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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황 1권(17화)
8장 출정식 Ⅱ(2)


-3-

레이온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로엔하르트를 배려해야 한다는 상황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똑같은 색상의 옷을 입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레이온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 내었다.
“아서, 네 동생을 불러와.”
“동생이요?”
“그래.”
“예, 물론입니다.”
레이온은 쇼렌에게 지시하며 옷을 맞췄다.

***

네 여인은 전혀 다른 나라에 도착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항구 이곳저곳을 다녀 보았다.
당연하게 모든 것들이 신기했다.
코가 크고 키가 큰 카론 랜드의 사람들은 정말 신기했고, 각종 조리 재료들과 요리들은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환전을 해야 해, 언어는 내가 대륙 공용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깐 괜찮지만, 돈은 바꿔야지.”
그녀들은 대공가에서 운영하는 환전소를 거쳤다.
“이제 어떻게 하지? 천마신교 놈들을 뒤쫓아야 하는데, 정보가 없잖아.”
자연이 시무룩한 표정을 하였다.
그런 자연의 표정을 밝게 만들어 줄 정보가 바로 모용운지에게 있었다.
“그렇게 실망하지 마, 다행스럽게도 키즈 제국에 내가 아는 분이 한 분 계셔.”
“정말이야?”
상관혜가 놀라 물었다.
“그래, 예전에 독실(讀失)이라는 별호로 불렸던 분이시지.”
“아! 흑현자(黑賢子)를 말하는 거구나!”
“맞아! 그분이 오래전에 우리 집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어, 그때 아버지의 글 선생을 하셨다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어, 아주 작은 인연이지만, 여기서 무작정 찾는 것보다는 그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더욱 좋을 거야.”
다른 세 명의 여인은 모용운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세 명은 키즈 제국의 수도로 목적지를 정하였다.


9장 출정식 Ⅲ(1)


-1-

화려한 홀.
황실의 홀을 화려함 빼고 뭐라 칭할 수 있을까.
굳이 키즈 제국만의 특색을 뽑자면 서양과 동방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문화와 구시대적 패션과 마도 시대에서 탄생하는 신시대적 패션이 서로 만나 탄생한 옷들이 그러하였다.
꼭 패션뿐만이 아니라 벽에 장식된 그림에도 서화에도 조각에도 동방과 서양이 한 장소에 동시에 배치되어 있었다.
화려하면서도 앙증맞은 손지갑 하나씩을 들거나, 크고 무거워 보이는 가고일 악어의 외피로 만든 무기로 써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핸드백, 크고 작은 귀걸이와 작지만 세공이 세세하게 들어간 다이아 반지, 손등에 보석으로 금, 은으로 아름답게 문양을 만든 보석 장갑.
남자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명함을 꺼내 들고 서로 교환하였다.
명함은 마도 제국에서 만든 신상품으로 귀족 남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한손에 착 들어오는 크기 속에 이름과 귀족 성, 직함 등이 들어가고 거기에 단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머릿속에 이름을 주입시키는 마법이나, 만졌을 때, 영상이 나타나는 명함 등등 마법을 주입시켜 명함의 특성을 주는 등 많은 장치를 넣었다.
이 명함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성들에게까지 전파되어 힘 있게 바람을 타고 있었다.
파티홀에는 하나의 입구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입구가 남, 서, 동쪽에 있고, 북쪽에는 귀족들 속에서도 특별한 사람들인 상층부에 기거하는 사람들이 중층부의 파티홀로 내려오는 입구가 있었다.
하층부에서 올라와서 파티홀로 들어가는 입구가 동문과 서문, 남문으로 거기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데에 반해서 상층부에서 중층부로 내려가는 북문에는 이미 레드 카펫까지 깔려져 우아한 분위기였다. 시끄러운 동, 남, 서쪽의 문들과 그 분위기 자체가 틀렸다.
또각또각.
불편하지만 그래도 나름 뛰어난 솜씨로 계단을 내려오는 애린.
“누나, 안 아파?”
“말이라고 하니!”
상층부에서 중층부로 내려오는 곳은 상당히 계단이 많았다.
고적한 분위기와 달리 여기저기서 발이 아픈 여성들이 계단 중간, 중간에 마련된 작은 분수대가 있는 쉼터에서 쉬고 있었다.
“우리 저기 가서 쉴까?”
“그래, 좀 쉬자.”
분수대 한쪽에는 칵테일 바가 있었다.
열대야 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고 중앙에는 작은 분수대, 구석에는 칵테일 바. 조금 걸어가면 밖이 보이는 테라스.
상층부에서 중층부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작은 쉼터 주제에 고급 주점 못지않은 세련됨과 차분함이 있었다.
레몬 에이드를 마시며 쉬고 있는 로엔하르트의 눈에 역시나 절뚝거리며 내려오는 미첼과 리드미스 사부님, 그리고 이오린 사모님이 있었다.
“사부님.”
“앗!”
로엔하르트가 한 손에 칵테일 잔을 든 채 사부님을 불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고통에 아파하던 미첼이 재빨리 리드미스의 뒤에 숨는 것이 아닌가.
“오, 로엔하르트. 멋지게 차려입었구나!”
“하하, 사부님만 하려구요.”
리드미스는 동방의 현자라는 캐릭터에 맞게 황토색의 로브에 중원에 있는 기다란 뱀 같이 생긴 룡이 수놓아져 있는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안에는 동방의 고관대작들이 입는 고급스러운 동방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동방의 옷은 왜 그런지 몰라도 소매 부분이 상당히 폭이 넓었다.
“그렇지?”
“로엔하르트, 사부님만 멋지니?!”
이오린이 리드미스와 로엔하르트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오린 역시 리드미스와 마찬가지로 동방의 선녀 같은 나풀거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사모님은 두말할 것 없이 최고죠! 저희 누나보다 아름다운데요.”
“호호호, 우리 남편님은 제자도 참 잘 두셨어!”
사모는 활기차게 웃으며 리드미스의 팔을 꼬옥 안았다.
리드미스와 이오린 사이에 상당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이렇게 행복하게 보이는 것은 이오린의 강력한 어택 정신 때문인 것 같았다.
리드미스는 그 노회한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사부님, 코가 빨개요.”
“떼끼!”
“우리 남편님은 역시 귀여워요!”
“린(이오린 애칭)!”
“호호호호호, 그런데 우리 까만 고양이는 왜 아빠 뒤에 숨기만 하는 걸까? 방금 전까지만 하여도 그렇게 제자를 유혹해서 설설 기도록 춤을 추게 만들겠다고 단언했으면서.”
“엄마!”
리드미스의 뒤로 숨은 미첼.
그녀는 부모님과 다르게 까만 치마가 무릎까지 올라온 짧은 블랙 미니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빨간 구두에 검정 스타킹을 신고 빨간 리본으로 허리 부근 묶어서 포인트를 주며, 요즘에 인기를 끄는 어깨 끈이 없는 쇄골과 가슴 라인이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였다.
“……아, ……아앙, ……엄마, 너, 너무 야해, 이 드레스, 히잉.”
가슴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드레스로 미첼은 많이 부끄러워하였다.
“아냐, 귀여운데.”
“그, 그래도 창피해요.”
한 손으로 치마를 내리고 다른 손으로 가슴을 올리며 홍당무처럼 변해 버린 미첼.
“로엔하르트, 나 다 쉬었어, 가자!”
어느새 구두로 바닥을 탁탁 치며 일어난 애린이 재빨리 손을 잡아 파티홀로 이끌었다.
“미첼, 그럼 천천히 와.”
“아, ……예.”
손을 흔드는 미첼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며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는 애린과 같은 보폭으로 파티홀의 문에 도착하였다.
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높은 천장에는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파티홀에 도착하자 총 두 개의 길이 보였다.
하나는 계단을 통해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과 다른 곳은 은밀한 장소로 개인 룸으로 통하는 자리였다.
사람들과 북적거리는 것이 싫다면 개인 룸으로 가면 되는 것이었고 반대라면 계단을 걸어서 내려가 귀족들과 어울리면 되는 것이었다.
상층부의 대부분 사람들이 개인 룸으로 향했다.
“어느 쪽으로 갈 거야?”
“주인공인데, 구경만 할 수 없잖아.”
두 사람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또각또각.
계단은 솔직하게 말해서 꽤나 길어 100개에서 200개는 되어 보였다.
그렇게 내려선 파티홀.
많은 귀족들이 한껏 예절과 예의를 차리며 모여들었다. 차마 가까이가지는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귀족 아가씨들과 청년들.
개인 룸보다는 낮은 중간 위치의 놓여 있는 마련된 자리로 가 앉았다.
어느새 와 있던 슈마허와 그의 두 아들이 다가와 함께 합석을 하였다.
“황녀님, 함께 춤을 춰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슈마허의 둘째 아들 슈케이가 점잔을 빼며 손을 내밀었다.
“어떡하지?”
“놀다 와.”
로엔하르트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꾸, 애린은 잠시 사납게 동생이 옆모습을 노려보더니 사근사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기쁘게.”
애린은 슈케이와 함께 파티홀의 정중앙으로 나갔다.
공작가의 아들과 황녀의 등장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공간을 내주었다.
“그러고 보면 이제 로엔하르트도 결혼해야 할 나이대가 되지 않았나?”
“하하, 사부님. 그건 제가 황제가 되고 나서도 충분합니다.”
귀족 남성은 대체로 성인식(13살) 이후부터 마음껏 놀다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혹은 40대에 결혼하기도 하였다.(남자에게 결혼 연령의 제한 같은 것은 없었다.)
여성 같은 경우 13살에서 20살 사이로 그 이상을 벗어나면 정말 어지간한 아름다운 외모가 아닌 이상 혼처 정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것에 반해서 남자들의 경우 상당히 폭이 넓었다.
이건 황제의 경우로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황제는 40대에 애린을 임신한 18살 소율을 첩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만큼 고위로 갈수록 크게 결혼에 얽매이지 않았다.
“사르엘은 어떻더냐?”
“아직은…… 나중이죠.”
“그래도 한 번 고려해 보거라, 황자의 입장에서 아무나 정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결혼 적령기가 지닌 일리아와 이프릴은 너무 그렇고, 혈통을 위해서도 사르엘이 너에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게 되면 전통귀족파도 어느 정도 전통을 인정해 줄 것이고.”
“나중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잘해 주길 바란다. 난 제발 분란 없이 네가 황제의 자리를 이어받아, 훌륭하게 제국을 키워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