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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황 1권(6화)
2장 로엔하르트와 여인들(3)


사람들의 배가 조금씩 불러 올 때, 뷔페가 끝이 나고, 간단한 다과회와 함께 음악을 연주했다.
귀족의 여성, 높은 계급의 딸이라면 재능에 따라서 얼마나 뛰어난가가 갈렸지만 대부분 기본은 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각기 특기가 되는 악기들이 있었다.
악기는 모두 마도 제국표의 악기들이었다.
일리아는 하프, 이프릴은 피아노, 애린은 드럼, 리즈는 피리, 호마는 바이올린, 피나는 노래를 하였다.
아쉽게도 크리스티나는 박치였다.
즐거운 음악 연회의 시작, 간단한 게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로엔하르트가 크리스티나, 일리아, 이프릴, 피나, 호마, 리즈, 애린과 즐겁게 지내고 있을 때.
크리스티나의 아들이자, 일리아의 동생이며, 이프릴의 연년생 오빠 그리고 로엔하르트의 이복형제인 레이온이 자신의 별궁을 벗어나 어머니의 별궁으로 발을 옮겼다.

-4-

황실에는 총 12개의 별궁이 존재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백호, 주작, 청룡, 현무, 청동, 강철, 백금, 황금이라는 명칭을 가진 별궁이다.
그중 황금은 현 제국의 황제가 기거하는 별궁이고 백금은 황비, 강철은 현재 공석, 청동은 선황비, 현무는 리드미스 현자, 청룡은 크리온 에멘로스트 대공, 주작은 슈마허 폴 포르츠 공작, 백호는 홀드 졸 보르부 공작, 겨울은 로엔하르트의 어머니 진소율(進昭栗)이 차지했고 가을은 레이온, 여름은 로엔하르트, 봄은 강철과 마찬가지로 공석이다.
비어 있는 두 자리.
강철과 봄 중에서 강철은 황태자의 자리다.
그리고 사계절 별궁이라 부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황태자 대리의 자리로 만약 황태자가 병사하거나 죽는다면 죽은 황태자를 대신해서 네 명의 황자들 중 한 명이 황태자가 되는 것이 순리였다.
자신의 별궁인 가을 별궁을 나온 레이온은 발걸음을 느릿하게 움직여 어머니와 누나, 두 여동생이 지내는 백금 별궁에 도착했다.
현 황비가 지내는 별궁인 만큼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온 별궁의 외관이 백금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백금 별궁에서 일하는 시녀들의 수준도 다른 어떤 곳보다 높고 매력적이고 계급이 높았다.
레이온의 집사가 미리 와서 별궁에 레이온이 올 것이란 소식을 전하였기에 백금 별궁의 시녀들은 정중하고 예의에 맞게 레이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레이온은 별궁에 들어서는 순간 아주 기이하고 기분 나쁘며, 더러운 기분을 맛보았다.
별궁 정문에 다다랐음에도 당연하게 반겨야 할 누나와 두 동생, 어머니가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그건 무척이나 기분 나쁜 예감을 들게 하는 것이었다.
입을 꾸욱 눌러 참으며 백금 별궁의 시녀장을 노려보았다.
시녀장이라지만, 그녀는 평범한 시녀장이 결단코 아니다. 상대가 황비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시중을 받을 계급의 신분의 사람으로 상대는 레이온의 측근인 쇼렌에게 고모이자, 레이온을 밀어주는 귀족 세력 중에서도 가장 힘 있으며 아버지(황제)의 의형제인 홀드 졸 보르부 공작의 여동생 헨티스 졸 보르부다.
상대의 신분이 신분인 만큼 예의를 다하여 물었다.
“어머니와 누이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미 알고 있지 않으십니까.”
“하아.”
한숨이 푸욱 쉬어졌다.
예상대로지만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설마 사르엘도 갔습니까?”
사르엘 키즈.
13살.
이제 막 결혼 적령기에 든 소녀로 레이온의 아름다운 여동생이다.
그 아름다움은 외모 하나로 동방인, 외국인, 이혼녀라는 불명예를 황제가 다 무릅 써서라도 첩의 자리에 들였다고 ‘소문’난 키즈 제국 제일 미인 소율처럼 아름답게 성장할 거라 소문이 자자한 레이온의 여동생.
시녀장 헨티스는 레이온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말을 했다.
“그 아이는 방에서 자고 있습니다.”
그 말이 참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레이온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준다.
“자고 있는 여동생의 얼굴만 보고 가겠습니다.”
헨티스는 한 걸음 움직였다.
“레이온 님, 황녀님은 자고 있습니다. 곤히 자는 여동생은 그냥 두십시오.”
간절한 표정으로 말하는 헨티스는 보며, 왠지 기분이 이상하게 나빴다.
“내가, 내 동생을 만나겠다는 것인데, 왜 방해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물러서십시오! 계속 나의 앞을 막겠다면 황자로서의 권한을 사용하겠습니다! 설마 황제 폐하의 아들인 저의 앞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황제의 아들을 무시하는 것은 황제를 무시(반역)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이 황금 탑이 아니라 밖이었다면, 아무리 레이온이 황자라 하여도 이렇게 뻣뻣하게 헨티스 졸 보르부에게 경고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황실이었다.
적어도 황금 탑에서는 황자인 레이온이 비켜서야 할 인물은 아버지인 로스만 키즈와 현무 별궁의 리드미스 현자, 청룡 별궁의 크리온 에멘로스트 대공, 주작 별궁의 슈마허 폴 포르츠 공작, 백호 별궁의 홀드 졸 보르부 공작 그들 외에는 없었다.
당연하게 그 다섯 사람 안에 들어가지 않는 헨티스는 옆으로 물러났다.
헨티스의 뒤로 서 있는 백금 별궁의 시녀 한 명을 지목하여 사르엘의 방으로 안내하게 하였다.
사르엘의 방에는 드래곤과 오우거, 오크, 트롤, 크라켄, 하피 등을 귀엽게(실제로는 반대겠지만) 만든 봉제 인형들로 가득한 소녀보다는 어린아이 같은 방이었다.
그 방의 중심에 화려한 공주님 취향의 침대 위에 레이온의 하나뿐인 동생인 사르엘이 좌우에 그랜드 젤리피쉬(웅장한 해파리)와 킹 레이(왕 가오리)를 껴안고 곤히 자고 있었다.
사르엘은 언니들과 엄마인 크리스티나, 일리아, 이프릴과 마찬가지로 금발의 아름다운 소녀였다.
쌔액쌔액쌔액.
낮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사르엘의 옆에 앉았다.
푸욱 하며 사르엘이 누워 있는 부분에는 충격을 주지 않은 채 레이온이 앉은 무게에 볼륨감이 내려갔다.
마도 제국이 만든 모닝스라는 상표를 이용하는 침대로 요 몇 년 사이 제국과 귀족, 돈 있는 사람들은 다 사서 쓴다는 침대였다.
사르엘의 긴 앞머리가 얼굴로 내려와 동생의 코를 간질이는 모습이 보였다.
킁킁.
동생은 그것이 신경이 쓰이는지 코를 깔짝거리며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레이온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사르엘의 코를 간질이는 앞머리를 귀 밑으로 쓸어 주었다.
레이온은 안심이 되는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조심스럽게 방문으로 움직이는 레이온.
“으응.”
손가락의 감촉을 느꼈는지 서르엘의 눈이 조금씩 껌뻑거리며 떠졌다. 그리고 잠이 가득한 울먹임으로, 동시에 수중에 빠진 음성으로 조금씩 말을 하였다.
“누…… 누구양? 엄마양?”
이제 막 깨어난 여동생은 어눌한 발음을 사용했다.
누가 보아도 아직도 꿈속을 헤엄쳐 다니느라,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다.
그런 사르엘이 귀여워 레이온은 장난을 쳤다.
”그래, 엄마란다.”
아무리 꿈과 현실을 오가는 사르엘이지만 척 들어도 억지로 만들어 내는 여자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사르엘은 13살, 이제는 아기가 아니었다.
“장난치지 마, 엄마랑 하나도 안 비슷하니깐!”
손으로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사르엘.
레이온은 약간 고집적인 자신의 여동생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눈이 아직도 다 떠지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안쪽으로 보이는 녹색의 눈동자.
장녀 일리아와 차녀 이프릴은 황비인 크리스티나는 금발의 푸른 눈을 하고 있었지만 레이온은 가족들과 전혀 다르게 타오르는 붉은 머리와 붉은 눈동자를 타고났다.
사르엘은 머릿결이나 색은 어머니와 동일했지만 눈동자는 달랐다.
키즈 제국의 바다처럼 에메랄드빛으로 영롱이는 아름다운 초록빛의 눈이었다.
레이온은 다른 가족들과 다른 자신과 사르엘에게 공통점을 느끼고 좋아하였다.
레이온이 좋든지 말든지, 사르엘은 상대가 누구인지 생각했다.
먼저 상대는 누가 보나 뭘 보나, 남자였다. 그리고 사르엘 보다 연상이었다. 동시에 황족인 사르엘을 놀릴 정도의 높은 계급을 지니고 있어야 하였다.
만약 계급도 안 되는데 이런 장난을 하였다는 것은 황족 모독죄로 최하가 평생 빛도 못 보게 지하 감옥에서 평생을 지내는 것이다.
당연하게 계급이 높아야 하였다.
후보는 많았다.
예를 들어 아빠, 하지만 로스만 키즈는 결코 이런 장난을 칠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제외.
외삼촌인 크리온은 이런 장난을 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밤에 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항상 바쁜, 그나마 가끔 오실 때도 아침에나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또다시 제외.
그 다음은 오빠!
사르엘에게는 두 명의 오빠가 있다.
레이온과 로엔하르트.
기쁜 목소리로.
“로엔하르트 오빠!”

***

무율 제국에는 무림이라는 세계가 있다.
본래는 무림이라는 세계는 없었지만 키즈 제국의 초대 황제 로크스가 문화의 유입으로 카론 랜드의 전투 민족의 폭력성을 억누르려고 하였듯이 무율 제국의 초대 황제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무림의 탄생이었다.
무림은 무사(武士) 또는 무협(武俠)의 세계로 무율 제국의 법적으로 무사들의 자치권을 인정한 것이었다.
물론 이건 위험한 도박일 수도 있었지만, ‘황제에게 칼을 돌릴 수 없다는 원칙’과 ‘다음 황제의 재임 기간 동안 세 번 황제에게 절대 명령의 권한이 있다.’는 두 가지 절대 원칙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무림이 만들었다.
무림과 관은 서로 불가침(不可侵)하기로 하고 그들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었다.
이렇게 함으로 전투를 하지 못함으로 쌓여서 남아도는 힘으로 권력을 쟁취하는 것에 쓰지 않도록 하고, 무사들을 서로 상잔시키는 계획을 짠 것이 바로 무율 제국의 초대 황제 고조 진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