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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상회 1권(14화)
제5장 흑임참사(黑任慘死)(1)
화창했던 오후.
어느 누구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던 점심시간에 커다란 진동이 땅을 뒤흔들었다. 광산 마을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매우 익숙한 일이다.
그리고 익숙한 만큼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설마……?”
“안 돼……!!”
사람들은 모두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인이나 아이들이다.
마을에 사는 대부분의 사내들은 광산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라 사람들은 모두 불안에 휩싸인 채 광산의 입구 쪽에 있는 홍 대장의 집으로 달려갔다.
“큰일이야……!”
“광도가 무너졌어……!”
“어쩌지? 어쩌지?!”
광도가 무너질 경우엔 틀림없이 인명 피해가 난다.
광부들은 본래 광석을 캐기 위해 광산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작업을 하고, 그러면 광도가 무너졌을 경우 필연적으로 가장 빠져나오기 힘든 곳에 갇히고 만다.
천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불안에 떨었다.
무너지는 광도에 깔린 사람이 자신의 가족일 수도 있다. 자신의 가족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사람들을 큰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쩌다가! 대체 어쩌다가……!”
“당장 가 봐야 해. 광산에 올라가서 어디가 무너졌는지 확인해 봐야……!”
사람들은 중구난방으로 떠들며 당장에라도 광산에 오를 것처럼 들썩였다.
“진정해요!!”
그때, 의연히 나서서 모두를 진정시킨 것은 홍 대장의 부인인 은씨였다.
홍 대장은 언제나 광산의 최전선에서 광부들과 함께한다. 즉, 홍 대장도 이번 사고에서 잘못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씨는 겉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주변의 모두를 다독여 주었다.
“우리가 여기서 당황하면 안 돼요. 거기다 광산에 우르르 몰렸다가 자칫 다시 한 번 무너지기라도 하면 피해가 더욱 커집니다.”
은씨의 차분한 목소리는 모두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지만, 그래도 은씨의 말대로 무작정 광산으로 올라가려던 걸음은 멈춰 세웠다.
광산의 광부들은 그로부터 한 시진이 지난 후에야 내려왔다.
여기저기에서 가족과 재회하는 기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사이, 어두운 얼굴로 은씨에게 다가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부인.”
그는 왕인이라는 사내로, 항상 홍 대장을 따르던 사내였다.
은씨는 자그마한 종이 한 장을 건네받았다.
거기엔 급하게 갈겨 쓴 듯 알아보기 힘든 글씨가 몇 자 적혀 있었다.
“이건……?”
“홍 대장님께서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그럼, 그이는 무사하군요.”
“예.”
은씨는 안도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왕인의 얼굴로 봐서 홍 대장은 살았지만, 그래도 몇 명의 희생이 났다는 뜻이다. 그녀는 종이에 쓰인 글씨를 읽었다.
“이 사람들은……?”
은씨는 앞에 모인 사람들 중에 아직 남편을 만나지 못해 당황하고 있는 몇몇 여인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들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인정이 많아 항상 음식을 바꿔먹곤 했던 한 여인과는 친자매와 같은 친분이 있었다.
“복씨…….”
장욱의 부인, 복씨.
후덕한 외모에 항상 얼굴에 웃음을 짓던 여인이 지금은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낀 듯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어 있다.
은씨의 주름진 눈가에서 결국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일만큼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광산은 그들에게 넉넉한 재물을 베풀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가혹했다.
***
“우욱……!”
풍서는 헛구역질을 했다.
아마 평생 동안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이 열 살.
최초로 사람의 시신을 본 나이가 되었다.
“아저씨……. 장욱 아저씨…….”
풍서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 보았다.
하지만 커다란 바윗더미에 끼여 피투성이가 된 얼굴에선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으윽, 으윽……!”
헛구역질이 나온다.
몸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목구멍으로 뱉어 내고 싶어졌다.
“진정해. 네 잘못이 아니야.”
“우욱……!”
“다행히 한 사람은 살렸다. 그것만으로도 너는 잘했어.”
풍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유기준이 풍서의 등을 손으로 문질러 주고 있었다.
“저기를 봐라, 풍서야.”
유기준의 손가락이 멀리, 무너진 광도 앞에서 광부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중년의 사내를 가리켰다.
“홍 대장님은 건강하셔. 그게 다 네 덕분이야.”
“그치만, 세 사람이나…… 세 사람이나……!”
“어쩔 수 없어. 그건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불행한 사고였을 뿐이야.”
풍서는 눈물을 참기 위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두 사람은 양료관을 만나고 온 뒤, 곧바로 광산에서 일하고 있던 홍 대장을 불러냈다.
자세한 걸 말할 틈은 없었다.
홍 대장을 불러내자마자 광도가 무너져 버렸던 것이다.
“넌 방금 한 사람을 살린 거야. 그걸 절대로 잊지 마.”
“우욱…… 네.”
홍 대장은 원래 광도에 한 번 일하러 들어가면 일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는 사람이다.
그랬던 사람이 일생에 딱 한 번 일하던 도중에 밖으로 나온 건데, 그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그것만으로도 천운이 아니겠는가.
“후우, 후우…….”
풍서의 헛구역질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유기준의 위로 덕분에 어지러웠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했다.
“자세히 말해 주게.”
경험 많은 광부들에게 뒤처리를 맡긴 뒤 다가온 홍 대장의 얼굴은 무섭도록 굳어 있었다.
“아까…… 종각 이야기를 했던 것 같네만.”
“그렇습니다.”
유기준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풍서가 오늘 우연히 팔극상회의 창고 일을 돕다가 엿들었다고 합니다. 종각이라는 사람이 홍 대장님과 그 외 몇 명을 노린다고 하더군요.”
“…….”
“희생자분 중에…… 태극교 사람이 있습니까?”
홍 대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없…… 네.”
“그렇군요.”
더 이상의 긴말은 필요없었다.
홍 대장은 다 알아들었다.
“자네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태극교에 대해 물어봤지.”
“예, 그랬습니다.”
“그때부터 뭔가를 느끼긴 했네만, 내가 모르는 뭔가를 자네는 알고 있나?”
홍 대장의 눈은 곧고 정직했다.
유기준은 잠시 그 눈을 보며 뭐라 하려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알고 있습니다.”
“말해 줄 수 있겠나?”
“그전에 알려 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제가 이걸 말하면…… 홍 대장님께서는 싸울 수밖에 없게 됩니다. 태극교에 협력해서 무난히 사태를 수습한다는 방법은 포기하는 게 됩니다.”
“…….”
“제 입장에선 그걸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작정 알려 드릴 수는…….”
“그럴 필요 없네.”
홍 대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네. 이 일을 정말로 종각 그 사람과 태극교 사람들이 일으킨 건지 확신도 안 들고. 다만 대들보가 너무나 쉽게 무너진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어.”
“그랬습니까…….”
“하지만 만약 그들이 이 일을 일으킨 거라면…… 나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그들에게 협력할 수 없네. 그러니 그 방법은 필요없어.”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유기준은 그렇게 말한 뒤 풍서를 쳐다봤다.
풍서는 자리를 비켜 달라는 뜻인 줄 알고 일어서려고 했는데, 유기준이 소매를 붙잡았다.
“여기 있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너도 아는 게 좋을 거다.”
“네? 저도요?”
“그래.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엔 한 사람이라도 더 도움이 필요해.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태극교가 아닌 사람들에게 알려 줘야 할 수도 있어.”
유기준은 허락을 구하듯 홍 대장을 올려다봤다.
홍 대장은 풍서의 어깨에 양팔을 얹고 똑바로 쳐다봤다.
“풍서야, 경황이 없어서 말을 못했지만, 고맙다. 네가 알려 준 덕분에 내가 목숨을 구했다.”
풍서는 몸을 파르르 떨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풍서의 행동으로 한 사람이 목숨을 구했다.
그 이야기가 이제야 실감이 난 것이다.
“하지만 넌 아직 어린아이야. 어른에게 보호받아야 할 나이지. 솔직히 이런 일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다.”
“…….”
“상황을 몰라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더 이상 연관되지는 말거라.”
홍 대장은 풍서에게 말하고 있었으나, 그 눈은 유기준을 보고 있었다.
그는 유기준에게 더 이상 풍서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괜찮아요, 홍 대장님.”
“풍서야…….”
“저, 도울 수 있는 건 도울게요. 이 마을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더 이상 풍서의 몸은 떨리지 않았다.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 공포가 생기지 않았다.
“이야기해 주세요, 아저씨.”
“……그래.”
유기준은 웃어 주었다.
그리고 나른한 목소리로 그가 아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모산파…… 라고?’
풍서는 무림강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십대 소년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법이지만, 명 제국 최남단인 운남에서도 벽지에 살고 있는 까닭에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태극존자, 칠성군…… 모산파를 버리고 뛰쳐나온 도사들…….’
솔직히, ‘도사’라는 이름만으로도 뭔가가 있어 보인다.
분명 범상치 않은 인물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산파의 장문인이 되었으면서도 그걸 싹 다 버리고 나와 다른 집단을 만들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 사람들이 만든 게 칠성태극교고, 지금 운남의 땅을 차례차례 잡아먹고 있다니……. 마을이 위험해. 그런 커다란 곳은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거야.’
풍서는 달리는 와중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마을을 빼앗기다니, 그래서는 안 된다.
풍서가 나고 자란 마을이다. 그런 이상한 종교의 소굴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뿐…….’
다행히 유기준은 생각해 둔 방법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 방법이 쉽지 않은 탓에 마을 사람들의 긴밀한 협력이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도 말했다.
“풍서야, 내가 도움을 청하러 대리백족의 땅에 다녀올 거다. 마을 사람들의 힘만으로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힘들 거야. 그렇다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저쪽을 심문할 수도 없지. 대리백족 마을까지는 여기서 빠르면 반나절이면 갈 수 있어. 거기서 이 마을을 구할 방법을 찾아서 오겠다. 만약 일이 안 풀리면, 차선책을 써서라도 반드시 돌아오겠어.”
“저는…… 뭘 하면 돼요?”
“너는 홍 대장님이 알려 주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리면 된다. 명심해. 홍 대장님이 알려 주신 사람들에게만 알려야 된다.”
풍서는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렸다.
가장 먼저 갈 곳은, 이 마을의 글선생인 을유랑의 집이다. 아는 것을 숨김없이 다 말해 주고 홍 대장이 써 준 서찰을 전하는 것이 풍서의 임무였다.
을유랑의 집은 마을 입구 근처에 있는 느티나무 앞이다.
커다란 방앗간을 지나 을유랑의 집으로 향하려는데…….
“야! 너!”
“윽……!”
그때, 풍서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휙―하니 고개를 돌리자, 마침 방앗간에서 커다란 자루를 하나 든 채 나오고 있던 커다란 덩치의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종대였다. 그는 열세 살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큰 덩치로 풍서를 보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오늘 우리 집에 와서 일하는 척하다가 도망쳤다면서! 우리 아버지가 너 찾으면 잡아오라고 하셨어!”
풍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과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종대네 집에서는 풍서가 맡은 일을 하다 말고 도망친 걸로 보였을 것이다.
“야! 서라니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종대.
예전 같으면 섰을 것이다.
한 번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반드시 보복을 하는 게 종대의 성격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풍서는 달랐다. 풍서는 종대에게서 시선을 돌린 뒤 곧바로 을유랑의 집을 향해 더욱더 속도를 냈다.
“어, 어, 어?! 너! 안 서?!”
종대가 당황한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짐 때문인지 쫓아오지는 못했다.
풍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은 종대를 상대할 시간 따위 없었다.
을유랑의 집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