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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황 1권(7화)
3장 레드 옥토퍼스(1)


-1-

제1대 황제가 이끌던 키즈 제국은 정말 찬란했다.
대륙 팔강이라는 연합에 참가하여 각 제국의 수많은 문화를 받아들였고 그 때문에 귀족과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졌다.
물론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명 문화 침략이라 하여서 카론 랜드가 전통으로 지켜 나가던 문화들이 상대편의 문화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던 적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1대 황제는 문화의 흡수(신성 제국 제외)와 마법의 흡수를 강경했고 비록 불안전하지만 제국은 점차 성장해 나갔다.
그 와중에 제1대 황제가 생전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황제가 물러난 것은 그 뒤에 있는 아들이자, 황태자의 뛰어남을 보고 선택한 것이었다.
제2대 황제는 제1황제 못지않게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이었다.
2대 황제는 단순하게 문화의 유입만이 아니라 문화를 흡수하고, 그 문화에 원래 있던 문화와 합일시키고, 그 중심에 황실을 넣었다.
그럼으로 제국 문화의 중심에 황실을 넣어 중앙의 힘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었다.
그의 위대함은 후계 문제에서도 빛을 발했다.
2대 황제는 8명의 아들을 두었고, 그 아들들 중 첫째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들들을 다른 제국으로 보내어 공부시켰다.
나중에 첫째 아들이 황태자가 되는 마지막 시험을 치를 때, 나머지 일곱 아들을 데려와 함께 마지막 시험을 보게 하였다. 그 시험은 초한국과의 교역 문제였다.
똑같은 양의 돈을 주고, 1년 안에 누가 얼마큼 더 많은 돈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시험으로 일곱 황자들 중 한 명이 그 시험에서 승리하였다.
그렇게 2대 황제 사후.
시험에서 승리한 황자가 황태자가 3대 황제가 되었다.
3대 황제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3대 황제 시절에는 다른 제국뿐만이 아니라 소국과 왕국에도 교역의 길을 열어 부를 엄청나게 쌓았다.
후계는 안타깝게도 재물과는 너무나 다르게 평생 동안 단 한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고이고이 키워서 그런지 썩 뛰어나다고 말할 만한 황태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별로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는 황태자가 4대 황제가 되고 나서부터 제국이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4대 황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많은 사치를 부렸다.
아무리 대륙에서 8명뿐인 황제들 중 한 사람이라지만 너무나 심한 사치를 부려,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황제는 뛰어나지 않았고 무능하였지만 귀족들 중에는 뛰어난 자들이 많았다.
그 뛰어난 귀족들은 말과 힘으로 황제의 귀와 눈을 막았고, 손(황제의 인장)을 가로채어 황제의 이름으로 사치를 부리며 재산을 불려 나갔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황제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린 황자를 제5대 황제로 옹립하고, 다른 황자들은 모두 죽였다.
어린 5대 황제와 늙은 귀족들.
황제는 귀족들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움직였다.
시간이 지나 5대 황제는 이렇게 하다가는 제국이 무너질 것을 예상하고, 갓 태어난 황자 한 명을 사산(임신한 지 4개월 이상 지난 후 이미 죽은 태아를 분만하는 일)으로 거짓, 위장하여 빼돌려 믿을 수 있는 신하에게 황자의 교육을 맡겼다.
그 황자가 바로 현 제6대 황제 로스만 키즈다.
역사서에는 무수한 사치를 견디지 못한 황자가 반란을 일으켜 5대 황제를 폐위시키고 황자가 스스로 황제에 오른 이야기였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아무튼 로스만 키즈가 제6대 황제가 되고 그를 기르고 도왔던 귀족 가문의 후계자인 홀드 졸 보르부 공작에게 당시 이름뿐이었던 군대를 몇 십 배 증축하여 그 군대를 홀드 졸 보르부에게 건네어 단순하게 이름뿐인 황제에서 실질적으로 힘을 지닌 황제가 되었다.
그 이후 귀족파의 젊은 수괴인 크리온 에멘로스트 대공의 여동생을 황비로 받아들여서 에멘로스트 대공가가 흑심을 품지 못하도록 사전에 압사, 오직 크리온 에멘로스트에게 상당한 신뢰감을 주어 귀족파가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차단하였다.
나중에 무율 제국인인 진소율을 첩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진소율은 배경도 없는 타국인이었기에 크리온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찾은 황제의 권위.
제6대 황제 로스만 키즈는 자신이 앉아 있는 현재의 자리가 새삼스러우며 친숙하였다.
상반되는 두 가지 마음이었지만 언제나 이 자리에 앉을 때마다 그러하였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던 로스만 키즈의 귀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홀드 공작님이십니다.
동방의 어두운 문화인 살수나, 닌자를 키즈 제국식으로 만든 어쌔신들의 전음(傳音)이었다.
전음은 동방 무율 제국에서 생겨난 생명력 활용법의 한 가지로 간단하게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자신이 지정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들여보내라.
입이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그 의지가 어쌔신에게 전해졌다.
일반적인 전음보다 그 난이도가 최고로 높다는 전음술로 무율 제국에서도 일반적인 사람들(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사용할 수 없는 생명력 활용법이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문이 열리고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키는 2m 20cm 중후반으로 전 대륙적으로 마도 제국과 함께 키가 두 번째로 크다는 이 카론 랜드의 사람들에서도 손꼽히는 키와 체격을 지닌 호방한 얼굴의 단단한 근육과 크고 옴팡지게 단련한 느낌이 있는 듬직한 중년의 남자였다.
호남형인 그의 인상만큼이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력은 단단하면서도 약간은 무른 듯, 연한 생명력을 보이고 있었다.
금속으로 표현하자면 강철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바로 로스만 키즈의 의동생이자, 가장 큰 지지자인 홀드 졸 보르부 공작이었다.
갈색의 머리와 눈동자를 지닌 중년인이 천천히 걸어왔다.
얼굴에는 근심하는 기색이 가득하였다.
“형님, 레이온이 또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로스만 키즈는 동생의 말에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것은 로스만 키즈가 첫째 아들인 레이온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로스만 키즈는 선천적인 포커페이스였다.
그는 황제가 되었을 때도 황비는 아내로 맞이했을 때도,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때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선황제가 죽었을 때만 표정이 변하여서 홀드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선천적인 포커페이스였기에 표정에 변화가 없었을 뿐이지, 마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보름만이구나.”
“예, 보름 전 사냥 대회에서 현저한 차이로 로엔하르트에게 패배하였던 이후로 보름만입니다. 그 아이, 이제는 지하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말리는 것이 어떨까요? 그 아이, 현재 마음고생이 심한 것은 알지만,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황자의 이미지가 너무 안 좋습니다.”
“그럼, 말릴 경우 그 아이는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까, 아마도 예전처럼 시녀들을 폭행하고 죽이는 식으로 풀지 않겠는가, 차라리 노예 몇 명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응대하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찌 되었거나 자신들의 세력이 밀고 있는 황자의 행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스만 키즈는 그런 자신의 의동생을 조용히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로스만 키즈는 어둠 속에서 오래전 보았던 자신의 아들 레이온을 떠올렸다.
춤을 추듯 생동감이 넘치는 붉은 머리를 넘실거리며 총명으로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자신이 선물한 플레임 페가수스를 타고 초원을 내달리는, 다음 대 황제로 이미 마음을 정하였던 아이.
불과 3살에 3개의 언어를 마스터하였고, 자신의 스승인 리드미스를 경탄하게 하였던 어린 레이온.
하지만 어느 날, 말에서 낙마하는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은 더 뛰어난 아이가 되었을 분명한 아이.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지만 그래도 황제는 아쉽기만 하였다.
‘레이온.’

-2-

현 키즈 제국에는 다섯 개의 세력이 존재한다.
하나는 로스만 키즈를 중심으로 한 황제파.
둘은 크리온 에멘로스트를 중심으로 한 전통귀족파.
셋은 슈마허 폴 포르츠를 중심으로 한 신흥귀족파.
넷은 지방의 중, 소규모의 지방영지귀족파.
다섯은 제국에서 은근히 따돌림(은따)을 받는 남부귀족파.
총 다섯 세력으로 그중에서 신흥귀족파는 로엔하르트를 밀고 있고, 황제파와 전통귀족파는 레이온을 밀고 있다.
둘은 제외.
당연하게 세력적으로 레이온이 강대하였다.
그런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레이온은 볼일이 있어서 지하로 내려왔다.
지하는 황실인 황금 탑에서 가장 낮은 구역이었다.
황금 탑은 총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누는데 최상층부, 상층부, 중층부, 하층부, 최하층부로 나누었다.
황금 탑에 층을 나누는 이유는 층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계급이 달랐다.
예를 들어서 최상층은 황제가 기거하는 황금 별궁이 있었고 상층부에는 나머지 11개의 별궁과 황족, 후작, 공작, 영지 백작들만이 기거할 수 있었다.
중층부에는 계승, 영지 귀족들이 하층부에는 단승, 명예시민, 시민 계급들. 최하층은 천민과 노예들이이었다.
황금 탑의 지하였기에 다른 노예들이 사는 곳과는 전혀 달랐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층부와 똑같을 수는 없었다.
너무나 불쾌하고, 기분이 나쁜 곳이었지만, 그의 스트레스를 풀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다.
레이온은 익숙하게 최하층부를 주관하는 천민들의 우두머리 대천민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천민들 사이에서는 천민들을 이끄는 무리의 장을 대천민으로 불러서 다른 천민들과 다름을 알렸다.
대천민의 집은 다른 천민들과 다른 꽤나 큰 3층 가옥으로 일반적인 평민들도 2층 가옥인 만큼 대천민은 천민 주제에 그 위 단계인 평민들보다 좋은 집에 살고 있었다.
“황자……님, 고맙습니다.”
바닥에 얼굴을 파묻도록 십(十)자의 자세로 엎드린 남자에게서 말소리가 들렸다.
말이 참으로 어눌했는데, 그건 법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법적으로 노예들은 혀를 뽑거나, 혀에 재갈을 물리거나, 이빨을 다 뽑아 버리는 등 문화의 기초가 되는 언어와 문자를 몸 밖으로 내뱉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
만약 익히다 걸리면 사형시키는 것이 법으로 지정되어 있다.
천민은 조금 법이 약화되어 문자를 금지하고, 언어는 단어 사용만 선택, 사용 가능하였다. 만약 문장을 완벽하게 사용할 경우 사형이었다.
“노예들은?”
“준비, 완료.”
레이온은 짧고 짧은 대천민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제국의 법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알기에 대충 넘어갔다. 이미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고, 그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그는 현재 너무 날카로웠다.
“일어나 길을 안내해라.”
안색이 여전히 찌푸려진 채 펴질 수가 없었다.
대천민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안내하였다.
안내한 곳은 가옥의 안쪽,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피비린내 나는 창고였다.
창고 안에 들어가자 최하층부에서도 최하급의 계급을 지닌 노예 다섯이 쇠사슬에 묶여져 있었다.
노예 다섯은 모두 남자아이로 그 외모가 누군가와 굉장히 흡사하였다.
남색 머리와 남색 눈동자, 15세 주변으로 추정되는 외모와 신체.
레이온이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그 누군가와 너무나 흡사하게 생긴 존재들, 실제로 면면이 달랐지만, 얼추 보면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히이이이이익!”
“히이이이이익!”
“히이이이이익!”
“히이이이이익!”
“히이이이이익!”
다섯 소년들은 하나같이 놀랐다.
그 놀람은 어떤 소문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었다.
노예 계급은 문자와 언어를 금지당했다.
그렇다 하지만 은밀하게 그들이 하는 의사소통까지 완전하게 제한할 수는 없었다. 숨어서 하는 것까지 막기는 힘들었다.
정 막으려면 철저한 감시가 필요했지만, 그 정도까지 하고 싶을 정도로 노예들을 관리하는 천민들은 의욕이 크지 않았다.
노예들은 문자와 언어는 배우지 못했고, 익히지 못했기에 자신들만의 의사소통의 수단을 마련했다.
그것이 수화(手話:손으로 하는 대화)였다.
그들의 수화는 같은 제국인인 노예 이상의 계급들은 전혀 모르는 노예들만의 독자적인 문화 언어였다.
수화로 그들은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런 노예들 사이에 하나의 도시 괴담 비슷한 호러 소설에 가까운 소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레드 옥토퍼스(빨간 문어)다.
그 소문은 15살 정도의 노예들이 잘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피로 얼룩진 시체로 발견된다는 소문이었다.
시체는 하나 같이 외적인 상처가 심했고, 마치 인간이 한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상처를 입어 상대를 손이 여덟 개인 옥토퍼스가 아닌가 하고 소문이 난 것이 레드 옥토퍼스였다.
피투성이 시체와 수많은 외상.
피투성이는 레드를 뜻했고, 분명 죽은 후에도 내지른 검은 인간 같지 않은 폭력성과 수많은 상처는 상대가 옥토퍼스(문어 다리 8개)처럼 손이 많은 살인마라는 뜻에서 만든 것이었다.
대천민은 몸을 부르르 떨며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창고 속에서 레이온은 아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서는 레이온의 행동에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서의 한 걸음 앞에 있는 대지에서 검은 어둠이 나타나며 그 속에서 날카로운 예기를 지닌 레이피어가 솟아났다.
아서는 ‘마도사’―‘병기고’―‘소드 익스퍼트’로 아서의 이능인 병기고는 무기가 메마르지 않는 아공간을 뜻했다.
차악!
레이피어를 화려하게 잡은 레이온은 노예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마치 바늘로 인형을 찌르듯 아주 쉽게 노예 소년의 몸을 꿰뚫었다.
푸우욱.
가슴을 지나 순식간에 등으로 삐져나오는 검.
예사롭지 않은 검 실력이었다.
“으, 으아아아아악!!!”
레이온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서는 여지없이 또 다른 레이피어를 꺼내었다.
아서의 이능인 병기고는 아서의 마력량 만큼이나 무기를 뽑아낼 수 있었다.
아서의 자질은 마도사.
레이피어의 무게와 강도, 예기 종합적으로 A급의 레이피어를 병기고에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100이라는 생명력이 동원되고, 그 생명력은 아서에게 1분이면 회복이 되는 시간이었다.
즉 어지간해서는 아서에게 무기가 부족해질 수가 없었다.
그걸 아는 레이온이기에 검을 들고 사정없이 찔렀다.
푸우욱!
푹푹푹푹!
“크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