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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하지만 왜 오러블레이드가 나왔는가에 대해 의심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빅토르 중위가 곧바로 무기 간 길이 차이를 이용해 견제를 해왔기 때문이다.
검자루가 관자놀이와 수평을 이루는 ‘옥스’라는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칼끝으로 내 전두부를 툭툭 찌르려 하는 빅토르 중위.
잽쌉게 왼손목에 걸린 타지 쉴드를 이용해 검끝을 걷어 냈다.
걷어 냄과 동시에 자연스레 아밍소드를 종으로 휘둘러 반격을 시도해 보는 나.
[흠?]
처음에는 기간트의 발에 달린 바퀴를 역회전시켜 거리를 벌리려던 빅토르 중위였지만, 내가 만든 오러블레이드 끝 부분에 닿는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칼날의 끝을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 검격을 막아냈다.
뒤이어 반원을 그리며 내 아밍소드를 흘려 버리는 빅토르 중위.
자연스레 빅토르 중위의 자세는 옥스에서 검끝을 바닥에 붙이고 칼자루를 배꼽에 놓는 올버 자세로 바뀌었다.
게임에서는 폼 변환이 자유롭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들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빅토르 중위는 무도(武道)를 꽤 오랫동안 밟아 온 게 아닐까 싶었다.
[무기 길이 간의 유불리는 없는 셈인가. 그건 그렇고… 제법 날이 서 있군.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 순식간에 승부가 결정 날 뻔 했어.]
[과찬이십니다. 그러는 1소대장님이야말로 물 흐르듯 연계가 자연스러운 게, 마치 날이 잘 갈린 명검 같습니다.]
[하하하! 고향에서는 나름 사범대리도 했으니까. 뭐, 그래 봤자 제국제일이라 불리는 루겐바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말이야.]
잠시 둘 사이에 오고가는 잡담.
하지만 대화 내용과 달리 양측의 기간트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관전자들로 하여금 숨을 턱 막히게 하고 있었다.
“역시 1소대장님이야. 마력적성 면에서는 어떨지는 몰라도 검술만큼은 탁월하시지.”
“내가 이상한 건가… 3소대장님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어휴, 바보야! 아무리 그래도 검성님의 자제분이신데, 당연히 기본가락은 하시겠지.”
“하지만 소문으로는 술과 여자에만 빠져 사는 망나니라고…….”
“으음, 그건… 뭔가 소문이 잘못 난 게 아닐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소문이 그렇게까지 잘못 나겠어? 그냥 다 혈통 빨이겠지, 뭐.”
이쪽에게 그 말이 들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전자들이 신나게 우리 둘, 특히 나에 대해 신랄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하하! 인기가 많군, 3소대장.]
[예에…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에게 후광이 있으니까요.]
[크크큭, 뭐, 그렇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가문의 후광에 기댈 생각은 없습니다. 입대한 이상 전 아멜 루겐바인이 아니라 아멜 소위일 뿐입니다.]
[푸하하! 루겐바인보다 소위를 택하는 건가? 흐음, 과연… 그래서 그런 식으로 망나니짓을 하며 인생을 허비한 거군?]
[거기까지 말해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지금은 그저…….]
빅토르 중위의 기간트가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
‘왼쪽.’
아까 첫 합을 주고받을 때, 빅토르 중위의 오른손이 칼자루 아래쪽을 잡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빅토르 중위는 오른손잡이라는 소리.
빅토르 중위가 사용하는 무기가 장검인 만큼 기다란 도신을 이용한 찌르기, 아니면 휘두르기 위주의 검격을 펼쳐 올 가능성이 컸다.
오른손잡이가 양손무기를 다룰 경우, 높은 확률로 왼 축을 앞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빅토르 중위는 왼 어깨를 앞으로 하고 상단 찌르기를 하듯, 아니면 가로로 휘두르기를 하던 빅터의 오른쪽에서 액션을 시작해야 위력도 더 올라가고 움직임도 편해진다.
[흠?!]
빅토르 중위가 적잖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움직일 방향을 내가 예측한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놀란 모양이었다.
[호오, 이게 말로만 듣던 <감지>인가.]
빅토르 중위가 감탄하며 말했다.
…예? 그게 뭔데요?
그냥 빅토르 중위가 이렇게 움직일 거라고 생각해서 고개 튼 건데, 그게 또 따로 기술로 있어?
말로만 들어서는 록온과 비슷한 기능으로 보였다.
디바이스 없이 맨몸으로 사용 가능한 게 특징이겠지?
아니면 뭐… 디바이스를 사용하지만 일반적인 것보다 좀 더 상위 개념이라든가.
[기대하신 것과 다르게, 이건 <감지>가 아닙니다.]
굳이 거짓말을 하진 않기로 했다.
[그런가? 보여 줄 수 있는 건 다 보여 주는 게 좋을 걸세.]
빅토르 중위가 바닥을 쓸면서 땅에 닿아 있던 검끝을 끌어 올림과 동시에 몸통 전체를 회전시켰다.
칼날 면이 길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 휘둘러베기.
타지 쉴드의 좁고 낮은 방어력으로는 방어가 용의치 않아 보였다.
풍!
백스텝을 밟자, 다소 묵직한 소리가 났다.
하긴 생명체가 아닌 아파트 3층 높이 정도의 로봇인데 점프가 부드럽다는 것은 말이 안 되겠지.
[뛰었어?!]
빅토르 중위가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아니,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목격한 듯 빅토르 중위가 황당함에서 좀처럼 벗어나고 있지 못했다.
흐음, 아직 기간트를 다루는 테크닉이 그리 발달하지는 않은 단계인가?
게임 <하르말 로얄>에는 점프키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 경기라든가, 아니면 랭커 게임을 관전하면 심심치 않게 점프를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시스템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이냐.
이유는 간단했다.
일종의 뉴비 진입장벽이라고도 불리는 잡기술이 <하르마 로얄>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 점프 관련 테크닉은 토파즈를 상대할 때도 선보였지만, 부스터를 활용하는 거였다.
모든 기간트에는 이동 수단이 기본적으로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발바닥에 해당하는 위치에 달려 있는 바퀴와 종아리에 내장되어 있는 부스터.
점프는 이 부스터를 짧게 짧게 분사함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테크닉이었다.
[방법을 알려 드릴까요?]
[아, 됐어. 3소대장이 해낸 거 보니까 요령만 있으면 되는 것 같은데, 내가 직접 알아내 보지. 이래 뵈도 고향에서는 사범대리였다니까?]
[흐음, 저희 가문의 비기일 수도 있잖습니까?]
[비기였다면 루겐바인 영뱡군 소속 기사들이 사용했겠지.]
방금 그 말로 빅토르 중위가 내 본가에 대해 일면식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흐음…….
서부 지대의 왕가라 불릴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본가니까 모르는 게 더 이상할지도.
[그리고 아직 안 끝났어!]
빅토르 중위가 검을 머리 위로 올려 한 바퀴 돌리더니, 자루를 잡고 있는 손의 위아래를 바꿨다.
그러더니 양팔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려 언제든지 내려베기를 할 수 있는 폼탁 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검끝이 진동하면서 기공이 생성되어 점점 그 크기를 키워 나갔다.
[초월비(初月飛)!]
검끝에 뭉쳐져 있던 기공이 깨지며 검신에 둘러지더니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빅토르 중위, 생긴 거는 완전 개 상남자 마초처럼 생겨 놓고서는 전투 스타일은 ‘니가 와’냐.
무기로 장검을 선택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초월비는 그렇게 빠른 탄속은 아니었지만, 투사체의 크기가 제법 커서 범위가 꽤 넓었다.
때문에 부스터를 짧게 사용하는 것으로는 피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판단이 서자마자 곧바로 연료 상황을 살폈다.
남은 부스터 에너지를 풀로 분사하게 되면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검기 하나를 피하기 위해 부스터 에너지를 다 소모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교환비가 안 좋아 보였다.
대전에서 때로는 교환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플레이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이 그때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백스텝과 점프가 되는 것을 확인했으니, 추가적으로 현실에서도 가능한 건지 확인하고 싶은 테크닉이 하나 있었다.
고개를 왼쪽 아래로 달려 왼 손목을 쳐다봤다.
손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소형 방패가 팔목에 묶여 있었다.
이것은 타지라고 부르는 소형 방패로 손으로 잡고 사용하는 게 아닌, 팔에 고정시켜 사용하는 방패였다.
사람이라면 몰라도 기간트니까 ‘방패를 사용할 거면 아예 팔에 용접시키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방패를 철저하게 방어용으로만 사용하는 타입의 기간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카이트 쉴드 같은 대형 방패에만 적용되는 것.
타지나 버클러 같은 소형 방패는 경우에 따라서 적을 향해 투척을 하기 때문에 용접시키지 않는다.
기동과 유틸, 둘 다 챙기는 게 바로 소형 방패의 매력이자 장점이기 때문이었다.
단점은 역시 그런 만큼 방패치고는 높지 않은 방어력이 문제겠지.
그렇지만 시스템상 점프가 없는 게임에 점프를 개발해 낸 것처럼 유저들은 소형 방패의 단점을 보완할 방어 테크닉을 하나 개발했다.
지금부터 내가 시도할 것은 바로 그 테크닉.
그 이름은 칼방.
정식 명칭은 외국유저들에게는 저스트 가드, 한국 유저들에게는 ‘칼’타이밍 ‘방’어로 불리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어떤 이들에게는 타 게임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패링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 챔피언쉽 3년 연속 우승에 빛나는 세계 최고 미드 라이너 트릭스터가 칼방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함에 따라 지금은 칼방으로 통일되었다.
되는지 시도를 하기 전에 검기를 두른 것처럼 기합을 지르며 왼손에 힘을 주어 기를 발산해 보았다.
그러자 팔뚝을 따라 오러가 흐르며 타지 쉴드에게도 잠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칼방은 타지 쉴드가 기간트에 용접된 방어 파츠가 아니라는 점을 역이용한 거였다.
본체와 일체화되지 않은 무구류는 대부분 오러 블레이드를 두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방패들도 역시 용접되지 않은 타입들은 오러 블레이드를 두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호기심에서 연구가 시작된 게 바로 이 칼방.
타이밍을 최대한 재면서 초월비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더더더더…….
다행히도 거리를 이동함에 따라 가속이 붙는 타입의 검기가 아니었다.
‘바로 지금!’
[하압!]
기합 소리와 함께 타지 쉴드에 오러 블레이드가 코팅되었다.
휘잉!
빅토르 중위가 날린 검기와 타지 쉴드에 순간적으로 둘러진 오러 블레이드가 맞부딪친 순간, 순간적으로 오러 블레이드와 검기가 뒤얽히면서 초월비를 구성하고 있던 마나가 흩어졌다.
[뭐야?]
대련이 시작한 지 아직 1라운드도 지나지 않았는데, 빅토르 중위가 벌써 세 번째로 놀라는 모습을 보여 줬다.
[이거, 이거… 루겐바인 영방군은 연막을 뭘 얼마나 뿌린 거야. 가문의 수치라느니, 뭐니 욕을 엄청 하더니만… 다 수작이었나? 하긴 검성님의 장남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감은 그렇지 않았다.
입으로는 칭찬을 하고 있지만, 목소리로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네’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번엔 제 차례입니까?]
[한 수, 기대하지.]
빅토르 중위가 검기를 발산하느라 땅에 닿았던 검끝을 다시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관자놀이까지 올리는 대신, 자루의 위치를 단전 근처에 갖다 댄 채 칼을 비스듬히 올렸다.
상대를 겨냥하는, 이른바 용자 1초식이라고도 부르는 플루크 자세를 그가 취했다.
폼탁 자세에서 검장풍을 날리면서 자연스레 올버 자세로 전환, 이후 오른발을 살짝 뒤로 빼면서 플루크 자세로 전환.
고향에서 사범대리를 했다는 게 허풍이 아니라는 듯, 빅토르 중위의 자세 전환은 물 흐르듯이 매우 자연스럽고 빈틈없이 깔끔하게 이어졌다.
다른 것은 몰라도 품세나 기본기 같은 거는 아마도 중대 최고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뭘 보여 줄 거지?]
<하르마 로얄>에서 방패 중 가장 사기라고 불리는 것은 의외로 드래곤쉴드 같은 에픽 등급 이상의 속성 쉴드가 아니었다.
가장 사기라 불리는 것은 다름 아닌 노멀 등급의 방패인 바로 이 타지 쉴드.
원래는 방어의 의미가 거의 없는 하급 방패로 취급되었지만, 칼방 테크닉이 개발됨에 따라 타지 쉴드와 버클러가 많이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레어 등급인 버클러가 더 선호율이 높았으나, 어느 한 게이머에 의해 타지 쉴드의 사기적인 테크닉이 발견됨에 따라 둘의 입장은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타지 쉴드가 부동의 1티어 방패인 상황.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각부 아래에 달린 바퀴를 굴려 벌어졌던 빅토르 중위와의 거리를 다시금 좁혔다.
여전히 칼끝을 내 쪽으로 겨눈 채 횡 이동을 하면서 나를 견제하는 빅토르 중위.
잠시 강강수월래를 추는 것마냥 둘은 서로의 옆이나 뒤를 잡기 위해 횡 이동을 했다.
[한 수 받아 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해야지.]
그렇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던 어느 순간, 몸을 크게 선회하며 아밍소드 날 끝으로 바닥을 세게 휘둘러 쳐 모래가 튀게 했다.
[흐음?]
더티 플레이라 하면 더티 플레이.
하지만 허용 범위인지 빅토르 중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아, 아 진짜…….”
빅토르 중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련 이후에 정비를 해야 하는 정비반장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푸우우우우—
나는 부스터 게이지를 전부 다 사용해 거리를 순간적으로 좁혔다.
[흠!]
거리를 좁혀 오는 나를 보고 빅토르 중위가 신음을 흘린 후 공격을 받아칠 준비를 했다.
빅토르 중위는 지금 침착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
이런 때라면 그 어느 순간보다 심리전이 잘 먹히기 마련이었다.
빅토르 중위와의 거리가 거의 다 좁혀졌을 때 순간적으로 다리를 굽혔다.
그러자 빅토르 중위가 그걸 보고 검자루가 이마 앞으로 오는 상단막기 자세, 크론을 취했다.
아까 내가 백스텝을 하는 광경을 봤기 때문에 점프 공격을 하리라 예측한 빅토르 중위.
하지만 나는 점프를 하는 대신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음?]
아무리 빅토르 중위가 자세 전환이 유연하다고 해도 크론 자세에서 하단 찌르기를 하는 건 어려운 일.
구르기로 거리를 좁힌 후 그대로 빅토르 중위의 허리춤을 향해 스피어를 시도했다.
[괜찮은 수였네. 허나 어림없네!]
빅토르 중위가 몸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그와 동시에 칼자루 끝에 장식된 폼멜로 나를 위에서 부터 타격하려고 했다.
급하게 왼손을 올려 상대의 폼멜 타격을 막는 나.
지금부터가 타지 쉴드의 사기성이 드러날 때였다.
[음?!]
원래 방패는 손으로 쥐고 사용하거나 아니면 팔을 뒤덮을 정도로 큰 것을 용접해 사용하는 방어 무기.
하지만 타지 쉴드는 끈으로 손목에 고정을 시키는 방법이라 손의 움직임이 자유롭다.
왼팔을 살짝 꺾어 장검을 쥐고 있는 빅토르 중위의 오른 손목을 향해 뻗어가는 내 왼손.
손으로 빅토르 중위의 오른팔을 잡자마자 내 쪽으로 끌어당김과 오른팔로 빅토르 중위의 왼 무릎을 감쌌다.
쿵!
순간적으로 걸어온 유술에 속절없이 당해 바닥에 쓰러지고 마는 빅토르 중위의 기간트.
이제 끝을 낼 차례였다.
[이, 이건! 흐아아아압!]
그 순간, 빅토르 중위가 당황해하며 기합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데 표정이 묘했다.
이상할 정도로 겁에 질린 표정을 한 빅토르 중위.
그러는 동안 코어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였던 마나가 방원형으로 퍼져 나가며 나를 거칠게 밀어냈다.
[크윽!]
쿵! 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몇 바퀴 구르며 나가떨어지는 내 기간트.
[이, 이런… 나도 모르게 주술을 사용해 버리고 말았군! 괜찮은가, 3소대장?]
뒤늦게 1소대장이 나를 걱정해 줬다.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대련을 계속…….]
[아니, 대련은 여기까지야. 대련에서 주술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쓴 오빠의 패배야.]
그때, 통신기를 타고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왜 오러블레이드가 나왔는가에 대해 의심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빅토르 중위가 곧바로 무기 간 길이 차이를 이용해 견제를 해왔기 때문이다.
검자루가 관자놀이와 수평을 이루는 ‘옥스’라는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칼끝으로 내 전두부를 툭툭 찌르려 하는 빅토르 중위.
잽쌉게 왼손목에 걸린 타지 쉴드를 이용해 검끝을 걷어 냈다.
걷어 냄과 동시에 자연스레 아밍소드를 종으로 휘둘러 반격을 시도해 보는 나.
[흠?]
처음에는 기간트의 발에 달린 바퀴를 역회전시켜 거리를 벌리려던 빅토르 중위였지만, 내가 만든 오러블레이드 끝 부분에 닿는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칼날의 끝을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 검격을 막아냈다.
뒤이어 반원을 그리며 내 아밍소드를 흘려 버리는 빅토르 중위.
자연스레 빅토르 중위의 자세는 옥스에서 검끝을 바닥에 붙이고 칼자루를 배꼽에 놓는 올버 자세로 바뀌었다.
게임에서는 폼 변환이 자유롭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들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빅토르 중위는 무도(武道)를 꽤 오랫동안 밟아 온 게 아닐까 싶었다.
[무기 길이 간의 유불리는 없는 셈인가. 그건 그렇고… 제법 날이 서 있군.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 순식간에 승부가 결정 날 뻔 했어.]
[과찬이십니다. 그러는 1소대장님이야말로 물 흐르듯 연계가 자연스러운 게, 마치 날이 잘 갈린 명검 같습니다.]
[하하하! 고향에서는 나름 사범대리도 했으니까. 뭐, 그래 봤자 제국제일이라 불리는 루겐바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말이야.]
잠시 둘 사이에 오고가는 잡담.
하지만 대화 내용과 달리 양측의 기간트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관전자들로 하여금 숨을 턱 막히게 하고 있었다.
“역시 1소대장님이야. 마력적성 면에서는 어떨지는 몰라도 검술만큼은 탁월하시지.”
“내가 이상한 건가… 3소대장님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어휴, 바보야! 아무리 그래도 검성님의 자제분이신데, 당연히 기본가락은 하시겠지.”
“하지만 소문으로는 술과 여자에만 빠져 사는 망나니라고…….”
“으음, 그건… 뭔가 소문이 잘못 난 게 아닐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소문이 그렇게까지 잘못 나겠어? 그냥 다 혈통 빨이겠지, 뭐.”
이쪽에게 그 말이 들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전자들이 신나게 우리 둘, 특히 나에 대해 신랄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하하! 인기가 많군, 3소대장.]
[예에…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에게 후광이 있으니까요.]
[크크큭, 뭐, 그렇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가문의 후광에 기댈 생각은 없습니다. 입대한 이상 전 아멜 루겐바인이 아니라 아멜 소위일 뿐입니다.]
[푸하하! 루겐바인보다 소위를 택하는 건가? 흐음, 과연… 그래서 그런 식으로 망나니짓을 하며 인생을 허비한 거군?]
[거기까지 말해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지금은 그저…….]
빅토르 중위의 기간트가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
‘왼쪽.’
아까 첫 합을 주고받을 때, 빅토르 중위의 오른손이 칼자루 아래쪽을 잡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빅토르 중위는 오른손잡이라는 소리.
빅토르 중위가 사용하는 무기가 장검인 만큼 기다란 도신을 이용한 찌르기, 아니면 휘두르기 위주의 검격을 펼쳐 올 가능성이 컸다.
오른손잡이가 양손무기를 다룰 경우, 높은 확률로 왼 축을 앞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빅토르 중위는 왼 어깨를 앞으로 하고 상단 찌르기를 하듯, 아니면 가로로 휘두르기를 하던 빅터의 오른쪽에서 액션을 시작해야 위력도 더 올라가고 움직임도 편해진다.
[흠?!]
빅토르 중위가 적잖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움직일 방향을 내가 예측한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놀란 모양이었다.
[호오, 이게 말로만 듣던 <감지>인가.]
빅토르 중위가 감탄하며 말했다.
…예? 그게 뭔데요?
그냥 빅토르 중위가 이렇게 움직일 거라고 생각해서 고개 튼 건데, 그게 또 따로 기술로 있어?
말로만 들어서는 록온과 비슷한 기능으로 보였다.
디바이스 없이 맨몸으로 사용 가능한 게 특징이겠지?
아니면 뭐… 디바이스를 사용하지만 일반적인 것보다 좀 더 상위 개념이라든가.
[기대하신 것과 다르게, 이건 <감지>가 아닙니다.]
굳이 거짓말을 하진 않기로 했다.
[그런가? 보여 줄 수 있는 건 다 보여 주는 게 좋을 걸세.]
빅토르 중위가 바닥을 쓸면서 땅에 닿아 있던 검끝을 끌어 올림과 동시에 몸통 전체를 회전시켰다.
칼날 면이 길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 휘둘러베기.
타지 쉴드의 좁고 낮은 방어력으로는 방어가 용의치 않아 보였다.
풍!
백스텝을 밟자, 다소 묵직한 소리가 났다.
하긴 생명체가 아닌 아파트 3층 높이 정도의 로봇인데 점프가 부드럽다는 것은 말이 안 되겠지.
[뛰었어?!]
빅토르 중위가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아니,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목격한 듯 빅토르 중위가 황당함에서 좀처럼 벗어나고 있지 못했다.
흐음, 아직 기간트를 다루는 테크닉이 그리 발달하지는 않은 단계인가?
게임 <하르말 로얄>에는 점프키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 경기라든가, 아니면 랭커 게임을 관전하면 심심치 않게 점프를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시스템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이냐.
이유는 간단했다.
일종의 뉴비 진입장벽이라고도 불리는 잡기술이 <하르마 로얄>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 점프 관련 테크닉은 토파즈를 상대할 때도 선보였지만, 부스터를 활용하는 거였다.
모든 기간트에는 이동 수단이 기본적으로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발바닥에 해당하는 위치에 달려 있는 바퀴와 종아리에 내장되어 있는 부스터.
점프는 이 부스터를 짧게 짧게 분사함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테크닉이었다.
[방법을 알려 드릴까요?]
[아, 됐어. 3소대장이 해낸 거 보니까 요령만 있으면 되는 것 같은데, 내가 직접 알아내 보지. 이래 뵈도 고향에서는 사범대리였다니까?]
[흐음, 저희 가문의 비기일 수도 있잖습니까?]
[비기였다면 루겐바인 영뱡군 소속 기사들이 사용했겠지.]
방금 그 말로 빅토르 중위가 내 본가에 대해 일면식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흐음…….
서부 지대의 왕가라 불릴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본가니까 모르는 게 더 이상할지도.
[그리고 아직 안 끝났어!]
빅토르 중위가 검을 머리 위로 올려 한 바퀴 돌리더니, 자루를 잡고 있는 손의 위아래를 바꿨다.
그러더니 양팔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려 언제든지 내려베기를 할 수 있는 폼탁 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검끝이 진동하면서 기공이 생성되어 점점 그 크기를 키워 나갔다.
[초월비(初月飛)!]
검끝에 뭉쳐져 있던 기공이 깨지며 검신에 둘러지더니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빅토르 중위, 생긴 거는 완전 개 상남자 마초처럼 생겨 놓고서는 전투 스타일은 ‘니가 와’냐.
무기로 장검을 선택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초월비는 그렇게 빠른 탄속은 아니었지만, 투사체의 크기가 제법 커서 범위가 꽤 넓었다.
때문에 부스터를 짧게 사용하는 것으로는 피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판단이 서자마자 곧바로 연료 상황을 살폈다.
남은 부스터 에너지를 풀로 분사하게 되면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검기 하나를 피하기 위해 부스터 에너지를 다 소모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교환비가 안 좋아 보였다.
대전에서 때로는 교환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플레이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이 그때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백스텝과 점프가 되는 것을 확인했으니, 추가적으로 현실에서도 가능한 건지 확인하고 싶은 테크닉이 하나 있었다.
고개를 왼쪽 아래로 달려 왼 손목을 쳐다봤다.
손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소형 방패가 팔목에 묶여 있었다.
이것은 타지라고 부르는 소형 방패로 손으로 잡고 사용하는 게 아닌, 팔에 고정시켜 사용하는 방패였다.
사람이라면 몰라도 기간트니까 ‘방패를 사용할 거면 아예 팔에 용접시키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방패를 철저하게 방어용으로만 사용하는 타입의 기간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카이트 쉴드 같은 대형 방패에만 적용되는 것.
타지나 버클러 같은 소형 방패는 경우에 따라서 적을 향해 투척을 하기 때문에 용접시키지 않는다.
기동과 유틸, 둘 다 챙기는 게 바로 소형 방패의 매력이자 장점이기 때문이었다.
단점은 역시 그런 만큼 방패치고는 높지 않은 방어력이 문제겠지.
그렇지만 시스템상 점프가 없는 게임에 점프를 개발해 낸 것처럼 유저들은 소형 방패의 단점을 보완할 방어 테크닉을 하나 개발했다.
지금부터 내가 시도할 것은 바로 그 테크닉.
그 이름은 칼방.
정식 명칭은 외국유저들에게는 저스트 가드, 한국 유저들에게는 ‘칼’타이밍 ‘방’어로 불리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어떤 이들에게는 타 게임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패링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 챔피언쉽 3년 연속 우승에 빛나는 세계 최고 미드 라이너 트릭스터가 칼방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함에 따라 지금은 칼방으로 통일되었다.
되는지 시도를 하기 전에 검기를 두른 것처럼 기합을 지르며 왼손에 힘을 주어 기를 발산해 보았다.
그러자 팔뚝을 따라 오러가 흐르며 타지 쉴드에게도 잠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칼방은 타지 쉴드가 기간트에 용접된 방어 파츠가 아니라는 점을 역이용한 거였다.
본체와 일체화되지 않은 무구류는 대부분 오러 블레이드를 두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방패들도 역시 용접되지 않은 타입들은 오러 블레이드를 두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호기심에서 연구가 시작된 게 바로 이 칼방.
타이밍을 최대한 재면서 초월비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더더더더…….
다행히도 거리를 이동함에 따라 가속이 붙는 타입의 검기가 아니었다.
‘바로 지금!’
[하압!]
기합 소리와 함께 타지 쉴드에 오러 블레이드가 코팅되었다.
휘잉!
빅토르 중위가 날린 검기와 타지 쉴드에 순간적으로 둘러진 오러 블레이드가 맞부딪친 순간, 순간적으로 오러 블레이드와 검기가 뒤얽히면서 초월비를 구성하고 있던 마나가 흩어졌다.
[뭐야?]
대련이 시작한 지 아직 1라운드도 지나지 않았는데, 빅토르 중위가 벌써 세 번째로 놀라는 모습을 보여 줬다.
[이거, 이거… 루겐바인 영방군은 연막을 뭘 얼마나 뿌린 거야. 가문의 수치라느니, 뭐니 욕을 엄청 하더니만… 다 수작이었나? 하긴 검성님의 장남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감은 그렇지 않았다.
입으로는 칭찬을 하고 있지만, 목소리로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네’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번엔 제 차례입니까?]
[한 수, 기대하지.]
빅토르 중위가 검기를 발산하느라 땅에 닿았던 검끝을 다시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관자놀이까지 올리는 대신, 자루의 위치를 단전 근처에 갖다 댄 채 칼을 비스듬히 올렸다.
상대를 겨냥하는, 이른바 용자 1초식이라고도 부르는 플루크 자세를 그가 취했다.
폼탁 자세에서 검장풍을 날리면서 자연스레 올버 자세로 전환, 이후 오른발을 살짝 뒤로 빼면서 플루크 자세로 전환.
고향에서 사범대리를 했다는 게 허풍이 아니라는 듯, 빅토르 중위의 자세 전환은 물 흐르듯이 매우 자연스럽고 빈틈없이 깔끔하게 이어졌다.
다른 것은 몰라도 품세나 기본기 같은 거는 아마도 중대 최고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뭘 보여 줄 거지?]
<하르마 로얄>에서 방패 중 가장 사기라고 불리는 것은 의외로 드래곤쉴드 같은 에픽 등급 이상의 속성 쉴드가 아니었다.
가장 사기라 불리는 것은 다름 아닌 노멀 등급의 방패인 바로 이 타지 쉴드.
원래는 방어의 의미가 거의 없는 하급 방패로 취급되었지만, 칼방 테크닉이 개발됨에 따라 타지 쉴드와 버클러가 많이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레어 등급인 버클러가 더 선호율이 높았으나, 어느 한 게이머에 의해 타지 쉴드의 사기적인 테크닉이 발견됨에 따라 둘의 입장은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타지 쉴드가 부동의 1티어 방패인 상황.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각부 아래에 달린 바퀴를 굴려 벌어졌던 빅토르 중위와의 거리를 다시금 좁혔다.
여전히 칼끝을 내 쪽으로 겨눈 채 횡 이동을 하면서 나를 견제하는 빅토르 중위.
잠시 강강수월래를 추는 것마냥 둘은 서로의 옆이나 뒤를 잡기 위해 횡 이동을 했다.
[한 수 받아 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해야지.]
그렇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던 어느 순간, 몸을 크게 선회하며 아밍소드 날 끝으로 바닥을 세게 휘둘러 쳐 모래가 튀게 했다.
[흐음?]
더티 플레이라 하면 더티 플레이.
하지만 허용 범위인지 빅토르 중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아, 아 진짜…….”
빅토르 중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련 이후에 정비를 해야 하는 정비반장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푸우우우우—
나는 부스터 게이지를 전부 다 사용해 거리를 순간적으로 좁혔다.
[흠!]
거리를 좁혀 오는 나를 보고 빅토르 중위가 신음을 흘린 후 공격을 받아칠 준비를 했다.
빅토르 중위는 지금 침착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
이런 때라면 그 어느 순간보다 심리전이 잘 먹히기 마련이었다.
빅토르 중위와의 거리가 거의 다 좁혀졌을 때 순간적으로 다리를 굽혔다.
그러자 빅토르 중위가 그걸 보고 검자루가 이마 앞으로 오는 상단막기 자세, 크론을 취했다.
아까 내가 백스텝을 하는 광경을 봤기 때문에 점프 공격을 하리라 예측한 빅토르 중위.
하지만 나는 점프를 하는 대신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음?]
아무리 빅토르 중위가 자세 전환이 유연하다고 해도 크론 자세에서 하단 찌르기를 하는 건 어려운 일.
구르기로 거리를 좁힌 후 그대로 빅토르 중위의 허리춤을 향해 스피어를 시도했다.
[괜찮은 수였네. 허나 어림없네!]
빅토르 중위가 몸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그와 동시에 칼자루 끝에 장식된 폼멜로 나를 위에서 부터 타격하려고 했다.
급하게 왼손을 올려 상대의 폼멜 타격을 막는 나.
지금부터가 타지 쉴드의 사기성이 드러날 때였다.
[음?!]
원래 방패는 손으로 쥐고 사용하거나 아니면 팔을 뒤덮을 정도로 큰 것을 용접해 사용하는 방어 무기.
하지만 타지 쉴드는 끈으로 손목에 고정을 시키는 방법이라 손의 움직임이 자유롭다.
왼팔을 살짝 꺾어 장검을 쥐고 있는 빅토르 중위의 오른 손목을 향해 뻗어가는 내 왼손.
손으로 빅토르 중위의 오른팔을 잡자마자 내 쪽으로 끌어당김과 오른팔로 빅토르 중위의 왼 무릎을 감쌌다.
쿵!
순간적으로 걸어온 유술에 속절없이 당해 바닥에 쓰러지고 마는 빅토르 중위의 기간트.
이제 끝을 낼 차례였다.
[이, 이건! 흐아아아압!]
그 순간, 빅토르 중위가 당황해하며 기합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데 표정이 묘했다.
이상할 정도로 겁에 질린 표정을 한 빅토르 중위.
그러는 동안 코어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였던 마나가 방원형으로 퍼져 나가며 나를 거칠게 밀어냈다.
[크윽!]
쿵! 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몇 바퀴 구르며 나가떨어지는 내 기간트.
[이, 이런… 나도 모르게 주술을 사용해 버리고 말았군! 괜찮은가, 3소대장?]
뒤늦게 1소대장이 나를 걱정해 줬다.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대련을 계속…….]
[아니, 대련은 여기까지야. 대련에서 주술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쓴 오빠의 패배야.]
그때, 통신기를 타고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