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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주 1권(12화)
Chapter Six 알렌과 늑대(1)


0

“넌 꿈이 뭐야?”
루멘이 피터에게 물었다. 피터는 그런 루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꿈이요?”
“……응.”
피터의 표정이 묘해서 루멘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가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글쎄요. 그다지 낭만적으로 ‘꿈’이라고 할 만한 건 없습니다. ‘목표’라면 있지만.”
“그럼 목표가 뭔데?”
“궁금합니까?”
“응.”
안 궁금하면 왜 물었겠냐.
“어디어디에 사는 빌어먹을 자식을 냅다 후려갈겨 반 실신…… 아니, 그냥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싶습니다.”
피터의 말을 들은 루멘이 몸을 흠칫 떨며,
“설마 그 어디어디에 산다는 빌어먹을 자식이 명문가의 자제야?”
“어떻게 아셨습니까?”
피터가 놀란 눈으로 루멘을 쳐다보았다.
“거기다가 그 빌어먹을 자식이 너보다 어리지?”
“이야! 이거 대단하신데요? 신 받으셨습니까? 지금 당장 예언가 하시지요. 아, 그냥 돗자리부터 깔까요?”
피터의 말에 루멘이 인상을 찌푸렸다.
“됐어.”
“그러는 공자님은 꿈이 뭡니까?”
“나? 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부하가 되고 싶어.”
“……네? 뭔 꿈이 그렇습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굽어보고, 단 한 명의 사람을 올려다보는 그런 사람. 멋지지 않냐?”
“글쎄요. 이왕이면 모든 사람을 굽어보는 게 낫지 않습니까?”
“에이. 그러면 인생이 심심하잖아.”
“딱 한 사람, 공자님께서 올려다보시는 사람도 심심할 겁니다.”
“어, 진짜? 그러면 안 되는데…….”
루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모습에 피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뭐……. 뭐라 표현할 방법은 없는데, 진짜 병신 같네. 이런 상황을 말로 정의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되는 거야. 쯧.’
피터가 새삼 공부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꿈이라고 할 만한 게 하나 있네요.”
“‘어디어디’라는 말이 접두로 붙는 꿈이라면 그냥 조용히 하고 있는 게 네 신상에 이로울 것 같아.”
“그런 거 아닙니다.”
피터의 말에 루멘이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물었다.
“그럼? 뭔데?”
“타밀론 후작령보다 더 큰 영지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헤에? 대영주가 되고 싶어?”
“뭐, 그것도 그냥 대영주가 아니라 선정을 베풀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훌륭한 영주죠. 또 타 영지의 영주는 제 이름만 들어도 눈 내리깔고 벌벌 떨게 만드는. 패왕(覇王)이라고 해야 돼나, 현왕(賢王)이라고 해야 돼나……. 아니, 선왕(善王)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 중간쯤 되는 인물이 되고 싶네요.”
“피터는 똑똑하니까 잘할 거야.”
루멘의 칭찬에 피터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제가 조금 난 놈입니까.”

1

“잘하네.”
루멘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일하는 피터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꿈에는 영주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없다. 하지만 피터의 꿈에는 영주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영지가 있다.
이만하면 영지의 관리와 이익을 모두 넘기기에 충분하다. 피터는 자신에게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또 피터가 똑똑하단 것을 루멘은 잘 알고 있었다. 고리대금업자보다 더한 놈이란 사실을 똑똑히 인지한 지금 말한다면 코웃음 치겠지만, 그래도 옛날 감정이 개미의 더듬이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자신보다는 수십 배는 더 훌륭한 영주가 되리라.
“하암― 졸려라. 이만 잘까나.”
요즘 잠을 통 못 잔 루멘이기에 졸음이 쏟아졌다.
루멘은 영주이면서도 영지에 관한 건 피터에게 전부 떠넘기고는 임시로 마련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무책임한 인간의 표본이었다.

“우선 성벽을 쌓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여러분들이 쌓은 목책은 너무 부실합니다. 그냥 없는 거나 마찬가지네요.”
피터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아마 그들이 만든 듯하다.
“빠른 시일 내에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성벽을 쌓기 위해서 그리 크게는 짓지 않겠습니다.”
그러더니 피터는 곧장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미러 영지의 중앙에 흐르는 강물을 중심을 큰 원을 하나 그렸다.
직경이 백 미터에 달할 정도다.
“제가 그은 선 위에다가 성벽을 쌓으면 되겠습니다. 뭐, 그래 봤자 전문 기술자가 없으니 그냥 돌 쌓고, 그 위에다 나무를 덮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성벽만큼은 아닐지라도 목책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한쪽이 부서져도 무너져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또 나무가 부서져 쌓아 둔 돌이 흘러내린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적들이 불편할 따름이다.
돈도 적게 들고, 훌륭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로칸이 손을 들었다.
“할 말 있으세요?”
“예. 성벽을 쌓는 크기가 너무 짝습니더. 아무리 언제 몬스터들이 쳐들어올지 몰라도 그렇게 좁으면 사람 사는 데 지장이 있습니더.”
보통 성벽은 사람이 사는 구역을 테두리 치듯 쌓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피터가 그은 선의 원이 너무 작았다.
이 적은 사람들만 살기에도 부족한 크기다.
다른 영지민들도 로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성벽을 쌓는 구간이 너무 작았다.
“물론입니다. 마지막 방어선이니까요.”
“마지막 방어선이요?”
피터의 말이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로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벽 하나 쌓아 놓고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두 개, 세 개는 쌓아 놓아야지요. 어제만 하더라도 목책이 무너져 다 죽을 뻔했지 않습니까? 오우거 안 나타났으면, 다들 고블린들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하고 말았을 겁니다.”
피터의 말에 영지민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뚫릴 때마다 뒤로 물러나는 겁니다. 그러는 사이에 몬스터들을 상당수 죽일 테고, 그러면 안전하게 버틸 수 있지요.”
그 이후에도 영지민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을 풀어 말해 주었다.
우선 최소 인원이 버틸 수 있는 성벽을 먼저 쌓은 후, 그다음으로 조금 한적한 크기의 성벽을, 그다음으로 더 큰 성벽을 쌓으며 차차 영지의 크기도 늘려나간다는 것이었다.
땅 덩어리는 충분히 크지만, 사람이 사는 곳의 수는 상당히 적었다. 대부분이 토벌을 감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를 자랑하는 몬스터들의 영역이었다.
피터의 말은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하면서도 몬스터들의 영역을 차차 줄여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피터의 설명을 들은 영지민들은 하나같이 감탄했다.
대부분이 까막눈이지만, 그래도 생각을 하는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는 자원이 없습니다만, 몬스터들이 거주하는 영역에는 꽤 많은 자원이 있더군요. 나무가 가장 많지만, 채석장으로 쓸 만한 돌산도 있고.”
이미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피터다. 놀라운 사실은 이 주변에만 해도 개발을 감행하기에 충분한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 오랫동안 지났으니 여러 자원이 남아도는 것은 당연한 일.
“그건 저희들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걸 개발할 방법이 없어서…….”
“우선 안전만 확보되면 타 영지에서 사람들을 고용하거나, 타밀론가의 지원 아래 개발이 진행될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도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피터는 이참에 영지민들의 정신교육까지 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연설을 이어 갔다.
피터의 연설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좋아했다. 이때까지 방치한 미러 영지다.
타밀론가의 자제 분이 직접 영주로 취임했으며, 그를 보좌하는 사람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달콤했다.
이날, 피터는 미러 영지민들 가슴속에 희망이라는 이름의 불씨를 심어 놓았다.

2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피터가 그려 놓은 원의 선 위에 절반가량의 돌이 쌓였다.
높이는 대충 50센티미터. 중간 중간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기에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니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든 영지민들이 성벽을 쌓는 데 투입되었는데, 식량 문제는 루멘이 타밀론 후작령의 본성에서 나올 때 마차에 실어 온 식량으로 해결했다.
상당히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여 아껴 먹으면, 천 명이 보름은 먹을 양이었다.
가끔씩 피터가 영지민들을 굶길 때도 있었으니, 이 식량이면 충분히 두 달을 가고도 남으리라!
“아론, 빨리해.”
피터가 방금 막 잠에서 깬 아론을 닦달했다. 영지의 이익은 곧 자신의 이익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아론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자신의 공구함을 꺼냈다.
아론의 공구함은 커다란 가죽 가방이었는데, 그 가죽 가방에는 수백 개에 달하는 못들과 다섯 개의 망치, 그 외 돌 사포 등, 여러 공구들이 들어 있었다.
루멘을 비롯한 일행들에게는 노동의 달인이라고까지 불리는 아론이고, 일을 하는 것에 딱히 불만을 품거나 하지 않았다.
‘광산에서 노동하는 것보단 백배, 천배 나으니까.’
아론이 돌 사포를 꺼내어 어제 미리 잘라 둔 나무를 갈아 면을 매끈하게 한 뒤, 단검으로 이음새를 내어 나무판자를 서로 이어 주었다.
나무판자를 이어 디귿(ㄷ) 모양으로 만든 아론은 그걸 영지민들이 쌓아 둔 돌 위에 얹었다. 그러고는 망치질을 하여 나무판자들이 더 잘 안 떨어지게 한 뒤, 땅바닥에 닿는 나무판자 부분의 흙을 파내어 나무판자가 땅바닥 깊숙한 곳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한 다음 다시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상당히 많은 손이 가는 작업이었지만, 아론이 다하는 데 걸린 시작은 고작해야 30분 남짓.
신의 경지에 오른 속도였다.
“다 됐어.”
아론의 말에 피터가 나무판자를 툭툭 발로 건드렸다. 나무판자의 안에 많은 돌을 넣어 그런지 나무판자는 미동도 없었다.
“태산도 움직이는 힘이여, 나에게 그 힘을 부여하여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신체를 선사하소서.”
피터가 나지막이 주문을 외며 마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약간이나마 피터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몸이 단단해졌다.
피터가 그 후 나무판자에 양손을 대고 힘껏 밀었다.
여전히 나무판자는 미동도 없었다.
피터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아론에게 말했다.
“그럼 큰 돌 좀 주워서 나무판자 뒤에 붙여 놔. 그렇다고 너무 큰 건 안 되고, 한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알지?”
“…….”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곧이어 아론이 돌을 줍기 위해 사라지자, 피터는 곧장 자신의 귀여운(?) 늑대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피터의 손에는 고블린의 시체가 들려 있었다.
마법을 이용하여 몸을 차게 해 부패하지 않게 보관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다소 육질(?)은 떨어지더라도 향은 날아가지 않고, 구더기 따위의 벌레들이 살을 파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캉! 캉!
피터를 발견한 늑대들이 개소리(?)를 내며 반겼다. 피터가 웃음으로 화답하며 늑대들을 향해 고블린의 시체를 던져 주었다.
고블린의 시체가 자신들의 눈앞에 떨어지자 늑대들이 허겁지겁 시체를 먹어 치웠다.
“아주 잘 먹네.”
피터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쯤 되면 충분한 것 같다.
아마 이제 이들은 고블린을 자신의 먹이로 생각하리라.

처음 닷새간 늑대들은 쫄쫄 굶어야 했다.
이유는 모른다.
자신들의 주인인 피터가 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사흘 정도 굶자, 늑대들은 먹이를 스스로 구하기 위해 눈을 시뻘겋게 치켜뜨고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일단 자신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인간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미러 영지의 근방에도 토끼 같은 동물들이 살았으나, 생전에 사냥이라고는 해 보지 않은 늑대들로선 토끼도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이틀을 더 굶자, 피터가 늑대들에게 미리 냉동시켜 둔 고블린의 시체를 주었다.
처음에는 상당히 주저하다가 결국 고블린의 시체를 야금야금 맛있게도 먹었다.
닷새를 굶은 후 먹는 고기란!
늑대들은 고블린의 시체를 먹고 기뻐 날뛰었다.
그 후에도 피터는 계속해서 늑대들에게 고블린의 시체를 가져다주었다.
늑대들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이 고블린의 시체를 먹자, 피터는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착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늑대들도 밥값에다가 몸값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