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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상회 1권(20화)
제7장 섬광의 무사(武士)(2)


“아……!”
풍서는 입구를 막아선 삼십여 명의 사내들을 보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입마저 크게 벌렸다.
“말도 안 돼……!”
두 눈에 보이는 광경이 믿기지가 않았다.
풍서에겐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특별한 재주가 한 가지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새로 나타난 삼십여 명의 태극교 사람들은 풍서가 평생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숨을 안 쉴 수가 있지?”
믿기지가 않는다.
어째서 저 삼십 명의 주변 공기는 물이 얼음으로 변해 버리듯이 고요할 수가 있는가.
‘하지만 숫자가 좀 적지 않을까?’
풍서가 모아 온 것만 해도 백여 명.
나머지 두 사람이 모아 온 인원까지 합해서 삼백가까이 되는 대인원이었다.
그런 곳에 건장한 남자만 해도 절반인 백오십이 넘는데, 서른 명 정도는 쉽게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보하 형…….”
풍서는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
“저 사람들…… 어때요? 상대할 수 있어요?”
공보하는 한참이나 그들을 노려보다가 대답했다.
“안 돼. 무리야.”
“보하 형…….”
“나 정도로는 안 돼. 제대로 된 무인이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죽을 수도 있어.”
“그럴 리가……. 여기는 남자들만 해도 백오십이 넘는다구요.”
“한둘이면 모를까, 저렇게 제대로 된 무인이 서른 명이나 있으면 백오십 명도 순식간이야. 큰일이다. 방법이 없어.”
공보하는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안타까워했다.
스스로에게 힘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그때, 홍 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검은색 무복과 흑색 죽립에 각각 태극 문양을 그려 놓은, 괴기한 분위기의 무인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을 보내 주시오! 그저 편히 살 곳을 찾고 있을 뿐이오. 앞으로도 태극교에 해를 끼칠 일은 없소!”
“…….”
하지만 태극교의 무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홍 대장이 앞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딛는 순간, 서른 명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딸랑…….
채앵!
그들이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방울이 기묘한 울림을 토해 냈다.
앞쪽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움찔하며 뒤로 조금 물러섰다. 검을 뽑아 든 태극교의 무인들이 보통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노골적으로 사나운 기세를 뿜어낸 것이다.
“윽……!”
“너희들이 뭔데……!”
하지만 마을 사람들도 순순히 있어 주진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반쯤 목숨을 내놓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광부들이다.
죽음의 위협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
지하로 굴을 파다 보면 굴이 무너지거나, 안쪽에 차있는 미지의 광석 때문에 폭발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니 칼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운 게 있다면, 가족들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앞쪽에 있던 사내들 중 몇 명이 용감하게 나섰다.
“비켜!”
“우린 이 마을을 떠나겠어!”
“너희가 뭔데 우리를 막는 거냐!”
건장한 사내들이 거칠게 외치자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태극교의 무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서 있다가 앞쪽의 세 사람이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왔을 뿐이다.
쉬이익―!
푸확!
“으아악!!”
앞으로 나섰던 마을 사내들이 팔과 복부에 큰 자상을 입고 쓰러졌다.
태극교 무인들의 칼놀림은 빠르고 능숙했다. 게다가 사람을 베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으로는 그 움직임을 볼 수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다섯 명이 널브러졌다.
홍 대장이 다급하게 나섰다.
“멈춰라! 이게 무슨 짓인가!”
그러나 여전히 태극교 무인들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그들은 마치 정해진 할당량을 수행하는 일꾼처럼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앞을 막아서려던 흑임촌의 사내들은 피를 뿌리며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이럴 수가…….”
“다 죽이려는 거야? 태극교가 그렇게나 무서운 곳이었어?”
홍 대장의 말에도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그제야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었는지를 자각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풍서를 포함한 세 사람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어떻게…… 하지?”
“…….”
을유랑이 입을 꾹 다문다. 공보하 역시도 안타깝고 분한 얼굴이 될 뿐, 딱히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일단 막는다.”
그때, 공보하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모두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앞 열로 나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공보하는 근처 사람이 갖고 있던 곡괭이를 빼앗 듯이 집어 든 뒤 태극교 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채앵!
“챠핫!”
처음으로 태극교 무인의 검이 막혔다.
공보하는 마치 낫을 휘두르듯 곡괭이를 크게 옆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부우웅―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태극교 무인의 검이 크게 흔들렸다.
“대단하다!”
공보하의 분투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의를 가져다주었다.
일방적으로 당하며 공포에 질려 있던 마을 사내들 중 몇몇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무기를 들어!”
“우리도 싸울 수 있어!”
“가족들을 지키고 싶으면 직접 싸워라!”
사내들이 제각각 가지고 있던 짐 중에서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들어 올렸다.
물론 그들이 곡괭이 같은 것을 들었다고 해서 태극교 무인들을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버텨 내는 것은 훨씬 나아졌다.
이전처럼 단칼에 쓰러지지 않고, 몇 번이라도 공격을 막아 내며 최대한 버텼다.
쩌어엉!
“큭……!!”
공보하 역시도 상대를 이길 수는 없었다.
무공을 정식으로 익힌 무인이 상대다.
만전의 상태에서 싸웠어도 위험했을 텐데, 지금처럼 부상을 입은 상태로는 싸워서 이길 상대가 결코 아닌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보하는 처음의 기세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다섯 번 정도를 버텨 냈을까.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부상을 입었던 몸인 탓에 공보하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보하 형!”
그때 나선 것이 풍서다.
“가만히 있어!”
“형! 옆에서 와요!”
공보하는 다급하게 옆을 쳐다봤다.
풍서의 말대로 또 한 명의 태극교 무인이 공보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크읏……!”
쩡!
옆으로 튕겨 나간 공보하는 착잡한 심정으로 자신의 손아귀를 내려다보았다.
곡괭이는 중간에서 부러져 있었다.
이제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나무로 된 손잡이뿐이다.
쉬이이익―!
“으앗!!”
태극교 무인은 공보하를 뒤로 물러서게 한 뒤, 옆에 있는 풍서를 향해 귀찮다는 듯이 검을 휘둘렀다.
“풍서야!”
하지만 풍서는 피해 냈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으나, 놀랍게도 날아오는 검날을 깔끔하게 피해 낸 것이다.
“풍서야! 왼쪽에서 또 한 명! 그리고 보하 형의 상대를 공격해!”
후우웅―
“으아앗!!”
뒤에서 조언을 해 주는 것은 을유랑이다.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몰라도, 을유랑은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 덕에 풍서는 아슬아슬하게나마 계속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풍서는 자신들의 미래가 눈에 선했다.
이대로는 버텨 낼 수 없다.
애초부터 태극교 무인 서른 명과 평범한 마을 사람들 사이엔 넘어설 수 없는 커다란 격차가 존재했던 것이다.
“어이, 물러서라!!”
“……?!”
쩌어엉!
그런 소년들의 앞을 막아선 사람이 있었다.
평범한 갈색의 옷. 주머니가 많은 배자를 상체에 걸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에선 잠에서 막 깬 것 같은 나른함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아저씨?!”
어느새 유기준이 앞으로 나서 있었다.
풍서는 놀라서 외쳤다.
“수고했어, 소년들. 내가 있으니까 물러서!”
“아저씨! 위험……!”
태극교 무인 세 사람의 검이 동시에 유기준을 노린다.
유기준은 풍서를 보며 웃는 표정을 한 번 지은 뒤, 곧장 뒤로 휙― 돌면서 오른손을 허공에 흩뿌렸다.
쩌정! 쩌엉! 쩌정!
“……!!”
풍서는 그 모습이 너무나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오른손에 든 것은 끝이 뾰족한 평범한 검.
그런데 그걸 휘두르는 것만으로 빛이 나듯 눈앞이 번쩍거리고, 도리어 공격을 해 왔던 무사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와아…….”
유기준은 무공을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엄청난 실력이었다.
양다리를 살짝 좌우로 펼친 채 오른손을 앞으로 찔러대는데,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태극교의 무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물러났다.
좌우를 쳐다보니 공보하와 을유랑도 마찬가지다.
세 사람은 한마음 한뜻으로 유기준의 활약상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저런 게…….”
“무공……!”
풍서와 을유랑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쩌정! 쩌정! 쩌정!
피슉―!
세 사람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유기준은 조금도 뒤로 밀리지 않았다.
도리어 세 사람을 몰아붙이는가 싶더니, 섬광이 무색할 빠른 찌르기로 세 사람의 가슴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태극교 무인들이 처음으로 상처를 입은 것이다.
하나 유기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운 신법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더니, 순식간에 다시 한 번 오른손으로 섬광을 쏘아낸다.
태극교의 무인 한 명이 한쪽 다리가 푹― 하고 꿰뚫린 채 바닥에 쓰러져 일어서지 못했다.
“……!”
처음으로 전투 불능자가 나온 상황이다.
태극교 무인들이 자신들끼리 뭐라고 소곤거리더니, 이내 뒤쪽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자들까지 다 뛰쳐나왔다.
“으아악!”
“큭……!”
앞쪽에서 어떻게든 버텨 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모두 한 곳으로 둥그렇게 모여! 앞쪽만 막아 내면 어떻게든 된다!”
뒤쪽에서 홍 대장이 마을 사람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유기준은 잘 싸워 주고 있었다.
놀라운 무공으로 세 명은 물론이고, 다섯 명에게 둘러싸이고도 호각의 모습을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다.
태극교 무인들 중 유기준에게 발목이 잡히지 않은 인원은 아직도 많이 있었다. 그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가고 있었다.
“안 돼…….”
“이대로는……!!”
풍서와 을유랑은 다급해졌다.
유기준이 분전을 해 주고는 있지만, 이대로라면 마을 사람들의 희생이 너무 커진다.
그들이 그렇게 다급해하는 순간,
죽음을 목전에 둔 절박한 순간에 ‘그’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