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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상회 1권(10화)
제3장 칠성태극교(七星太極敎)(3)


“몰락한 관리의 자식. 어머니는 일곱 살 때 죽었고, 아버지는 작년에 죽었다라…….”
강환조가 해 준 이야기는 사실 너무나 진부했다.
운남은 남쪽 이국(異國)과의 외교 교두보로 상당히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명 제국 내부에선 다른 이름으로 더 유명했다.

도망자들의 천국.

수도인 북경과 남경은 대륙 전체로 따지면 상당히 동쪽에 치우쳐 있다.
만약 관의 추적을 피해 도망가야 할 사람이라면 남서쪽 끝단에 있는 운남만큼 좋은 곳이 없을 터.
본래 관리라는 직업이 잘 풀릴 때는 한도 끝도 없이 잘 풀리다가 한 발만 헛딛으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자리이니, 아마 풍서의 아비라는 자도 운이 잘못 풀려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운남 쪽을 돌다 보면 그런 사연을 가진 집안은 한둘이 아니다.
요즘처럼 뒤숭숭한 세상에 부모가 둘 다 없는 정도는 이상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다만 마음이 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그런 상황임에도 아이가 너무나 밝다는 것일까.
‘너무 환했지.’
유기준은 풍서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그렇게 순수한 얼굴로 웃을 수 있는 것일까.
풍서의 웃음은…… 뭔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함이 있었다.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분명 범상치 않았을 것 같은데…….”
피라는 건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법 아니던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저 풍서의 부모라면 상당히 개성적인 성격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아무튼, 조만간 다시 한 번 만나서…… 응?”
광산 마을답게 상당히 시끌벅적한 흑임촌의 중심가를 거닐던 유기준은 문득 의외의 광경을 보고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 되바라진 놈!!”
거센 호통과 함께 철썩! 하는 소리가 소란스럽던 거리에 정적을 만들어 낸다.
사건은 꽤나 큰―백운상회의 두 배는 될 법한―상점 앞에서 벌어졌다.
어깨가 넓고 인상이 강한 사내 하나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힘을 쓰는 광부 출신인지 온몸이 단단한 근육질인데다 상당한 거구였는데, 한쪽 다리가 의족(義足)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 사내의 앞에는 어린아이 한 명이 볼을 감싼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낡았지만 깨끗한 옷을 입고, 통통하면서 귀여운 인상을 지녔다.
‘저건 풍서가 아닌가……!’
마을의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듯했던 풍서가 누군가에게 맞았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유기준은 너무나 놀라 그 상황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이고! 종대 아버지, 왜 이러세요!”
주변에 있던 여인 몇 명이 그 사내를 막으려고 했으나, 사내는 거칠게 팔을 휘두르며 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거 놔! 이런 약삭빠른 놈은 쓴맛을 보여 줘야……!”
“자기도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뭘 그걸 갖고 화를 내요! 쟤가 홍 대장네 일을 돕는 건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구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유독 우리 집 일만 못 돕겠다는 건 뭐야! 매번 그러잖아, 매번! 날 무시하는 거야, 뭐야?!”
사내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사천왕 같은 눈을 부릅떴다. 주독(酒毒)으로 붉어진 코와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에선 비틀어진 자존심이 느껴졌다.
그사이 풍서는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고작 열 살짜리 꼬마가 화내는 어른에게 어찌 대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풍서는 얼굴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저기…… 죄송해요, 아저씨. 하지만 지금은 홍 대장님네 일을 도와야 하는 시간이라…….”
“뭐야? 그래서 홍 대장 이야기만 중요하고 내 말은 어디서 개가 짖냐, 이거야?”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왜 내 말만 개무시를 하냐, 이거야! 이거 어린놈의 새끼가 벌써부터 발랑 까져 가지고. 좀 잘난 놈이 먼저다, 이거지? 홍 대장한테만 잘 보이면 나 같은 놈은 신경 안 써도 된다, 이거 아냐!”
사내는 씩씩거리면서 의족이 붙어 있는 다리를 바닥에 쾅! 하고 내리찍었다.
그 기세에 풍서가 움찔 놀라며 어깨를 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풍서는 절대로 뒤로 물러서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죄송해요, 아저씨. 홍 대장님께 먼저 약속한 거라 그랬어요. 제가 나중에 꼭 와서 도와드릴게요.”
“집어치워! 내가 니 동정이나 받자고 이러는 줄 알아?”
“그런 게 아니고…….”
“이 새끼가 끝까지 따박따박 말대꾸나 하고!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고 죽었냐!”
짝!
풍서는 다시 한 번 얼굴을 감싸 쥐고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저자가……!”
아무리 같은 동네의 이웃이라지만 도를 넘어섰다.
유기준은 앞으로 나서서 말리려고 했으나, 그보다 한발 앞서서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이! 그만하게! 주변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나!”
“아이구, 이 어린 아이를…….”
앞으로 나선 것은 한 쌍의 중년 부부로, 인상이 좋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호인과 인덕이 있는 몸매의 중년 여인이었다.
유기준은 그 두 사람 중 여인 쪽을 알아봤다.
풍서로부터 복 아주머니라 불리던 여인이다. 그녀는 빨갛게 부어오른 풍서의 볼을 쓰다듬으며 외다리사내를 째려보았다.
“이 어린 아이에게 때릴 곳이 어디에 있다고 이래요!”
“이 사람들이……!”
하지만 그 정도에 기죽을 사내 같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내는 오히려 더욱 기세등등하여 외쳤다.
“그 약삭빠른 새끼가 벌써부터 잔머리를 굴리는데, 당연히 혼을 내줘야지!”
“약삭빠르다니! 이 아이가 밝고 성실한 건 이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구만!”
이번에 나선 것은 복 아주머니의 남편이다.
주변의 마을 주민들도 다 그 이야기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조용히 외다리사내의 뒤에 서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유기준의 날카로운 눈은 그들 모두의 허리에 태극 문양의 방울이 달려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
간판에 팔극회(八極會)라고 쓰여 있는 상점 앞에는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격식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지금은 느닷없는 사건 때문에 잠시 멈춰 있지만, 사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이곳에서 물건을 사러 온 것이 틀림없다.
‘그런가. 칠성태극교였나.’
자세히 보니 외다리사내의 허리에도 태극 문양의 방울이 달려 있었다.
유기준은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의 허리춤을 훑어보았다. 모여 있는 사람의 절반쯤은 태극 문양의 방울을 달고 있고, 절반쯤은 방울을 달고 있지 않았다.
‘역시 교파도 상당히 퍼지고 있군.’
팔극회의 상점은 칠성태극교의 신도든 아니든 상관없이 사용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런 것은 언제든 뒤집어져서 잠재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유기준은 복 아주머니의 품 안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풍서를 한 번 응시한 뒤, 문득 의문을 느꼈다.
‘그런데 복 아주머니는 칠성태극교의 신자로 보이던데, 남편은 아닌 건가? 그걸로 괜찮나?’
그사이, 외다리사내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복 아주머니의 남편을 보며 인상을 험악하게 굳히고 있었다.
“장욱, 저번에도 내 앞을 막아서더니…… 최근에 자꾸 눈에 거슬리는데?”
“내가 나설 수밖에 없는 짓을 자꾸 하니까 거슬리는 것이겠지.”
“…….”
“종각, 홍 대장에 대한 자네의 열등감은 익히 알고 있네만, 그래도 아이를 상대로 이러면 안 되지. 자네는 지난번에 광산에서 다리를 잃은 뒤로 변했어.”
“네놈……!”
의중을 찔린 탓인지, 종각이라 불린 외다리사내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장욱을 노려보았다.
주먹을 움켜쥐는 두 사람.
당장에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위험한 공기가 감돌았다.
체구상으로만 보면 상대도 안 되지만, 장욱은 두 사람을 지키듯이 선 채 종각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극히 평범한 인상인데 상당히 당찬 성정인 듯했다.
“큭.”
종대는 한참 동안 장욱을 노려보더니, 옆에서 긴장한 얼굴로 풍서를 끌어안고 있는 복 아주머니를 한 번 흘깃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그깟 고아 새끼 하나 때문에 싸우는 것도 우습지.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장욱.”
“그건 내가 할 말이다.”
“큭.”
종대는 섬뜩한 눈빛으로 장욱을 노려본 뒤 휙하니 몸을 돌려 상점 안쪽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자 주변에 모여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몇몇은 장욱과 복 아주머니의 곁으로 가서 말을 건넸고, 몇몇은 팔극회의 상점으로 들어가서 물건을 구입했다.
풍서의 주변으론 따뜻해 보이는 사람들이 주로 몰려들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역시, 이건 문제가 되겠어.’
유기준은 흩어지는 인파에 섞여 뒤로 물러났다.
중간에 복 아주머니의 품에 안겨 있던 풍서와 눈이 마주쳤지만, 유기준은 굳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풍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나중이다.
지금의 그에겐 우선해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양료관. 양료관을 일단 만나 봐야겠어.’
운남의 중앙관청에서 나온 그를 만나면 알 수 있는 사실이 많을 것이다.
유기준은 흑임촌의 관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중년 여인의 품에 안긴 풍서의 두 눈이 그의 등 뒤를 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