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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주 1권(20화)
Chapter Nine 괴물(2)
2
루멘이 세아드라를 뽑았다.
흑색의 검신이 빛을 반사하며 번쩍였다.
“후우우. 시작하자고.”
루멘이 자신의 검에 차크라를 불어넣었다. 세아드라의 검신에서 작은 일렁임이 생기더니, 이내 곧 차크라가 강력하게 압축된 ‘검붉은’색의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우우웅―
루멘의 오러를 받아들인 세아드라가 기묘한 울음을 토해 냈다.
오러를 일으킬 때가 아니라, 일으키고 나서 검명을 토하다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별 신경은 쓰지 않았다. 어차피 괴물에게 지고 나선 자신이 제어하는 힘은 자신의 힘이 아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그냥 그 괴물하고 연관 지어 생각하면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타협할 수 있었다.
실로 짜증나면서도 만만한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루멘의 오러를 본 고블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뭐지?”
“뭐야? 촌놈이 따로 없군. 오러도 모르는 거야?”
“오러…… 응집된 차크라 위에 스피릿 중 하나를 쌓는 걸 말하는 거냐?”
“잘 아네.”
“단순히 변질된 차크라를 응집한 것뿐이지 않나?”
“……뭐?”
고블린의 말에 루멘은 멈칫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소리…….
‘내가 몬스터를 앞에 두고 뭔 고민을 하는 거냐?’
어차피 미지한 괴물이다. 인간의 말을 하고, 엄청난 힘을 과시하고 있다고 해도 결국엔 몬스터에 불과하다.
마족도 결국은 몬스터를 뜻하는 말.
“잡소리는 그만하고 그냥 덤벼.”
루멘의 말에 고블린이 피식 웃으며 한 발자국 움직였다. 그 순간, 고블린의 신형이 휜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루멘의 앞에 당도했다.
무시무시한 속도!
놀랍게도 루멘은 그 속도에 반응했다.
샤악―
세아드라가 춤추듯 움직이며 고블린의 목을 스치듯 베었다. 아니, 베었다 생각했다.
고블린의 몸이 신기루처럼 흩어지며 루멘의 옆에서 등장했다. 루멘이 재빠르게 몸을 틀며 고블린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고블린이 허리 옆에 대고 있던 주먹을 아래서 위로 뻗어 올리며 세아드라의 검면을 때렸다.
팅!
오러가 맺힌 검을 쳐 내며 고블린이 재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그러곤 고블린의 발이 루멘의 발목을 쳤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자동으로 스텝을 밟는 루멘이다. 발목을 가격당하며 순식간에 스텝이 꼬였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오른발을 고블린을 향해 휘둘렀다.
루멘의 발차기가 고블린의 복부에 그대로 작렬했고, 루멘이 재빠르게 자세를 잡은 뒤 검을 휘둘러 고블린의 어깨를 때렸다.
분명 벤다고 생각하고 휘둘렀건만, 얻은 결과는 겨우 때린 것에 불과했다.
“미친.”
루멘이 작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알 수 있었다.
고블린의 몸은 오러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단단하다. 아니, 통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단지 고블린이 자신의 몸에 오러를 두른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고블린의 몸이 단단하든 고블린이 자신의 몸에 오러를 두른 것이든, 둘 다 괴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검, 꽤나 아프군.”
“내가 왜 오러를 내뿜고도 겨우 ‘꽤나 아프군.’이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야?”
루멘이 자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자문했다.
루멘의 자문에 고블린이 답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나를 즐겁게 해 줘라. 나를 즐겁게 해 준다 하지 않았나?”
“고블린 주제에 더럽게 똑똑하군.”
“인간 주제에 불만이 많군.”
고블린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루멘이 고블린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고블린과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루멘이 자세를 낮추었다.
고블린의 시야에서 잠깐 동안 루멘이 사라졌다. 루멘은 재빠르게 고블린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고블린이 팔을 휘둘러 루멘의 검을 쳐 냈다.
엄청난 반응속도였다.
루멘이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연신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루멘이었지만 표정만은 여유만만이었다.
“오러를 그냥 몸으로 쳐 내면 안 아픈가?”
“별로.”
“진짜 부러운 육체네.”
그렇게 말해며 루멘이 허공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루멘의 검에서부터 검붉은색의 오러가 허공을 가르며 고블린을 향해 날아들었다.
고블린이 오른손을 활짝 펴며 오러를 받아 냈다.
촤좌좌좌좌좍―
이상한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이내 곧 루멘의 오러가 소멸되었다.
오러의 위력을 극대화하여 날려 보냈으나, 그걸 맨손으로 막아 내는 고블린을 보며 루멘이 혀를 내둘렀다.
“이거 무서워서 상대하겠어?”
“이게 단가?”
“이게 다면 어쩔 건데?”
고블린의 질문에 루멘이 질문으로 응대했다.
“넌 죽는다.”
“이거 참, 안타깝게도 난 살겠네.”
루멘이 고블린을 향해 달려가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티잉!
루멘의 공격은 고블린의 몸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오러로도 피해를 주지 못했던 빌어먹게 단단한 몸이다. 오러를 펼치지 않은 생태에서 피해를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팅! 팅! 팅! 팅! 팅!
질풍 같은 속도로 검을 휘둘러 같은 곳을 때리고, 또 때릴 뿐!
작은 물방울에 바위가 깨지는 일이 있다.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아주 많이 하면 적은 힘으로도 단단한 것을 부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일례다.
루멘이 미친 듯이 고블린을 공격했다. 그럼에도 루멘의 공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가문의 검법인 소드 웨이브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고블린의 몸을 가격한 세아드라가 허공에서 곡선을 그리며 다시 한 번 고블린의 몸을 때렸다.
그것을 수십 차례 반복하자, 고블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게 끝인가?”
“있어. 있는데, 너 따위에게 쓰기엔 너무 어마어마해서 말이지.”
팅! 팅! 팅!
공격을 하면서도 루멘이 대답했다.
싸움 도중에 침착하게 질문을 던지는 고블린이나, 그걸 곧이곧대로 대답해 주는 루멘이나, 아주 제대로 미친놈들이었다.
“그럼 그걸 끌어내도록 내가 노력해야겠군.”
“하! 이제야 알았냐?”
뻐억!
루멘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고블린의 솥뚜껑만 한 주먹이 루멘의 복부를 강타했다.
루멘의 신형이 들썩이며 저 위로 솟구쳐 올랐다.
실로 무시무시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루멘은 십여 미터나 솟구쳐 오른 뒤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즉사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씨발…….”
루멘이 욕지기를 중얼거렸다.
한 가닥 잡고 있던 의식의 끈이 멀어져 간다.
“넌 죽었어, 병신아…….”
고블린을 향해 실소를 지어 보인 루멘의 머리가 축 늘어졌다.
10여 초가 흐르자, 돌연 루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꽤나 멀쩡하군.”
고블린이 다친 곳 하나 없어 보이는 루멘을 보고 작게 중얼거리자, 루멘이 짐승의 그것과 같은 울음소리로 답했다.
“크르으…….”
3
상당히 멀리 떨어졌다.
대충 거리상으로는 1킬로미터 가까이 될 것이다. 물론 1킬로미터가 그리 긴 거리는 아니지만, 5분 남짓의 시간 동안 수백 명의 인원이 한 번에, 그것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인간들이 이동한 것치고는 상당히 빨리 움직인 것이었다.
다행히 고블린들은 자신들을 쫓지 않았다. 자신들의 왕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서일까?
그건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나름 거리가 벌어졌지만, 지금보다 더욱 빨리, 더욱 멀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빨리 움직여.”
피터의 말에 영지민들은 허둥지둥 움직였다. 영지민들도 알고 있다.
방금 전의 그 이상한 압력은 일단 제쳐 두더라도,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고블린들이라니!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때가지 수십, 수백 번도 버리려고 했던 마을이지만, 끝끝내 버리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죽음이 코앞까지 닥쳤다고 생각하니 그런 것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후우우. 빌어먹을.”
아론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격하게 뛴다.
몸에선 힘이 넘치고, 시야가 넓어졌다. 벌레가 움직이는 소리까지 똑똑히 들릴 정도로 청각이 좋아졌다. 작은 냄새 하나 놓치지 않을 정도로 후각도 좋아졌다.
오감이 모두 발달해진 것이다.
감각이 발달되고, 힘이 넘친다.
“깨어났구나…….”
괴물이.
피에 굶주린 귀신이.
4
“크르으―”
“머리라도 다친 건가?”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걸걸한 울음소리를 내는 루멘을 보며 고블린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것이 정답인 양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느낌상 그건 아닌 듯하고.”
“크으―”
“‘크으, 크으’밖에 하지 못하는 건가?”
“크르으―”
진전이 없다.
루멘이 짐승의 울음소리로 울부짖는다. 반면 루멘처럼 울부짖어야 할 고블린은 반대로 인간의 말로 루멘에게 묻고 있다.
몬스터와 사람이 뒤바뀐 듯한 모습이었다.
“너의 부하들은 모두 도망쳤다. 넌 어떻게 할 거지?”
고블린의 물음에 루멘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가? 그럼 이만 죽어라.”
고블린이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순간, 강한 압력과 함께 공기가 압축되어 루멘을 향해 쏘아졌다.
압축된 공기가 루멘의 지척에 도달했을 무렵, 루멘이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직선으로 날아오던 압축된 공기이기에 루멘의 몸을 때렸다. 바위를 박살 내고도 남을 위력이 담겨 있음에도 루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고블린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가 미소 지었다.
“재밌어.”
살갗에 느껴지는 기묘한 기운과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
쉬익―!
어느새 고블린의 앞에 도달한 루멘이 세아드라를 휘둘렀다. 벼락같은 속도로 휘둘러진 세아드라가 고블린의 목을 베었다.
‘때린’ 것이 아니고 ‘벤’ 것이다.
“……!”
고블린이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루멘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루멘의 몸이 들썩이며 저 멀리 날아갔다.
“상처를 냈다고?”
이 무슨 일인가.
방금 전 루멘의 검에는 응집된 차크라도 없었다. 단지 순수하게 검을 휘두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금속보다 단단한 것이 바로 자신의 몸이다.
설사 태산이 자신의 몸을 짓누른다 하더라도 버텨 낼 수 있다.
그런데.
검에 베였다고?
“하하. 재밌구나, 재밌어.”
아주 옅은 상처에 불과하다.
피가 한두 방울 흐르고는 그칠 정도의, 상처라고 부르기도 미안한 상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났단 사실이다.
변화를 격고 나서는 오우거의 주먹에도, 와이번의 발톱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자신이다.
자신을 한없이 ‘절대자’로 치켜세워 주지만, 삶에 무료함을 느끼게 했다.
그 어떤 위험도 자신에게는 없다.
‘혹시나’라고 하는 위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적당한 위험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인간이 주고 있었다.
“계속하여라.”
광대에게 명령을 내리는 귀족처럼, 수하에게 명령을 내리는 군주처럼 말한 고블린은 오른발을 뒤쪽으로 빼며 루멘을 주시했다.
“크륵!”
루멘이 괴성을 지르며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텝이고 뭐고 그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오롯이 믿는 괴물 같은 신체적인 능력으로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빛살과 같은 속도로 고블린을 향해 달려간 루멘이 세아드라를 찔러 넣었다.
쉬왁!
한순간 세아드라가 고블린의 심장을 찌를 듯 코앞까지 다가섰으나, 고블린이 오른팔을 아래서 위로 치켜들어 올리며 루멘의 팔을 때려 세아드라를 허공을 찌르게 한 뒤, 왼손을 수도(手刀)로 만들어 루멘의 허리를 비스듬하게 내리쳤다.
빠악!
루멘의 허리가 오른쪽으로 접히며 바닥을 굴렀다.
“크르으―!”
루멘이 재빠르게 자리를 박차며 낮게 울부짖었다.
고블린은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명령했다.
“더 나를 즐겁게 해 주거라. 더!”
고블린의 외침에 루멘이 두 눈을 번뜩이며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고블린이 먼저 선공을 감행하기로 했다.
루멘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순간, 루멘의 허리가 뒤로 젖혀지더니 고블린의 주먹을 피함과 동시에 지축을 밟아 뛰어올랐다.
대충 고블린의 머리 위까지 뛰어오른 루멘은 다시 허리를 반듯하게 폈고, 허리를 필 때 발생하는 반동을 이용하여 고블린의 뒤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곧장 고블린의 어깨를 잡은 뒤, 그의 어깨를 물었다.
세아드라를 버리면서까지.
기사에게 가장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는, 전투 중 검을 놓치는 행동도 서슴지 않으면서까지.
그를 때린 것도, 관절을 꺾어 버린 것도 아니다.
단지―
그를 물었다.
“흠!”
재빠른 반응속도에 경탄하며 자신의 어깨를 베거나, 뒷목을 벨 거라 생각했다.
그 정도는 맞아 주면서 싸워야 오히려 더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를 물었다.
그의 송곳니가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파고드는 느낌은 실로 미묘했다.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더러운 기분이다.
고블린이 대충 어림짐작으로 오른쪽 어깨를 물고 있을 루멘의 안면에다가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루멘이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찜찜한 기분에 오른손으로 루멘이 문 목 언저리를 어루만지며 바닥을 구르고 있는 루멘을 노려보았다.
“크르으―”
착각일까?
루멘의 목소리가 묘하게 기뻐하는 듯했다.
“더 이상 인간이라 하기에도 묘하군. 너희들이 나 같은 존재를 마족이라 하는 것처럼, 너도 인간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겠구나.”
“크르으!”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고블린의 말이 기분이 나빴는지 저음의 목소리로 울며 고블린을 위협했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이제 슬슬 끝내도록 하지.”
고블린이 그리 뇌까리며 루멘을 향해 달려들었다.
섬광과 같은 속도였다.
탁!
루멘의 지척에 다가선 고블린이 강하게 바닥을 밟았다. 바닥을 발로 때리듯이 밟자 강한 진동이 일었고, 고블린은 그 진동을 자신의 오른손에 모았다.
꽈악!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었고, 루멘을 향해 내질렀다. 그리고 루멘의 복부에 주먹이 닿기 직전, 팔을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빠아악!
루멘의 복부에 고블린의 주먹이 꽂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고블린은 오른쪽으로 꺾었던 손목을 다시 한 번 왼쪽으로 비틀었다.
촤아악!
루멘의 몸이 왼쪽으로 뱅글뱅글 회전을 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바닥 깊숙이 처박혔다.
“살아 있군.”
다른 인간이었다면, 설사 몬스터들의 제왕이라 불리는 오우거라 하였을지라도 골백번은 더 고쳐 죽었을 공격이었다.
하지만 루멘은 살아 있다. 아니, 일부러 힘 조절을 했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돌아가지.”
고블린이 수하들을 향해 말했다. 헛걸음을 한 것이지만, 고블린들은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아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그는 자신들의 지배자다. 함부로 불평을 했다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 있을 터였다.
고블린 국왕.
그가 고블린들의 최전방에서 이끌고 있을 때, 한 고블린이 그에게 다가왔다.
마족.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족이지만, 자신보다는 약하다. 하지만 그는 학식이 뛰어나 고블린 국왕인 그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고블린이었다.
인간의 말도 그에게서 배웠다.
“어째서 그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을 살려 두신 겁니까?”
자칭 현자라는 고블린의 말에 고블린 국왕이 작게 미소 지었다.
“자네가 예전에 그런 말을 했었지. 적당한 위기는 고블린을 즐겁게 한다고.”
“겨우 인간 따위가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 그래도 각성을 마치고 난 후, 내 몸에 최초로 상처를 낸 존재다. 너는 내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는가?”
“…….”
고블린 현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로서는 절대 그의 왕의 옥체에 얕은 상처 하나 낼 수 없었기 때문.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