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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상회 1권(18화)
제6장 절망의 밤[夜](3)


“마을 입구로 모이세요! 홍 대장님께서 위험한 일이라고 하셨어요!”
“뭐? 마을 입구?!”
“가장 중요한 것들을 챙겨서 나오세요. 잠시 마을에서 떠나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뭣! 그럼 심각한 거잖아!”
“시간이 없어요. 서두르셔야 돼요!”
“알았다!”
평소 풍서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에 그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풍서가 소식을 알린 사람들은 대략 서른 명쯤 된다.
하지만 그 가족들도 있기 때문에 숫자는 최소한 세 배로 불어날 것이다.
약 일백 명 정도의 사람들을 칠성태극교의 마수에서 구해 낸 셈이다.
‘이제 이걸로 명단에 있는 건 끝…….’
풍서에게 맡겨진 일은 다 끝났다.
이제 풍서도 마을 입구로 돌아가려는데, 막 몸을 돌리려는 풍서에게 아늑해 보이는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아……!”
풍서의 발이 멈췄다.
“복 아주머니……!”
후덕한 외모에 항상 인정이 많고, 밥을 맛있게 해 주는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장욱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없던 탓인지, 풍서를 친아들처럼 아껴 주기도 했다.
풍서는 항상 외롭거나 부모님이 생각날 때면 복 아주머니의 집에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복 아주머니는 풍서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고 보면, 복 아주머니는 명단에 없었어……!’
아마 이미 태극교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허리춤에 태극 문양의 방울을 달고 다니는 모습은 풍서도 자주 보았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좋은 분이야.”
풍서는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머릿속에서 유기준이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명심해. 홍 대장님이 알려 주신 사람들에게만 알려야 된다.”

‘하지만 복 아주머니는 달라. 그분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
풍서의 눈빛이 끊임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같던 아주머니다.
그냥 내버리고 가는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구해야 해. 복 아주머니를 여기에 두고 갈 수는 없어.”
을유랑의 부모님을 잔혹하게 죽여 버린 자들이다.
그런 자들의 손아귀에 복 아주머니를 놔두고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가자. 빨리 모시고 나오는 거야. 그러면 돼.”
풍서는 복 아주머니의 집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안쪽에는 다행히 불이 켜져 있었다.
풍서는 대문에 매달려 다급하게 외쳤다.
“아주머니! 복 아주머니!”
이름을 부르자 안쪽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풍서는 더욱더 다급해졌다.
“아주머니! 급해요. 잠시 나와 주세요!”
“거기…… 풍서니?”
“네! 풍서예요!”
복 아주머니가 안쪽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아…….”
풍서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잠시 굳어 버렸다.
안색이 창백하다. 한참이나 운 것마냥 눈밑이 빨갛게 부어 있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건 눈빛이 죽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풍서를 보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생기가 넘치고 반짝이는, 마치 어린 소녀와 같은 눈빛을 가지고 있던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생기도 느낄 수 없다.
마치 시체와 마주 서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복 아주머니……?”
“그래, 풍서 왔구나. 무슨 일이니?”
“저기, 그게…….”
풍서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구해 내려 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읏!”
풍서는 애써 용기를 내며 한 걸음을 더 내딛었다.
“아주머니, 어서 도망쳐요!”
“응? 그게 무슨 말이니?”
죽어 있는 그녀의 눈빛이 풍서에게로 향한다.
“칠성태극교는 잘못되었어요. 조금 전에 종각 아저씨가 을 선생님을…… 죽였어요. 장욱 아저씨를 죽인 것도 칠성태극교예요.”
“뭐……?”
“여긴 위험해요. 더 이상 이런 곳에 계시면 안 되요. 빨리 짐을 싸서 마을 입구로 가요. 그러면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요. 칠성태극교 같은 나쁜 집단에는 소속되면 안 돼요!”
풍서는 긴말을 단숨에 내뱉었다. 그리고 초조한 심정으로 복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복 아주머니는…….
“무슨 소리니, 풍서야. 그럴 리가 없잖니.”

……웃고 있었다.

“아주머니……?”
“칠성태극교는 나쁘지 않아. 칠성일원 태극만상. 모두 태극의 흐름대로인걸.”
“아주머니, 제 말은 진짜예요. 거긴 나쁘다구요. 장욱 아저씨는 칠성태극교 때문에…….”
“칠성태극교가 나쁘다고 하지 마!”
복 아주머니는 소리를 질렀다.
“칠성태극교는 만물의 진리를 품은 곳. 보통 교도들은 의심해서도, 질문해서도 안 돼. 그저 배우고 따라 하면 되는 거야.”
복 아주머니는 죽어 버린 눈빛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풍서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가 알고 있던 복 아주머니가 아니다.
대체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장욱이 죽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져 버린 걸까?
“아주머니, 정신 차리세요!”
“칠성은 진리, 태극은 흐름. 칠성과 태극은…….”
“아주머니!”
풍서는 복 아주머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제발, 제발…… 정신 차리세요. 이런 건…… 아주머니가 아니라구요!”
“나는 태극의 일부. 교단에서 이끄는 대로 따르면 되는 거야.”
“아주머니이이!!”
“넌 왜 방해하는 거니? 풍서야, 마귀가 들린 거구나. 그렇지? 착실한 교도들은 방해하기 위해 마귀들이 다가온다고 그랬어. 너도 그런 거지?”
풍서는 자신도 모르게 복 아주머니에게서 손을 떼고 물러섰다.
한순간, 복 아주머니의 눈빛이 섬뜩했던 것이다.
“장욱 아저씨가…… 가엽지도 않으세요? 칠성태극교 때문에 살해당하셨는데?”
“남편은 큰 대의를 위해 희생한 거야. 숭고한 일이지. 남편은 분명히 칠성군의 인도를 받아 상청궁에 들게 될 거야.”
“그게 무슨……?”
“원래 태극의 이치를 따르지 않던 게 잘못이야.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 그걸 상쇄하려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교사부께서 이미 말씀하셨어. 대신에 남편은 좋은 곳으로 간 거야. 틀림없어.”
복 아주머니는 어느새 풍서에게 말한다기보단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풍서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복 아주머니는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풍서야, 너도 나와 함께 교에 들어가자. 태극존자와 칠성군을 따르면 만사가 형통하고 굴곡없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어. 인세가 천국이 되는 거야.”
“아주머니, 저는 싫어요. 장욱 아저씨랑 유랑이 부모님을 죽인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요.”
“그 사람들은 숭고한 희생을 한 거야!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
“싫어요! 싫다구요!”
풍서는 복 아주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복 아주머니, 그러지 마시고…… 같이 가요. 다른 곳으로 가서 더 좋은 삶을…….”
“너는…… 안 되겠구나. 보통의 방법으로는 교에 들어오지 않겠어.”
“아주머니……!”
복 아주머니는 순간, 광기 어린 눈빛을 하더니,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곧 집 안에서 커다랗고 맑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커다란 방울 소리 같은 것이 시끄럽게 연이어진다.
“칠성일원 태극만상, 칠성일원 태극만상, 칠성일원 태극만상…….”
방울 소리와 동시에 복 아주머니가 진언을 읊는 것이 들려온다.
복 아주머니가 한 손에 태극 문양의 방울을 든 채 점점 풍서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기묘한 분위기.
죽어 버린 눈빛이 풍서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으으…….”
풍서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미 늦은 것이다.
복 아주머니는 구원할 수 없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 가만히 있다가는 꼼짝없이 칠성태극교에 잡히게 될 것이다.
“미안해요, 아주머니. 미안해요…….”
풍서는 등을 돌렸다.
방울 소리를 들은 것일까.
주변의 집에서 복 아주머니와 똑같이 한 손에 태극 문양의 방울을 든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칠성일원 태극만상, 칠성일원 태극만상, 칠성일원 태극만상…….”
사방에서 들려오는 진언은, 풍서의 머릿속을 아프도록 파고들었다.
풍서는 달렸다.
숨이 턱에 차고, 복부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도 개의치 않고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극도의 공포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따라오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멀어지고 더 이상 진언을 읊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아도, 풍서는 시끄러운 방울 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되뇌고, 또 되뇌어지는 듯했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풍서는 절규했다.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열 살짜리에겐 너무나 가혹한 일.
그는 오늘, 친어머니처럼 생각했던 여인을 잃은 것이다.
“너! 풍서구나!”
마을의 입구가 얼마 안 남았을 때쯤, 한 사람이 풍서의 앞을 막아섰다.
풍서는 시야를 뿌옇게 막고 있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 냈다.
새우처럼 유난히 작은 눈. 그리고 허리춤에 태극 문양의 방울을 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앗간 강씨……?’
아직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탓에 머릿속이 멍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알 수 있었다.
위험하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
“이리 와라. 쓸데없는 짓은 하면 안 돼. 착한 아이라면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지.”
강씨가 웃는 얼굴로 다가온다.
풍서는 주춤주춤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강씨의 손이 더 빨랐다.
철썩!
“윽……!”
풍서는 풀썩 옆으로 쓰러졌다.
마치 허깨비처럼 확― 하고 가까워진 강씨가 풍서의 뺨을 때린 것이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녔더구나. 그 덕에 사람들이 동요해서 큰일이었다.”
강씨의 눈빛은 마치 뱀의 눈빛을 닮아 있었다.
풍서는 그때, 을유랑의 집, 담벼락 밑에서 숨죽이며 들었던 그 순간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을지환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것은 종각이 아니었다.
이 사람.
방앗간의 강씨가 한 짓이다.
딱. 따다닥…….
어느새 풍서의 입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