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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주 1권(19화)
Chapter Eight 고블린 국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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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하는 거지?”
고블린이 루멘을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갑자기 멀쩡하게 서 있던 놈이 방금 전까지 전력 질주를 한 놈처럼 거친 숨을 내뱉자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뭐, 저 인간은 원래 저런 인간이니 신경 쓰지 마시고 저랑 대화를 나누시죠.”
그때, 피터가 고블린을 향해 말했다. 고블린이 피터를 빤히 쳐다보았다.
“의외군.”
“뭐가 의외라는 겁니까? 하하. 멀리서 볼 때보다 더 잘생겼습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곳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건 저이니, 대화를 하시려면 저와 하자는 거지요.”
피터의 말에 고블린이 답했다.
“우리 동족 천 명이 죽은 걸 어떻게 보상할지에 대해 들으러 왔다. 네 얘기를 듣고 싶군. 어떻게 할 거지?”
한 왕국의 국왕처럼 당당히 말한다. 자신들의 병사 천 명을 죽인 값을 어찌 갚을 것이냐.
수많은 국가를 종주국으로 삼고 있는 거대한 제국이, 몇 되지도 않는 왕국민이 사는 국가에게 말하는 것처럼 위압적이고, 당당했으며,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위는 눈곱만큼도 들어 있지 않은 말이었다.
“이거 참, 그러시다면 이때까지 당신의 동족들이 우리 인간들을 죽인 건 어떻게 할 거죠? 또한 그쪽이 먼저 우리를 도발했습니다.”
“정당방위였다?”
“이거 말이 잘 통하는 분이군요.”
“그렇군. 우리가 먼저 공격했다……. 하지만 요 1년 사이엔 그렇지 않았을 텐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던 피터는 마지막에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영지민들의 말로는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몬스터가 습격한다고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영역을 넓히겠다고 보이는 몬스터를 죽였으며, 사랑스러운 늑대 패거리가 고블린들을 식사용으로 삼으며 살았다.
“아는 눈치군.”
“네? 흠흠. 그럴 리가요.”
“상관없다. 어차피 결정은 미리 하고 왔으니까.”
“무슨 결정을……?”
“인간들을 모두 죽인다. 인간들이 우리를 몬스터라고 명명하고, 하등한 취급을 하며, 보일 때마다 사살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하겠다는 거다. 떼거지로 몰려와서 우리를 단체로 죽이는 것을 토벌이라고 하지? 우리도 인간을 토벌하겠다는 거다.”
“…….”
피터가 할 말을 잃었다.
고블린이 인간의 말을 한다. 그리고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력은, 감히 어떤 실력을 감추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 좋다. 그러라고 해라.
원래 사람은 타협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고블린들 중에서 마족이 튀어나왔고, 그 마족이 하도 다방면으로 뛰어나서 인간의 말도 할 수 있고, 뭐, 인간들을 토벌하겠다는 미친 소리를 하는 것도 그럴 수 있다.
근데 말이다.
‘고블린한테 토벌을 당한다니…….’
일단 상황 자체만으로도 쪽팔리지 않은가!
건장한 성인이면 고블린 두세 마리는 쉽게 제압할 수 있다. 무기만 들면 대여섯 마리도 가능하다.
그냥 동네 개 수준인 존재.
몬스터라 명명된 존재들 중에서도 가장 최하위에 속하는 존재가 바로 고블린이란 소리다.
그런 고블린한테 토벌을 당한다니!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인간을 토벌하겠다고 지껄이는 마족이 너무나도 강해서,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강해서, 진짜 토벌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해서, 여기서 ‘그래, 토벌해. 이 짜샤!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라고 배 째라는 식으로 말하기에는 목숨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아니, 그건 고사하고 저 뒤에 늘어서 있는 고블린들을 보자면 한숨만이 나왔다.
저것들이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이곳은 쑥대밭이다. 자신이 1년간 공들여서 만든 영지가 아주 폐허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힘들게 명맥을 유지해 오던 미러 영지란 곳도 아예 그냥 지도상에서 지워야 될 것이다.
그때였다.
“너…….”
고블린이 갑자기 두 눈을 빛내며 ‘괴물과 싸우고 있는’ 루멘을 쳐다보았다.
“인간이 아니구나?”
6
“끄으윽.”
억눌린 신음이 흐른다.
루멘이 힘겹게 고개를 치켜들어 고블린을 쳐다보았다. 다른 고블린들보다 배는 큰 덩치.
아직 덜 자란 오우거를 보는 기분이다.
고통이 역력한 표정을 짓던 루멘이 돌연 씨익 미소를 짓는다.
섬뜩한 미소였다.
루멘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러자 푸른색의 눈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고통에 눈이 충혈된 걸까?
아니면 마법의 힘을 빌린 걸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후우우. 죽고 싶냐?”
루멘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피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이린도, 알렌도, 아론도, 루시도 마찬가지였다.
몸에서 갑자기 힘이 샘솟는다. 몸이 달아오르며 세포 하나하나에 강렬한 힘이 깃드는 기분이다.
화아아아아악―!
그 순간,
혈향이 가득 맺혀 있는 강풍이 주변을 감싸 안듯 불어닥쳤다.
Chapter Nine 괴물(1)
0
고요한 적막.
이 공간만 세상과 단절된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 어떤 존재의 침입도 불허하듯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의 유일한 존재가 작게 미소 지었다.
“드디어 네가 미쳤구나, 저거너트.”
사내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카르미나를 상대하려고 해? 능력이 떨어져서 기억을 소멸시키더니, 아예 생각하는 능력도 잃어버렸구나. 지금 당장 도망쳐도 모자랄 텐데…….”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벌써 카르미나를 만났으면 어쩔 수 없지. 예정보다는 빠르지만 하는 수 없지. 그럼 나는 아니마를 만나러 가야 하는 건가? 이건 너무 빠른 것 같기도 한데…….”
사내가 결심한 듯 중얼거릴 때였다.
갑자기 벌컥 문이 열리며 우락부락한 덩치를 자랑하는 중년인이 들어왔다.
“시간상으로는 딱 맞긴 하네.”
“네? 그게 무슨…….”
“아, 됐어. 왕국군이 쳐들어온 거지? 뭐라고 하던?”
“어떻게 아셨습니까?”
중년인이 놀랍다는 듯 혀를 내두르자, 사내가 피식 웃었다.
“한두 번이냐?”
“그건 또 그렇군요. 왕국군이 ‘순순히 투항할래, 아니면 그냥 여기서 뒈질래?’라고 친절히 묻는데, 어떻게 답할까요?”
중년인의 말에 사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답할 게 뭐 있어. 그냥 엎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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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기해?”
루멘이 고블린에게 물었다. 고블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을 뿐.
갑자기 기세가 변했다. 더욱 강렬하고, 위협적으로. 자신이 처음으로 느낀 ‘강함’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이미 강하다는 것을 느꼈기에 ‘평범’과는 적잖은 거리가 있다.
문제는…….
루멘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인간 같지 않을 정도로 강해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의 기운이 아니다.
물론 이런 인간 있고, 저런 인간 있을 만큼 인간은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지는 생물이다.
마기를 다루는 놈도 있고, 신성력을, 차크라를 다루는 존재도 있다.
하지만 루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런 것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정확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이때까지 한 번도 틀린 적 없던 자신의 감은 말하고 있었다.
자기 앞의 인간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라고.
‘죽여야 하지만 죽이려고 하면 위험한 자. 죽이면 더 위험한 자.’
자신의 감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존재.
“신기하군.”
순수한 감탄.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루멘을 더 짜증나게 했다.
“하하하. 신기해? 하긴, 신기할 거야. 갑자기 눈동자 색도 바뀌고, 날 보는 순간 이상하게 께름칙한 기분도 들고……. 그렇지?”
“그런 것들은 별로 신기하지 않다. 단지 네 존재가 신기할 뿐이지.”
아리송한 말이다.
‘그게 그 소리지.’
루멘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에휴, 이거 참 어떻게 해야 할지. 피터?”
“네, 네? 왜 그러십니까?”
루멘이 부르자, 피터가 당황해하며 답했다.
“다들 피신시켜.”
“……얼마나 남았습니까?”
“5분 남짓.”
피터가 혀를 쯧 하고 차며 말했다.
“다 죽여도 됩니다.”
“나도 알아.”
“특히 덩치 큰 놈은 꼭 죽이세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루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거대한 덩치의 고블린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파앙!
파공음과 함께 바람이 일렁이며 고블린을 향해 쏘아졌다. 고블린이 보이지도 않은 그 바람을 정확하게 손으로 막아 냈다.
‘흠!’
순간, 강렬한 압력이 손아귀에 잡혔다.
바람은 순식간에 사라졌으나, 강렬한 압력은 남았다.
다른 이었다면 손의 살갗이 찢어질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물론.
모든 고블린들을 굴복시킬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재미있구나.”
고블린이 씩 미소를 지었다. 처음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힘이다.
고블린은 인간들을 위협하기 위해 퍼트렸던 힘을 천천히 사그라트렸다.
다 죽어 가던 인간들은 그제야 숨이 쉬어지는지 헐떡거렸고, 인간들 중 그나마 괜찮은 실력을 가진 자들은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더 나를 즐겁게 해 주거라.”
고블린이 서커스를 하는 광대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귀족처럼 말했다.
루멘이 작게 미소 지었다.
“죽고 싶을 만큼 즐겁게 해 주마.”
루멘이 살벌한 말을 내뱉을 무렵, 한 발 뒤로 물러난 피터는 알렌에게 눈짓했다.
다들 피신시키라는 뜻을 담아서.
알렌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카가 피터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 고블린은 어떻게 인간의 말을 하는 거죠? 마족인 겁니까? 그리고 방금 전에 그 말도 안 되는 기운은…….”
“나도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죠.”
“그렇긴 하지만…… 영주님은?”
“저 인간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제가 기사님보다 훨씬 영주님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도 방금 전 그 기세는…….”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영주님은 처음부터 멀쩡하지 않았습니까?”
피터의 말에 스카가 그제야 무언가를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 1년간 실력이 한 걸음…… 아니지. 그 괴물 고블린을 생각하면 두세 걸음은 껑충 상승한 듯싶었다.
매너가 아니기에 훈련을 감상한 것은 1년간 두세 번도 되지 않으니 그럴 확률이 농후했다.
‘거인(巨人)의 자식은 거인이라는 건가…….’
스카가 타밀론 후작을 떠올릴 때, 피터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빨리 도망쳐야 하니 도와주시지요. 일단 영지민들은 대피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스카가 고개를 끄덕이자, 피터는 서로 마주 보며 작게 웃고 있는 괴물들을 흘깃 쳐다보고는 괴물 고블린 뒤로 늘어서 있는 고블린들을 주시하며 영지민들을 대피시키는 데 힘썼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미 루멘은 자신의 안에 있는 괴물에게 졌다.
루멘의 말대로라면 겨우 5분밖에 남지 않았다. 재수 없으면 그도 안 될 정도로 짧은 순간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