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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주 1권(22화)
Chapter Ten 나약한 괴물과 나약한 인간(2)


2

전속력으로 달리자 10여 분만에 미러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미러 영지보단 미러 마을이라 불러야 되고, 지금은 고블린들이 다 무너트리는 바람에 마을이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루시가 주변을 둘러보며 루멘을 불렀다.
“영주님! 어디 계세요?”
대답이 없다.
루시는 자신의 말을 씹는 루멘을 어떻게 찾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느낌상 아직 루멘은 괴물인 채일 터다. 물론 그러한 루멘의 모습도 사랑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상태일 때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찾을 것이 아니라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찾아야 할 터이다.
한데 그 특별한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에휴. 그냥 찾지, 뭐.”
그냥 일일이 발로 뛰어 찾자고 생각한 그녀는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를 뒤지며 루멘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 무너진 성벽…… 아니, 돌담에 루멘이 묻혀 있을까, 조심스럽게 한 돌, 한 돌 들어내 보기도 했고, 루멘의 집만 유일하게 멀쩡하기에 ‘혹시 집에 들어가서 쉬고 계시나’라는 생각에 집 안에 들어가―자신이 생각하기에―은구슬이 굴러가듯이 예쁘고, 또 그러면서도 상당히 색기(色氣)가 넘치는 매혹적인 목소리로 루멘을 불러 보았다.
“으구. 대체 어디 계시는 거야.”
루시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무슨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의 숙련자 판도 아니고, 그냥 부르면 좀 나오면 좋지 않은가!
그녀가 웬만해선 하지 않는 루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루멘을 찾고 있었다.
한 시간을 찾아다녔으나 루멘을 발견 못한 루시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에후! 영주님은 하늘로 솟은 거야, 땅으로 꺼진 거야.”
그녀가 그렇게 투덜대고 있는 바로 앞에 있는 바닥에 금이 가 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진은 안 일어났는데…… 운석이라도 충돌했나?”
혹시 영주님이 다 때려 부수면서 바닥까지 부순 게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왜인지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루시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잔뜩 나 있는 금의 원인이 되는 곳으로 향했다.
진짜 흡사 운석이라도 충돌한 듯 거대한 구멍이 나 있었고, 그 거대한 구멍의 중앙에는 피 칠갑을 한 채 쓰러져 있는 인영이 있었다.
“여, 영주님!”
그 인영을 보는 순간, 루멘이라는 확신을 한 루시가 구멍의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곤 곧장 인영의 얼굴에 묻어 있는 피를 자신의 옷으로 닦아 냈다.
그러자―루시의 관점에서―매우 잘생긴 루멘의 얼굴이 드러났다.
“으앙! 영주님, 영주님, 정신 좀 차려 봐요. 영주님!”
루시가 루멘을 흔들며 그를 깨우려 애를 썼다. 루멘의 머리는 아직 붉은 빛을 띠고 있는 것이, 역시 괴물은 잠들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게 무어 중요하단 말인가!
“아이고, 우리 영주님 얼마나 많이 다쳤으면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려요. 흑흑. 역시 괴물 같은 치유력이라 벌써 상처가 다 낫긴 했지만, 얼마나 아팠으면 깨어나질 못해요. 엉엉.”
루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하자 절로 눈물이 났다. 루시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루멘의 위에 올라탔다.
그러곤 사정없이 루멘의 뺨을 때렸다.
찰싹!
순간 루멘의 머리가 180도 가까이 회전했다. 루시가 이번엔 반대쪽 뺨을 때렸다.
“엉엉! 영주님 깨어나세요!”
찰싹!
이번에도 180도 회전을 했다.
약간만 힘을 더 주면 여기서 머리를 뽑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엉엉! 영주니임!”
루시가 애절하게(?) 루멘을 부르짖으며 연속해서 뺨따귀를 날렸다.
찰싹! 찰싹! 찰싹!
사정없이 루멘의 뺨을 때린 루시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루멘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영주님! 어떤 놈이 영주님의 얼굴을 이렇게 상하게 했어요! 으앙! 여기 코피 좀 봐! 그것도 쌍코피잖아? 엉엉! 제가 복수해 줄 테니 눈 좀 떠 보세요, 영주님!”
루시는 루멘이 정신을 못 차리자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루멘의 뺨을 후려쳤다.
찰싹! 찰싹! 찰싹!
“아이고, 영주님! 영주님! 영주니임!”
루시가 엉엉 울면서 계속해서 루멘의 뺨을 후려쳤다. 루멘이 머리가 좌로 꺾이고, 우로 꺾이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그래도 루멘은 깨어나지 않았다.
“엉엉! 영주님, 이렇게 맞고도 깨어나지 않다니! 엉엉! 얼마나 아프게 당하신 거예요! 아이고, 우리 영주님 불쌍해서 어째.”
혹시나 자신에게 너무 얻어맞아서 깨어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생각도 못하고 루시는 계속해서 루멘의 뺨을 때렸다.
찰싹! 찰싹!
그녀가 아는 민간요법 중의 최고봉은 역시나 충격요법이었다.
예전에 복부에 칼이 꽂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기사 한 명의 뺨을 강하게 때려―매우 고통스럽게―깨운 전적까지 있는 루시는 쉴 틈 없이, 말 그대로 속사포처럼 루멘에게 싸다귀를 날렸다.
찰싹! 찰싹!
한참 동안 루멘의 안면을 때리던 루시는 퉁퉁 부어올라 혐오스럽게 변한 루멘의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영주님! 그 잘생긴 얼굴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어요! 좀 깨어나 봐요! 흑흑!”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루시는 루멘의 얼굴을 후려쳤다.
“흑흑! 저도 팔이 좀 아프긴 하지만 사랑의 힘으로 이겨 낼게요. 영주님도 제 사랑의 힘을 받아서 빨리 깨어나세요. 엉엉!”
루시가 서럽게 울며 루멘의 얼굴을 계속해서 후려쳤다.

그렇게 십 분이 흘렀다.
루멘의 얼굴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오르고, 피가 터졌다.
코뼈도 상당히 무너져 내린 듯했다.
“아이고, 영주님! 이렇게 맞고도 안 깨어나네. 흑흑! 이러다가 영영 안 깨어나는 거 아니에요? 영주니임!”
루시가 루멘을 애절하게 불렀다.
그때, 루멘이 번쩍 눈을 떴다.
순간 루멘의 루비처럼…… 아니, 루비보다 붉은 두 눈동자가 번뜩였다.
“여, 영주님!”
루멘이 눈을 뜨자, 루시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눈이 붉은 게 아직 제정신은 아닌 듯하지만 그래도 깨어난 게 어디란 말인가!
“아이고, 영주님. 흑흑! 영영 못 깨어나는 줄 알고 식겁했잖아요. 절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하셔야지. 엉엉!”
퍽! 퍽!
자신은 정말, 많이, 매우, 당신을 꼭 살리고 싶을 정도로 놀랐으며, 왜 이제야 일어나 자신을 깜짝 놀라게 했냐는 뜻을 어필하려는 듯 루시가 루멘의 가슴팍을 퍽퍽 후려쳤다.
그럴 때마다 루멘의 신형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일반인이라면 골백번은 더 죽일 수 있는 힘이다.
“크르으―!”
눈에서 분비물을 뿜어내며, 위력적으로 자신의 심장 부위를 강타하는 루시를 향해 루멘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때, 루시가 방금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양의 눈물을 쏟아 냈다.
“흐아아? 영주님! 아이고, 이 얼굴 퉁퉁 부은 것 좀 봐. 아예 형체를 못 알아보겠네……. 아까보다 두 배는 더 심해졌잖아? 흐악! 영주님! 볼에서 피, 피 나잖아요!”
루시가 루멘의 볼을 세게 쥐며 짐짓 놀랐다는 듯이 중얼거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년이야! 어떤 년이 우리 영주님의 볼에 상처를 냈어! 이 때려죽일 년!”
그 ‘년’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 채 루시가 루멘을 끌어안았다.
“크릅! 크르르!”
루시의 충만한 가슴이 출렁이며 루멘의 얼굴을 파묻었다. 순간, 호흡이 막혀 오자 루멘이 버둥거렸고, 완력에선 나름 자신이 있는 루시는 ‘제정신은 없지만, 이때다!’라고 생각하며 끈덕지게 루멘을 껴안았다.
“아이고! 우리 영주님! 아파서 어째, 아이고!”
입으론 통곡을 외치고 있지만, 어느새 눈물을 멈추었고, 얼굴은 헤실헤실 웃고 있는 것이 완연하게 드러났다.
한참을 버둥거리던 루멘은 결국 온몸에 힘을 뺐다. 루멘의 저항이 끝나자, 루시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능청스럽게 루멘의 등을 토닥였다.
“우리 영주님, 얼마나 아팠을까. 괜찮아요, 괜찮…… 흐헤헤.”
말을 채 다 끝내기도 전에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보가 터졌다.
몰래 여탕을 훔쳐보는 중년의 아저씨 같은 미소를 지은 루시는 방금 전보다 더 꼬옥 루멘을 끌어안았다. 떨어질 생각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이미 피터가 일찍 돌아오라고 했던 말 따윈 까먹은지 오래였다.
그렇게 루시의 커다란 가슴 사이에서 질식사의 위험을 넘나들은 루멘은 두 눈을 번뜩였다.
그의 두 눈에서 강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는 루시로선 그 기세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느끼긴 했다.
‘일이 너무 잘되니까 괜히 무섭네. 헤헤. 뭐, 후환이야 어찌 되었든. 흐헤헤.’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짓느라고 눈치채는 것에 실패했을 뿐이다.
힘을 회복한 루멘은 순식간에 루시를 밀쳐 냈다. 갑자기 느껴지는 우악스런 힘에 루시가 뒤로 넘어졌다.
“꺅! 영주님! 갑자기 그렇게 진도를 나가시려고 하시면……. 그래도 역시 제정신이 아니라 욕구에 충실한 짐승이 되었다고 할까……. 아니, 이게 아니고. 이러시면 안 돼요, 영주님.”
안 된다고, 안 된다고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부위까지 옷을 살짝 내려 주는 것이 여인 된 도리(?)!
다만 루멘으로선 그딴 것에 관심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압박하고 있던 이 존재를 어찌 처리할까 고민하던 루멘의 눈에 루시의 새하얀 목덜미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갈증이 났다. 방금 전까진 느끼지 못했으나 루시의 목덜미를 보자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이 일었다.
발견은 늦었지만, 행동은 빨랐다.
루멘이 루시의 목을 물었다.
이질적이면서도 안타깝게 익숙한 그 느낌에 루시가 움찔했다.
깜빡했다.
제정신이 아니라 짐승이 된다는 걸.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으윽! 여, 영주님!”
루시가 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끔찍한 느낌에 루멘을 밀쳐 내기 위해 몸을 버둥거렸다.
루시가 버둥거리자, 루멘이 루시의 위에 올라탄 뒤 순식간에 두 다리로 루시의 양팔의 움직임을 봉하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그리고 버둥거린 벌로 왼손으로 그녀의 안면을 길게 베었다.
날카로운 루멘의 손톱은 루시의 얼굴의 오른쪽 부분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꺄아아악!”
얼굴에서 느껴지는 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루시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루멘이 양팔을 다리로 누르고, 머리도 오른손으로 잡고 있어 움직일 수 있는 건 두 다리뿐.
심지어 넘어진 상태라 그냥 허공에 발길질하는 것이 다였다. 그래도 온몸에 힘을 주며 버둥거리자, 정신적으로 심하게 고통스럽진 않았다.
육체적으론 여전히 고통스러웠지만.
다행이라고 할까, 안타깝다고 할까,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루멘이 물고 있는 목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아아아아아악!”
성대가 파열해도 상관이 없다는 듯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루시가 소리를 내질렀다.
태어나서 처음…… 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 몇 년 사이에 느껴본 적 없을 정도로 큰 고통에 루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한편 루시가 고통을 호소할 때, 루멘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맛없잖아?
이렇게 피가 맛없는 인간도 있나?
루시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맛없는 피 맛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을 때, 깨달았다.
아니, 생각해 냈다는 것이 정답일 거다.
이건, 이건 자신의 피다. 어째서 인간 따위에게 자신의 피 맛이 느껴지는 거지?
어째서? 어째서?
어떻게 된 거지 하며 속으로 궁리하면서도 루시의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빨아먹었다.
맛이 없어도, 이게 자신의 피라도, 마시면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은 사라진다. 배속에서 풍만함이 느껴졌다.
이 인간이 자신의 동료일지라도 이 순간만은 행복하다.
아, 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