녀의 아버지가, 아버지가 최소한 농민이었어도 이런 짓은 안 했을 텐데.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만약, 만약 자신이 괜히 이번 사냥에 따라나서지만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아버지는 무사할 텐데…….
“으아아앙!”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하염없이 목 놓아 울고 있을 때였다.
“뭐야, 이 계집은.”
귀족 같아 보이는 두 사내아이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1
“허억! 허억!”
스카가 연신 거친 숨을 내뱉었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힘들어서 못하겠어!
적당히 오우거를 쫓아내기만 하려는 생각에 오우거를 몰며 산속으로 천천히 이동하던 스카는 실수로 발이 엉켜 넘어져 버렸다.
“이런 젠장!”
오우거의 묵직한 주먹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본 스카가 다급하게 옆으로 몸을 굴렸다.
콰앙!
스카가 있던 자리에 오우거의 주먹이 꽂혔다.
오우거는 성난 눈빛으로 스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 스카는 쥐고 있던 방패를 오우거의 눈을 향해 던졌다.
애석하게도 오우거는 눈을 감는 것으로 방패를 막아 버렸다. 눈을 덮는 곳까지 더럽게 단단한 오우거의 피부 가죽 때문에 아무런 효과를 못 본 것이다.
오우거가 눈을 감자, 스카는 곧장 산을 향해 달렸다.
애초에 자신 혼자서 오우거를 상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오우거를 유인한 뒤 도망갈 생각에 푹 빠져 있는 스카가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풀 사이에서 한 인영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스카는 곧장 멈추어 서 그 인영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하지만 이내 곧 검을 거두었다.
인영의 정체는 질풍 기사단의 단 두 명밖에 없는 여기사 중 한 명인 아이린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린은 스카의 앞을 막아섰다.
“이봐, 일단 도망부터 쳐야 한다고. 오우거는 엑스퍼트 기사 한두 명이 상대할 정도의 몬스터가 아니야.”
이번 동행에서 아이린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단 사실을 안 스카는 자연스레 아이린에게 하대를 했다. 뭐, 일단 생긴 것만 따지고 봐도 진즉에 하대를 했어도 상관없었겠지만 말이다.
“…….”
아이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스카를 흘깃 쳐다본 뒤, 곧장 오우거를 노려보며 검을 뽑았다.
스르릉―
길이가 7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짧고 얇은 검이 뽑혀 나왔다.
은백색의 검신이 햇빛을 반사시키며 번쩍였다.
“지금 당장 도망쳐도 무사할지 모르는 판이라니까!”
스카가 아이린을 향해 역정을 냈다.
난 지쳐서 더 이상 싸우지도 못하겠다고! 너 혼자서 될 것 같아?
스카가 그런 눈빛으로 아이린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이린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크워어!]
또 위험한 물건을 든 인간이 자신의 앞을 막아선다.
오우거가 포효하며 아이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아이린은 자신의 품속에서 40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날이 톱니 모양으로 생긴 것이, 보통 방어 형식으로 많이 사용하는 소드 브레이커(Sword Breaker)였다.
우수에는 숏소드(Shot Sword), 좌수에는 소드 브레이커를 든 그녀는 두 검 모두에 붉은빛의 오러를 일으켰다.
숏소드에서는 5센티미터 정도의 오러가, 그리고 소드 브레이커에서는 톱니 모양의 검날이 만들어질 정도로 정교하고, 기껏해야 0.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오러가 만들어졌다.
극도로 섬세하게 오러를 다루지 못하면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슈왁― 촤아악!
그녀가 좌수에 쥐고 있는 단검을 오우거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오우거의 살가죽이 뜯겨 나갔다.
[쿠와아!]
오우거가 비명을 지르며 아이린에게 당한 팔의 반대쪽 팔로 그녀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는 재빠르게 옆으로 이동하며 오우거의 주먹을 피해 냈다.
오우거의 주먹이 애꿎은 바닥만 때렸다.
퍽!
오우거의 주먹에 맞은 바닥이 움푹 패여 들어갔다. 실로 무시무시한 괴력이다.
아이린은 오우거의 팔에 올라타 달리기 시작했다.
체구가 작은 그녀였고, 그에 비해 덩치가 상당히 큰 오우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땅을 달리듯 오우거의 팔 위를 달린 그녀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오우거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크어어어!]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탄 아이린을 떨어트리기 위해 오우거가 몸부림쳤다. 하지만 아이린은 뛰어난 균형 감각으로 오우거의 어깨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서 있었다.
부웅!
결국 오우거가 자신의 어깨 위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 순간.
파각―
그녀의 숏소드가 오우거의 머리에 박혔다.
어떤 생명체라도 머리가 꿰뚫리면 죽는다.
쿵!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오우거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뭐…… 저런…….”
스카가 멍한 눈빛으로 아이린을 쳐다보았다.
자신은 제대로 상대도 못한 오우거를 저리도 쉽게 처리하다니…….
말이 안 나왔다.
솔직히 여자라고 은근히 무시했다.
여성이기에 당연히 기사로서 존중하긴 했으나, 검술적인 실력에선 자신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본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충분히 위력적인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기분이라면, 스카는 아이린 정도라면 충분히 질풍 기사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 멍청한 놈!’
스카는 자신의 편협한 시야를 질책했다.
2
“저…… 존함이 어떻게 되시우? 아니, 어떻게 되세요?”
로칸이 정중하게 루멘에게 이름을 물었다. 일단 첫째로 루멘이 끌고 온 기사가 오우거를 때려잡았고, 루멘은 척 보기에도 돈 많은 상인이나 귀족의 자식처럼 보이는 것에다가 제 입으로 미러 영지의 ‘영주’라고 말했다.
몇 가지가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확실한 것은 루멘에겐 이곳의 사람들을 죽일 ‘힘’이 있다!
그것은 로칸 자신도 포함되는 일이었다.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순 없는 것이다.
“루멘.”
“루멘……. 루멘 님, 성은……?”
성이 있다는 것은 귀족인 것이고, 성이 없다는 것은 평민인 것이다. 루멘이 성을 말하지 않았기에 로칸이 운을 띄었다.
“타밀론. 루멘 반 타밀론이다.”
루멘 반 타밀론!
미들네임이 반이란 것은 그의 신분이 작위를 받은 정식 귀족이 아니란 것이며, 그의 라스트네임이 타밀론이란 것은 그가 대 타밀론가의 사람이란 것이다.
한마디로 루멘은 타밀론가의 자제!
꼴깍.
루멘의 말을 들은 로칸이 바짝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타밀론가가 어디던가.
그곳의 가주가 바로 미러 영지가 속한 타밀론 후작령의 주인이 아닌가?
‘드디어…….’
로칸의 두 눈에 희열이 가득 찼다.
그가 긴장한 이유는 루멘이 타밀론가의 자제라서가 아니다. 드디어, 드디어 타밀론 후작이 미러 영지를 뜯어고칠 생각을 한 것이다.
어떻게 뜯어고칠지는 모르나, 미러 영지를 개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타밀론 후작이 자신의 아들을 이곳으로 보냈겠는가!
죽으라고 보냈을 리는 없잖은가?
‘혹시 가짜 아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 방치해 두었던 미러 영지, 왜 갑자기 개발을 하려는 생각을 했을까?
루멘이 가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심은 순식간에 떨쳐 낼 수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어찌 타밀론 후작령 내에서 타밀론가의 자식이라고 사기를 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이곳에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피곤하군. 쉴 곳은?”
루멘의 말에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로칸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지, 지금 당장 모시겠습니다.”
로칸이 루멘을 데리고 온 곳은 그의 집이었다.
비록 허름하고 작으며, 비도 세고, 조금만 세게 바닥을 밟아도 부서지는 집이지만, 그나마 미러 영지에서 가장 크고, 가장 양호한 집이었다.
다른 집은 그냥 거적때기 몇 개 붙여 놓은 것에 불과했다.
“흠…….”
루멘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집을 아래위로 연신 훑어보았다.
루멘의 모습에 로칸은 바짝 긴장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그런 건가? 하긴, 자신 또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이니. 그래도 설마 기분 더럽다고 자신을 죽이지는 않겠지…….
“여덟 명이 살기에는 너무 좁은 곳 같군.”
루멘이 혀를 쯧 찼다.
그의 말에 로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당신하고 기사랑 여기사, 검사로 보이는 놈 하나, 짐꾼 하나, 시녀 하나, 책사로 보이는 놈 하나……. 짐꾼을 넣어도 일곱인데…….’
수가 안 맞는다.
공부하곤 담을 쌓은 자신이지만, 그래도 인간이라면 손가락 한도 내에서 수를 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은 손가락의 열 배까지도 수를 세고 계산할 수 있었다.
아까 싸우다가 머리를 맞았나…….
로칸이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자, 루멘이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여긴 네 집이 아니더냐?”
“아!”
루멘의 말을 들은 로칸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자신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귀족이 타인을…… 그것도 개미 새끼보다도 못하게 여기…… 지는 않겠지만, 비슷비슷하게 여기는 평민인 자신을 생각해 준 것이다.
얼떨떨한 기분이 들면서도 루멘의 배려에 감탄했다.
“제가 당장 다른 집을 찾아보겠습니…….”
로칸이 말을 채 다하기도 전에, 루멘이 그의 말을 잘랐다.
“됐어. 여자들이랑 자네만 들어오게. 다른 놈들은 그냥 야외 취침해도 되네.”
루멘의 말에 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로칸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
로칸이 뒤돌아보니, 창을 든 사내가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로칸을 노려보고 있었다.
살기를 뿜는 것은 그였다.
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은 다른 사내들도 마찬가지였다만.
아직 초가을이라 그런지 그리 춥지 않았다.
알렌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빌어먹을.”
한숨에 이어 연계로 욕지기까지!
잘나가던 직장을 잃은 30대의 젊은 가장처럼 알렌은 처량하게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아 멍한 눈빛으로 열심히 일을 하는 아론을 쳐다보았다.
저 멍청한 놈.
“야, 그렇게 일을 하면 공자님…… 아니, 이제는 영주님이지. 영주님이 들여보내 주겠냐?”
“그러고 가만히 놀고 있으면, 영주님이 친절하게 웃으며 들어오시라고 할 것 같아?”
아론이 입을 삐쭉 내밀며 답했다.
아론의 말을 들은 알렌은 순식간에 수긍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밉상 자식이 웃으면서 들여보내 줄 리가 없지.
그렇다면…… 나도 녀석처럼 일단 잠잘 곳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귀찮아…….’
귀찮다.
너무너무 귀찮다.
마을 제일 귀차니스트(?)였던 자신이기에, 아론처럼 천성이 노예인 녀석과는 다르게 아주 고귀한―이라기보단 그냥 게으른―자신은 저런 노동을 즐기지 않았다.
고로,
“그래도 난 안 해. 내 것도 해 줘.”
……아론에게 떠넘기겠다.
염치, 체면, 그딴 것 따윈 편할 수 있다면 포기(?)할 수 있는 알렌이었다.
“싫어.”
아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표정만 봐도 하기 싫다는 것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