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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타앙─!
그러고는 또다시 적을 향해 은탄을 박았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것마냥 벙쪄 있던 자들이 정신을 되찾았다. 뱀파이어 무리가 우리를 향해 달려들고, 페트리알이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위협했다.
본능적으로 페트리알이 자신들의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블라임들은 쉽사리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 틈을 타, 페트리알이 그것들의 얼굴을 앞발로 후려쳤다. 틈조차 주지 않고 바로 목을 물어뜯는다. 검은 물질이 블라임의 안구에서 꾸물꾸물 흘러나왔다. 날카로운 발톱이 블라임의 복부와 머리를 파고들었다. 살점이 너덜거리는 것이 여기까지 보였다.
총성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은탄에 맞은 뱀파이어들이 비명을 지르고, 몇몇은 폭동을 일으키듯이 날뛰었다. 제힐이 가진 총의 위력은 상당했다. 하지만, 그 총보다도 더 굉장한 것은 그 자신의 실력이었다. 그는 적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면서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는 단 한 번도 벗어나질 않았다. 반보 물러서거나, 슬쩍 몸을 트는 것이 전부였다. 은탄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백발백중. 총의 명수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었다. 새삼 그의 실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더는 느긋하게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는 달려드는 것들의 목을 움켜쥐고 바닥에 내리 꽂았다. 세게 부딪쳐 비명을 지르는 자의 목을 발로 짓밟고, 이어서 덤벼드는 자의 턱을 발로 걷어찼다. 화려하게 공중을 돌아 착지한 후, 빠른 속도로 주먹을 내질렀다. 육탄전은 내 체질이 아니었지만, 검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손톱을 치켜든 자의 손목을 꺾어, 복부를 걷어차고 나자 어느새 수가 꽤 줄어 있었다. 식은땀을 훔쳐내며 숨을 훅 내쉬었다.
“후우.”
잠시 모두가 동작을 멈췄다. 그 짧은 시간에 대부분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나마 건재한 자들은 이노 뱀파이어. 그중에서도 하프가 전부였다. 퓨어뱀프는 이 자리에 단 하나도 없는 모양이었다. 한마디로, 이건 휴에라라는 여자가 단독으로 행한 행위. 애초에 뱀파이어들은 무리지어 생활하지 않는다. 개성이 뚜렷한 놈들인데, 대체 저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숨이 붙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낑낑거리기만 할 뿐 일어서지는 못했다. 제힐과 나의 공격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깔끔하게 급소만 노린다는 것. 급소에 그 일격을 맞고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때, 또각또각 높은 굽이 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휴에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여자는 이상하게도 멀쩡했다. 지쳐 보이는 기색도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휴에라는 단 한 번도 나선 적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단지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가 천천히 박수를 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짝짝짝, 하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느긋한 움직임이었다.
“예상외의 실력들이었어. 굉장한데? 매력적이야, 역시. 외모도 그렇지만, 그 실력. 흠 잡을 데가 없어.”
그녀가 휘파람을 불었다.
마치, 완벽한 조각품을 감상하는 듯한 눈길에 나와 제힐이 미간을 찌푸렸다. 페트리알이 자연스럽게 우리를 보호하듯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 애들만 불쌍하게 됐네. 뭐, 살 수 있는 것들만 살면 되니까.”
휴에라가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얼굴에선 이미 웃음기가 사라진 후였다.
“식사시간이다.”
사무적인 그녀의 어조에 쓰러져 있던 것들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뭐, 뭐야!”
뒷걸음질을 쳤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달려들어 상대방을 집어삼키려 들고 있었다. 강자가 약자의 목을 물어뜯어 힘을 흡수하고, 서로의 목숨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끔찍하고 추악한 모습들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몸을 파고들고, 흉악하게 일그러진 시체는 저 멀리 집어 던져졌다.
이윽고 남은 자들이 멀쩡해진 모습으로 자리에 섰다. 언제, 지쳤었냐는 듯한 모습들이었다.
토기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우욱!”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제힐이 총을 겨눴다. 그러자 휴에라가 손을 휘적휘적 저었다. 아쉽다는 듯한 얼굴에 어깨가 흠칫 떨렸다. 저 여자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미안하지만, 놀이는 여기까지다. 애송아.”
여태까지 웃었던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그녀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휴에라가 발을 한 번 굴러 뾰족한 굽으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그러자, 저택이 웅웅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창밖에서 검은 어둠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숲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 저택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시커멓고 음습한 어둠이었다.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진득한 액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깜깜한 어둠이 이윽고 그 환했던 달마저 가려 버렸다. 음습하고 축축하게 젖은 어둠이 발치로 밀려들어왔다.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뱀파이어의 시력은 어둠속에서도 모든 것을 뚜렷하게 알아본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척까지 다가온 어둠이 순식간에 발목을 휘감았다. 당황한 내가 발을 빼려 했지만, 그것은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발목부터 천천히 어둠이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내 몸이 발끝부터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았다.
타앙─!
그때, 눈부신 빛 하나가 어둠에 박혔다. 소리로 예측하건대, 제힐의 탄환이었다. 내 발목을 옭아맸던 어둠이 거짓말처럼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탁!
갑작스레 손목이 붙잡혔다. 흠칫, 놀란 내가 어깨를 굳히며 뒤로 물러섰다. 인간치고는 체온이 차갑다. 하지만, 뱀파이어에 비해서는 따뜻했다. 잡힌 손목에선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떨리는 시선으로 허공을 주시했다. 하지만, 시선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이 어둠 속에서 오로지 보이는 것은 내 몸뿐이었다. 그때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삭이는 듯 작은 목소리였다.
“따라와라.”
제힐이었다. 그 목소리에 힘이 탁 풀려 버렸다. 제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는 다시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어둠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바람이 느껴졌다. 어딘가에 출구가 있다는 뜻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대충 예상이 갔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어둠이 스며들었던 창문이다. 그가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꽉 잡힌 손목이 저릿했지만,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 어둠 속에서 그나마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것은 크나큰 위로였다. 이 손을 놓고 싶지가 않다.
“신호하면, 뛰어내린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에게는 보일 리가 없겠지만, 제힐은 감으로 알아들었는지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힐끔 아래를 바라보자 발끝이 사라져 있었다. 제힐에게 잡힌 손도 잘린 듯 사라진 채였다. 손목이 달려 있다는 감각은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였던 내 몸은 서서히 어둠에 먹혀들고 있었다.
그때, 제힐이 소리쳤다.
“뛰어!”
손목이 잡아당겨지고, 몸이 본능적으로 다리를 굴러 점프했다. 그러곤 순식간에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이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솟구쳐 왔다. 뺨을 때리는 바람은 차가웠고, 바람이 감싸는 몸은 가볍다.
이윽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몸이 땅에 닿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땅을 굴렀다. 온몸에 풀이 들러붙고, 긁힌 생채기가 생겨났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힐이 다시금 손목을 잡아왔다.
“빛이 보이는 곳으로 뛰어라.”
“빛?”
고개를 갸웃거렸다. 빛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어둠에 잡아먹힌 공간에 빛이 있을 턱이 없었다. 나는 허공을 주시하며 눈을 지그시 떴다. 빛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거지.
그때,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은색의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제힐의 총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봤던 은백색의 총과는 달랐다. 그러고 보니 좀 전에 총을 두 자루를 쓰던데. 그중 하나인 듯했다. 순수한 은빛이 시야를 잡아끌었다. 무엇보다도 어둠에 집어삼켜지지 않은 것이 신기하였다.
제힐이 공중을 향해 그것을 겨누더니 이윽고 순백의 탄환을 쏘았다.
탕!
탄환이 어둠을 뚫고서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먼 곳에서부터 빛이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출구였다. 그의 탄환이 어둠을 뚫어낸 것이었다.
더는 기다릴 것도 없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일시적으로 뚫렸던 출구는 다시금 점차 어둠에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빠른 속도였다. 우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전투로 지친 몸에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지체할 틈은 없었다. 공간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젠장, 뭐가 이렇게 멀어!”
조금만 더 가면 가까워질 것 같았지만, 그것보다 어둠의 속도가 더 빨랐다. 초조함을 느꼈다. 자신의 다리가 너무도 느리게 느껴졌다. 좀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이 최대한 속도를 내는 것이었기에 이 이상의 속도는 무리였다.
돌연, 나의 몸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그것을 느낀 순간, 몸이 붕 뜨더니 뒤로 쑥 넘어갔다. 다행히 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은 아니었다. 손바닥에서는 부드러운 털의 촉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는 타인의 온기가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눈앞의 것을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옷자락이 뺨에 닿았다. 제힐의 허리구나,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머리를 스쳤다.
이내, 빠른 속도로 그것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두 다리를 편하게 하고 앉았다. 우리를 등에 업고 달리는 것은 의심할 것도 없이, 페트리알이었다. 나를 붙잡아 챈 것은 아마도 페트리알의 이빨. 검은 짐승은 빠른 속도로 빛을 향해 달렸다. 빛은 빠른 속도로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열 걸음을 남겼을 무렵, 페트리알이 공중을 향해 점프했다. 유연하게 등이 휘고, 날렵한 몸이 빛을 향해 발을 뻗었다.
꼬리까지 모두 빠져나왔을 때, 바로 뒤에서는 구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닫히고 있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아주 큰일이 날 뻔했다.
페트리알은 힘이 들었는지 바닥에 엎어졌고, 등에서 내려온 우리 또한 땅에 드러누웠다.
제힐이 헥헥 숨을 몰아쉬는 페트리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맙다, 페트리알.”
돌아본 저택은 까만 안개에 둘러싸인 듯 보였다. 몸을 섬뜩하게 만드는 안개였다. 무심코 저 안에 발을 들였다간, 곧장 어둠에 집어삼켜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저택을 노려보듯이 주시했다. 높은 창문 안쪽에서 휴에라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2. 시작하다
녹초가 되었다. 집을 잃은 지 나흘. 덜커덩거리는 마차에 몸을 실은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렇게 안락한 공간에 몸을 앉힌 게 얼마만일까. 불가항력으로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수중에는 돈도 아주 적은 금액밖에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다. 그런 사정 때문에 항상 야영을 해 왔고, 제대로 된 음식조차 먹지 못했다. 간혹 페트리알이 잡아오는 짐승들을 구워 먹거나, 나무 열매를 따다 먹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마차 안에 엎드린 채로 한숨을 푹 쉬었다. 떠돌이 여행객이라도 이보다 더 처량하진 않으리.
겨우 남아 있던 돈은 황성으로 향하는 비용에 모두 지불해 버렸고, 이제는 정말 탈탈 털어도 빵 부스러기 하나 나오지 않는 거지가 되고 말았다.
“배고파아.”
꾸르륵, 꾸르륵. 전쟁이라도 치루는 양 요란스러운 배를 붙잡았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아서 총을 손질하고 있는 제힐은 덤덤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페트리알도 다르지 않았다. 저것들의 몸은 대체 뭐로 만들어진 걸까.
“참아. 곧 있으면, 황성이다.”
그놈의 ‘곧’ 세 번만 더 들으면, 열 번이다.
나는 고개를 팩 돌리고는 마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구경했다. 하늘은 푸르고, 겨울 공기는 시렸다. 날씨가 날씨인지라, 밭에서 자라고 있는 곡물은 없었고, 간혹 심어 놓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도와 가까워질수록 농민들의 생활 또한 달라졌다. 시리에스 공작 령은 워낙에 고립된 곳에 있다 보니, 생계를 꾸려 나가기에도 빠듯해 보이는 자들이 산재해 있었다.
하지만, 수도는 달랐다. 농민이어도 풍요로운 여유로움이 그들에게 있었다. 분명, 황실이 수도 농가에는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턱을 괸 채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황성. 이 기분은 설렘일까, 두려움일까.
그때, 마차가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크게 흔들렸다. 다급하게 창문을 부여잡자 곧 움직임이 멎었다. 바라본 창밖은 여전히 황성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어째서 이곳에서 멈춰 서는 걸까.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제힐이 마부에게 외쳤다.
“무슨 일인가.”
답은 없었다. 하지만, 이윽고 우리는 들을 수 있었다. 무언가를 보고 놀란 듯, 공포에 질린 듯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으, 으아악!”
그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고, 곧장 몸을 낮췄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도적들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
제힐이 손질했던 총을 빙그르르 돌려 잡고, 나는 뚜두둑거리며 손을 풀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때려잡아야 함은 변함이 없다. 이윽고 비명소리는 멎었다. 그 후에 찾아온 것은 이상하리만치 잠잠한 정적이었다. 결국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허술한 문짝이 덜커덩거리며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우리가 목격하게 된 것은 처참하게 살이 파이고, 피가 빨린 시체였다. 습격자들이 누구인지 확인해 보지 않아도 뱀파이어임을 알 수 있었다.
설마, 여기까지 계속 쫓아왔다는 것인가.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키히히힉.”
턱까지 길게 삐져나온 기이한 송곳니가 붉은 피를 잔뜩 묻힌 채로 번들거렸다. 상대는 단, 하나였다. 그것도 스켈뱀프.
이윽고 그것이 우리에게로 달려들고, 가장 먼저 반응한 페트리알이 스켈뱀프를 향해 맞부딪쳐 갔다. 강하게 몸을 들이받아 넘어뜨리고, 그것의 목을 세게 밟아 짓눌렀다. 이상하게도 약한 스켈뱀프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를 쫓아왔다면, 분명히 휴에라가 보낸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이토록 약한 녀석을 보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제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영 찜찜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페트리알이 짓밟고 있는 것은 어느새 숨을 다해 가고 있다. 역시 이상해. 그리 생각하던 도중, 무언가가 등 뒤에서 불쑥 나를 옭아매어 왔다. 숨을 헉 들이켰다. 젠장, 단단히 허를 찔리고 말았다. 왜 바보같이, 그녀가 한 마리만 보냈을 거라 생각한 걸까. 나는 황급히 몸을 틀어 주먹을 내질렀다. 턱뼈가 돌아가는 소리가 기괴했다. 제힐도 이제야 깨달았는지 다급히 등을 돌렸다.
“아일!”
그래. 왜 잊고 있었을까. 이것들의 목적은 나라는 것을! 나는 숨을 몰아쉬며 한 발 물러섰다. 뱀파이어는 질겼다. 아무리 걷어차고, 주먹을 내질러도 다시 일어서서 달려들었다. 마치, 죽을 것을 각오한 것마냥 뒤도 안 보고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피하고 공격하고의 연속이었지만, 끝이 없었다.
나는 다시 공격해 오는 뱀파이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 주먹은 여태까지와는 달리 쉽게 붙잡혀 버렸다. 체력을 소진한 탓이었다. 적이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여, 힘이 쓸데없이 빠져나가고 만 것이다. 빌어먹게도.
“젠장!”
주먹을 비틀며 빼내려 하였다. 하지만, 꽉 잡힌 손은 빠지질 않았다. 다리를 들어 몸을 걷어찼지만, 뱀파이어는 내 손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졌다. 제힐이 쏜 탄환이 뱀파이어의 어깨에 박혔다. 하지만 이놈은 그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피부가 벗겨져 흉물스러운 모습이 드러났는데도, 손에서는 끈적끈적한 것이 질질 볼품없게 흐르는데도 그것은 나를 놓지 않았다.
제힐은 함부로 총을 쏘질 못했다. 까딱했다간 이놈이 아닌 내가 맞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나와 딱 붙어 있는 바람에 심장도 노릴 수가 없다. 정말이지 젠장맞을 상황이었다.
그때, 돌연 그것이 내 손을 팟 뿌리치더니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다. 긴 손톱이 내 어깨를 파고들었다. 그러곤 뿌리칠 새도 없이.
“아악!”
날카로운 송곳니가 나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아무런 대처조차 할 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무언가가 빨려 나가는 느낌이 들고, 옆에서 뱀파이어의 목울대가 움직이며 꿀꺽꿀꺽,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또다시 그 느낌이다. 온몸의 세포가 타는 듯 끓는 느낌.
뒤에서 제힐의 외침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뜨거웠다. 전신이 재가 되어 버릴 듯이 그렇게 뜨거웠다. 입 밖으로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간다.
탕! 하며, 총성이 울려 퍼졌다. 내 목덜미를 물고 있던 것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났다. 이번엔 심장에 탄환이 박혔는지 단, 한 방으로 재가 된 그것은 바람에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뱀파이어는 총이 겨눠지는 것을 알고도 피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이, 공포조차 없던 눈은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손을 들어 목덜미 부근을 매만졌다. 깊게 팬 곳에서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손끝이 닿기만 해도 댈 것 같은 그런 뜨거움이었다.
“으윽.”
구토가 밀려오는 듯했다. 속이 뒤틀리고 피가 역류하며, 심장이 뜨겁게 몸을 달궜다. 몸 안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소용돌이치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뭔지 나는 알고 있다.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될 무언가. 본능적으로 입이 열렸다.
“안…… 돼.”
육체에 영혼이 집어삼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사실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 감각에 지는 순간, 영혼이 집어삼켜지는 순간 자신은 사라지게 된다.
원래 이 육체에 걸맞은 뱀파이어의 혼이 깨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 막아야 했다.
나는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극심한 구토감을 느꼈다.
“우욱!”
넘어올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속이 뒤틀려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힘이 빠진 다리가 땅에 주저앉았다. 도저히 몸을 지탱하고 서 있을 힘이 없었다.
뒤에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짙은 압박감에 눌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제힐이 내 이름을 부른다고 느낀 순간, 나는 희미하게 남아 있던 정신을 놓았다. 또다시 고동소리가 들려온다.
멀어지는 정신 속에서 휴에라의 웃음소리를 들은 듯했다.
“아, 일어났군.”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빨간 불꽃이었다. 하늘은 이미 해가 기울어 사방이 어둡고 공기가 식어 있었다. 옆에는 나뭇가지를 제물 삼아 타고 있는 불이 몸을 데워 주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제힐이 앉아 있었다. 흙바닥에 앉아 가만히 총을 손질하고 있는 옆얼굴에는 음영이 그려졌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씨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한잠 푹 자고 일어난 듯 머리가 개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까지 개운할 수는 없었다. 쓰러지기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모를까. 선명히 떠오르는 기억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막을 방도가 없다.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물려 버린 목덜미를 어루만져 보았지만, 이미 상처는 없었다. 벌써 아물었구나. 하지만, 심장에 독처럼 퍼지는 그 기운은 이미 현재진행형이었다. 이젠 내 이성만으로는 힘을 억누를 수가 없을 것이다. 휴에라가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완벽하겐 모르겠지만 그녀의 1차적 목표는, 나의 각성.
나는 부러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나 지났어?”
혹시 연회에 늦어지는 건 아닐까. 아니, 그것보다 정신이 늦게 돌아오면 돌아올수록 불안 한 것은 따로 있었다. 과연, 쓰러져 있는 동안 자신은 인간인 걸까. 그 주기가 길어질수록 불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점차 인간으로서의 정신을 놓아 버린다는 뜻이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제힐의 답은 고맙기까지 했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은 지나지 않았다는 말에 긴장했던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차는?”
황성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건만 마차는 주위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곳도 그때 그 장소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숲 속. 제힐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겠지만, 이래서야 황성에 무사히 도착할 수나 있을는지.
이윽고 망설임 없이 돌아온 답은 예상대로였다.
“부서졌다.”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기절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 멀쩡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지없이 마차가 부서졌단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뻔했다. 휴에라였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나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긴, 포기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듯하지만. 나중에 만난다면 반드시 이 빚은 갚아 주리라.
고개를 들어 별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하늘을 보았다. 마치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그때, 희망과도 같은 제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갈 방법은 있지.”
그에 반색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있다고?!”
제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턱 끝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사이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무언가가 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서서히 눈이 그것의 윤곽을 그리고 선명한 형태를 띠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건 분명히…….
멍한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말?”
“마차는 부서졌어도 말은 멀쩡하니까.”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잡아 왔다는 거군. 기가 막힌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가 아무렇지 않게 “타고 가야 하니까.”라고 덧붙였다.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할지, 감탄스럽다고 해야 할지. 놀라운 생존 능력이었다. 짧은 시간에 일어난 그의 판단력과 순발력, 그리고 행동력은 박수를 쳐 줄 만했다. 하지만.