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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주 1권(16화)
Chapter Seven 검을 휘두르는 이유(3)


4

7겹의 성벽을 쌓은 뒤 미러 영지의 남성들은 조를 이루어 7번째 성벽 안에서 혹시나 모를 몬스터들의 침입에 대비하여 경비를 서고 있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성벽 안에 자리한 과일나무에서 과일들을 채집하고, 강가 주위에 있는 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고르고 있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사실 생활수준에서는 이렇다 할 큰 변화가 없었으나, 영지민들은 마음만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우거도 때려잡은 기사가 자신들과 함께하고 있다.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안전이 확보되었으니, 이제는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마련되면 미러 영지도 어엿한 하나의 ‘영지’가 되는 것이리라.
“영주님! 아침 수련 가시는 겁니까?”
“방금 딴 사과가 새빨갛게 잘 물들었는데, 하나 드시겠습니까?”
아침 수련을 끝내고 강가로 목욕을 하러 가는 루멘을 본 영지민들이 그를 살갑게 맞이했다.
루멘으로선 한 것도 없었으나, 아니 전부 피터 덕분에 영지민들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나 피터는 영주 대리.
실질적 영주는 루멘이기에, 그들은 루멘이 훌륭했기에 자신들이 지금 이렇게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피터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피터가 루멘을 잘 보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영지민들은 루멘을 상당히 좋아하고 있었다.
루멘으로선 황당할 따름이지만.
“마침 출출했는데, 하나 줘 봐라.”
“네. 방금 먹어 봤는데, 즙이 꽉 찬 것이 맛있습니다.”
영지민 하나가 루멘에게 사과를 건넸다. 루멘이 곧장 한입 베어 물었다.
어릴 때부터 최고급 과일만 먹었던 터라 그리 맛있다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삭아삭하고 시원한 것이 괜찮았다.
“나쁘지 않구나. 하지만 이렇게 막 따지 말고 떨어지기 직전의 것들만 따도록. 막 따다간 나중에 배 곪지 않겠느냐?”
“예.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루멘의 충고에 영지민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지적당한 것이니 그리 기꺼워할 만한 것은 아니건만, 영지민은 오히려 기뻐했다.
루멘의 말에는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스며들어 있음을 느꼈기 때문.
‘뭐, 나쁘지 않네.’
루멘이 사과를 먹으며 강가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격하게 수련을 해서 그런지 온몸이 땀범벅이 된 상태로, 상당히 찜찜했다.

5

샤아아악!
카온의 검이 날카롭게 허공을 비집고 들어가며 위력적으로 휘둘러졌다.
블레이드 토네이도, 소드 크러쉬 등등, 타밀론가의 가전 검술들을 연속적으로 펼쳐 냈다.
‘왼쪽!’
카온의 눈앞에 있는 가상의 적이 빠른 속도로 그의 왼쪽으로 파고들었다.
겨우 150센티미터 남짓한 크기의 가상의 적의 속도는 놀랄 만큼 빨랐다.
키도 작으니 카온의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고, 카온의 공격이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가상의 적이 휘두른 검에 카온은 오늘만 해도 수십 번이나 죽음을 면치 못했다.
보통 가상의 적은 자신과 비슷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체구도 비슷한 상대와 하는 것이 정론인데, 카온은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자를 생성해 내고 있었다.
간단한 동작만 펼치지만, 누구보다도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을 하는 작은 체구의 가상의 적.
“열심이구나.”
그때, 카온의 뒤에서 나긋한 음성이 들려왔다. 카온이 뒤를 돌아보니, 타밀론가(家)의 가주인 타밀론 후작이 빙그레 웃으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이 집이, 이 영지가 나의 것인데, 내가 가면 안 되는 곳이라도 있단 말이냐?”
다비드의 말에 카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이 아니라, 어인 일로 행차를 하셨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행차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다. 그냥 오랜만에 우리 막내가 얼마나 열심히 검술 수련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와 본 것이다. 그런데…….”
친근한 어조로 입을 연 다비드가 물었다.
“어린아이 중에 그렇게 강한 아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
카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검술 수련만 보고도 자신의 가상의 적이 누군지 알아낸 것이다.
작은 체구에 말도 안 되는 신체적 능력을 지닌 아이.
현실적으로 그런 아이가 있을 리가 없다.
“단지 키가 작은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기에, 네 가상의 적에게는 기술이 없었다. 체구가 작다면 그것을 이겨 내기 위해 여러 기술을 만들어 낼 텐데, 네 적에게는 아무런 기술도 없더구나. 그냥 말도 안 되는 신체적 능력으로 싸우더구나.”
“……그냥 제가 생각해 낸 적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확연히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
다비드의 말에 카온은 결국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만나 본 적이 있느냐?”
“……예.”
“놀라운 아이로구나. 언제 만났었느냐?”
“대충 8년은 되었습니다.”
“8년?”
카온의 말에 다비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8년이라면 매우 긴 시간이다.
그 정도라면, 자신의 입장에서 압도적으로 강한 사람은 지금도 자신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할 것이라 생각할 터이다.
그 말인즉, 카온이 보고 있는 것은 그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해졌을 아이인 것이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검만 휘두르던 카온이다. 그렇다는 것은 최소한 카온이 본 그 아이는 괴물이다.
“한 십 년만 지나면 나를 이길지도 모르는 아이구나.”
다비드는 그럴 리가 없지만, 카온의 장단에 맞춰 주기 위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카온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흠흠. 이제 곧 있으면 네 생일이구나.”
카온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무안해진 다비드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신의 생일까지는 한 달도 남지 않은 것이다.
“생일도 다가오고 하니, 오랜만에 네 검 좀 보자꾸나.”
다비드의 말에 카온이 두 눈을 빛냈다.
검을 보자.
이 말은 말 그대로 검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한판 뜨자는 거다.
검의 명가인 타밀론가의 가주이자, 자신의 아버지 다비드 더 타밀론.
그는 마스터에 오른 검사다.
검의 제국이라 불리는 이 할버드 제국의 최상위에 속하는, 대륙 전역을 뒤져도 겨우 두 자릿수에 불과한, 수만의 기사들 중에서 0.01퍼센트에 속하는 존재.
“예.”
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앙! 카앙! 카앙!
공격은 카온 위주였다. 카온이 매섭게 공격을 해 오면, 다비드가 그저 빙긋 웃으며 가볍게 막아 냈다.
그러기를 수십 차례, 다비드가 처음으로 공격을 했다.
갑자기 패턴이 바뀐 다비드였으나, 카온은 당황하지 않고 재빠르게 다비드의 검을 막아 냈다.
하지만 다비드의 검에 실린 힘은 실로 강력한 힘이었다.
까앙!
오러도 펼쳐지지 않은 다비드의 검에 카온의 검이 두 동강 났다.
잘린 검의 이음새 부분은 손으로 문지르면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매끈했다.
순식간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끊어진 것이다.
자신이 맞받아쳤는데도!
‘제길.’
카온이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고, 또 자신의 형 앞에서 자신은 그저 억눌린 존재에 불과했다.
주변에서 아무리 천재라고 떠받쳐 주어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은 자기의 실력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카온을 보며 다비드가 물었다.
“넌 세상을 은은하게 밝히는 푸른 달이 좋으냐, 아니면 뜨겁게 타오르는 붉은 화염이 좋으냐?”
세상을 은은하게 밝히는 푸른 달과 뜨겁게 타오르는 붉은 화염.
이 두 가지가 뜻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타밀론가의 사대보검인 그레이나와 크루니아였다.
루멘이 받은 세아드라는 필요악 또는 세상을 지키는 악마라는 뜻을 지녔고, 그레이나는 세상을 밝히는 푸른 달, 크루니아는 타오르는 화염이란 뜻을 지녔다.
마지막으로 타밀론가의 최고의 보검이며, 할버드 제국 십이명검 중에서도 으뜸이라 불리는 그의 아버지가 지닌 카르도.
세상을 받치는 기둥이란 뜻을 지닌 카르도는 타밀론가의 가주를 상징하는 검이기도 하였다.
현재 다비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레이나와 크루니아, 이 둘 중 어느 것을 가지고 싶은지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화염이 더욱 좋습니다.”
카온의 말에 다비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카온의 말은 크루니아를 주면 감사하겠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곧 있으면 네 형을 보겠구나.”
다비드의 말에 카온이 살짝 움찔하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형은 공교롭게도 같은 달에 생일이 있기 때문이다.
8월이 되면 타밀론 후작령 내의 모든 영주들이 선물을 싸 들고 올 정도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영지민들 사이에서는 8월이 ‘타밀론 탄생의 달’이라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였다.
자신의 생일도 끼여 있고 하니, 1년간 그림자도 내비치지 않은 루멘이라 할지라도 본가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넌 그렇게도 형을 이기고 싶으냐?”
다비드의 물음에 한순간 카온의 몸이 경직되었다.
놀람에, 경악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모를 거라 생각했느냐?”
“…….”
다비드가 대답하지 못하는 카온을 보며 피식 웃었다. 카온은 그의 형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넌 가주가 되고 싶은 거냐?”
다비드가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관심 없습니다.”
“그러면 왜 형제끼리 승부를 조작했던 것이냐? 네가 가주가 되고 싶기에 장자계승의 원칙을 깨기 위해서 매번 네가 이기고, 루멘이 졌던 것이 아니냐?”
“전 그냥 이긴 겁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넌 졌지 않느냐? 매번.”
매번…….
확실히 자신은 졌다. 매번.
하지만 자신은 루멘에게 졌던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째서 장자계승 어쩌고, 가주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
뭐, 따지고 보면 동생이 형한테 ‘검’으로서 이긴다는 것 자체가 장자계승을 타파하겠다는 의지로 보일 수도 있긴 하지만.
“하긴, 그도 아니겠구나. 대련이 끝나면 너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홀로 중얼거린 다비드가 말을 집어넣었다. 다비드의 그러한 모습에 카온은 의문이 들었으나 묻진 않았다.
“넌 대련이 끝나면 진 사람처럼 항상 분해하고, 루멘은 대련이 끝나면 이긴 사람처럼 기쁜 표정을 짓더구나. 참으로 웃기지 않느냐? 이긴 놈은 진 놈처럼 분해하고, 진 놈은 이긴 놈처럼 기뻐하니 말이다.”
“……?”
형이…… 형이 기뻐했다고?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무참한 패배를 겪은 인간이 무엇이 좋다고, 그것도 자신의 동생에게 진 인간이 어째서 기뻐한단 말인가?
“넌 항상 검을 수련할 때 눈에 독기를 품고 검에 미친 녀석처럼 수련을 하더구나.”
카온은 다비드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방금 전 다비드의 말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
물론 그렇다고 무시하고 있단 것은 아니다.
“넌 형을 이기고 싶어서 검을 휘두르는 것이냐?”
“…….”
카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비드가 묻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말해 보거라. 너는 어째서 검을 휘두르는 것이냐?”
“……8년 전 보았던 소년을 이기기 위해섭니다. 형을 이기기 위해 검을 휘두르진 않습니다. 다만…….”
“다만?”
“형과 대련을 하고 나서 제가 분해하는 것은, 형이 더 이상 제 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루멘이 더 이상 형이 아니다?”
역설법의 스멜이 진하게 풍기는 카온의 말에 다비드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은 언제나 제 우상이었습니다. 저보다 언제나 앞서 나가면서도, 제가 자신을 따라오기 쉬우라고 언제나 그 길을 깨끗이 닦아 주었습니다.”
카온의 말에 다비드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어릴 적부터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꽃피웠던 루멘은 카온의 기초를 알아서 확실히 닦아 주었다.
운동신경도 다른 아이보다 좋았고, 이해력도 뛰어났던 루멘은 가르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만약 루멘이 아니었다면 카온은 아직 엑스퍼트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카온이 돌연 무엇인가 분한 듯 두 주먹을 꽉 말아 쥐며 중얼거렸다.
“제 우상이었던 형은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