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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상회 1권(8화)
제3장 칠성태극교(七星太極敎)(1)


상주(商主).
현재 유기준이 올라 있는 직위의 이름이었다.
등위에 철저한 관(官)과는 달리 상인들 사이의 호칭이란 건 상당히 애매하고 불확실한 것이 대부분이다.
시골 마을 상점의 주인도 상주라고 부르고, 북경 시내에 위치한 거대한 상단의 주인도 상주라고 부른다.
즉, 호칭만으로는 구분이 될 리가 없는 것인데, 그래도 그 앞에 소속된 상회의 이름이 들어가면 같은 상주라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백운상회 제십삼상주(白雲商會 第十三商主).

대륙 전체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백운상회.
그중에서도 단 열세 명밖에 없다는 상주의 자리는, 작은 상점을 하나 갖고 있는 점주들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하늘 위에 살고 있는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임직(任職)에 따라 다르다지만, 보통 상주의 위치에 오르면 그 밑에 열 개에서 스무 개 정도의 상점과 한 지역을 관리할 만한 재물이 수여된다.
대상회(大商會)의 상주가 수하로 다룰 수 있게 되는 사람의 수는 수백에 달하고, 그들이 움직이는 돈은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은 평생가도 만질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변한다.
또 하나가 더 있다.
직위라는 게 으레 그렇듯, 그에 따른 권위가 주어진다.
백운상회의 주인인 회주를 제외하면 그 누구의 명도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 상주들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는데, 그 힘은 웬만한 도읍 하나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과 필적할 정도였다.
유기준은 그중 조금 특별한 존재로, 최연소로 상주의 자리에 오른 대신 그 밑에 배치된 지점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 대신 다른 권한을 얻었지만…….
어쨌든, 엄밀히 따지면 이곳 운남 흑임촌의 지부는 그의 권한 아래에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상주가 되었다고 명령할 생각은 마시게.”
강 점주는 하대도 온대도 아닌, 미적지근한 말투로 미리 칼같이 선을 그어 버렸다.
후룩―
“…….”
유기준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그의 앞에 마주 앉아 찻잔을 들고 있는 노인을 지그시 응시했다.
어림잡아 세수 육십이 넘은 나이.
백발 백염을 지녔으나 눈가를 제외하면 주름도 없고,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체구는 웬만한 젊은이도 부럽지 않을 듯했다.
노인의 이름은 강환조.
유기준은 보통 강 점주라고 부르는데, 회주에게 정면으로 대들어 싸우지만 않았다면 상주 자리 하나쯤은 충분히 꿰차고 있을 정도로 상해의 숨은 실력자였던 사람이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네. 손바닥만 한 마을에서 별일이 있어 봤자 뭐가 그리 있겠나.”
“……힘든 일은 없으셨습니까?”
“말했듯이, 그래 봤자 상주님께 말씀드릴 만한 건 아닐세.”
유기준은 슬쩍 찌푸려지려던 표정을 관리했다.
“혹시 제가 상주 자리에 오른 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
“…….”
노인은 찻물을 한 번 더 들이켠 뒤 즉답했다.
“솔직히 그렇네.”
“제 마음이 변했는지를 의심하는 거라면, 아니라고 말씀드리지요.”
“자네가 마음이 변할 사람이 아니란 건 알고 있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유기준은 담담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 나이에 상주가 되기 위해서 다른 상주들에게 얼마나 많이 아부했는가?”
“…….”
“밖으로 드러나면 치명적인 뒷거래라도 도왔나? 그래서 불법적인 돈거래를 시켜 주고,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잡고 있다는 동지의식을 살려서 만장일치를 얻어 냈겠지?”
유기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운상회의 규칙상, 총회(總會) 때 참석한 상주들의 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상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유기준은 그 총회에서 만장일치를 얻어 냈다.
지금까지 백운상회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당시 회주의 놀란 얼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과연, 여전하시군요.”
유기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는 알려고만 하면 대륙 어느 지역이든 간에 하루 만에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던 강환조다.
이런 궁벽한 산골에 귀향 온 지금도 그 능력만큼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강 점주님, 중요한 건 수단이 아니라 목표입니다. 제가 만약 그런 방법이라도 써서 상주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더라면 저희의 목표는 최소한 오 년은 더 멀어졌을 겁니다.”
“으음…….”
“대업을 위한 계획이 최소한 오 년은 늦어지는 것은 물론, 오늘 점주님을 다시 본점으로 모시고 가지도 못했겠지요.”
“……!!”
강환조는 노안을 부릅떴다.
“나를…… 본점으로 데려가겠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총회에 의한 귀향살이는 아직 오 년이나 더 남았을 텐데…… 서, 설마, 회주님이……!”
“예. 회주님의 허락은 이미 받았습니다.”
유기준은 품속에 가지고 있던 서찰을 꺼내 강환조에게 내밀었다. 강환조는 그것을 마치 귀중한 보물처럼 두 손으로 받아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허어…….”
강환조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네는 정말…… 무섭군.”
깊이를 알 수 없는 능력, 사람을 다루는 수완.
그 모든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현명하신 회주님 덕분입니다. 애초에 강 점주님을 이곳에 보내시는 것조차 원치 않으셨던 분입니다.”
“그건 알고 있네만…….”
강환조는 복잡한 눈빛으로 유기준을 응시했다.
현재 백운상회의 내부엔 회주의 권위를 빼앗아 상회를 야금야금 잡아먹으려는 불온한 무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삼 년 전, 총회에서 강환조를 이런 궁벽한 시골로 쫓아냈을 때와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준은 온갖 방해를 물리치고 적들을 꼼짝도 못하게 만든데다, 상주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만들었다.
게다가 현재 역적이나 다름없는 평판의 강환조를 복직시키기까지 했으니…… 그 과정은 굳이 직접 보지 않아도 매우 치열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겉보기엔 실없이 웃는 젊은 놈일 뿐인데…….”
허름한 복색에 사람 좋게 웃는 얼굴.
겉으로만 봐선 절대 그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이 유기준의 첫인상이다.
이미 오랜 세월간 유기준을 봐 온 강환조조차 이쯤 되자 그의 능력에 대한 경탄보다는 경계심이 먼저 일어났다.
“자네가 적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
강환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회주님의 은혜 덕분에 지금도 숨을 쉬고 있는 겁니다. 결코 제가 회주님의 적이 될 리가 없습니다.”
“그야 그렇네만……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상해로 돌아가면 해 주셔야 할 일이 많습니다. 어쩌면 이런 평화로운 곳에서 왜 나를 끌고 왔느냐며 저에게 화를 내실지도 모릅니다.”
유기준은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걱정 말게. 이미 충분히 쉬었으니, 이젠 죽는 날까지 다시 바쁘게 살아야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음껏 부려먹게. 이 늙은 몸을 하나 움직여서 백운상회를 일 년이라도 더 살려 놓는다면…… 그거야말로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허허 웃는 강환조를 보며 유기준의 눈빛이 깊어졌다.
역시 대단한 노인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지금 백운상회가 직면한 상황은 상당히 심각했다. 빈말로나마 위험을 다 타파하고 백운상회를 원래대로 되돌려놓겠다고 할 수 없을 정도.
길어야 일 년이다.
그 뒤에 백운상회는 분명 몰락을 하겠지만…….
“하지만, 그 일 년이 모든 것을 바꿀 것입니다.”
마치 예언과도 같은 유기준의 강력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실없이 웃고 있던 유기준은 지금 이곳에 없다.
바위처럼 굳건한 표정, 그리고 온몸에서 내뿜는 기백과 두 눈에서 활활 불태우는 의지는 일군의 무장(武將)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더없이 믿음직한 모습에 강환조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고.
평소의 느긋한 모습 사이로 이렇게 강인한 면모가 있으니, 의당 이 사내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백운상회의 명운을 쥐고 있는 구세주.
그게 바로 노인이 바라본 유기준이었다.
“자네만 믿겠네.”
“맡겨 주십시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대륙의 남서쪽 끝, 운남.
그곳에서 백운상회를 되살릴 불씨가 서서히 태동하고 있었다.

***

강환조가 상해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상점에 변화는 없다. 철새가 다른 새에게 둥지를 넘겨주고 떠나듯 이곳에도 또 다른 담당자가 배치되어 올 뿐이다.
……라고 유기준은 생각했다.
“문을 닫겠다고요?”
강환조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 상점은 흑임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런 외진 마을에서 물류를 담당하는 상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대륙 전역에 유통망을 갖고 있는 백운상회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물건들을 들여올 수 있고, 흑임촌은 그런 백운상회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이곳은 광산 마을.
당연히 쌀이나 보리와 같은 주식(主食)부터 흔한 옷 한 벌까지도 상회의 도움이 없다면 자립할 수 없다.
“그 점에 대해 사실 할 말이 있네.”
“예, 말씀하시죠.”
“자네 혹시 팔극회(八極會)라고 들어보았나?”
“팔극…… 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