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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황 1권(18화)
9장 출정식 Ⅲ(2)
슈마허와 로엔하르트가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있을 때, 상층부에서 중층부로 내려오는 북문이 아닌 남문에 길게 늘어선 마차들이 있었다.
건물 안에 마차라니, 황당한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황실은 중층부의 파티홀까지 오는 데에 마차를 타고 올 수 있도록 건축공학을 사용하였다.
그렇게 늘어진 마차들 중 붉은색의 루비들이 잔뜩 있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안에는 레이온을 비롯한 세 사람이 함께하고 있었다.
둘은 쇼렌과 아서로 레이온의 측근으로 유명한 이들이었고, 다른 한 명은 레이온과 닮은 느낌의 소년이었다.
“준비되었나?”
“예, 물론이죠!”
활기찬 목소리.
레이온과 비슷한 외모였다.
붉은 머리에 붉은 눈동자, 다른 것이 있다면 날카로운 느낌의 레이온과 달리 앙증맞은 느낌의 귀여운 소년이라는 것이었다.
소년의 이름은 가스터 에멘로스트, 아서의 동생으로 크리온 에멘로스트 대공의 넷째 아들로 사교계의 기사라 불리는 대단한 카사노바였다.
가스터를 부른 이유는 레이온, 쇼렌, 아서가 하지 못하는 언변과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형, 두근두근하는데요.”
“예의를 지켜라, 너는 지금 레이온 님의 측근으로 함께 참가하는 것이다.”
“물론이에요!”
“하하, 아서 가스터를 너무 몰아붙이지 마, 사교계에서는 우리보다 더 유명하신 분이라구.”
가스터는 레이온의 말에 얼굴이 빛났다.
-2-
파티 시작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동, 서, 남쪽의 문들이 어수선하고, 사람들이 아직도 유입되어 엄청나게 모여들었다.
물론 그런 그들과 다른 대우를 받는 존재들 역시 있었다.
개인 룸으로 이동한 상층부의 사람들과 중간쯤에 자리에 앉은 사람들 정도?
사실 여기 일반인처럼 보이는 귀족들도 각자 황실을 나가서 자기 저택에 도착하면 황제처럼 지내는 인물들이었지만 이 파티홀에서는 일반적인 대중에 지나지 않았다.
시종과 시녀들이 재빨리 움직이며 파티의 홀을 가로로 세로로 움직여 다녔다.
음식을 만드는 300명도 넘는 주방장들이 서로 다른 주방에서 필사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시종과 시녀들은 빠르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며 움직였다.
웅성웅성웅성.
사람들의 길이 갈라지며 네 명의 청년이 등장했다.
“아름다운 레드군요.”
“네 분 모두 옷을 맞춰 입으셨군.”
“잘 어울리신다.”
“멋져요.”
귀족들과 부인들 레이디, 청년들의 시선이 파티홀로 들어오는 네 청년에게 모아졌다.
같은 붉은 제복을 입은 결코 경망하지 않는 시선과 걸음걸이의 누구보다 시선을 끄는 사람들이었다.
현 제국 후계 서열 1위 레이온.
20대에 이미 장군의 위치에 오른 쇼렌.
또래 청년들 중 검술이 가장 뛰어난 아서.
부인들과 레이디들에게 사랑받는 가스터.
네 명 모두 혈통, 재력, 권력, 무력까지 고루 갖춘 뛰어난 청년들이 같은 복장, 같은 색상의 옷을 입고 나타나니 시선을 끊고 싶어도, 끊을 수가 없었다.
레이온 등을 보고 구석의 한 남자작의 장녀가 말했다.
“역시 레이온 님이 제일 멋져!”
옆에 있는 여동생이 말했다.
“그래도 로엔하르트 님도 귀엽고 얼마나 듬직하신데.”
“애는……!”
두 자매의 대화에 남작 부인이 그만두게 하였다.
“아이시! 디나스! 시끄럽구나!”
“예.”
“예.”
그 이후 말들이 많았지만, 대체로 칭찬이었고 네 청년은 매우 예절바르며, 동시에 예의 있게 레이디들과 청년들에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가스터와 아서는 부인들과 레이디들과 열심히 춤을 추었고, 쇼렌은 이번에 참가하는 군인들 중에서도 그 계급이 나름 높은(그래봐야 계승 백작) 인물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레이온은 상층부의 공작, 후작, 변경백들 중에서도 전통귀족파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의 등장은 확연하게 파티장을 살리는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네 사람의 등장 이후, 로엔하르트의 일곱 기사들과 리드미스의 가족 등도 등장했다.
그렇게 한창 파티홀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문을 지키고 있던 계승 백작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 폐하, 납시오!”
그 한마디에 파티홀을 가득 메우던 음악이 끊겼고, 네 청년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파티가 멈추며 그들은 춤을 추는 것보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황제 폐하, 납시오!”
두 번째로 울리는 말.
사람들의 행동이 바빠지며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총 세 번 울리게 되면 황제가 등장할 차례이기 때문이었다.
레이온과 그 세 명의 청년들도 파티홀의 중간층 자리로 올라와 착석하였다.
“황제 폐하, 납시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라도 다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적막감 속에서 황제가 등장했다.
황제의 등장은 북문이 열리면서였다.
문 사이로 이 파티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로엔하르트도, 로엔하르트를 누르기 위해 같은 복장과 옷으로 등장한 레인과 그 세 명도, 모두 잊어버릴 것 같은 굉장한 화려함을 몸에 걸치고 황제가 등장했다.
또각.
구두와 계단이 마주치며 나는 발소리가 적막함을 깬다.
담담하며 깊이 있는 눈동자. 제국 황제의 등장이다.
-3-
파티는 황제의 인사와 총사령관인 로엔하르트를 소개함으로 그의 얼굴을 알린 다음 시작하였다.
파티는 대체로 기본 3시간, 많은 때는 5시간을 갈 때도 있었다.
저녁 7시에 시작된 파티, 로엔하르트는 9시까지 파티에서 많은 귀족 여성들과 춤을 추었다.
이건 일종의 예의였고 그중에는 일곱 기사들과 레이온의 세 누이들도 있었다.
로엔하르트가 확실히 파티에서 활약을 하기는 하였지만 레이온 측도 만만치 않게 움직였다.
9시가 지나자 애린을 리즈에게 맡겨 미리 여름의 별궁으로 데려가 재우도록 하였다.
그리고 로엔하르트는 출정하기 전에 앞서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복도를 걸었다.
“로엔하르트.”
듣기 싫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를 불렀다.
“뭐지, 레이온.”
“오늘은 정말 미안했어.”
“뭐가 말이야?”
“파티홀에서 말이야.”
“무슨 말이지?”
“모르는 척하기는 그렇잖아, 오늘은 네가 주인공인데. 마치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돋보였잖아.”
로엔하르트는 레이온에게 미소를 지었다.
“잘난 체도 그 정도면 정신병 수준이군.”
하하하 하고 레이온이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오늘따라 네 말이 그저 질투하는 걸로밖에 안 들려. 왜 그럴까?”
“왜 그렇긴. 네 머리가 미쳐서, 정신병자가 되었으니 그렇겠지. 아니면 마약이라도 하여서 정신이 돌아 버렸구나.”
“그런 도발은 통하지 않아, 로엔하르트! 넌 언제나! 언제나! 나에 대한 질투가 강했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지려고 했잖아, 안 그래? 내가 황제를 꿈꾸자, 너도 황제를 꿈꿨지! 내가 기사를 꿈꾸고 검을 배우자 너도 검을 배웠지! 너는 항상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을,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질투했어, 안 그래?! 로엔하르트!”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레이온은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는 듯, 마치 사냥감을 함정에 빠트렸다는 얼굴로 말했다.
“너 지금 나를 질투하는 거지?”
“미쳤냐.”
“상스러운 말.”
“귀족들에게 관심 받더니 진짜 미쳐 버렸나 보군, 넌 벌레들에게 관심 받으면 좋아하는 놈이었냐. 쯧, 같은 수준도 아니고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놈들도 아닌, 그런 애벌레 수준들에게 관심 받았다고 칭찬해 달라고 나에게 뛰어와 보고하는 꼴은…….”
“이, 이놈! 벌레라니! 그들은, 그들은 벌레가 아니야!”
레이온은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준 이들이 벌레라는 것에…….
그건 그들이 벌레라는 것에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벌레에게 관심 받아서 기뻐하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역시…… 네 최고의 전성기는 7살 때였어, 가장 존경할 수 있는 형이었는데, 언제 이런 구더기가 되었는지.”
로엔하르트는 말 없는 레이온을 두고, 원래 가던 길을 걸었다.
쿵쾅쿵쾅!
최대한 침착하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포커페이스로 몸을 진정시키며, 걷고 또 걸었다.
-4-
사실 로엔하르트는 귀족들을 벌레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도저히 자신이 레이온에게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들킬 수는 없었다.
레이온의 생각이 옳았다.
로엔하르트는 파티에서 심각한 증오에 가까운 질투를 가슴에 품었다.
만약 로엔하르트가 냉철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이 복도에서 레이온을 만난 즉시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였을 것이다.
그만큼……!
격한 질투가……!
그 질투 때문에 아버지가 어떤 연설을 하였는지, 귀족들이 그를 어떻게 보았는지, 누구와 춤을 추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 모든 것이 기억에 남아 있지 못했다.
그런 기억을 머릿속에 담고 있을 정도로 침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쿵쾅쿵쾅쿵쾅!
‘잘했어, 그 정도면 됐어.’
아직도 가슴이 심하게 철렁이며 뛴다.
보는 것만으로도 증오스러운 상대.
가슴이 뻐근하다.
너무나 쿵쾅거리는 심장에 갈비뼈가 부러질 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문득 레이온을 보며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하하.”
레이온은 전통귀족파의 호위를 받는다.
더욱이 로엔하르트처럼 ‘로드 스타트’에 발을 올리지도 못한 터라 언제나 쇼렌과 아서가 붙어 있고, 아무리 긴급 상황이고 촉박하다 하여도 언제나 수행원들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방금 만난 레이온의 주변에는 그런 수행원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즉 그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격하게 로엔하르트의 질투하는 얼굴로 보려고 뛰어왔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 결과가 구더기라니.
“큭큭.”
꼴좋다. 빌어먹을 녀석.
걸음을 계속, 계속 움직여 상층부의 하나의 별궁에 도착하였다.
12개의 별궁들 중에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장 신비롭다는 겨울 별궁이었다.
겨울 별궁은 기본적으로 얼음과 눈,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투명하고 차가운 느낌의 궁이었다.
이 별궁에는 현재 두 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하나는 리즈의 어머니 남궁화영, 두 번째는 그의 어머니 진소율이었다.
별궁 앞에는 마땅한 시녀도 시종도 기사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침묵속에 로엔하르트는 별궁의 안으로 들어갔다.
사박.
눈을 밟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어여쁜 여성 한 명이 내려섰다. 한쪽 손에는 서양의 검이 아닌 동방 양식의 검을 들고 있었다.
“유모.”
“아기씨!”
이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아버지 로스만 키즈와 비슷한 나이대의 유모 남궁화영이었다.
“아기씨라니, 나도 이제 16살인데.”
“그래도 아직도 저에게는 애기랍니다. 참 리즈는 같이 안 오셨어요?”
“응, 애린을 재우려고 같이 보냈어, 그런데 엄마는 잘 있어?”
“예, 아가씨 보시러 오셨군요. 이거 서운한데요.”
“유모 보려고 왔어!”
“아기씨도 이제 그런 말도 할 수 있고, 정말 시간이 흘러가기는 하는군요.”
“응. 그러네.”
남궁화영과 로엔하르트는 겨울 별궁의 안쪽으로 들어왔다.
“벌써 13년이네.”
“예, 긴 시간이었어요.”
“엄마는 아직이야?”
“예, 그런 것 같아요.”
두 사람은 가장 안쪽의 방에 도착하였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수백 종의 카펫들과 천들이 가득 있는, 중앙에 난로에서 불을 피우고, 난로 앞에는 스웨터를 손수 뜨고 있는 것인지 실과 두 개의 막대기가 놓여 있었다.
로엔하르트는 다 만들어 못한 스웨터에서 시선을 떼어 방의 중심, 거대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는 로엔하르트 또래의 소녀에게 다가왔다.
애린이 로엔하르트 또래가 되었다면, 분명 이렇게 생겼을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녀는 키와 몸매만 달랐지 애린과 완전하게 똑같았다!
“엄마는 역시나 아직이군.”
“예.”
남궁화영은 다 만들지 못한 실뜨기를 들고 나갔다.
둘만 남게 된 로엔하르트와 소율.
로엔하르트는 이불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소율의 손을 잡았다. 13년간 누워 있음에도 엄마의 손은 아직도 따뜻했다
“안 됩니다!”
권자연, 상관혜, 도영, 모용운지는 ‘안 됩니다.’로 일관하는 병사를 매우 무서운 기세로 노려보았다.
능히 일류고수라고 불릴 수 있는 정도의 4명이 한꺼번에 노려보니 그 기세는 거의 절정 고수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문이나 지키는 수문장이 여유롭게 기세를 받아넘기고 있었다.
이때 생각해 볼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수문장이 사실은 엄청난 고수던가, 아니면 엄청 감각이 둔한 사람이던가.
“연락이라도 넣어 봐요! 정말로 리드미스 현자님과는 아는 사이예요!”
“추천장도 없고 신분을 마땅하게 증명할 방법도 없는데,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혹여 당신들이 사실은 암살자라서 현자님을 만나는 즉시 암살하려 하면 도대체 어쩔 생각입니까?!”
자연이 도저히 못 참아서 모용운지와 문지기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 그럴 생각 눈곱만큼도 없어요!”
자연의 외침에 문지기는 한마디 했다.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