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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황 1권(20화)
10장 13년(2)
-3-
제1황자 레이온이 에멘로스트 대공의 본가에 갔더니 바보가 되어서 돌아왔다.
3살에 3개 국어를 좔좔 외웠던 그 명석하던 머리가 하나 가르쳐 주면 그걸 하루 후에 까먹고 3일 동안 100번씩 불러 줘야 겨우 기억하는 저주받은 머리가 되었다.
더욱이 너무 오래 쓰면 코에서 코피까지 나는, 떨어지는 내구성까지.
찬란했던 과거와 너무나 다른 암울한, 혹은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온 레이온이었다.
크리스티나는 분노했다.
이것을 음모라 생각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2황자 로엔하르트의 가문이 이 일의 원흉이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레이온이 바보가 되면 누가 득을 볼까?
당연히 그 다음 황위 계승자인 로엔하르트가 아닌가.
크리스티나는 분노에 미쳤다.
아니 사실 분노하고 말 것도 없었다.
크리스티나가 보기에 이건 진실이었다.
모든 귀족들이 수군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보기에도 2황자 말고 이런 짓을 저지를 존재는 없었다.
그렇게 우수했는데, 그렇게 머리 좋았는데, 그렇게 영특하였는데.
그 우수함, 그 뛰어남, 그 영특함.
모든 것이 사라진 레이온에 비해서 너무나, 너무나 저주스러워서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 독을 썼다.
…….
그 결과, 진소율은 혼수상태로 빠졌고 생사를 넘는 위기 속에서 애린과 로엔하르트는 만약 평범하게 황자, 황녀로 살았다면 절대로 못 되었을 ‘로드 스타트’에 발을 올리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로엔하르트가 레이온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4-
‘로드 스타트’에 올라 생명은 건진 순간에도 로엔하르트와 애린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깨어난 두 남매에게는 현실은 정말…….
씨발!!
개씨발 같은 욕 나오는 상황이 되었다.
엄마는 독에 당해서 혼수상태고 남궁화영을 죽도록 사랑하는 홀드는 남궁화영과 그 딸만! 황실 밖으로 피신시켰으니, 황실에서는 아무도 그늘이 되어 줄 수가 없었다.(홀드에게는 홀드의 입장이 있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경멸의 눈초리, 혐오하는 눈, 능글맞은 눈동자.
그 상황에서 3살인 로엔하르트와 레이온과 동일한 나이의 7살이었던 애린이 할 수 있는 것은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이 고통이 빨리 지나가서 엄마가 어서 깨어나 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어렸고 정신적으로 어렸다.
하지만 그 개씨발 같은 상황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1년, 2년이 되니, 눈초리가 말로 변했다.
“동방인 주제에!”
“더러운 깜장 인간들.”
“노랭이 새끼들.”
“오줌 냄새난다.”
어찌 황자와 황녀가 그런 상황을 당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황비의 분노는 거대했고, 황제는 묵인했다.
차라리 독에 죽었으면 더 나았을 것인데 라는 생각을 고작 4살∼5살 때했다.
몇 번이나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황금 탑에서 상층부는 워낙 높은 높이였기에 여기서 그냥 고공낙하하면 바로 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죽을 수 있는 높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로엔하르트는 죽을 수가 없었다.
혼수상태인 엄마가 계속 눈에 밟혔고 아주 변태 같은 늙은 놈들이 엄마와 닮아서 어린 시절부터 매력을 뿜어내기 시작하는 이제 몇 년 안 있으면 결혼 적령기(13살)에 들어서는 누나를 보고 강제로 첩으로 데려가려고 할 것이다.
으, 씨발.
그런 개 같은 상황이 올 텐데, 그런 누나를 두고 로엔하르트를 도망칠 수 없었다.
이제까지도 미수(未遂:목적한 바를 시도하였으나 이루지 못함)에 그치기는 하였지만 그건 로엔하르트가 필사적으로 말렸기 때문에 미수였지 10살도 안 된 누나를 두고 공작이나, 후작이라는 놈들이 발정하는 꼴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누나와 엄마를 두고 로엔하르트는 도저히, 자살 같은 것은 불가능했다.
누나를 지켜야 했고 엄마를 지켜야 했다.
로엔하르트는 그때부터 노력했다.
다행히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죽을 것 같이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켜야 될 것이 있었다.
-5-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를 악 물고, 현자 리드미스를 찾아서 마법을 배우길 요청했고, 슈마허 공작을 찾아가 검술을 배울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 그들은 로엔하르트를 받아들여 주었다.
로엔하르트는 언제나 누나를 함께 데리고 다녔다.
혹여 혼자 두었다가 또 이상한 변태 같은 놈들에게 꼬이게 할 수는 없었으니깐.
그러던 중 애린도 검술을 배웠다.
격투술도 배웠다.
애린은 상당한 재능을 보였다.
그런 누나와 함께 로엔하르트도 성장했다.
어느새 그를 욕하던 인물들이 이제는 욕하지 못하게 되었고, 누나를 빌어먹을 눈빛으로 보던 인물들이 로엔하르트의 옆을 설설 기면서 피해 갔다.
그게 바로 힘이었다.
빌어먹을 힘이 있기에 둘은 현실로부터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이다!
크리스티나의 생각이 어찌 되었건 그녀의 생각대로 로엔하르트는 착실하게 황제의 후계자에 어울리는 인물로 성장을 거듭하였다.
그러면서 로엔하르트는 자신의 이능 ‘변화’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사부(사실 지금도 완전히 믿기 힘들다.)인 리드미스도 단순하게 여자 꼬시는 이능으로 알게 자신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숨기며 알아내었다.
로엔하르트의 이능은 ‘변화’.
이 이능은 ‘본래 있던 것’을 ‘로엔하르트가 원하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파워에서 오러로 넘어가며 오러로 ‘변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단순하게 인간보다 생명력의 크기가 작았던 것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사람의 마음마저도 변화시킬 수 있었다.
후에 오오라에 이르면서 그 효용과 응용 능력은 천차만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악마 같은 힘도 될 수 있었고 신과 같은 힘도 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크리스티나가 우리 가족(로엔하르트, 애린, 소율)에게 가지는 ‘분노’를 ‘사랑’으로…….
‘큭큭큭큭큭큭.’
***
문지기는 절대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미인계도 안 통했고 뇌물도 안 통했다.
완전 철혈의 문지기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렇게 끝까지 막아서기 때문에 더더욱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권자연과 상관혜의 마음에 불씨를 담겼다.
“나쁜 문지기.”
“반드시 안으로 들어가 주마!”
처음에는 현자를 봐서 정보를 얻고 싶은 마음이 컸으나, 점점 문지기가 너무 괘씸했다.
그래서 벽을 넘기로 하였다.
다행히 오늘 황실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문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네 사람이 황금 탑에 잠입하기에 무척이나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영은 반대했지만 모용운지은 기권, 상관혜, 권자연 찬성으로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벨이 울리면서 침입자 경고가 뜬 것이 문제일 뿐.
“저기에 있다! 잡아라!”
“놓쳐서는 안 된다!”
“오늘은 위층에 귀족분들이 있으시다! 잘못하면 우리 모두 1년 감봉이다!”
“그럴 수는 없다!”
병사들은 감봉을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힘차게 네 명의 여인들을 쫓아 다녔다.
하지만 평범한 병사들이 네 사람을 따라 잡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에는 황실 기사들이 나서게 되자 상황은 180도 달라져 네 사람을 크게 몰이하였다.
“앞, 앞에 막혔어!”
권자연이 앞을 보며 옆으로 가려는 순간 또 다른 기사들의 무리가 나타났고, 전후좌우 모두 기사들이 나타나 포위하였다.
“어떻게 하지?”
“어쩔 수 있어?”
“힘들어.”
“그렇다고 그냥 잡힐 수는 없어, 어찌 되었든 대화를 한 번 해 보자.”
상관혜와 권자연은 이 상황에서 대화를 해 보자는 모용운지의 말에 놀랐다.
자신들의 친구인 이 모용운지는 정말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 배포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모용운지는 무기를 쓰지 않고 전후좌우의 기사들 중 머리가 좋아 보이는, 눈빛이 총명하고 계급이 조금 있어 보이는 기사에게 손을 들어 무기가 손에 없다는 것을 보이며 상대에게 걸어갔다.
“잠시만요!”
11장 출정식 Ⅳ(1)
-1-
엄마의 손을 부여잡은 로엔하르트의 눈이 뜨겁다.
과거를 생각했더니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억눌러 두었던 감정들이 잠깐 밖으로 새어나온 듯하였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엄마의 손을 놓고, 이제는 키가 비슷해진 엄마를 다시 한 번 보고 방을 나왔다.
방 밖에서는 불안한 표정으로 남궁화영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약하지 않은 그(로엔하르트)가 감정을 일시에 폭발시켰으니, 생명력도 따라 폭발하면서 동방에서 나름 강한 축에 들었던 남궁화영의 기감(氣感)에 느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쉬어요. 나는 이만 가 볼게요.”
“아기씨!”
남궁화영이 로엔하르트의 손을 잡았다.
“유모, 왜요.”
“정말 미안해요.”
“뭐가요.”
“어린 아기씨들을 두고 갔던 거 말이에요. 난 설마 그 자식이 거짓말 할 줄 몰랐어요, 황비의 분노가 두렵다고 몸을 떠는 그 자식, 애 아빠라서 연락은 하고 있지만 절대, 절대 그를 믿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나를 믿어 줘요.”
그 자식, 애 아빠 등등 호칭을 달고 있는 그놈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무는 남궁화영이었다.
“알았어요. 저희 엄마 잘 부탁해요. 저 잠시 여기를 떠나니깐.”
“걱정 말아요.”
부드럽게 로엔하르트의 볼을 어루만져 주는 화영이었다.
“유모의 손은 언제나 곱네요.”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들려 줘요.”
“예.”
로엔하르트는 등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 동안 걸음을 옮기던 로엔하르트는 문득 느낌이 들어서 뒤를 바라보니 남궁화영이 어느새 달려와 로엔하르트의 앞에 도착하였다.
남궁화영의 한쪽 손에는 동방 양식으로 만들어진 목 상자가 있었다.
“아기씨, 이거는 큰 아기씨(애린)에게 주었으면 해요.”
“뭔데요?”
“큰 아기씨의 아버님이 소율 님 모르게 저에게 주신 것이에요. 이걸 건네주실 때가 소율 님이 큰 아기씨를 품지 않았을 때이니, 아마, 미리 미래를 예상하시고 나중에 그 아이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목 상자를 건네주었다.
건네받은 목 상자를 한참이나 만져 보았다.
‘누나의 아버지라.’
그건, 정말 묘한 느낌이었다.
동시에 상자를 문을 만졌다.
“지금 열어 보아도 될까요?”
“안 돼요. 이 문을 열려면 마땅히 맞는 피의 소유자여야 한다고 하셨어요.”
“마땅히 맞는 피의 소유자?”
“예, 큰 아기씨의 피만이 이 상자를 열 수 있다고 하였어요.”
친숙하면서도 묘하게 꺼림칙한 느낌의 상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간단하게 포옹하고 헤어졌다.
어느새 많은 시간이 지나서 1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내일이 오면 또 바빠질 것이다.
아침에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병사들이 미리 준비를 하고 미리 리허설을 하는 등 지루한 일이 오전에 모두 마무리되어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는 것이다.
내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골이 지끈거리며 아파 오는 느낌이었다.
좌우로 켜진 등불 사이를 걸었다. 혼자지만 무섭지 않았다.
그는 누가 뭐라 하여도 ‘소드 익스퍼트’의 검사였다.
“야!”
또다시 들리는 듣기 싫은 목소리, 이번에는 좀 더 듣기 싫다.
도대체 뭘 어떻게 얼마나 마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몸 전체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