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시골영주 1권(17화)
Chapter Eight 고블린 국왕(1)
0
질풍 기사단.
타밀론가의 명물(?)이라 불리는 이 기사단에 갓 들어온 론은 골치 아픈 사건을 떠맡았다.
타밀론 후작령의 본성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
“아예 갈기갈기 찢어 죽이기도 하고, 목 언저리만 깨물어 죽이기도 하고……. 죽이려면 통일되게 죽이던가, 연쇄살인범이 한 놈인 거야, 두 놈인 거야?”
론이 부하 병사의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파악해 냈다.
“잠깐만. 목이 물려 죽었다고?”
목이 물려…….
예전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뱀파이어인가?”
흡혈귀라 불리는 악마, 뱀파이어(Vampire).
그들은 사람의 목에 송곳니 두 개를 박아 피를 빨아먹는다고 들었다.
“목에 물린 흔적은 있지만, 피가 빨린 흔적은 없습니다. 흐른 피는 모두 상처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피입니다.”
부하의 말에 론은 머리를 박박 긁었다.
“끄응. 뱀파이어 같은 악마든 사람이든 상관없으니까, 목격자나 좀 나타나라. 왜 목격자가 없는 거야?”
“그래도 공통점은 하나 찾았습니다.”
“그게 뭔데?”
“살인이 일어난 걸로 추정되는 시각에, 살인이 일어난 장소에서 반경 10∼35미터까지 강한 바람이 불었다는 겁니다.”
“바람이?”
“네. 그냥 산들바람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휘청거릴 정도의 강풍이요. 웬만해선 그렇게 불지 않으니까요. 몇몇 상가들은 간판이 날아가기도 했답니다. 또 그 바람에는 이상하게 피 냄새도 났다고 합니다.”
부하의 말에 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 냄새가 나는 바람? 뭐야, 그럼 마법사의 짓이란 거야?”
“글쎄요……. 마법사들은 워낙에 똑똑하니 이런 이상한 짓을 했을 리가 없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쓸데없이 바람을 왜 일으키는지…….”
“빌어먹을. 알았으니까, 조금 더 정보를 모아 와. 그리고 병력 지원 좀 요청하고.”
“알겠습니다.”
론의 명령에 부하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뒤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타밀론 후작령 본성에서의 기이한 연쇄살인 사건은 2년이나 지속되었다. 병사들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수사를 했으나, 끝끝내 범인을 찾지 못했다.
죽은 사람의 수만 해도 세 자리에 가까웠으니,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주를 한 사람도 적잖아 있었으나, 그들 중 대부분은 연쇄살인 사건이 끝나고 나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안에 돌아왔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연쇄살인 사건은 끊이지 않았으나, 2년이 되자 더 이상 연쇄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가다 모방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들은 있었지만, 결국 연쇄살인마는 아니었다.
연쇄살인마의 윤곽조차 잡히지 않은 채, 결국 사건은 그렇게 미해결로 종결 났다.
1
채석장으로 써도 나쁠 것 같지 않은 돌산은 산맥처럼 주르륵 이어져 있었다.
피터는 그곳 중 네 번째 돌산에 들렀다.
산을 살펴보던 피터는 무언가 빛에 반사되는 것을 느꼈다. 곧장 빛에 반사된 무엇인가를 집었다. 빛을 반사하고 있는 돌의 흙을 손으로 살짝 털어 보니, 쇠 같은 것이 더욱 선명이 보였다.
“……설마?”
피터는 곧장 그 돌을 던지고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러자 아까 같은 돌이 몇 개 더 보였다.
확신이 들었다.
이 산은 철광산이다.
“이 산이…… 아니지. 광맥은 한 산에서만 갑자기 나오는 게 아니니까…….”
피터가 돌산맥(?)을 훑어보았다.
‘그냥 채석장으로 쓸 만한 것이 아니라……. 광산으로 쓸 만하다는 건가?’
히죽히죽.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혹시나 하는 기분으로 살펴보았다. 물론 금광이라도 발견된다면 어깨를 덩실거렸겠으나 상관없다.
이것만으로도 충분…….
“매장량이 얼마나 되는 거지?”
그게 중요하다.
상당량의 철광이 매장되어 있다면 타밀론가가 아니라 아예 할버드 제국 황실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뭐니뭐니 해도 철은 군사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전쟁에서 병사들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군수품이다.
군수물자가 뛰어나면 병사들의 사기도 오르고, 그만큼 더 쉽게 적을 섬멸할 수 있다.
하지만.
“쥐꼬리만 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
피터가 광부들이나 할 수 있는 매장량 조사를 아무런 장비도 없이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중을 기약하며 피터는 발견한 철광석들을 품에 챙겼다.
“후우우.”
나름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피터가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을 터덜터덜 내려오는 피터의 시야에 초록색의 생물들이 빽빽이 서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머리에 검은 뿔이 나 있고, 체구가 작지만, 간혹 자신들보다 덩치가 큰 오크도 찔러 죽이는 놈들.
그런 놈들이…….
“……몇 마리야?”
손가락뿐만 아니라 발가락을 이용하더라도, 웬만큼 뻔뻔하지 않다면 손가락, 발가락으로 세기 미안한 숫자였다.
2
잠깐 방심하면 하류로 쓸려 내려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강가에서 충분히 깨끗하게 목욕을 한 루멘은 아론이 만들어 준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그냥 통나무들을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어 만든 오두막에 불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오두막이 미러 영지에서 가장 크고, 외형적으로 가장 사람이 살 만한 집이다.
다른 집들은 아무리 좋게 쳐줘도 폐가(廢家)에 불과했다.
루멘은 오두막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커허억!”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
하지만 익숙했으며, 또 잊고 있었던 고통.
두근두근!
“제기……랄.”
루멘이 힘겹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미 손은 심장으로 향해 있었는데, 심장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심장을 파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입고 있던 옷이 루멘의 강학 악력에 단번에 찢겨 나갔다.
“끄으윽!”
이곳에서 괴성을 내질렀다간 온 영지민이 오리라. 그렇게 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루멘이 억눌린 신음성을 내뱉으며 고통을 참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온몸에서 핏줄이 투둑투둑 솟아오르고, 상당량의 피가 머리에 쏠리며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루멘이 무릎을 꿇었다. 그의 정신은 더 이상 서는 것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무릎을 꿇고, 그다음으로는 엎어졌다.
쓰러진 루멘의 눈에서 한순간 강렬한 살기가 비쳤다.
피가 필요해, 피가!
루멘의 본능이 울부짖었다. 다른 사람의 피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의 이성은 강했다.
이미 몇 번이나 본능과 맞서 싸워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매번 지기만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의 정신력은 충분히 강하…….
“크르르…….”
루멘이 짐승의 그것과 같은 소리로 작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곧이어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
“미……친.”
오랜만이라서 그런 걸까?
‘괴물로서의 본성’은 이기기 힘들었다. 인간이길 원하는 루멘의 이성이 내면에 감추어진 괴물의 본성을 짓눌렀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괴물의 본성은 아무리 억눌러도 결국엔 다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오랫동안 잠잠하더니, 그사이에 힘이라도 기른 것일까?
“끄으으!”
루멘이 이를 악물었다.
피가 뜨거워진다. 정신이 아득히 멀어져만 간다. 심장이, 맥박이 평소보다 수십, 수백 배나 빠르게 뛰었다.
강력한 혈압에 혈관이 다 터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오히려 몸은 그것을 즐기는지 조금씩, 조금씩 몸에 힘이 넘쳐 났다.
“씨……발.”
루멘이 결의를 다지기 위해(?) 욕지기를 한 번 내뱉은 뒤, 온 바닥을 뒹굴었다.
이 힘을 조금이라도 빼야 한다.
루멘이 바닥을 뒹굴면서 벽에 부딪쳤다.
부딪치는 힘이 강한 것인지, 아니면 아론이 일주일 만에 뚝딱 만든 것이라 건물이 부실한 것인지 온 집 안이 진동했다.
쿵! 쿵! 쿵!
바닥을 구르며 살갗이 찢겨 나가긴 했으나, 그때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처가 나았다.
루멘이 한동안 지랄발광을 하고 있을 때, 문이 격하게 열렸다.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그렇게 외친 스카는 바닥을 구르고 있는 루멘을 쳐다보았다. 한동안 멍하니 ‘저게 뭐하는 짓이지?’라고 살피던 스카는 적잖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루멘이 미친 게 아닐까 하는 판단을 내렸다.
“왜, 왜 그러시는 겁니까?”
“…….”
루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겐 스카가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괴물에게 먹혀 버린다.
루멘의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당장이라도 눈이 감길 듯했다. 하지만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괴물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꿈에라도 떠오를까 무서운 괴물과.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괴물은 포기했는지 다시 자취를 감추었고, 루멘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아! 하아아!”
루멘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른 뒤에야 스카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루멘의 시선에 정신을 차린 스카가 말했다.
“영주 대리님께서 몬스터들이 침공해 온다면서 빨리 모이라고 합니다.”
몬스터가?
루멘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리가 부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