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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황 1권(21화)
11장 출정식 Ⅳ(2)
좌우에는 파티가 끝난 것인지, 아서와 쇼렌이 한 손에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는 레이온을 부축하고 있었다.
“야! 내 말 안 들려!”
“추하군.”
“푸핫! 추해? 내가? 넌! 이 새끼야, 넌 안 추해?”
“레 레이온 님!”
“레이온 님!”
아서와 쇼렌에 깜짝 놀랐다.
새끼라니.
저속하고,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레이온의 모습이 심하게 두 사람이 당황했다.
로엔하르트야 원래 동방인의 출신의 여자의 배속에서 태어난 더러운 혈통의 사람이었지만 아서와 쇼렌이 모시는 레이온은 로엔하르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람이었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
“넌 안 추하냐고!”
“뭐해, 너희 주인, 너무 취했다.”
아서와 쇼렌은 로엔하르트의 말을 듣는 것이 싫었지만 그들도 이런 주인은 보기 싫었다.
“놔! 놔아아! 놓으라고!!! 죽고 싶어?! 쇼렌, 아서. 당장 날 놔!”
“술에서 깨어나신 후 벌을 받겠습니다.”
끄덕!
레이온이 반항하고 또 반항했지만 압도적인 강함을 지닌 아서와 쇼렌의 힘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결국 질질 끌려가는 레이온.
아직도 로엔하르트에게 소리쳤다.
“네가 더 추해! 네가 더!!!”
그런 레이온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로엔하르트는 자신의 여름의 별궁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야간 근무를 하는 메이드들이 그를 맞이했다.
낮이나, 오후, 저녁 보다는 그 숫자가 줄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깨어나 늦은 저녁과 새벽의 밤 시중을 들었다.
그 메이드들 중에는 아침부터 시작하여 로엔하르트가 침대에 눕는 시간까지 함께하는 리즈도 있었다.
“왔어요.”
“누나는?”
“잘 모셔 놓고, 주무시고 계세요.”
“리즈, 이거.”
목 상자를 리즈에게 건넸다.
목 상자를 받아 든 리즈가 의문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남궁화영과 있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리즈는 한참 동안 목 상자를 바라보더니 편안함 잠옷으로 갈아입은 로엔하르트의 손을 잡았다.
“설마 나를 안 데려갈 생각인가요?”
“응.”
“왜요? 꽤나 뛰어난 능력이라고 보는데, 전투에서도.”
“그렇겠지, 하지만 리즈에게는 더욱 중요한 부탁을 하고 싶어서 그래.”
더 중요한 부탁이라지만, 리즈의 얼굴을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일단 들어 볼게요.”
“리즈가 누나를 지켜 주었으면 해.”
“애린 황녀님을요?”
“응, 누나도 어느새 다 큰 20살이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 많이 돼, 특히 이번 출정에 나를 돕는 세력의 대부분이 집중되어 출정하기 때문에 현재 누나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은 미첼과 리즈, 두 사람뿐이야.”
로엔하르트는 리즈가 이해해 주길 바랐다.
“알겠어요.”
“고마워.”
로엔하르트는 주섬주섬 침대 곁으로 걸어가 잘 준비를 하였다. 그런 로엔하르트의 침대 앞에 리즈가 무언가 결심한 눈으로 로엔하르트를 보고 있었다.
“주인님.”
로엔하르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존대를 하기는 하나, 이런 호칭은 처음이었다.
“주인님?”
“따뜻한 난로 하나 안 필요하세요? 무척 부드럽고 따뜻한 난로데…….”
“무슨 색깔인데?”
“하얀색이요.”
“에이, 내가 저번에 봤을 때는 갈색인 거 같던데, 중간중간에 검은 점들이 있는…….”
“아니에요! 흥! 됐어요. 바보 같아.”
리즈는 돌아가려고 하였던 로엔하르트는 손목을 잡아당겨서 침대에 앉게 하였다.
“자, 그럼 얼마나 따뜻한 난로일지 구경해 볼까?”
두 손으로 요상한 모양새로 꿈틀거리며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런 로엔하르트의 두 손을 보며 살짝 풀려진 얼굴로 리즈가 작게 말했다.
“변태 같아…….”
-2-
크리온 에멘로스트 대공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인 팔콘 에멘로스트는 수도를 벗어나 인근의 로펜 자작령으로 숨어들었다.
제국은 귀족 영지 관할은 대체로 중앙에 황제령, 황제령을 둘러싼 자작령, 국경을 마주한 백작령, 백작령과 자작령 사이에 제일 작은 남작령들이 있다.
강력한 세력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모두 있으니.
황제령이 제일 강력한 것은 제국의 주인이 황제이기 때문이고 백작령들이 강력한 이유는 외적으로부터 국경을 사수하기 때문, 자작령들이 강한 이유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여 세력을 넓히려는 황제령을 저지하기 위해서, 남작령이 약한 이유는 강해질 이유가 별로 없기(한 남작령이 타 남작령보다 강하다고, 침략하면 오히려 제국의 반역 세력으로 찍혀서 척살 당한다. 이유는 영토 분쟁으로 인하여 남작이 큰 힘, 이득을 얻지 못하도록 억제하기 위함이다.) 때문이다.
이 로펜 자작령은 전통귀족파의 자작령으로 백작령에는 못 미치지만 같은 자작령들 중에서는 그 힘과 카리스마가 상당한 로펜 자작의 영지다.
마차를 타고 가는 팔콘의 얼굴에 짙은 피곤이 가득했다.
팔콘이 비록 크리온 대공의 장남이지만, 그는 평범한 재질의 사람으로 ‘로드 스타트’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의 셋째 동생인 아서가 또래 최강이라는 명칭을 얻은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덕분에 그는 피로를 얻는 것도 회복하는 것도 평범한 인간들의 수준과 같았다.
그런 팔콘에게 12시간 동안 이어지는 마차행은 정말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한 멀미와 구역질을 하며 초췌한 얼굴로 자작령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였습니다. 도련님.”
“어, 알겠네.”
팔콘은 마부의 말에 마차를 나왔다.
팔콘이 나온 곳은 자작령에서도 가장 큰 숲이었다.
이 숲은 황실의 가산과 비교해서도 그 크기가 더 대단하였고, 워낙 면적이 크다 보니 이 숲과 연계되어 있는 자작령과 남작령들도 많았다.
“후우, 이 숲의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말이지.”
“예.”
동행한 아버지의 최측근 격인 로펜 자작을 따라서 숲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과연 자작!
아주 자연스럽게 두꺼운 나무줄기를 밟고, 오우거보다 큰 바위에 훌쩍 올라가고, 나무의 옆면을 발로 박차며 그 신형의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낑낑…….
나무줄기를 타는 데에도 온몸에 진이 빠져나오는 기분이었다.
정말 이럴 때면 검술 수련을 게을리 한 것이 후회가 된다.
로펜 자작은 낑낑거리는 팔콘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 아들은 절대로 저렇게 안 키워야지.’
나무줄기, 바위 숲에서 장애물이 되는 것들에게 제대로 막혀 버린 채로 낑낑대는 팔콘을 보며 로펜 자작이 동방의 친구들에게 배운 생명력 활용법 전음을 사용했다.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여기에는 몬스터들도 없으니 마부와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숲 안쪽으로 달렸다.
사사사사삭.
나무 가지들을 빠르게 지나쳐 안쪽,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라진 로펜 자작을 보며 팔콘은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하아, 지금쯤이면 친구들은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 있을 텐데, 난 이게 뭐냐.”
팔콘은 문득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멍하니 지는 해를 바라보던 팔콘과 달리 로펜은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도착하였다. 그곳은 거대한 싱크홀(Sinkhole)이 있는 곳이었다.
로펜은 살짝, 아주 살짝 망설이더니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언제나 이것이 기진에 의한 시각적인 눈속임을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겁먹는 로펜이었다.
“킥킥.”
로펜은 기진 안으로 들어오자 자신을 보며 킥킥 웃는 재수 없는 동방인들을 한 번씩 째려보았지만 그놈들은 전혀 겁먹은 표정이 아닌 오히려 한 번 붙어 보자는 얼굴로 마주 보았다.
그들 중에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입구를 지키는 자들 중에는 가장 위 직급의 남자로 겨우 수문장이나 하는 자답지 않게 로펜과 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 머리, 눈동자의 검은 턱수염을 짙게 기른 동방인.
로펜은 모르겠지만, 이 남자는 무율 제국에서 알아주는 흉악범으로 악명이 자자한 자였다.
이름은 탕거철(宕居鐵), 탕추망망검(湯追亡亡劍)이라는 외호로 한 자루의 검으로 사람이 물러나지 않으면 죽어 버리게 만드는 검법을 사용하는 일류고수였다.
탕거철은 제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했다.
“사자는 어디 있소?”
“숲 밖에 있소.”
“그럼, 데려오시오.”
“사자는 혼자서 올 능력이 없소.”
“업어 오시오.”
“사람을 빌려 주시오.”
거철은 눈살을 찌푸리며 8명의 수하들 중 4명에게 눈짓하였다.
다른 4명보다 짬밥이나, 실력이 떨어지는 4명이 어기적 일어났다.
“이 녀석들이 도와줄 것이요.”
로펜은 네 사람과 함께 다시 숲 밖으로 달렸다.
로펜의 영활하고 재빠른 움직임에 4명의 수하들은 열심히 따라왔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동 능력으로 따졌을 때, 4명의 수하들은 움직임에 자유로움이 없었다. 어딘가 규칙적이면서도 제한적인 움직임으로 뒤를 따라왔는데 속도로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그래도 용케 로펜의 뒤를 따라왔다.
숲 앞에서 늙은 마부와 함께 건포(마른 육고기)를 먹고 있는 팔콘이 보였다.
쩝쩝쩝.
12시간이나 마차를 타고 달리다 보니 묘하게 배가 고팠다.
분명 맛이 없을 터인 건포여야 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다.
“이건 토끼 건포입니다.”
“아, 그렇군.”
“살이 쫀득한 것이 매우 맛있습니다.”
“그런데 건포가 종류도 그렇지만, 양이 많군?”
“아, 예, 제가 아주 좋아하고 공작님도 좋아하시거든요. 그래서 여러 종류의 건포를 마차에 비축해 두죠. 혹여 나중에 쫓길 때, 비상식으로 먹으려고 말입니다.”
“오, 그래? 도망갈 때는 자네 마차를 이용해야겠군.”
“물론, 제 마차를 이용하시면 적어도 한 달은 식량 걱정이 없습니다!”
“근데 한 달 동안이나 건포를 먹으면 질릴 것 같군.”
“그때는 이 방법을 사용하면 됩니다.”
마부는 작은 냄비에 버터와 식은 스프, 그리고 건포를 잘라서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하여서 빠르게 건포 스프를 만들었다.
팔콘이 한 번 먹어 보고 말했다.
“음! 꽤 괜찮군.”
“이런 식으로 건포를 조리해서 먹으면 됩니다.”
“그래도 이 한 종류로는…….”
“허허, 제가 아는 건포 조리법만 1,000가지 넘습니다!”
자부심이 가득한 마부의 말에 나중에 어디 가면 이 마부를 꼭 데리고 가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도련님 제 비법에 가장 중요한 점이 뭔지 아십니까?”
“뭔가?”
“제 건포가 맛있게 느껴지려면 일단 제 마차를 12시간 동안 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헉!”
12시간이나 탄 탓에 엉덩이가 몽둥이로 찜질한 느낌인데, 이런 기분을 느껴야 맛있게 느껴진다고?!
“흠, 자네 마차를 타 보는 것은 조금 고려해야 될 사항이군.”
“공작님도 그래서 긴급할 때나 멀리 갈 때 외에는 제 마차를 이용 안 하시죠.”
늙은 마부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팔콘은 아버지의 기분이 이해가 되었지만, 마부를 위로했다.
침울한 분위기가 계속 될 무렵, 로펜 자작이 네 명의 동방인들과 등장했다.
동방인들은 전음으로 누가 사자인지 묻자 팔콘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러자 동방인들이 재빨리 팔콘의 곁으로 가서 점혈을 하였다.
“어?! 뭐야?!”
팔콘이 자신의 몸이 안 움직이자 깜짝 놀랐다.
놀라는 팔콘에게 동방인들은 각기 팔과 다리를 한 짝씩 들었다.
그 행동이 워낙 재빨라서 로펜과 늙은 마부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어느새 두 팔, 두 다리를 동방인들에게 잡혀서 참으로 묘한, 누운 자세로 운반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소리를 지르자 아혈을 제압하였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두 팔, 두 다리를 제압당하여 허공을 나는 기분, 결코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비명을 지르고 싶은 기분이 간절했지만, 마혈을 제압당한 터라 몸을 꿈틀거리지도 못 할 뿐이었다.
로펜 자작은 황망한 와중에 대공의 아들을 저렇게 다루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재빨리 그 뒤를 쫓았고,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 늙은 마부가 노루 건포를 뜯으며 한마디 했다.
“대공 아들도 할 만한 직함은 아닌가 보네.”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잡혀 가는 대공 아들을 생각하며 건포 스프를 맛있게 저어 한 수저 떠먹었다.
후르륵 짭짭.
맛 좋은 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