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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주 1권(13화)
Chapter Six 알렌과 늑대(2)


3

“후우…….”
알렌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오우거의 사체에서 한 움큼의 고기를 잘라 낸 다음, 손으로 으깨어 주변에 뿌리고는 다시 옆으로 이동하여 같은 일을 반복했다.
오우거의 사체에서는 당연하게 오우거 특유의 냄새가 난다. 인간으로선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만 기감이 인간보다 몇 배는 더 발달한 몬스터들은 충분히 파악하고도 남았다.
먹이사슬에서 최상위에 존재하는 오우거의 냄새가 난다면, 그 어떤 몬스터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겁대가리 없이 덤비지 못하리라!
“내가 이 짓을 왜 하는 건지…….”
알렌이 작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마냥 안 하기도 뭐한 것이, 피터의 사상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 마라.’였으며, 현재 그는 ‘영주 대리’라는 신분도 가지고 있었다.
자신보다는 확실하게 높은 신분!
자신이 무슨 개혁가도 아니고……. 아니,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과 자신이 꿈꾸는 파라다이스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지만, 이런 쥐꼬리만 한 영지에서 개혁해 봤자 나오는 것도 없을뿐더러, 귀찮기는 더럽게 귀찮았다.
차라리 시키는 것을 하는 게 백배, 천배 나았다.
더군다나 주변 상황에 신경을 안 쓰고 일어나서 검 휘두르고, 밥 처먹고, 다시 뒤비자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루멘 때문에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피터!
따지고 보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가장 편한 일이었다.
‘가족’들 중에서 자신이 피터와 가장 안 친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우직하고 순박한―바보와 동급―아론은 옛날부터 시키는 대로 일을 척척 잘해서 상당히 친했다.
보아라. 아론은 얼마나 개고생하고 있는가?
일어나자마자 나무 다듬고, 밥 먹은 다음에 나무 베러 가고, 그 외에도 기타 등등!
그냥 오우거 사체 들고 다니면서 으스러트려 주변에 뿌리는 건 매우 편한 일이었다.
“이게 가볍기만 하면 말이지…….”
족히 수백 킬로에 달하는 미칠 듯한 몸무게의 소유자인 오우거!
지금이야 시체에서 여러 부위―항정살, 옆구리살 등등―를 버리고, 또 버려서 몸무게가 절반으로 준 상태지만, 처음에만 해도 낑낑거리며 끌고 다니지 않았던가?
물론 지금도 무겁지만, 악을 쓰며 끌고 다닐 만큼은 아니었다.
영지민들이 사는 곳을 기점으로 대충 직경 5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 원을 그리듯 오우거의 사체를 잘게 으깨어 뿌린 알렌은 다시 영지―원래 있던 곳도 영지기는 하다만―로 돌아와서는 곧장 마을 사람들이 마련해 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집이 아니라 그냥 거적때기라도 붙여 놓은 듯싶지만, 모든 건물이 전부 그랬기에 별말 없이 사용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이곳만이 유일하게 자신이―쾌적하지는 않더라도―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바람만 막아 주면 되지. 그치 복슬아?”
캉! 캉!
알렌의 부름에 살이 토실토실하게 오른 늑대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알렌에게 다가왔다.
알렌의 베개 겸 애완동물인 늑대, 복슬이.
늑대의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뭐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애초에 알렌이 복슬이를 쓰다듬고 느낀 첫 감상평이 ‘털이 복슬복슬한 게 좋구먼.’이지 않은가?
알렌으로선 이만한 이름이 없었으며, 불쌍한 복슬이는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냥 단지 ‘이제부터 내 이름이 복슬이구나.’라는 느낌만 받을 뿐.
“에후. 벌써 해가 중천이네. 이제 자야지.”
쾅!
알렌이 복슬이를 베개 삼아 대낮부터 취침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안 그래도 부실한 문, 그것을 박살 내며 한 청년이 들이닥쳤다.
“뭐야?”
알렌이 인상을 찌푸리며 피터를 쳐다보았다. 피터가 드러누워 있는 알렌을 향해 말했다.
“말 놓을 건가?”
피터의 말에 알렌이 움찔했다.
현재 직책상으로 피터의 신분이 한 열두 단계쯤 위.
“뭐지 말입니까?”
“군대냐? 병역의 의무를 충실히 하기 위하여 5년이란 아까운 시간을 투자하러 온 거냐?”
“뭔 상관이지 말입니까.”
알렌이 귀찮다는 듯이 대충 대꾸하자, 피터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 좀 해라.”
그 놈의 일, 일, 일!
“방금까지 일하고 왔지 말입니다.”
알렌이 목소리를 낮추며 으르렁거리자, 피터가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허, 반항이냐?”
“반항하고 말게 어디 있지 말입니까?”
“그럼 상관의 말을 충실히 들어야지, 안 그래?”
“급여 늘려 주시면 일하지 말입니다.”
“받는 급여는 있고?”
피터가 계속해서 자신을 업신여기는 말투로 답하자, 알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 말입니다! 그리고 귀찮으니까 나가, 좀. 어?”
알렌의 축객령에 피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네 연애 사업을 도와주마. 그러니까 일 좀 해. 내가 워낙 바빠서 말이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론의 반만큼만. 응? 아, 참고로 아론도 바빠.”
“아론도 바쁘면 다른 애 시키든가. 내가 왜…… 응? 연애 사업?”
바쁘다는 말에 화를 내며 소리치던 알렌은 돌연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피터를 쳐다보았다.

알렌, 나이 21세. 사지 멀쩡하고, 얼굴은 여자 좀 울리게 생겼을 법한 몸 튼튼한 제국남아!
타밀론 후작령의 본성에서는 통칭 제비…… 가 아니라 문어발 사나이…… 이것도 아니고 아무튼 잘생기고 유머러스한 남자.
뭐, 그런 의미의 뜻을 지닌 단어가 수식어처럼 줄줄 따라다니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자 손 한 번 못 만져 봤을 피터가 자신의 연애 사업을 도와주겠다니, 어이가 없어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저…… 피터 씨? 어디 머리가 아프다거나 뇌에 이상이 온 게 아닌지……. 아니면 놀리려고 작정을 한 겁니까?”
알렌의 말에 피터가 ‘훗.’ 하고 재수 없게 웃으며 품속에서 양피지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곧장 그것을 바닥에 펼쳤다.
한 손에는 숏소드를, 한 손에는 소드 브레이커를 든 여기사가 한 명 그려져 있었다.
적당한 굴곡을 가진 몸매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조금 미화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때, 이 정도면 일할 맛이 나나?”
피터의 물음에 알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연애 사업 도와주겠다는 게…….”
“뭐, 우선 선불로 그림을 지급하도록 하지. 어때?”
“…….”
알렌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피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양피지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으려는 시늉을 했다.
“싫으면 말고.”
집어넣으려는 시늉을 해도 알렌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피터는 진짜 양피지를 품속에 다시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하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시키는 체질도 아니고 하니,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별로 아쉬울 것 없다는 태도.
피터가 자신이 부숴 버린 거적때기 문을 밟아 콰직! 소리가 나게 부순 뒤 천천히,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움직였다.
그 순간,
피터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얹었다. 피터가 여유롭게 뒤로 돌며 알렌을 쳐다보았다.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조용한 곳이 좋겠지?”
피터가 알렌의 질문에 질문으로 응대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대화를 나누어 주겠단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알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조용한 곳이 좋지.”

4

스카는 피터와 아이린, 알렌에게는 경어를 사용했다. 루시의 경우엔 시녀고, 아론은 척 보기에도 짐꾼이기 때문에 으레 당연히 하대를 했다. 하지만 무시를 하진 않았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루멘이 충분히 그들을 아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뭐 하시는 겁니까?”
스카의 물음에 알렌이 그에게 힐끗 눈길만 주고는 다시 자신의 행동에 열중했다.
“영주 대리님께 혼날 겁니다. 상당히 아끼는 늑대들인데…….”
“영주 대리님께서 시킨 겁니다.”
“영주 대리님께서요?”
스카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알렌은 스무 마리 정도의 늑대를 죽어라 패고 있었다.
패고, 패고, 또 팬다.
그럼에도 강약 조절은 잘하는지, 늑대들이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캉캉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무슨 이런 짓을…….”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지만 미칠 듯한 속도로 날아다니는 알렌의 창대를 볼 때면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알렌이 말하기를, 피터가 자신에게 직접 시켰다고 한다. 늑대에 관한 모든 권리는 주인인 피터에게 있는 것이다.
“수고하십시오.”
스카가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알렌이 그를 붙잡았다.
“기사님, 심심하시죠? 운동 삼아 괜찮은데?”
“아뇨, 전 괜찮습니다.”
스카가 정중히 사양했다. 하지만 친절한 알렌 씨는 여기서 멈출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게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같이해 보시면 알겠지만, 스트레스라는 게 뭔지 까먹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고, 안 쓰던 근육도 사용하니 운동에도 좋고, 다수와 싸울 때의 공격법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도 좋습니다.”
“전 그냥 수련에 몰두…….”
스카가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친절한 알렌 씨는 친절한 것만이 아니고, 뻔뻔하고 염치도 없으며, 분위기 파악도 못했다.
“에이, 하고 싶으시면서. 하시죠.”
“괜찮다니까…….”
“자자, 빨리요.”
알렌이 스카의 손목을 낚아채 그를 늑대들을 향해 들이밀었다.
“……?”
늑대들과 조우하게 된 스카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 알렌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자신의 손목을 자연스레 낚아챈 알렌의 정체에 대해 고민이 들었다.
자신은 오러 나이트다.
함부로 신체 접촉을 허용할 수준의 그렇고 그런 기사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알렌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목을 낚아채어 늑대들을 향해 밀기까지 했다.
놀라운 일이다.
캉캉―!
알렌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을 무렵, 늑대가 개처럼 짖으며 스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퍽!
스카가 유연하게 늑대의 공격을 피하며 손날로 목을 쳐 가볍게 기절시켰다.
“전 이만 영주님에게…….”
캉캉!
알렌에게 사양을 한 뒤 루멘한테 가 보려는데, 알렌만큼 분위기 파악 못하는 늑대가 스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빠악!
스카가 안면에다가 냅다 주먹을 후려갈겨 준 뒤, 다시 알렌을 향해 말을 걸었…… 아니, 이번에는 아예 말도 걸지 못했다.
동시에 달려드는 늑대 두 마리!
스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 늑대의 옆구리를 강하게 주먹으로 쳐, 자신의 주먹에 맞은 늑대가 다른 늑대를 향해 날아가게 했다.
빠악― 퍼억!
두 마리의 늑대가 순식간에 기절.
“저 알렌…….”
빠악!
“전 이만 영주님에게…….”
퍼벅!
“후우……. 전 이제 영주님에게 가 보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모든 늑대를 기절시켜 버린 스카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인사하자, 알렌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스카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루멘이 잠을 청하고 있을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 알렌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런데 기사님. 영주 대리님이 기절은 시키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거 어쩌죠? 하하. 제가 거짓말은 잘 못하는 성격이라.”
“…….”
스카의 안면 근육이 묘하게 뒤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