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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상회 1권(9화)
제3장 칠성태극교(七星太極敎)(2)


유기준은 재빨리 머릿속에 담긴 정보들을 검색해 보았으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가 고개를 내젓자 강환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최근에 생긴 단체이니 말일세.”
“단체라니, 어떤 단체입니까?”
“상회일세. 특정하게 취급하는 물품은 없고, 다양하게 온갖 것들을 사고파는 잡화의 느낌이랄까.”
“그건 저희 백운상회와 같군요.”
중원삼대상회(中原三大商會)라 불리는 대상회들에겐 각자 특징이 있다.
석가장의 대붕상회(大鵬商會)는 주로 병기와 토지매매를 취급하고, 사대부 출신의 강남칠상련(江南七商聯)은 온갖 고급 예술품과 식재료를 취급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운상회가 취급하는 것이 바로 ‘온갖 것’, 즉 잡화만물인 것이다.
“같지. 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네.”
“무엇이 다릅니까?”
“가격이 싸네.”
“……?!”
유기준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저희 백운상회는 대륙 상회들 중에 가장 확실하고 빠른 유통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반 비용의 효율성을 높여서 소규모 상점들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떼다 판다. 그게 저희 상회의 장점이지 않습니까?”
은자 열 냥만큼의 사람을 고용해서 은자 백 냥어치의 물건을 이송시키는 것과 은자 백 냥어치의 사람을 고용해서 은자 만 냥어치의 물건을 이송시키는 것.
전자는 소규모 상점의 유통법이고, 후자는 백운상회와 같은 대상(大商)의 유통법이다.
그 차이는 현실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저희보다 더 싸게 판다면 손해를 감수해야만 할 텐데요?”
“그게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더군.”
“예?”
“자네, 팔극회는 모른다고 했지. 그럼 칠성태극교(七星太極敎)라는 이름도 모를 테지?”
“칠성…… 태극교…….”
유기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모른다.
하지만 그 이름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이 느껴졌다.
“칠성태극교는 팔극회가 나타나기 얼마 전에 운남에 나타나기 시작한 신흥 세력일세. 처음에 쌀 일곱 되를 가져오면 가입시켜 준다더군.”
“오두미교(五斗米敎)의 변형입니까?”
유기준은 무거운 얼굴로 되물었다.
오두미교는 후한(後漢) 때부터 있던, 역사가 깊은 종교 단체다. 기본 윤리는 도교(道敎)를 따르고 있으나, 사실 농민들의 노동력을 모아 서로서로 먹을 것을 나누어 갖는 향토 집단에 가깝다.
쌀 다섯 되를 가져오면 오두미교의 일원이 될 수 있고, 그 뒤엔 교리에 따라 일하기만 하면 절대 굶을 일이 없다는 장점 덕분에 그 당시 백성들에게 큰 지지를 얻으며 대륙 전역에 오두미교가 마치 큰 유행처럼 퍼져 나간 적이 있었다.
“맞네. 엄밀히 따지자면 오두미교와 미륵불 신앙을 합한 것이지.”
“미륵불……!”
언젠가 온 세상의 고난한 이들을 구원할 미륵불이 온다는 신앙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금의 힘든 현실을 깨부술 구세주를 꿈꾼다.
미륵불 신앙 또한 오두미교 못지않게 온 대륙을 휩쓸었던 사상.
그런데 만약 그 두 가지가 합쳐진다면?
“파급력이 엄청나겠군요.”
유기준은 저도 모르게 긴장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렇다네. 내가 칠성태극교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운남 구석의 홍하합니족(紅河哈尼族)이었는데, 어느새 대리백족은 물론이고, 려강시(麗江市)까지 세력이 확장되어 있었어.”
“그 정도면 운남 전체군요. 기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일 년, 아니, 합니족 바깥으로 진출한 건 반년쯤 전이니 대충 이백 일 정도 걸린 것 같군.”
“한 주(州)를 장악하는 데 이백 일이라…… 굉장하군요.”
“무서울 정도지.”
강환조의 얼굴 역시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오두미교의 온화함으로 백성들을 유혹하고, 미륵불 사상으로 구세주에 대한 헛된 희망을 불어넣어 교주(敎主)에게 신격(神格)을 부여한다. 누가 고안한 건지 몰라도 대단한 자야. 머리가 비상해.”
“주동자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까?”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철저하더군. 시험 삼아 안에 몇 명 집어넣어 봤지만, 신입들은 교주가 있는 곳 근처에도 못 가게 되어 있었어.”
“으음…….”
유기준은 팔짱을 끼고 깊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강 점주님, 신앙 자체가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 흑임촌보다 조금만 더 규모가 작은 마을에 가면 굶어 죽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도적 떼가 된 자들도 많지요. 그런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게 된다면 그걸로 괜찮은 것 아닙니까?”
“그렇지. 백성들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지.”
“예?”
“하지만 우리 ‘상인’들 입장에선 큰 문제네.”
순간, 유기준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조각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 말씀은 설마…….”
“내가 처음에 팔극회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그랬…… 지요.”
“팔극회의 물건이 싼 이유. 그건 칠성태극교가 얼굴로 내세운 상회가 바로 팔극회이기 때문일세.”
“…….”
“생각해 보게. 칠성태극교에 들어간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 그저 삼시 세 끼 굶지 않고 밥을 먹을 수만 있으면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지.”
“즉, 일을 시켜도 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네.”
은자 열 냥어치의 사람을 고용해서 은자 백 냥어치의 물건을 움직이는 것이 보통 상점.
은자 백 냥어치의 사람을 고용해서 은자 일만 냥의 물건을 움직이는 것이 대상회.
하지만 칠성태극교는 은자 일만 냥의 물건을 움직여도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차이는, 움직이는 물류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커질 터.
“그러면…… 물건 값이 싸질 수밖에 없겠군요.”
유기준은 신음하듯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싸게 파는 것도 아니야. 저들은 백운상회가 따라 하려다간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금액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
“우리가 따라 할 수 없는 한계 내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올리고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지.”
유기준은 자신의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지금은 운남 안쪽에 불과하지만, 이대로라면…….”
“한 번 기반을 잡고 나면 무서운 기세로 다른 지역의 상권을 잡아먹기 시작할 걸세. 아니, 사실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몰라.”
“너무 비약이 아닐까요?”
“절대로 아닐세. 내가 어떻게 칠성태극교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아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쫓고 있던…… 그자들의 뿌리를 캐다가 알게 되었네.”
쨍!
유기준의 손에서 찻잔이 박살 나서 흩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나도 내가 알게 된 것이 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
유기준의 눈밑이 파르르 떨렸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네.”
“…….”
“다만 다행인 것은, 저들이 아직 준비가 덜된 것 같다는 사실이야. 사실 종교라는 것이 힘들 때 가장 큰 성세를 누리는 것 아니겠나.”
사람은 힘들 때일수록 초월적인 존재를 찾는다.
원(元)에서 명(明)으로 하늘이 바뀐 지 아직 반백년도 채 안 된 상황.
영락제가 국경을 공고히 다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명 제국 곳곳에는 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었다.
운남도 그중 하나다.
수도와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탓에 운남의 포정사사는 중앙의 백족들 사이에서 자기 배불리기에 급급할 뿐, 주변 민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칠성태극교의 위세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한 터.
관의 힘이 강하지 못하니, 한 번 물살을 타기 시작한 거대 교파를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 없다.
“아직은 몸을 낮춰야만 한다.”
유기준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운남보다 위, 즉 사천이나 귀주는 관의 힘이 강하니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군요.”
“그렇다고 생각하네.”
강환조는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백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운명이 바뀌는 건 아닐 테지만 말이지.”
“그건 그렇군요.”
“하지만 앞으로 몇 년 뒤엔 알 수 없는 일이야. 세상일이라는 게 워낙 마음대로 안 되는 법이니. 혹시 누가 아나, 갑자기 원의 잔당들이 역모라도 일으킬지?”
강환조는 농담을 하듯 말하며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아무래도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 해소하려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저희가 관의 힘이 강해지길 바라야 할 텐데요?”
“허허, 그것도 참 모순이군.”
상인이란 본래 관리들이 부패할 때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이젠 팔극회를 막기 위해 관의 힘이 강해지길 바란다니.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이곳 흑임촌도 팔극회가 장악한 것입니까?”
유기준은 문득 그에게 식사를 내주었던 여인이 허리에 차고 있던 태극 문양의 방울을 떠올렸다.
“교파는 아직이지만…… 팔극회의 상점이 워낙 가격이 싸다 보니 이미 손님들은 다 빼앗겨 버렸어.”
“상점을 아예 정리해야 할 만큼요?”
“그렇다네. 이런 곳은 알다시피 상품의 질보다는 가격이 더 중요하거든.”
“이곳에 다른 상점은 없습니까?”
“개인 상점은 이미 한참 전부터 없었어. 그나마 대붕상회의 상점이 하나 있었지만, 거기도 문을 닫고 철수한 지 오래지. 운남 땅 안에서는 팔극회를 당해 낼 수가 없어.”
상계에서 잔뼈가 굵은 강환조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정말로 어찌해 볼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예?”
“흑임촌의 양료관(糧料官)이 상당히 까다롭게 굴고 있네.”
양료관.
관청에서 식량이나 마량 등을 관리하는 직책.
등위로 따지면 팔급 이하의 말단 관리다.
도시에서라면 관청에서 사용되는 물품만 관리하지만,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는 보통 찾아보기 힘든 존재이기도 했다.
“여기에 양료관도 있습니까?”
“광산이 있다 보니 관에서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것일 테지. 작년쯤에 갑자기 부임해서 말일세. 관의 이름으로 이것저것 간섭을 해 오는데, 특히 물류를 통과하는 게 까탈스러워.”
“그렇군요…….”
“친분을 쌓으려고도 해 보았지만 너무도 완고하더군. 마치 뭔가 명령을 받고 온 사람처럼.”
강환조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보통 상인이 관리와 친분을 쌓는다는 것은 뇌물을 주고 결탁을 맺겠다는 뜻이다.
관리와 상인의 결탁은 정도를 지나치지 않는 이상 결코 흠이 되지 않으며, 관리 입장에서도 별거 아닌 일에 돈을 벌게 되니 서로 좋은 일이다.
“제가 한 번 만나 보겠습니다.”
“……그러겠나?”
강환조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해 볼 것을 다 해 보고 포기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기준은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운남에서 팔극회의 힘은 정말로 강력한 모양이다.
“예. 갈 때는 가더라도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일은 해 봐야지요.”
“으음, 좋을 대로 하게.”
상인이란 이 세상의 그 어떤 가치보다 이문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
명분이나 인정은 필요없다.
손을 떼야 할 때는 과감히 손을 털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나면 이 세상에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은 법이다.
“자, 그럼 나는 마무리를 좀 해 볼까.”
강환조는 주먹으로 자신의 등허리를 툭툭, 두드리면서 중얼거렸다.
여전히 젊은이 못지않은 건장한 육신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너스레를 떤다.
할 말은 다 했으니 유기준이 나가 주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그럼 저도…….”
유기준은 심각한 표정을 지우고, 다시 평소의 느긋한 얼굴로 돌아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한 가지만 더 여쭤 보겠습니다.”
“말씀하시게.”
“혹시 풍서라는 아이를 아십니까?”
의외라는 듯 강환조가 눈을 크게 떴다.
“허어, 자네가 그 아이를 어찌 아는가?”
“오는 길에 만났습니다. 굉장히…… 특이한 아이더군요.”
유기준은 잠시 그 아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렇지. 특이한 아이지.”
강환조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이 마을에서 그 아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 성실하고 밝고, 그러면서도 사막에 혼자 떨어뜨려 놓아도 잘살 것처럼 강인한 면모도 있는 아이일세.”
“예.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에 대해 궁금한가?”
“예.”
유기준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강환조는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유기준을 바라봤다.
“이것참, 자네가 어린아이에게 관심을 갖다니.”
“하하, 그러면 안 됩니까?”
“안 되지. 몰락해 가는 상회에 들여놓아선 안 될 아이야.”
“흐음.”
유기준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풍서라고 불리던 아이.
세속의 때를 탈 만큼 탄 강 노인의 마음에도 쏙 드는 아이인 모양이다.
“그 말을 들으니 더 궁금해졌습니다.”
“후우, 일단 말해 주겠네만, 자네가 그 아이를 데리고 갔다가는 오히려 못 볼 꼴만 보여 주게 될 걸세.”
“강 점주님, 걱정 마십시오. 저도 그 아이를 백운상회에 데려갈 생각은 없으니까요.”
“…….”
“하하, 그저 호기심입니다. 그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만 가르쳐 주세요.”
“으음…….”
강환조는 망설이는 듯했으나, 결국 유기준의 추궁을 이기지 못하고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유기준은 강환조가 꺼낸 이야기를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경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