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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황 1권(24화)
12장 출정식 Ⅴ(2)


-3-

로엔하르트는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황금 탑을 내려갔다.
출정식에는 5만 명의 병사들이 도열할 수 있는 넓은 장소가 필요한데, 이 장소 섭외에 황금 탑보다는 수도의 가장 큰 황금 성문과 황금 탑으로 이어지는 황금 다리 위에서 식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황금 성문은 수도로 들어올 때.
사용하는 문들 중에서 가장 크고, 높은 문으로 그 높이가 무려 678미터, 가로로는 1,000미터가 넘는 두께 15미터의 성문 같지도 않은 황금빛의 문으로 마도 제국에서 선물한 성문이었다.
그 성문은 하도 무거워서 열지는 못했고 성문에 ‘통과’ 마법이 새겨져 있어서 문을 열지 않아도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들어올 수 있는 성문이었다.
나가는 것은 상관없지만 들어오는 것도 제약이 없었기 혹여 적군들이 이 문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몰래 숨어들어 올 수 있기 때문에 경비가 삼엄한 곳이었다.
그럼 황금 성문과 황금 탑 사이를 이어 주는 황금 다리는 고공 다리로 지상에서 200미터 떨어진 위치에 있는 너비 500미터, 길이 3.3킬로미터의 다리 아래는 황금 탑의 가산들이 있었다.
키즈 제국의 수도는 동은 산맥으로 막혔고, 서는 강이 흐르는 지역으로 동산서강(東山西江)이었다.
수도의 중심은 황금 탑이 아니라 거대한 광장으로 초대 황제 로크스 시절부터 현재 황제인 로스만까지 제국의 역사를 연상하게 할 수 있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 역사박물관이 있다.
황금 탑은 수도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동쪽에 자리 잡았다.
처음에 황실을 지을 때, 수도의 중심을 두기에는 그 키기와 높이가 너무나 상상을 초월했고 서쪽이나 남쪽, 북쪽이 아닌 동쪽에 세워진 이유는…… 해가 동쪽에서 뜨기 때문이었다.
“로엔하르트! 내가 안 늦었구나.”
로엔하르트는 자신의 앞으로 나타나는 슈마허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슈마허 역시 번쩍이지 않는 의상이었지만 뛰어난 패션 센스를 가진 누군가의 솜씨로 운치가 있어 보이는 의상을 입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너에게 소개해 줄 사람들이 있다.”
“소개요?”
로엔하르트는 또다시 자신에게 소개를 시켜 준다는 말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슈마허의 뒤에는 남자 다섯, 여자 한 명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척 봐도 군인으로 보였지만, 복직이나 착용한 옷을 보면 귀족이었다.
“이들은 신흥귀족파의 사람들로 본래는 황실 여단 출신이었는데, 거기서 뛰어난 전공을 세워서 그 공적을 인정받아 귀족이 된 준남작들이다.”
준남작이라면 귀족계급의 가장 낮은 계급인 동시에 명예시민, 시민, 평민들이 귀족계급으로 들어서는 첫 계급이었다.
같은 귀족 중에서도 중간 계급(변경백 이하) 입장에서는 준남작이라 하면 깔볼 수도 있지만 대, 고위(변경백, 공작, 후작, 대공) 귀족들과 황족(황제, 황자) 입장에서는 준남작은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인재들이었다.
그들은 개인의 힘으로 귀족이 된 자들.
그런 만큼 준남작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기량을 지닌 자들이었지만, 계급이 워낙 낮기 때문에 약간 천대받는 느낌의 귀족들이었다.
“철리 준남작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인사하는 남자는 여섯 중에 가장 큰 키와 덩치를 지닌 남자로 홀드 졸 보르부 공작과 비교해서 조금 더 작을 뿐, 근육의 크기와 양은 철리 준남작이 더 크고 우람했다.
철리 준남작은 본래 마물 사냥꾼으로 일했지만, 가정을 가지면서 안정적인 군인으로 직업을 바꾸고 마물 사냥꾼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물과의 싸움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나중에는 같은 군인들과 함께 마물을 전문적으로 맡아서 군인들을 효율적으로 관리, 지휘하여 그 이후 10년간, 크고 작은 공적을 쌓아 살짝 늦은 나이인 55살에 준남작에 이른 입지적인 인물이었다.(이렇게 실전에서 대단한 자들이 많다. 그런데도 신분의 낮음으로 천대받는다.)
“스텐스 준남작입니다.”
스텐스 준남작은 40대 중반의 남자로 키는 여섯 중에 두 번째, 마른 남자로 철리 준남작과는 다른 팍팍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한 자루의 창으로 매서운 창법을 구사하는 실력가로 그에게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으니, 사실 그의 할아버지 때에는 단승 남작(3대까지는 귀족의 의무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계급)이었지만, 할아버지가 마지막 3대, 결국에는 그 이상의 계급으로 올라가지 못하여서 그 아래인 명예시민 계급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명예시민 계급이 된 스텐스의 아버지는 매일 술로 하루하루를 연명했고 결국에는 자살했다.
아들인 스텐스는 그런 아버지의 모든 것을 보고 자라, 가문을 세우고자 창을 잡았고 군대에서 공적을 쌓아서 준남작에 오른 사람이었다.
“휴스턴 준남작입니다.”
휴스턴은 40대 초반의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천민 고아로 13살에 자진해서 군대로 들어온 케이스로 어린 시절부터 군대를 바닥부터 겪어 온 남자였다.
그렇게 시작한 휴스턴은 앞서 실력이 뛰어났던 다른 군인들에게 검 쓰는 방법을 훔쳐 배웠다.
그렇게 훔쳐 배우기를 20년…… 휴스턴 남작은 뛰어난 두 개의 검을 귀신처럼 사용하는 쌍검사가 되었고, 그 이후에 20년짜리 짬밥으로 상사에게 공적을 빼앗기지 않아, 전장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준남작에 이르렀다.
천민 고아 출신에서 준남작까지, 그 역시 앞서 두 사람 못지않은 치열한 인생과 실력을 겸비한 놀라운 불굴의 정신을 지닌 자였다.
“에스바인 준남작입니다.”
에스바인은 미끈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앞서 세 명과는 달리 상당히 평탄한 인생을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검술과 전장에 대한 이해와 시각을 지녀서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두각으로 나타내었고, 15살에 군대에 입대하여 정확하고 똑바른 추리력으로 군대를 지휘, 마물들과의 싸움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보였고 이전에 다른 렉서스 왕국의 후예를 자처하던 3,000명의 반란군의 수뇌를 생포하는데 상당한 공적을 쌓아 준남작이 되었다. 고작 28살이었느니, 그는 상당한 추측력을 가진 천재 형이었다.
“조반니입니다.”
히죽 웃는 50대 초반의 남자.
그는 군 간부 출신으로 솔직하게 말해서 다른 동기들에 비해서 준남작의 직위를 받는 것이 느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조반니는 기술공으로 준남작이 되려면 어지간한 발명품 가지고는 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던 조반니는 겨우겨우 52살 되는 나이에 대형 새총 형태의 투석기를 만들었다.
이제까지 투석기가 정해진 거리와 각도로밖에 공격하지 못한 것에 반해서 이 새로운 형태의 투석기는 한자리에서 거리 조절과 각도 조절이 가능한 장치였다.
일반적인 새총의 형태가 커진 형태인데, 보통 돌을 놓고 당기는 위치에 밧줄을 달아서 뒤로 당길 수 있게 하였고, 어떤 각도로 당기느냐에 따라서 각도와 방향이 달라지는 효율성 있는 투석기였다.
“헤나 준남작입니다.”
여섯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 밤색의 머리를 길게 기른 외모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꼭 집자면 원칙과 규칙을 잘 지키는 학급 반장 같은 느낌의 눈에 안경만 딱 꽂으면 완벽하게 성실한 반장으로 보이게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군대에서 전달(지시, 명령, 물품 따위를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전하여 이르게 함)을 담당하는 전달병이었다.
전달병이 하는 일은 대체로 공문서나, 지시문 등을 전달하는 병사였다. 나름 편해 보이는 병사이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전시에는 이것만큼 힘든 병사 일이 없었다.
무리와 동떨어져서 온갖 위험이 가득한 지역을 빠져나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관이 3일 이내에 가져오라고 하면 그 3일 이내에 가져와야지 하루라도 늦으면 감봉이나, 계급 하향으로 이어지는 힘든 병사였다.
그런 전달병으로 준남작에 이른 헤나의 실력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었다.
“반갑습니다. 제2황자 로엔하르트입니다.”
황자와 준남작으로 그 직위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멀고 먼 관계였지만 로엔하르트는 상대를 하대하지는 않았다.
준남작이라면 스스로 힘으로 귀족의 자리를 따낸 자들, 겨우 핏줄 하나였다고 온갖 편한 삶을 이어오는 다른 귀족들과는 그 중요성이 달랐다.
여섯 준남작들은 로엔하르트의 태도에서 진정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알아봐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준남작들 중 에스바인이 먼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충성을 다하여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에스바인의 뒤를 따라서 철리, 조반니, 헤나, 스텐스, 휴스턴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충성을 다하여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충성을 다하여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충성을 다하여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충성을 다하여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충성을 다하여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여섯 사람의 우렁찬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로엔하르트는 그들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