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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황 1권(15화)
7장 출정식 Ⅰ(2)


왜 여자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이렇게 겁을 먹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걱정해 준다는 것이 기뻐서 가느다란 등을 두드리며 위로해 주었다.
그 뒤로 화장이 일그러진 얼굴을 보이게 된 일리아는 사르엘의 놀림을 받고, 한참이나 크리스티나와 함께 화장을 고치러 갔다.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앙!”
“왜?”
“아냐, 아무것도! 히히히.”
배시시 웃으며 왼쪽 팔을 인형마냥 마구 끌어안고 애교를 부리는 사르엘, 애교 많은 강아지처럼, 고양이처럼, 한껏 귀여움을 떨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사르엘의 행동은 순진하기만 하였다.
“오빠.”
“왜?”
“나 이제 브래지어도 찬다.”
“사르엘도 숙녀가 다 되었네.”
타닥 타다닥.
나무 장작이 불에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난로에서 났다.
“보여 줄까?”
“요 꼬맹이, 그런 건 나중에 남자친구 생기면 보여 주렴.”
“아앙!! 난 남자친구 필요 없어!”
“그럼 나중에 나 혼자만 보여 줘.”
“알았어!”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안겨 오는 사르엘은 마주 껴안았다.
화장을 고치고 돌아온 일리아와 크리스티나.
일리아가 만든 옷을 보며 어떻게 제작하였는지, 어떤 재봉 기법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몇 마디 나누었다. 나중에는 로엔하르트가 옷에 대해서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크리스티나와 사르엘도 탐구적으로 일리아에 대해서 질문하고, 착한 일리아는 성심성의껏, 직접 자수를 놓고 재봉을 하는 것을 보여 주며 가르쳤다.
한참 동안 일리아와 강의를 듣던 로엔하르트는 일리아가 옷을 들고 나타나자 슬그머니 살아져 버린 이프릴을 찾아서 그녀의 방으로 갔다.
이프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로엔하르트가 본 것은 옷과 책들이 뒤섞여져 있는 엉망진창의 방이었다.
“이프릴?”
“누, 누구야!”
바닥에 책과 옷들 사이로 이프릴이 일어났다.
언제나 단정한 외모와 행동을 하던 이프릴이 이번에는 왠지 영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곱게 빗어 두었던 머리카락이 제자리를 잃고 풀어헤쳐졌고, 옷 여기저기가 구겨져 처음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이프릴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로엔하르트를 보고는 경직되었다.
“뭐 찾아?”
“아, 아니야.”
얼버무리는 이프릴.
그녀의 침대에 엉덩이를 대어 본다.
물컹물컹!
이 느낌, 감촉 마도 제국에서 만든 침대였다.
“물침대네.”
“으응.”
안절부절 못하며 오른손으로 왼손의 손목을 쓰다듬는 그녀, 눈도 어디로 둘지 몰라 안절부절한다.
그녀의 생활은 언제나 꽉 조여진 벨트처럼 정리정돈, 정해진 길로만 가는 스타일인데 오늘은 조금 달라 보인다.
희미하게 떨고 있는 왼손을 잡았다.
흠칫거리며 떠는 그녀를 끌어당겨 안아 보았다.
실제로 로엔하르트가 조금 더 작은 키와 왜소한 몸을 지녔지만, 현재 로엔하르트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고, 이프릴은 바닥에 앉았다.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평소가 아니니깐.
덕분에 그녀의 정수리가 훤히 보이는 높은 위치를 사수했다.
허리를 구부려 머리를 껴안았다.
“무슨…… 걱정 있어?”
이프릴은 로엔하르트의 말에 우물쭈물 역시나 말하지 않는다.
다소곳하게 무릎 위에 놓은 두 손을 마주 잡고 끌어서 안았다.
……두근, ……두근두근.
쿵쾅쿵쾅쿵쾅.
조용한 실내.
로엔하르트와 이프릴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만이 두 귀를 가득 메운다.
호흡으로 느껴지는 상대방의 두근거림, 피부로 느껴지는 상대방의 따뜻한 체온.
조용히 다독여 주고 지켜 주고 참아 주며, 안아 주는 행동에 그녀는 조금씩 마음이 열리며…….
“흐흑.”
눈물이 솟았다.
한 번 열린 물꼬.
“흐아아아아아앙.”
눈물은 촉촉하게…… 옷과 피부, 치마로 떨어졌다.
“그래, 그래, 착하지, 릴.”
이프릴의 어릴 때 애칭을 불러 주었다.
이프릴은 울고 있는 얼굴로 일어나서 로엔하르트의 가슴에 재빠르게 안겨 들었다.
물컹!
물침대가 파문을 일으키며 두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했다.
“엉엉엉엉엉엉엉.”
한참을 우는 이프릴.
가냘픈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2-

1시간 후, 눈이 퉁퉁 부어서 계속 눈 마주치기를 거부하는 이프릴, 애칭을 부르며 강제로 얼굴을 마주치게 하고 이유를 물어보았다.
릴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을 다 들은 로엔하르트는 참으로 릴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이었지만, 로엔하르트를 갸륵하게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기에 기뻤다.
“일리아 언니는 선물도 준비하고 했는데, 그런데 난 내 방에서 줄 것도 없고, 그렇게 뒤졌는데, 마땅하게 선물할 것도 없고, 일리아 언니랑 너무 차이나고 마스(로엔하르트 애칭)가 떠나는데 이렇게 아무런 선물 없이 보내야 한다니, 난 정말 나쁜 여자야.”
“괜찮아.”
“그래도…….”
아직도 훌쩍거리며 안타까워하는 이프릴을 보며 로엔하르트는 침대 여기저기에 있는 책 한 권을 들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다은 책을 들었다.

편견과 오만.

또 다른 책을 들었다.

세르가이 왕국기.

세 권의 책, 모두 로엔하르트가 읽어 보지 못한 책들이었다.
책들을 보고 있자 좋은 생각이 났다.
“그럼, 나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써 줘.”
“뭐?!”
“그걸로 선물을 대신할게.”
“내, 내가 책을?”
“응!”
“내가 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릴이라면 할 수 있어, 그래, 제목은 내가 지어줄게, ‘대륙제황’ 어때? 나다운 제목이지?”
“내가 써도 될까?”
“몰론!”
“그, 그럼, 내가 쓰게 해 줘!”
“고마워, 내 부탁 들어줘서.”
“아냐, 내가 더 사랑하고 고마워.”
그렇게 합의를 보고 이프릴과 함께 본래의 장소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강의의 열중인 일리아와 어느새 지쳐 버린 크리스티나와 사르엘이 고역스러운 얼굴로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리아의 교육은 강압적인 것 같았다.
“아! 둘째 언니다! 로엔하르트! 도대체 1시간 동안 둘째 언니랑 뭐했던 거야!”
사르엘의 외침에 크리스티나와 일리아가 모두 날카로운 눈으로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이프릴은 총 세 사람(크리스티나, 일리아, 사르엘)의 눈동자를 받자, 로엔하르트의 뒤로 숨으면서 조심스럽게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책 쓴다는 건 비밀이야.”
어느새 목소리의 톤과 음색, 음정이 본래의 이프릴의 것으로 돌아왔다.
또렷하고 정확한 이프릴의 언어로…….
“비밀이야.”
“뭐어?!”
사르엘이 펄떡 뛰며 놀랐고, 크리스티나가 이프릴을 데리고 밖으로 가면서 작은 소리로 ‘아무리 사랑해도 그렇지, 순결은 소중하단다.’라는 말을 하였다.
일리아는 다소 풀이 죽는 얼굴로 강의하던 자세에서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았지만 로엔하르트는 오히려 웃으며 사르엘과 일리아 사이에서 옷들을 들어 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멋진 외투를 들어서 일리아에게 말했다.
“이거, 내가 가져가도 되지.”
일리아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힘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으응.”
대답할 힘조차 없어 겨우 말하는 가여운 행색이었지만, 로엔하르트는 곧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옷을 받아 들고, 일리아의 볼에 입을 맞추고 사르엘의 입에도 입을 맞추었다.
“사르엘, 일리아. 나중에 또 올게.”
“가는 거야?! 내 가슴은 안 봐?”
아주 당당하게 요구해 오는 사르엘.
“이프릴보다 더 커지면 보러 올게.”
일리아의 분위기가 더욱 침울해졌고, 사르엘이 부루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 그러면 너무 오래 걸리잖아.”
“노력하는 자에게 행운이.”
사르엘의 머리카락을 힘차게 흩트려 놓고는 백금 별궁을 빠져 나왔다.
어느새 기사들이 순번을 바꿔 놓았는지 백금 별궁에서 빠져나오는 로엔하르트에게 기세를 쏘았다.
가볍게 차단시키고 자신의 별궁으로 돌아온 로엔하르트는 시녀에게 외투를 건네며 몇 마디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로엔하르트의 방에는 이미 일곱 기사들이 침대 위에서 오순도순 모여서 카드를 하며 로엔하르트를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카드는 포카였고, 하는 사람은 총 다섯 사람.
미첼, 아마테라스, 호마, 피나, 리즈.
“콜.”
“콜!”
“콜!!”
“콜!!!”
“아싸! K 포카드! 오늘 순번 중에 내가 네 번.”
호마가 기뻐하는 무렵, 리즈가 자신의 패를 아직 보여 주지 않은 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호마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
“뭐, 서, 설마?!”
“후후, 호마 님, 제가 이겼습니다. 전 A 포카드입니다.”
“이, 이럴 수가?! 이건 반칙이야! 내가 분명 A 풀하우스인 걸 봤는데!”
“역시! 사실 A 풀하우스였지만, 호마 님이 생명력을 눈에 집중해서 뭔가를 하나 했더니, 투시였군요!”
호마의 이능은 ‘신체’, 생명력을 눈에 집중하여서 점점 좋게 한 후, 결국에는 상대방의 패를 투시하여서 본 것이었다.
“아, 아냐!”
리즈의 이능은 ‘공간투시’, 호마가 생명력을 눈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혹시나 하여서 낚시를 한 것인데, 아주 시기적절하게 물린 것이었다.
“호, 호마!”
피나가 가장 놀라며 물었다.
“호마 님! 저도 이능을 안 썼는데, 그런 우리 이능전으로 가 볼까요?!”
미첼은 카드를 섞더니 위에 다섯 장을 뽑았다.
자신의 이능 능력인 ‘인력 암흑’으로 만들어 내는 스트레이트 플러쉬.
그녀는 패에서 자신이 원하는 패를 인력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
착한 미첼은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것이었다.
“안 돼! 불공평하잖아!”
아마테라스와 피나가 열성적으로 이능전을 말렸다.
“무효! 무효! 다 무효예요!”
네 사람이 동시에 항변하자 호마를 고개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당연한 것이었지만 호마는 아쉬웠다.
로엔하르트는 그들 사이를 가로 지르며 앉았다.
“재밌게 노네.”
로엔하르트는 기분이 묘했다.
제각기 다른 느낌의 잠옷을 입은 일곱 여성들이 남자의 침대 위에서 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바르고 착한 루나와 다프네는 이미 침대 한켠에 누워서 자고 있었고, 붉은 네글리제(속이 훤히 보이는 속옷)를 입은 아마테라스와 곰을 귀엽게 묘사한 곰돌이 30마리가 들어간 속옷 등등 취향에 맞춰서 자신들의 속옷을 입은 일곱 소녀, 숙녀, 여성들이 귀여웠다.
“어! 로엔하르트 왜 이렇게 늦었낭!”
호마부터…….
“로엔하르트 님, 늦었습니다.”
아마테라스.
“로엔하르트 님, 늦어요!”
미첼.
“왜 이렇게 늦게 다녀요!”
리즈.
“…….”
어느새 안겨 들어 반기는 피나.
[야! 일어나!]― 야심가 루나
[당장 일어나!]― 잘 노는 루나
[내가 들어갈까.]― 야한 루나
[그러든지]― 다크 루나
어느새 일곱 루나(게으른 루나 제외)들이 나타나서 곤히 자고 있는 루나의 머리와 볼을 때리며 깨우고 있었다.
퍽퍽퍽파직뚝딱쾅퉁뚜두두둑빵쿵!
일곱 누나의 장렬한 전투 후에 루나가 눈을 떴다.
“……오셨어요.”
곤하게 자고 있어 보이는 루나와 옆에 죽은 듯이 자는 다프네를 보며 로엔하르트도 슬슬 잠이 오는 느낌이어서 옷도 벗지 않고 침대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리즈에게 잡혔다.
“씻어요!”
솔직하게 말해서 아주 잠이 오는 상황에서 씻는 것도 귀찮은 법이어서 그냥 자고 싶었지만 리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강경하게 로엔하르트의 옷을 벗겼다.
쫙 쫙 쫙.
“옷 찢어져!”
“옷 많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자기 벗겠다는 로엔하르트와 벗기는 리즈.
번쩍 번쩍 번쩍 번쩍.
‘와, 와.’거리며 구경하던 아마테라스, 피나, 호마, 미첼이 슬금슬금 다가와 리즈를 도왔다.
강제로 옷이 벗겨지는 로엔하르트.
[루나! 일어나! 너도 참가해!]
야심가 루나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우와, 로엔하르트 님 의외로 몸 좋다.]
세세하게 훑어보는 야한 루나.
[어쩜, 어쩜, 꺄악! 멋지다. 의외로 남자 몸이 이렇게 흥분되는구나! 저것 좀 봐, 꺄악!]
수다스러운 루나가 다른 루나들을 두드리며 말했다.
[머엉.]
게으른 루나가 고개만 살짝 돌려서 구경했다.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새침데기 루나는 그런 게으른 루나 뒤에서 힐끔힐끔 훔쳐보고 말이다.
[흥! 겨우 남자 몸 하나 보고 이렇게 호들갑이라니.]
다크 루나가 아주 냉소적으로 말했다.
[루나! 일어나! 뺏겨! 다른 애들한테 로엔하르트 님을 뺏겨 버린다고!]
야심가 루나가 아주 울면서 매달렸다.
그러는 사이 나체가 된 로엔하르트는 다섯 사람에 의해서 강제로 목욕실로 옮겨졌고, 루나들 중 몇은 따라가고, 몇은 루나를 깨우고 다프네는 곤하게 잤다.

***

“쿨럭!”
“현묘 아저씨!”
권자연은 설마 광진자 현묘가 다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쿨럭 쿨럭. 너, 너희들은 그만 돌아가라, 도저히 너희들이 추격할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저 때문에, 저 때문에 아저씨가 이렇게 실패하였는데,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하면 너의 아버지에게 미안하다.”
“아저씨.”
“돌아가자, 이미 늦었다.”
“아니요! 저는 돌아가지 않아요! 저만이라도 가겠어요!”
주작검 권자연은 10만의 천마신교의 교도들을 뒤따라가기 위해서 키즈 제국으로 가는 배편을 샀다.
분명 키즈 제국에는 천마신교의 교도들보다는 늦게 도착하겠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 권자연의 뒤로 상관혜와 도영, 모용운지가 함께하였다.
“너희들은 그만 돌아가! 이 일은 나 혼자 하겠어!”
“섭섭한 소리 하지 마! 우리는 친구잖아!”
“그래, 자연아, 우리가 도와줄게, 1명 보다는 4명이 나을 거야.”
“내가 생각했을 때도 네 명이 훨씬 나, 그러니 딴소리 하지 마.”
“너희들…….”
자연은 자신을 생각해 주는 세 명의 친구들의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