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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상회 1권(6화)
제2장 백운(白雲)의 방문자(3)
‘은자 스무 냥이라…….’
그 이야기를 들은 유기준은 속으로 감탄했다.
은자 한 냥이면 동전으로 이천 문.
동전 열 개면 보통 객잔에서 소면을 하나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이며, 은자 한 냥이면 쌀을 한 섬 사서 가족들끼리 한 달을 먹을 수 있다.
그런 서민들의 가정에서 은자 스무 냥이라는 상금은 크다. 흥청망청 쓰지 않는 한, 말 그대로 스무 달 정도는 밥 굶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 돈을 철맥 하나가 발견되었을 때 생기는 이문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티끌 정도에 불과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그나마도 안 나눠 주는 일터가 수두룩하다. 그러니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절한 상금으로 동료들이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 유도하는 ‘홍 대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감탄이 생겼을 뿐이다.
“너, 광부들이랑 친한 사이니?”
“네에. 일을 좀 돕고 있거든요.”
“어떤 일?”
“철광석을 구별하는 일을 돕고 있어요.”
“구별?”
“네. 철광석의 순도가 높은지 안 높은지 구별하는 일이요.”
“허어, 그래?”
유기준은 새삼 꼬마 아이를 다시 보았다.
철광석의 순도가 높은지 안 높은지는 아무나 구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최상급 철광석이든 중급의 철광석이든 겉보기엔 똑같은 시커먼 돌멩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몇 십 년간 광도에서 일해 온 숙련자 정도는 되어야 그걸 구별할 수 있다.
결코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홍 대장님의 일을 옆에서 거들다 보니까 할 수 있게 됐어요. 이젠 저를 믿고 아예 절반 정도는 맡겨 주세요.”
“그거 대단한데.”
“헤헤, 별거 아니에요.”
“눈이 좋은가 보구나. 철광석 말고도 뭐 잘 보는 거 있니?”
“글쎄요. 딱히는…… 아, 사람들 얼굴을 잘 기억해요. 인상이 기억에 남거든요.”
아이는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아, 잠깐! 잠깐만요!”
“음, 왜 그래?”
“여기서 잠깐만 세워 주세요.”
유기준은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췄다. 그러자 꼬마 아이는 달구지를 박차고 뛰어내리더니, 이내 옆에 있는 대장간의 창문과 기둥을 붙잡고 능숙하게 지붕 위로 올라갔다.
“어이?”
유기준은 멍하니 올려다봤다.
작은 몸으로 높은 지붕 위에 후다닥 올라가는 모습이 경이롭다. 꼬마 아이는 발랄한 움직임으로 지붕 끝에 다가가 손으로 햇볕을 가리고 유심히 뭔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진 채 한참이나 살펴본다.
유기준은 그 모습이, 마치 아찔한 절벽 위에서 먼 산을 굽어보는 고고한 사슴 같다고 생각했다.
“아! 찾았어요!”
아이는 방긋 웃더니 지붕 끝을 붙잡고 곡예단처럼 가벼운 동작으로 바닥에 내려섰다.
“뭘 찾았다는 거야?
“아저씨한테 소개해 드릴 곳이요. 원래는 금 아주머니 댁에 소개해 드리려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되돌아왔잖아요?”
“그랬지.”
유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그는 아이의 안내를 받아 마을 구석진 곳에 있는 가정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는지, 그곳은 이미 잔뜩 몰려든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결국 두 사람은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너는…… 아, 그렇지. 너 이름이 뭐니?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못 들었구나.”
“저는…… 풍서예요.”
“풍서?”
“네. 바람 풍(風)에 쥐 서(鼠)를 합해서 풍서요.”
“바람쥐? 특이한 이름이구나.”
“몸놀림이 빠르다고 해서 그렇게 불러요. 어른들이 부를 때는…… 다른 뜻도 있는 것 같지만요.”
“아아…….”
유기준은 이해했다.
이 아이는 정말 보고 있는 내내 경이로울 만큼 어떤 일이든지 수완이 좋고 능숙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 밥그릇은 알아서 찾아먹는달까.
그런 데도 체구는 작고 얼굴은 귀여우니, ‘쥐처럼 능란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쁜 말은 아니고, 약간의 애정을 담은 말이다.
“풍서라…….”
주변에서 불러 주는 별칭을 이름으로 했다. 즉,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이 없다는 뜻일 터.
유기준은 약간 씁쓸하면서 오묘한 심정이 되었다.
“넌 쥐라는 말은 잘 안 어울리는구나.”
“어, 그래요?”
“그래.”
쥐라기보다는 아찔한 절벽에 발끝을 걸치고 먼 산을 굽어보는 새끼 사슴이다.
“내 이름은 유기준이다.”
“아, 그러면 유 아저씨라고 부를게요.”
“……그래.”
유기준은 조금 움찔했다.
그 호칭은 뭔가 그리운 심정을 자극했다. 눈앞의 소년보다 좀 더 어린, 지금쯤 상해에 있을 귀여운 아이가 생각나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네가 대가로 지불하는 장소는 어디지?”
“아, 저기예요. 저기 보이시죠?”
풍서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다른 집들보다 조금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빨간 지붕의 가정집이 있었다.
뿌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집 앞은 사람 없이 한적하다. 활짝 열어 놓은 대문에서 왠지 모르게 따뜻한 분위기가 풍겼다.
“아는 곳이야?”
“네. 오늘은 저기가 가장 인심이 후할 거예요.”
“오늘은……?”
유기준은 물끄러미 풍서를 응시했다.
“처음에 가려던 금 아주머니네 집을 빼면 음식 솜씨가 좋은 곳이 네 군데 정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위에서 보니까 나머지 세 군데에는 아저씨들이 돌아와 있더라구요.”
“흐음……?”
“사람들의 흐름을 보니까 오늘 광산일이 좀 일찍 끝나서 그런지 그밖에도 손님들이 많을 것 같구요. 그런데 다들 시끌벅적한 가운데 지금 저희가 가려는 복 아주머니네 집만은 손님이 아무도 없었어요.”
“혹시 아무도 없는 것 아냐?”
“아뇨. 아마 저 집 아저씨가 급하게 마음을 바꿨을 거예요. 오늘은 친구네 집에서 같이 먹자구요. 반주(飯酒)를 좋아하셔서 자주 그러시거든요.”
“그래……?”
“네. 그러니 지금쯤 복 아주머니는 이미 지어 둔 밥을 싸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계실 거예요. 밥을 얻어먹기는 최적의 시기예요.”
풍서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불렀다. 반면에 유기준의 눈빛은 흔들렸다.
방금 아이가 한 말.
상가(商家)에서는 그런 행동을 ‘사람의 흐름을 본다’고 표현한다.
장사는 언제 물건을 사고, 언제 물건을 팔아야 할지 결정하는 시점이 중요한 법.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 그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며, 마음을 움직여서 뭔가를 얻어 내기에 가장 좋은 시점을 알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그걸 이렇게나 빨리…….’
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기준이 상가(商家)에 들어와서 가장 처음으로 배운 게 바로 사람의 흐름을 보는 법이었으니까.
그때 나이가 아마 십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그걸 할 줄 알아야 풋내기에서 졸업하고 그나마 상인의 ‘제자’ 취급을 해 준다.
유기준은 자신이 풍서의 나이에 무엇을 했던가 돌이켜보았다.
열 살 무렵.
또래 친구들하고 세상분간 못하고 뛰어놀았던 기억밖에는 없다.
그런데 같은 나이에 ‘사람의 흐름을 보는 방법’을 익힌 꼬마가 있다.
부럽다기보다는, 그만큼 힘든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연민이 생겨난다.
“너…….”
“네?”
“……아니, 아니야.”
유기준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으려던 말을 삼켰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 성급하게 내뱉을 말이 아니었다.
“복 아주머니―!”
고개를 갸웃거리던 풍서는 달구지가 집의 대문에 가까워지자 펄쩍 뛰어내려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갔다.
그러자 안쪽에서 웃는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는 중년 아낙의 모습이 보인다.
펑퍼짐한 몸매에 통통한 얼굴.
척 보기에도 후덕한 인상을 전해 주는 전형적인 시골 아주머니의 모습이다.
“어머나―! 풍서 왔구나! 항상 이렇다니까. 내가 너 찾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니?”
“헤헤, 그래요?”
“그래그래. 밥 안 먹었지? 식사가 많이 남았으니까 한 끼 먹고 가지 않을래?”
“감사합니다아―!”
풍서가 자그마한 손을 모으며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복 아주머니라 불린 중년 여인은 그 모습이 이쁜지 연신 풍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요, 아주머니.”
“응? 왜 그러니?”
“사실은 제가 외부에서 온 상인분을 안내해 드리고 있었거든요? 먼 길을 떠나오시느라 하루종일 밥 한 끼도 못 먹고 오셨다고 하더라구요.”
“으응……?”
그 말에 복 아주머니라는 여인의 얼굴에 경계심이 생긴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동네 꼬마와 외부에서 온 사내는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제야 그녀는 문밖에서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유기준을 발견한 모양이다. 화들짝 놀라며 몸가짐을 바로한 뒤, 자식을 보호하듯 풍서의 어깨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딸랑.
그런 성급한 움직임에 그녀의 허리춤에서 방울이 딸랑거렸다.
유기준은 의외의 소리에 무심코 시선이 갔다.
검은색과 하얀색의 교차.
반원과 반원이 하나로 합쳐진 모양.
시골 마을 중년 여인의 노리개로는 어울리지 않는 태극 문양과 은빛의 방울 두 개가 허리에 매달려 딸랑거리고 있었다.
“누구세요……?”
“아, 저는…….”
유기준이 달구지에서 내리며 인사를 하려는 순간, 풍서가 새끼 새처럼 양팔을 파닥거렸다.
“아이 참, 아주머니. 제가 소개할게요.”
“응? 아, 그, 그러렴.”
“여기 계신 분은 유씨 아저씨. 저 멀리 상해에서부터 오신 분이에요.”
“응? 상해라면…… 저기…….”
“대륙의 동쪽 끝이요. 저어― 멀리에 있는 남경보다도 더 동쪽에 있는 곳이요.”
“어머나, 멀리서 오셨네?”
사람에게 있어 경계심보다 강한 게 있으니, 그게 바로 호기심이다.
예부터 유교에서 만악의 근원으로 일컫던 탐(貪) 중에서도 지식에 대한 탐심이 가장 무섭다고 하지 않았던가.
중년 여인의 얼굴에서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지고 호기심이 떠올랐다.
보통 이런 마을에선 한 번 혼인을 하고 난 뒤에는 평생 옆 마을에도 가기 힘든 삶을 살아간다. 딱히 누가 강제하는 건 아니지만, 세월이 흘러 아이를 낳고 가정을 가꾸다 보면 어느새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여건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엄―청 멀리서 오신 분이세요. 그러니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아까도 저 언덕 위에서 멍하니 앉아 계신 모습이 얼마나 안되어 보였는데요.”
“어머, 그랬니?”
‘그랬…… 나?’
유기준의 어깨가 축 내려왔다.
그가 그렇게 불쌍해 보였는지는 처음 알았다.
“네. 그러니 아주머니, 괜찮으시면 저 아저씨도 같이 먹으면 안 될까요? 복 아주머니 밥은 우리 흑임촌에서 맛있기로 소문났잖아요. 저분한테도 꼭 맛보여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어머나, 얘. 맛있다고 소문나기는. 금 언니도 있는데…….”
“금 아주머니는 금 아주머니대로, 복 아주머니는 복 아주머니대로 맛이 있다니까요? 저는 복 아주머니댁의 밥이 진짜 가족의 밥처럼 느껴져서 참 좋아요.”
“얘도 참…….”
중년 여인은 호호 웃으며 따뜻하고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풍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기준은 그때 이미 풍서의 뜻대로 중년 여인의 마음이 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중년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렴.”
“아, 감사합니다아―!”
“거기 상인분, 별로 차린 건 없지만 한 끼 드시고 가세요. 시골 벽촌의 음식이라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풍서는 처음엔 경계심을 보이던 중년 여인의 마음을 완전히 풀어놓았다.
이렇게나 상황을 좋게 끌어가는 능력.
자연스레 상대의 호감을 사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원하는 결과를 얻도록 만들어 내는 것은 또 하나의 재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